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11화 (111/501)

# 111

기업 인수 (3)

(111)

물파산업의 회장이 분노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의 출석 명령서를 받은 것이었다.

“구전무, 이런 서신이 왔는데 한번 보시오. 검찰에서 나를 보자고 하는데 왜 그러는 거요?”

“임금채권 때문일 것입니다.”

“임금채권? 누가 고발이라도 했다는 거요?”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고발했을 겁니다. 그는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석 안하면 어쩔 거요?”

“고의로 회피하시면 나중에 잡으러 오겠지요. 한번 다녀오십시오.”

“갔다가 날 구속시키면 어쩔 거요?”

“하하, 당장 그러지는 않습니다. 일단은 합의하라고 할 것입니다.”

“합의?”

“네, 합의요.”

“합의를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요? 합의란 게 다 돈으로 막는 건데.”

“합의가 안 되면 재판에 붙여지겠지요.”

“그럼 판사가 구속시키나?”

“하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구속 여부는 판사의 재량이니까요.”

회장은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검찰에 간다고 나갔다.

관리인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구건호에게 물었다.

“회장님 지금 어디 가시는 겁니까?”

“검찰 출석 요구서를 받았습니다.”

“임금채권 때문에 그런 모양이구먼. 영감 고집은!”

관리인이 슬며시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구전무, 내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공익 채권인 임금 채권부터 먼저 정리하자고 했잖아요. 회장님이 그걸 보고 원재료 값 안준다고 펄펄 뛰더니 저게 뭡니까? 인생 말년에.”

회장이 오후 4시가 넘어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류 하나를 구건호 앞에 휙 던졌다.

“개자식들! 내 밑에서 밥을 먹던 놈들이 임금 좀 밀렸다고 날 고발해? 개자식들!”

구건호가 회장이 던진 서류를 보았다. 20여명의 임금 체불자들이 연명으로 회장을 고발한 내용이었다.

“저도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구건호는 슬슬 물파를 인수하는 시기가 다가옴을 느꼈다.

“모두 불행해지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텐데.”

구건호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 회사의 자본금은 그동안 징벌적 감자를 당해 5억으로 쪼그라들었다. 회장은 사실상 찾아갈 돈이 별로 없는 셈이다. 내가 20억을 준다면 좋은 조건인데 회장님이 고집을 부리는군. 청담동 이회장님이 그랬지. 돈놀이 하던 자기와 달리 기업하던 사람은 그 기업이 자식과 같아서 애착을 보인다고 했지. 오세영 회장님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자. 그도 생각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중 아닌가?]

구건호는 관리인을 찾아갔다.

“회장님에게 인수대금으로 20억원을 제안했습니다.”

관리인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회장이 뭐라고 합니까?”

“생각 해 보고 답을 주겠답니다.”

“좋은 조건인데 나 같으면 당장 하겠네. 영감님이 신용불량을 안 당해봐서 뭘 모르네.”

“제가 20억 납입하면 그날로 회사를 넘겨받습니까?”

“아닙니다. 법정 관리기업이기 때문에 일단은 증자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자본금 5억이니까 20억을 넣는다면 증자방식이지요. 5억을 가진 회장님보다 20억을 가진 구전무가 단숨에 대주주가 되는 것이지요.”

“흠.”

“일단 회생계획안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어지면 저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제3자 매각을 추진해야 합니다.”

“흠.”

“인수희망자, 즉 구전무께서는 인수희망서를 저에게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주간사를 선정해야 합니다.”

“주간사요?”

“회계나 법률 검토도 해야 하고 절차의 공정성을 위해서지요.”

“주간사는 누굴 세웁니까?”

“제가 아는 후배 회계법인도 있지만 오해사긴 싫습니다. 원래 이 회사가 거래하던 안창 회계법인도 괜찮습니다.”

“흠, 인수희망서는 복수를 받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인수희망자의 의지나 경험 등도 고려해야 되니까 구전무님 외엔 적임자가 없습니다. 또 입찰에 응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일단은 돈이 있다는 잔액증명서가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총알부터 준비해 놓으시지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전량 매도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바빠서 증권계좌를 통 열어보지 못했네. 두 달 전 평가액이 900억이었지?”

구건호는 자기의 주식 계좌를 열어보고 크게 놀랐다.

“평가액 2,250억!”

구건호는 숨이 멈췄다. 자기의 보유 주식이 900억에서 2.5배나 크게 올라 있었다.

구건호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늘은 나를 돕는구나!”

구건호는 밖으로 나가 하늘을 향해 심호흡을 했다.

“하늘이 나에게 준 돈은 10원짜리 하나 허투루 쓰지 않겠다!”

구건호는 주식의 액수가 커 파는 데만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증권사 지점장이 몇 번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구건호는 우선 100억을 인출해 은행 계좌로 이체 시켜 놓았다. 물파산업을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2250억의 자산가면 물파보다 더 큰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지만 구건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파를 인수해 상장기업으로 키운다!”

이것이 구건호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었다.

구건호가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팔고 있는 동안 조사위원들의 조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관리인이 조바심이 났는지 구건호를 자주 찾았다.

“회생계획안 실행 계획안이 어렵다고 나오는 모양입니다. 구전무님이 요즘 통 말을 안 하셔서 궁금합니다.”

회장은 회장대로 조바심이 나는 모야이었다.

“그 20억 인수는 아직 유효한 거요? 혹시 뒤에 있는 전주(錢主)들이 딴 생각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까?”

구건호는 들은 채도 안하고 주식만 파는데 정신을 쏟았다.

관리인이 다시 구건호를 불렀다.

“조사위원들이 조사결과를 법원에 제출한답니다. 법원은 바로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때립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회사의 임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구전무가 뒤에 있는 전주들을 이용해 인수의향을 가졌지만 회장이 말을 안 듣는다며? 공중분해 되면 저도 죽는데 왜 그럴까?”

“회장은 회사와 함께 자폭하겠다는 건가? 죽으면 혼자 죽지, 왜 종업원들을 다 죽이려고 그래.”

노조 위원장이 직접 회장을 찾아가 따지기도 했다.

구건호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

회장을 찾아갔다.

“뭐 좋은 안이 나왔소?”

회장의 얼굴은 초조했다.

“일단은 오늘 관리인에게 인수희망계획서를 제출하겠습니다.“

“계획서는 어떤 내용이요?”

“20억 드립니다. 증자 형식입니다. 관리인은 아직 법정관리 업무를 수행해야하니까 증자대금을 받아 회생 채권을 우선순위에 따라 변제할 것입니다.”

“내 사채부터 갚아줘야 할 텐데.”

“관리인은 공익채권부터 정리하겠지요.”

“그럼 나는 한 푼도 못 받아가는 거요?”

“추가 납입하여 자본금 5억원을 제가 인수하는 것으로 하고 회장님 가수금 정리하는 것으로 해서 20억을 맞추어 내어 드리겠습니다.”

“고맘소, 구전무. 도와주는 김에 한 가지만 더 부탁합시다.”

“무엇을 말입니까?”

“내 방배동 개인아파트가 근저당 설정이 많이 되어 있소. 모두 법인의 부채인 원재료 업체의 외상매입금 때문이요. 이걸 먼저 풀어주시오.”

“흠.”

“물론 채권의 상환엔 우선순위가 있지만 내가 위험해서 그렇소.”

“저는 회장님을 존경합니다. 법인의 부채를 개인재산으로 담보설정을 해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점을 높이 삽니다.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고마워!”

구건호는 회장의 아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물파산업을 인수하기위해서 나의 인수 희망서를 관리인이 법원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내가 아니라 아드님께서 하셨더군요.”

“예? 저는 한 것이 없습니다.”

"중국에서 B기업의 새로운 도면을 받아낸 건 아드님의 역할이 컸더군요.“

“그거 받아 내려고 B기업에 있는 선배한테 무릎 꿇고 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그 도면과 기계들은 모두 거기에 있는 종업원들이 점거해 있는데요.”

“영업권 인정해서 1억원 드리겠습니다. 중국 물파를 인수하겠습니다.”

“예? 1억원이요?”

물파 회장의 아들은 생각지도 못한 1억원 소리에 귀가 번쩍했다. 그동안 얼마나 시달렸는지 빨리 넘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1억 주시면 조건 없이 넘겨 드리겠습니다. 거긴 매출처와 매입처가 단순해서 인수인계도 복잡하지 않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가십시오. 거기 가시면 곤산시 산업공단 쫑징리로 있는 김민혁이란 사람이 찾아올 겁니다. 그 사람하고 인수인계 절차를 밟으시면 됩니다.‘

“산업공단 회사 하고요?”

“산업공단은 합자사입니다. 거기 합자사 한국 측 지분은 모두 내가 투자한 회사입니다.”

"그렇습니까?“

전화상에서도 아들의 놀라는 얼굴 모습이 떠올랐다.

관리인은 물파의 제3자 매각을 위하여 안창 회계법인을 선정했다. 전에 물파가 거래하던 안창의 이낙종 회계사를 불렀다.

“이낙종입니다. 물파는 오래전부터 제가 맡아왔습니다.”

“이낙종 회계사님은 법정관리가 끝나고 새로운 인수자가 운영하게 되면 다시 오십시오. 인수희망자와 이야기는 나누었습니다.”

“다시 불러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단은 강력한 인수희망자가 있지만 형식적으로 주간사를 통한 매각방식을 택했습니다. 주간사는 회계사님이 소속된 안창회계법인의 서울 본사와 계약하였습니다.”

“오, 그러셨군요. 강력한 인수희망자는 어떤 분입니까?”

“저기, 오시네. 아직은 전무이사지만 매각이 완결되면 오너 대표이사로 부임하십니다. 인사하시지요.”

“구건호입니다.”

이낙종 회계사가 구건호의 얼굴을 자꾸 쳐다보았다.

“어디서 뵌 듯한 분 같습니다.”

“전에 한번 상담하러 갔었지요. 회계사님한테 푸대접 받았지만.”

“아, 이제 기억납니다. 푸대접은 무슨.”

‘하하, 농담입니다. 혹시 거래하게 되면 잘 부탁합니다.“

구건호가 손을 내밀자 이낙종 회계사는 일어서서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혔다.“

관리인이 웃으며 화게사에게 한마디 더했다.

“자금력이 아주 탄탄하신 분입니다. 인수희망서에 첨부된 예금증명서 금액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마어마한 돈이 예금되어 있더군요.”

구건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작 100억 예금된 것 가지고 놀라다니! 이 사람들은 내가 증권사에 현금 2100억이 있는걸 알면 졸도 하겠네.]

이낙종 회계사가 돌아가고 난 다음에 구건호는 관리인과 차를 한잔 마셨다.

“이제 여기 법정관리가 종결되면 어디로 가실 예정입니까?”

“법원에 또 신청해야지요. 관리인 후보로 선정해 달라고 해야지요.”

“순번은 잘 돌아오십니까?”

“제가 경험은 있어서 법원에서도 믿고 인정은 해주지요. 하지만 요즘은 관리인 하겠다는 사람도 너무 많아졌네요.”

“관리인은 주로 은행 지점장 하시던 분이 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업에서 상임감사를 하던 분들도 있고 회계사나 세무사도 있습니다. 캐피탈 회사나 보험사 사장 출신들도 있고요.”

“흠.”

“왜 그런 걸 물으십니까?”

“관리인 하려고 여기 저기 다니지 말고 여기 눌러 앉을 생각은 없습니까? 상임감사 자리 드리지요."

“예? 물파의 상임감사로요?”

“여기 업무를 잘 아시고, 또 일하시는걸 보니 매끄럽게 잘 하시는 것 같아서 권유 드려 봅니다.”

“그러면 저야 쌍수 들고 환영하지요.”

“대우는 많이 못해드리지만 지금 받는 것 보다 조금 더 드리지요.”

“고맙습니다.”

“중국의 물파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예? 중국을요?”

“1억에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거기 책임자는 정해진 사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일단은 중국 물파에 출자금 100억이 기표된 것은 이번에 투자자산 처분 손실로 정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재무제표가 가벼워질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은행 지점장 출신의 50대 중반 관리인은 구건호를 깍듯이 대하기 시작했다. 힘의 중심이 서서히 젊은 구건호에게 옮겨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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