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기업인수 (2)
(110)
물파산업의 경리부장은 오늘도 법원에 보고할 서류들을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다.
구건호가 웃으면서 다가갔다.
“부장님, 뭐 좀 도와드릴 일 없습니까?”
“괜찮습니다.”
“하다못해 회계프로그램에 전표 입력하는 것이라도 도와드릴까요?”
“예? 프로그램을 할줄 아세요?”
“더존 회계프로그램은 사용할 줄 압니다.”
“그래요?”
경리부장이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저 옛날에 경리직원이었어요.”
“그러세요?”
경부부장은 머뭇거리기만 할뿐 일을 맡기지는 않았다.
“그냥 제가 하지요. 혹시 나중에 필요하면 도움을 청하지요.”
“참, 회장님 아드님 전화번호 아십니까? 중국 가기 전에 여기서 부사장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경리부장은 머뭇거리다가 자기 수첩을 본다.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여기 있네요. 번호 안 바뀌었으면 통화 가능할겁니다. 제가 전화번호 가르쳐 주었다는 말 아무한테도 하지마세요.”
구건호는 물파 회장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가 간 후에 전화를 받았다.
“오학선씨죠?”
“예, 그렇습니다.”
“저는 물파산업 오세영 회장님을 모시고 있는 구건호라고 합니다. 통화 가능합니까?”
“혹시 새로 오셨다는 전무님입니까?”
“예, 맞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 하셨습니까?”
“한번 뵙고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서울 삼성동에 있습니다. 친구가 하는 회사에 잠깐 일을 봐주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로 올라가지요.”
“아니, 그러지 마시고 제가 분당에 살고 있으니 저녁때 거기서 만나시죠. 아산서 올라오기도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정자동으로 가겠습니다. 오후 7시경 분당 정자역 괜찮겠습니까?”
“예, 좋습니다.”
구건호는 물파 회장 아들을 분당 정자동 커피숍에서 만났다.
아들은 구건호보다 두 살 정도 어려 보였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귀공자처럼 보였다. 서로 인사를 했다.
“새로 전무님 오셨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의외로 젊은 분이시네요.”
“아드님도 무척 젊어 보이네요.”
“회사는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조사위원들의 실사가 아직 안 끝난 상태입니다. 얼마 있으면 뚜껑이 열리겠지요.”
“그렇습니까?”
“제가 찾아온 목적은 중국사업의 정리 여부를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물파에서 해외 투자자산 100억이 넘는데 전혀 회수가 안 된 상태입니다.”
“휴.“
아들은 길게 한숨부터 쉬었다.
“중국 것을 매각해서 다만 얼마라도 물파로 돈이 흘러 들어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각을 시도하시기는 하셨습니까?“
“시도 했지만 모두 싸게 먹으려고 덤벼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중국의 소주시 오현에 있는 공장을 저도 가 보았습니다. 기계를 종업원들이 점거하고 있는데 자산이 그 기계뿐인가요?”
“금형도 있고, 그밖에 콤푸레샤라든가 시험 장비들이 좀 있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공장은 자산이 3억도 안갈 겁니다. 임대 공장이라 보증금 정도 조금 있고 기계와 원자재 조금 사놓은 것 밖에 없을 듯합니다.”
아들은 속이 타는지 콜라를 주문해 마셨다.
“남들은 물파의 지원금 100억을 다 어디에 썼느냐 하지만 기계나 설비를 산 건 아닙니다. 그동안 제품 찍느라고 원자재 산 것들이 누적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 원자재로 제품 찍었으면 매출이 많이 발생했을 텐데요.”
“불량이 많이 나왔고, 중국 거래처가 부도난 곳도 있어 납품대금을 못 받은 것이 많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외상매출금이 얼마나 있습니까?”
“1억 정도 될 겁니다. 임금체불로 종업원들이 압류를 해 매출처에서 돈을 안주고 있습니다.”
“주어야 할 것은 얼마나 있습니까?”
“8억 정도 됩니다. 원자재 대금 못준 것, 미지급금 등이 4억이고 임금이 3억 정도 됩니다.”“줄 것 받을 것 정리하면 7억 정도 손실이군요.”
“누군가 산다면 금형하고 납품처 보고 사야겠지요. 납품처는 다 대기업이니까요.”
“납품처가 거래선을 다른 곳으로 바꾼다면?”
“그러진 않을 겁니다. 대기업의 입장에서도 우리가 물건을 공급 못하니까 국내 생산품을 수입해다 씁니다. 기계 돌아가면 두 손 들고 좋아할 겁니다.”
“흠.”
구건호는 팔짱을 끼고 있다가 말했다.
“얼마를 받고 싶습니까? 누군가 산다면?”
“3억 정도 받고 싶습니다.”
“3억 주고 산 사람은 줘야할 것 7억원을 안고 산다면 10억에 사는 거겠네요.”
“그, 그렇겠지요.”
“만약에 10억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살까요? 골치 아픈 회사 사는 것 보다는 10억으로 돈 놀이나 하고 사는 것이 더 났다고 생각 안 드세요?”
“휴.”
아들은 또 길게 한숨을 쉬었다.
“만약에 물파가 공중 분해된다면 중국 공장도 아주 위험해 집니다. 지금까지는 물파 인력의 도움도 받았지만 그게 끊어집니다. 당장 공장 기계 A/S 문제도 있지 않습니까? 급할 때 원자재도 외상으로 가져다 썼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집니다.”
아들은 또 정신없이 콜라를 마셨다.
아들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들은 내가 중국 공장에 100억을 퍼부었다고 하지만 원자재를 물파가 공급하면서 시중가격보다 비싸게 부풀려 공급했습니다. 기계도 물파가 쓰던 것을 조립한 것인데 새것으로 둔갑해 들여왔습니다.”
“그럼 물파가 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방만한 경영이죠. 구조조정 없이 종업원들이 너무 많았고 고액 급여의 관리직이 너무 많았습니다. 납품처의 단가 책정도 문제가 있었고 운도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아버님에게 회사를 20억에 사겠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아들은 허탈하게 웃었다.
“매출액 700억의 회사가 어이없이 무너지는 군요.”
“지금 그거라도 받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기업회생 폐지결정이 나오면 아버님과 아드님은 바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합니다.”
“신용불량자요?”
“신용보증기금에 30억을 법인이름으로 빌리셨지요?”
“기억납니다.”
“아버님과 아드님 개인 이름으로 연대보증 하셨더군요. 법인에서 받지 못하면 신용보증기금은 바로 개인의 재산을 압류하고 소송 들어옵니다.”
“아으으으.”
아들은 머리를 싸매고 괴성을 질렀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아드님은 사회생활이 불편해 집니다. 대한민국은 청년들 창업을 권유하면서 신불자가 되면 냉정해집니다.”
“나쁜 새끼들! 연대보증 하기 싫다는 걸 부사장인 아들도 연대보증 해야만 자금지원이 가능하다고해서 한 건데. 올가미에 걸렸네요. 씨팔!”
“연대보증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좋지요?”
“아버님을 설득해 주세요. 20억에 양도는 좋은 조건이라고 하십시오.”
“중국은요?”
“중국은 누가 살 사람이 없을 겁니다. 줄 것이 많으니 그대로 양도하거니 폐업 수순을 밟아야 할 것 같습니다.”
“폐업하면 종업원 급료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가요?”
“중국도 종업원급료는 상거래 채권과 달리 중히 여깁니다. 고발되면 다시는 중국 땅을 밟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파를 사는 사람한테 그대로 양도한다는 조건으로 이야기 해 보십시오.”
“들어줄까요?”
“물파 인수자는 동일 업종이니 조건만 좋다면 고려해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전무님은 물파 직원 중에서 가장 현실을 잘 꿰뚫어 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나갔지만 물파에 있던 전무나 상무들 개자식들이 많았습니다. 아버님이 말하는 것만 예, 예, 하고 따르고 다른 일은 하지도 않은 인간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억대 연봉에 고급 승용차까지 지급했으니 말이 됩니까?”
“분당에서는 아파트에 삽니까?”
“네, 그렇습니다.”
“자기 소유 아파트 입니까?”
“와이프 이름으로 되어있습니다. 혹시 채권자들이 달려 들까봐 와이프 이름으로 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부인은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까?”
“영어학원 원장입니다. Y대 동창입니다.”
“호, 그러십니까? 저는 아산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이만 일어서렵니다.”
구건호가 사무실에서 법원에 낼 이의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중국에 있는 김민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어제 소주에 있는 물파 공장 종업원 대표를 만났어. 같이 술도 한잔 했어. 사람은 좋던데?”
“그래? 뭔 새로운 정보라도 있나?”
“지금 체불 임금자 대부부분은 다른 곳에 취업했지만 10여명은 아직 취업 못하고 물파 공장 처분 때만 기다리는 모양이야.”
“종업원 대표는 중국에 나와 있는 한국의 B기업에서 제품 만들어 달라는 도면까지 가지고 있던데?”
“B기업이라면 대기업 아닌가?‘’
“만들어달라는 것이 가스켓 종류인데 월 1억씩 납품을 받을 수도 있데.”
“너 도면 볼줄 아냐?”
“그럼, 알지. 나 캐드도 좀 배우다 말았어.”
“하하, 그래?”
“야, 그 공장 아깝다. 기계도 쌩쌩해. 누군가 인수해서 영업만 잘 하면 되겠던데?”
“그래? 알았다. 나 지금 법원에 제출할 서류가 급해 이만 전화 끊는다.”
“알았다. 수고해라.”
사촌동생 재웅이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구건호는 양복을 깨끗이 갈아입었다.
“축하 화환은 보내지 말자. 내가 장가도 안간 놈이 거래처도 아닌 친척 동생에 보내기는 모양이 안 좋다.”
고모가 온갖 모양을 내고 신랑 옆에 서 있었다. 뚱뚱한 고모가 한복을 곱게 있고 화장을 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뚱뚱한 재웅이와 완전히 붕어빵이었다.
“어머머, 이게 누구야! 건호 아니냐? 시상에, 몰라보겠네. 너, 돈 많이 번다더니 이렇게 사람이 달라졌구나. 너도 이제 장가가야지.”
“예, 재웅이가 장가가서 기쁘시겠습니다.”
옆에 서있던 재웅이는 크림을 얼굴에 많이 발라 얼굴이 번질번질 하였다.
“재웅아, 축하한다.”
“어, 고마워. 형.”
구건호는 혼주와 신랑에게 대충 인사만 하고 그냥 가려고 하였다.
“피로연 참석은 생략하자. 오지랖 넓은 친척들 만나면 또 골치 아파진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척 한분을 만났다.
“너, 건호 아니냐?”
60대쯤 되는 먼 친척 아저씨였다. 잠바를 입고 얼굴은 벌써 한잔 마셨는지 붉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너는 이놈아, 장가도 안가고 뭐해! 재웅이보다 네가 형이지?”
“네, 그 그렇습니다.”
“너, 올해 몇 살이냐?”
구건호는 오늘 일진이 나쁜 모양이라고 생각되었다.
“서, 서른 다섯입니다.”
“야, 이놈아! 옛날 같으면 손자를 보겠다!“
구건호는 접수대에 얼른 축의금 봉투를 전달하고 쏜살같이 예식장을 빠져 나왔다.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 어디 있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나, 예식장 나왔어. 급히 갈 데가 있어서.”
“그래? 고모는 널 봤다고 하는데 엄마 아빠는 네가 안 보인다고 지금 찾으러 다녀.”
“엄마, 아빠한테 잘 말씀드려. 급한 일이 있다고.”
“알았다. 오래 간만에 네 얼굴도 보고 싶었는데 간다니 할 수 없구나. 정아도 삼촌 보고 싶다고 했는데.”
“정아는 많이 컸지?”
“걔 이번에 상 받아. 어린이 합창단에 뽑혀서 서울에 가서도 공연해. 삼촌 준다고 팜프렛까지 들고 왔는데.”
“하하, 정아한테 삼촌이 축하한다고 전해줘. 피아노 한 대 사서 집으로 보낼게. 정아 선물이야.”
“피아노?”
음악에 소질이 있는 아이라 진작 사 주려고 했어,
“아이고, 아이고, 그만둬라. 너한테 신세진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닌데 또 신세지기 싫다.”
“신세는 무슨 신세. 나 바빠 전화 끊을게.”
구건호는 혼자 생각했다.
[내 대신 엄마, 아빠를 잘 모셔주니 그 정도는 보답을 해야지.]
구건호는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랜드로버를 몰고 아산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