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기업인수 (1)
(109)
구건호로서는 다행인 것이 있었다.
처음에 들어올 때 보다는 임금채권이 다소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법원에서 파견 나온 관리인은 돈이 들어오면 공익채권인 체불 임금부터 꺼 나갔다. 자연히 관리인의 인기는 크게 높아졌다.
“관리인님이 최고야. 회장님 같으면 밀린 임금부터 줬겠어? 원재료 들어온 돈부터 갚으려고 했겠지.”
“그래도 3개월치나 밀렸네. 이제 카드 값도 좀 갚고 마누라한테 쫓겨나지 않게 생겼네.”
“새로 온 전무이사 말이야. 그 사람은 돈이 있긴 있는 모양이야. 차도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옷도 명품만 걸쳤던데?”
“아버지가 재벌인가?”
“아냐, 강남의 큰손들을 알고 지내는 모양이야.”
“누가 그러는데 우리 회사 납품하던 와이에스 테크에 근무한 적이 있데.”
‘혹시 사기꾼 아닐까?“
“모르지. 요즘 신문에 나는 기업 사냥꾼인지.”
“여기서 받는 월급은 200만원이라는데 식사는 나가서 고급만 먹는다고 하더군. 구내식당에서 밥 먹는 것 못 봤어.”
구건호는 슬슬 낚시 줄을 던지기로 했다.
회장실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중국에 있는 저희 회사 직원이 강소성 소주에 있는 아드님 회사를 방문해 보았다고 합니다.”
“중국을? 그래 거긴 어쩐다고 합니까?”
“종업원들이 공장을 점거해서 기계들을 압류해 놓고 있다고 합니다.”
“그럴 테지. 망할 자식. 끙.”
“아드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몰라요. 나도!”
“중국 공장은 처분하실 겁니까?”
“누가 살 사람이 있어야지요. 기계만 있을 텐데.”
“그것을 팔아 한국 물파로 돈이 들어오면 우리 부채를 털 수가 있습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 안 팔리니까 그렇지.”
이번에 납품대금 들어온 건 종업원 밀린 임금부터 정리했습니다.
“끙, 내가 사채에 시달리는 것도 아직 있는데.”
“관리인님은 밀린 임금 먼저 집행하니까 종업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그 자식 이야기 하지 말아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저랑 중국 한번 다녀오지 않겠습니까?”
“관리인 저 녀석이 출장비 통제하는데 가고 싶지도 않소.”
“제가 개인적으로 부담하지요. 중국에 제가 투자한 합자사도 있습니다.”
“합자사가 있어요?”
“예, 저는 제조 회사는 아니고 공단 분양과 관리 회사입니다.”
“오, 그래요?”
“금요일 월차 쓰고 주말 이용해서 다녀오면 됩니다. 법원에 보고할 필요도 없습니다.”
“흠, 그럴까? 관리인 얼굴 쳐다보기도 싫은데. 그럼 갑시다.”
구건호는 김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요일 물파산업 회장님을 모시고 소주로 가니까 상해 포동 공항으로 나와라.”
“어, 그래? 알았다. 와서 공단 구경도 해라.”
인천공항에 물파산업 회장이 나왔다. 중절모를 쓰고 나왔는데 오랫동안 기업 활동을 해서 그런지 폼은 그럴 듯 했다. 회장 티가 났다.
비행기가 포동 공항에 내렸다.
회장은 중국 상해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중국 참 오래간만에 와보는구먼. 잘 나갈 때는 소주 공장의 임원들이 나를 맞으러 차를 가지고 왔는데 이제는 누구하나 찾는 사람 없네.”
구건호가 이렇게 말하는 회장의 옆얼굴을 보았다. 주름 잡힌 그의 얼굴이 사무실에서 볼 때 보다도 더 늙어 보였다.
“구사장, 반갑다. 나 여기 있어!”
“인사해라. 아산 물파산업의 회장님이시다.”
“김민혁이라고 합니다.”
김민혁이 정중히 인사하면서 자기의 명함을 회장에게 주었다. 회장이 눈을 찌푸리면서 명함을 보았다. 시력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반갑소.”
“차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오, 택시를?”
“아닙니다. 제 차입니다.”
김민혁은 깨끗이 세차된 아우디로 회장을 안내했다.
김민혁은 곤산시 금계 산업공단으로 구건호와 회장을 안내했다.
공단에 큰 공장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었다.
“오우, 이제 많이 찼네.”
“계약된 것들 까지 합치면 삼분의 이는 금년 말로 찰 거야.”
회장이 감탄하면서 물었다.
“그럼, 이 공단을 합작하는데 구전무가 투자했단 말이요?”
김민혁이 대신 말을 받았다.
“예, 이 공단은 합자 투자의 한국측 50% 지분을 전부 구건호 사장이 투자 했습니다. 저는 구사장 밑에 있는 월급장이이구요.”
“야, 무슨 내 밑이라고 하냐? 합작 파트너지.”
“호, 대단들 하시네.”
회장은 김민혁의 사무실에서 중국 용정차까지 얻어 마셨다. 직원들이 분주히 오고가고 아직 중장비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건호는 회장과 함께 소주시 오현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가는 도중 내내 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전에 아드님 공장은 와 보셨지요?”
“그럼, 몇 번 와 보았지.”
회장은 아들 공장의 문을 닫힌걸 보고 멈칫했다. 자물쇠가 잠겨 있지만 관리인을 불러 열어달라고 하였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종업원 대표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관리인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김민혁이 언성을 높였다.
“여보쇼. 나도 옆 동네 곤산시 공단의 쫑징리요. 잠깐 보는데 뭘 그렇게 막아요?”
김민혁이 관리인에게 명함을 주자 관리인은 머뭇거렸다.
구건호가 얼른 100위안을 관리인 주머니에 찔러 주었다.
“잠깐 보고만 나올게요.”
김민혁의 명함보다는 구건호의 100위안 위력이 더 컸다. 관리인은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얼른 보고 나오세요.”
회장은 공장 안으로 들어가 멈추어진 기계들을 살폈다. 착잡한 표정이 되어 기계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회장은 기계들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구건호는 그의 늙은 손이 측은해 보였다.
회장은 기계를 쓰다듬더니 마침내 눈물을 보였다. 구건호도 눈물이 핑 돌았다. 구건호는 고개를 돌렸다.
“망할 자식!”
“망할 자식!”
회장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이 기계들을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김민혁은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 했는지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구사장이 왔다고 해서 합작 파트너인 금계건설 사장 선칭꿔가 저녁을 대접한답니다. 화동찬청으로 예약을 해 놓았다고 연락 왔습니다.”
“그래? 가자! 회장님도 오셨는데.”
화동찬청의 화려한 내부를 보고 회장이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호, 지방도시에도 이런 고급스런 요리집이 있구먼.”
구건호는 김민혁을 따라 나온 합자사 판공실 주임에게 회장님이 연로하시니까 해산물 위주로 음식을 주문하라고 부탁했다.
“여, 구사장!”
금계건설 선칭꿔와 합자사 부사장 까오꽝신이 왔다. 구건호는 이들에게 회장을 소개했다. 회장은 괴로움 때문인지 술을 많이 마시는 듯 했다.
“과음하시는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내가 젊었을 때는 말 술을 마시던 사람이요.”
술자리가 끝날 무렵 곤산시 부시장 리스캉이 왔다. 그는 다른 회식 장소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얼굴색이 이미 붉어 있었다.
“야, 구사장 반갑다. 내가 오늘 소주시에 갔다가 이제 막 돌아왔다. 안 그러면 일찍 왔을 텐데.”
“참 인사해라. 한국에서 부품 제조공장을 하시는 회장님이다.”
“그래?”
“회장님, 같이 인사하시지요. 이곳 곤산시 부시장이 제가 왔다고 하니 이렇게 뛰어 왔네요.”
“호, 부시장이!”
부시장이 오자 다시 술을 시키고 시끄러워졌다. 회장은 구건호가 통역 없이 부시장과 웃고 떠들고 대화하는 것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김민혁도 그동안 중국말이 많이 늘어 통역 없이 금계건설 사장과 떠들며 대화했다.
구건호는 회장이 외로울 것 같아 중간 중간에 무슨 말을 했는지 통역을 해 주었다.
“그래, 중국에 대해서 이 젊은이들처럼 이 정도는 알아야지. 나의 중국 사업은 무모했어. 내가 아들 녀석만 탓할 것이 못되지. 중국이 장차 떠오르는 나라라고 중국을 처음에 가게 한건 나였지.”
회장은 회한의 심정으로 술을 마셨다.
“나의 세대는 이제 간 거야.”
어제 저녁 과음으로 구건호와 회장은 호텔에서 늦게 일어났다. 로비에서는 김민혁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과음했나봐. 8시가 넘었네. 너 언제 왔니?”
“한 시간 전에 왔어.”
“한 시간 전에? 왜 와서 깨우지 그랬냐?”
“이이고, 곤히 자는데 어떻게 깨우냐? 피로 회복엔 잠이 최고다.”
“회장님 저기 오시네. 회장님도 지금 일어나신 모양이네.”
“아침밥 먹으러 가자. 호텔 식당으로 가자.”
“지금 이 시각에 아침밥 먹을 수 있나?”
“아침 9시까지는 된데. 내가 물어 봤어.”
‘그래, 가자. 너도 아침 안 먹었지?“
“안 먹었어. 가자.”
호텔 식당은 아직 치우지 않았다. 음식 재료가 많이 떨어지긴 했으나 먹을 만은 하였다. 세 사람은 모두 흰죽을 퍼와 밥 대신 먹었다.
구건호는 포동 공항에서 김민혁을 돌려보냈다. 비행기 이륙시간이 많이 남아 구건호는 회장을 라운지로 모시고 갔다.
“여기서 중국 차를 마실 수 있겠소? 어제 마신 중국 차가 괜찮던데.”
구건호는 용정차를 주문했다.
두 사람은 뜨거운 용정차를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말없이 마셨다. 용정차를 절반 정도 마셨을 때 구건호가 입을 열었다.
“저, 회장님. 들리는 소문엔 조사위원들이 영업상무가 작성한 매출 계획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건 내가 봐도 그렇소.”
“그렇게 되면 법원의 기업회생 절차가 폐지됩니다. 그러면 지급명령을 받은 16개 업체에서 바로 차압이 들어옵니다.”
“끙.”
“한국 전력 전기료 미납도 3억이 넘습니다. 바로 단전 조치가 됩니다.”
“끙.”
“관리인 말로는 자기가 전에 맡았던 회사들이 회생 폐지 결정이 나면 바로 종업원들이 그만 둔다고들 합니다.”
“휴.”
“기업을 파십시오. 훌훌 털고 남은 여생이나마 마음 편히 사시는 것도 좋지 않습니까? 손자들과 함께 어울려 놀러 다니시고 하시지요.”
“껍데기뿐인 회사를 누가 살 사람은 있겠소?”
“더군다나 임금채권이 너무 많습니다. 임금채권은 정리 못하면 회장님은 바로 형사 고발됩니다.”
“내 밑에 있던 종업원들이 나를 고발 하겠소?”
“종업원들이 하기 전에 노동청에서 먼저 합니다.”
“끙.”
“종업원도 자기 불이익은 감수하지 못합니다. 등 돌리고 고발합니다.”
“끙.”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노후자금으로 20억원을 드리겠습니다.”
“20억이라.”
회장은 고개를 들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20억은 너무하오. 물파는 고정 거래선이 있소. 눈에 보이는 자산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업권이라는 게 있잖소? 50억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하고는 너무 달라도 한참 다르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에 신고 된 채권 신고액이 700억원이 넘습니다. 저는 회장님께 20억원을 드리고 이후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이 회사는 TS16949인증은 물론 SQ인증(현대 자동차가 인정하는 품질경영 시스템)도 가지고 있소. 요즘 현대 자동차에서 그거 잘 안내줘요.”
“그래서 이것저것 따져 20억원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너무 적어요.”
구건호와 회장은 잠시 침묵했다.
“제 뒤에 있는 전주들은 솔직히 말해 물파를 인수하지 말라고 합니다. 영양가가 너무 없다고들 합니다.”
“끙.”
“회장님. 너무 욕심내시면 안 됩니다. 주간사를 통해 M&A 공고를 내도 채권, 그중에도 임금 채권이 너무 많은 기업은 손들 잘 안 뎁니다. 혹시 상장회사라면 나중에 증자나 전환사채라도 쉽게 발행할 수 있지만 물파는 아니지 않습니까?”“
“끙”
“M&A 계획이 무산되면 회장님은 임금체불로 형사 입건되고 회장님과 아드님은 바로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신용불량자라니? 주식회사 법인의 부채는 법인으로 끝나지 않소?”
“아닙니다. 법원에 채권신고 된 것을 보니까 신용보증기금에 회장님과 아드님이 개인자격으로 연대 보증을 하셨습니다. 금액은 30억입니다. 이걸 갚을 자신이 있습니까?”
“신용보증기금 개자식들!”
“신용보증기금도 공적 기관이지만 만약을 염려한 채권 확보 수단은 강구하는 것 아닙니까? 회장님은 몰라도 아드님은 젊은 나이에 장래를 망칠 수 있습니다.”
“끙.”
“젊은 나이에 저는 1,200만원 부채 때문에 개인 회생은 아니더라도 신용회복 위원회까지는 갔다 온 경험이 있습니다. 돈 참 무섭습니다. 저의 자산은 젊은 나이에 돈에 대한 고통을 많이 받아 보았다는데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내가 무척 피곤해요. 이 문제는 다음에 또 이야기 합시다.”
회장은 비행기를 타러 휘청거리며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