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08화 (108/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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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를 위한 준비 작업 (3)

(108)

구건호는 물파산업의 채권자중 금융기관을 제외한 상거래 회사 사장을 만나보기로 하였다. 그중 채권액이 가장 큰 5군데를 골랐다. 이 5군데의 액수는 전체 상거래 채권액의 절반을 넘었다.

“5군데 중 두 곳은 와이에스테크처럼 용역 회사고 3군데는 원재료 공급사군.”

구건호는 채권자중 와이에스테크가 안 물려 있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처남 회사라고 납품대금을 잘 준 모양이네. 와이에스테크는 채권액이 3억 밖에 안 되네.”

구건호는 먼저 원재료 공급사부터 만나보기로 하였다.

“원재료 공급사는 전부 재벌에 가까운 회사네. 여기 대표이사들은 나 같은 사람은 안 만나 주겠지? 담당 임원이나 만나보자.”

구건호는 원재료 공급사의 임원들을 직접 만나보았다.

“H그룹 케미컬 상무님이시죠? 물파산업 전무이사입니다. 오늘 찾아뵈려고 합니다.”

“거기 법정관리 들어간 건 진행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찾아뵙고 말씀드리지요.”

구건호는 당진에 있는 H그룹 케미컬을 찾아갔다. 재벌회사 공장답게 공장 규모는 엄청났다. 대졸 신입사원들이 100대1의 경쟁을 뚫어야만 들어올 수 있는 회사였다.

구건호는 정문에 신분증을 맡기고 방명록에 서명한 후에나 들어갈 수 있었다. 직원들이 소회의실로 구건호를 안내했다. 물파산업이 비록 작은 회사지만 전무이사라고 하니까 그나마 조금 대우를 해주었다.

“역시 직급이 중요해.”

한참 기다린 후 담당 상무이사가 과장 한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물파에 외상을 너무 많이 주어 내가 입장이 아주 곤란해졌습니다.”

키가 작고 땅딸보처럼 생긴 상무가 오자마자 불만을 쏟아냈다.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전무님은 물파에서 못 뵙던 분인데 언제 오셨습니까?”

“온지 얼마 안 됩니다. 상무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물파를 많이 도와주시고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실 물파에 원재료를 외상으로 공급한건 순전히 제 재량으로 한 겁니다. 그런데 이 공급대금을 못 받고 있으니 내가 위에서 여간 쪼이는 게 아닙니다. 법정관리는 인가가 나는 겁니까?”

“인가 여부는 아직 결정된바 없습니다. 혹시 누군가가 물파를 인수한다면 H그룹 케미칼의 원자재는 그대로 공급할 수 있겠습니까? 월 20억 정도 공급하고 있네요.”

“밀린 것 50억을 준다면 그렇게 하지요.”

“밀린 것을 천천히 준다면 동의하겠습니까?”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그럼 물파 인수 희망자가 인수를 포기합니다. 그러면 밀린 외상값 50억 받아낼 수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청산 절차에 들어가면 남는 것이 있겠지요.”

구건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회사 법원에 신고한 채권 신고액이 700억을 넘습니다.”

‘헉! 700억!“

“청산해도 돈을 절반도 못 갚습니다. 그러면 H케미컬의 돈은 떼이게 됩니다.”

“흠.”

“우호적인 누군가가 물파를 인수해 외상값을 분할해서 갚는 것이 정답입니다.”

“거래는 중단 없이 계속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기존에 물린 외상값은 분할해서 갚고 신규로 공급하는 원재료 대금은 바로 다음 달에 결재하는 것으로 합니다.”

“흠.”

“제가 오늘 찾아온 것은 밀린 원자재 값을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나면 분할 상환할 테니 물품대금 청구 소송을 취하해 달라는 뜻입니다.”

“흠.”

“새로운 인수 희망자는 H그룹의 확답을 듣고 싶어 한답니다.”

“소송 낸 건 취하할 수 없습니다. 나도 월급쟁이인데 무언가 액션은 취했다는 걸 위에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단은 그쪽에서 이의 신청을 내십시오. 그러면 판사가 지급명령을 바로 때리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인수 희망자가 있긴 있는 겁니까?“

“조만간 변화가 있을 겁니다. 그때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이렇게 3군데 원재료 공급사를 찾아보았다. 여론은 대개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나면 거래는 계속하고 밀린 것은 분할해서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구건호는 마지막으로 용역회사를 찾아갔다. 용역회사는 충남 예산에 있었다.

“유승테크입니까? 사장님이시죠? 저는 물파의 전무이사입니다.”

‘옛? 물파의 전무님이라고요? 새로 오신 전무님 맞죠? 그렇지 않아도 찾아뵈려고 하던 참입니다. 우리 회사 용역비는 언제 주실 겁니까?“

“지금 법정관리중이라 기존의 외상대금은 다 묶여 있는 것 아시죠?”

“알긴 합니다만 우리는 영세해서 돈 안주면 아주 곤란한 일이 발생할 것 입니다.”

“내가 지금 그리로 가고 있으니 가서 말씀 드리지요.”

충남 예산에 있는 유승테크는 제법 컸다. 공장도 3천평은 넘는 것 같았다.

사장은 공장 정문 입구에 서 있었다.

사장은 50대로 깐깐해 보였다. 공장도 나름대로 깔끔했다.

“우리같이 작은 회사가 10억씩 물려있으면 아주 힘듭니다.”

구건호는 이 사장에게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나면 납품대금은 분할해서 주겠다고 달랬다.

“여긴 종업원이 얼마나 됩니까?”

“90명입니다. 매출은 120억 조금 넘고요. 물파와 제원이라는 회사 두 군데 납품하고 있습니다.”

구건호는 과거 공돌이 시절 90명 정도 되는 회사는 입사도 못해보았다. 대게는 20, 30명 정도의 종업원이 있는 작은 회사였고 마지막 와이에스테크가 지금 방문한 유승테크 정도 되었다.

“됐다.”

구건호는 대형 상거래 채권자들을 모두 달래는데 성공했다.

“만약에 물파를 인수한다면 빚을 한꺼번에 갚지 않아도 된다. 나누어 갚으면 된다.”

구건호는 마지막으로 내부를 단속시키기로 했다.

물파산업의 영업상무와 공장장 격인 생산담당 상무와 연구소 소장에게 차례로 전화를 했다.

“새로 온 구건호 전무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오늘 저녁이나 같이 하시지요.”

영업상무만 50대 초반이고 공장장과 연구소장은 50대 후반이었다. 아산 시내에 있는 복어 회집에서 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구건호의 눈치를 슬슬 보았다. 30대의 구건호이지만 그가 돈이 많은 사람을 배경으로 한 인물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돈 앞에서는 나이도 학력도 소용이 없었다.

“물파를 움직이는 실질적 책임자님들을 진작 모셔야 할 텐데 늦었습니다.”

“소문에는 전무님이 회사를 인수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혹시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있습니까?”

“먼저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법원에서 위임한 조사위원들이 예상 매출 계획을 수정하라고 했는데 그 매출은 과연 달성 가능한 것입니까?”

“A모터스의 신제품을 우리가 개발하면 단숨에 가능은 합니다.”

“그러면 그 신제품 개발은 우리 연구소 실력으로 바로 되는 겁니까?”

연구소장과 영업상무, 공장장 등 3명은 모두 웃었다.

“그렇게 밥 먹듯이 얼른 개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력과 장비가 지원된다고 해도 1년은 걸립니다. 시제품 생산 후 여러 번 시험 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흠”

“일단은 개발을 전제로 영업계획을 짜야 존속가치를 인정받는데 유리하지요.”

“그러면 법정관리 인가는 가능하다는 말이네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조사위원들도 법정관리 기업을 여러 번 상대해봐 통과를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사위원들은 대전의 다스 회계법인이라고 했지요? 한번 만나볼까요?”

“안 만나 줄 겁니다. 조사기간 중에는 조사업체의 임직원을 개별적으로 만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겁니까?”

“법으로 정해진 것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관례가 그런 것 같습니다.”

“흠.”

“회장님 아드님이 무리했습니다. 회장님 아드님은 물파의 부사장으로도 한 2년 근무했습니다. 의욕은 좋은 사람인데 운 때도 안 맞았고 중국에서 불량품이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술이 한잔씩 돌아가자 구건호를 경계하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공장장이 질문했다.

“이런 질문 드려서 뭣하지만 전무님 뒤를 보아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뒤를 보아준다니요?”

“회사를 인수하는데 실질적으로 돈을 대는 전주 말입니다.”

영업상무도 덩달아 말했다.

“예, 저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그건 아직 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 강남의 큰손을 제가 몇 명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움직임은 없습니다.”

“인수를 한다는 주체가 법인입니까? 개인입니까?”

“죄송합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밝힐 수 없습니다.”

술이 한잔 더 돌아가자 구건호가 다시 말했다.

“회장님 아드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모르겠네요. 회장님과 싸우고 나갔다는데 중국에 계신 가 모르겠습니다.”

공장장이 다시 말했다.

“중국 공장에 있는 기계들을 내가 A/S 했는데 그동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회사가 어수선해도 흔들리지 마시고 계시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구건호의 이 말에 임원 3사람의 얼굴이 다소 펴졌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자니?”

“아니, 방금 들어왔어. 지금 발 닦고 자려고 해.”

“고모 아들 재웅이가 결혼한다고 한다. 다음 주 일요일이야.”

“그래요? 잘 됐네요.”

“12시에 간석오거리에 있는 꼬디움인지 꼬끼오인지 하는 예식장에서 한다더라. 예식장 이름도 이상하지.”

“제가 시간 내서 갈게요.”

“신부는 우체국 다닌데. 거기도 공무원인가?”

“그럴 겁니다.”

“고모가 와서 건호는 왜 장가 안가냐고 한다. 돈도 좀 벌었다면서 나이도 찼는데 왜 안가냐고 하더라. 네 고모는 자기 아들만 잘난 줄 알아.”

“살 집은 마련했데요?”

“계산동에 새로 진 연립주택 전세 얻었데. 네 고모는 재웅이가 그동안 공무원 해서 5천만원 모았다고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더라.”

“많이 모았네요. 재웅이는 착실하지요.”

“착실하면 뭘 해. 인사성도 없는데. 내가 가면 본체만체도 안하더라.”

“하하, 걔가 원래 숫기가 없어서 그래요.”

“너는 사귀는 사람 있냐?”

“없어요.”

“네가 연애 못하면 나라도 알아보겠다. 나이만 자꾸 먹어 큰일이다.”

“제 걱정 마시고 주무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휴, 알았다.”

구건호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나서 이불 속에서 한참을 멀뚱거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일본의 무기(舞妓: 춤추는 게이샤) 모리에이꼬가 생각났다.

“이거, 이래서는 안 되는데. 내가 왜 자꾸 그 여자가 보고 싶어질까.”

구건호는 모리에이꼬의 맑은 눈과 흰 피부 도톰한 입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모리에이꼬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게이샤들은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는데 그날 그녀는 그냥 옅은 화장만 했었어. 무대가 아니고 요정이라 그런가? 정말 요정 속의 요정이었어.”

구건호는 모리에이꼬를 생각하다가 밤 2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김민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물파 기차배건 유한공사의 종업원 대표를 만나보았어.”

“뭐라고 하냐?”

“임금 5개월치를 못 받았다고 하더라. 종업원이 한때는 100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20명도 안 남았다고 그러네. 남은 사람도 생업 때문에 다른 일 하면서 회합 때나 모이나봐.”

“그래?”

“기계는 종업원들이 임금채권 때문에 압류한 상태고 금형도 자기들이 잘 보관하고 있다고 말을 하더군. 밀린 월급만 주면 공장 점거를 바로 푼다고는 하네. 아무튼 기계들이 아까워.”

“흠.”

“참, 그 옆에 한국인 기업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는데 물파의 젊은 사장이 가끔 공장을 보고 간다는 말은 하더군."

"그럼, 그 친구 중국에 있나?“

“그건 아직 모르겠어.”

“알았다. 수고했다. 너는 한국에 한번 들어올 때 안됐나?”

“금계 산업단지 공장 2건 계약할 것이 있어 못가. 다음 달에나 가지.”

“2건 계약되면 이제 얼마나 찬 거냐?”

“절반 찼어. 한번 와 봐. 단지 모양이 아주 그럴 듯 해졌어.”

“알았다. 수고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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