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07화 (107/501)

# 107

M&A를 위한 준비 작업 (2)

(107)

한빛 법무법인의 이세길 사무장은 구건호의 서류를 보고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뭔, 소송이 이렇게 많아. 모두 몇 건 입니까?”

“총 65건입니다.”

“소송이 이렇게 많은 건 조짐이 안 좋습니다.”

사무장은 혼자 말을 하면서 서류를 하나하나 살폈다.

구건호가 사무장을 보니 빨간 티셔츠에 밝은 콤비를 입었다. 나름대로 멋을 낸 것 같은데 고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대부분 납품 청구 소송이고 임금채권 소송도 17건이나 됩니다.”

“지급명령 받아 놓은 건 얼마나 됩니까?”

“16건입니다.”

“법원에서 회생절차 폐지결정이 나오면 지급명령 받은 업체는 바로 행동에 들어갑니다. 집달리 부쳐 실력행사에 들어가지요.”

“그런가요?”

“미리 협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돈을 갚되 분할해서 언제까지 갚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법원의 지급명령까지 오는 동안 감정이 상해있어 협의는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집달리가 실력행사 한다면 차압 붙이나요.?”

“그렇지요. 하다못해 가동 중인 기계를 차입딱지 붙이거나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에 딱지 붙이면 당장 회사 업무가 중지되겠지요.”

“흠,”

“하지만 당장은 안 해도 됩니다. 법정관리 기간 중에는 실력행사 못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지급명령 받은 업체는 회사의 동향에 촉각을 세우고 있을 겁니다.”

“흠.”

“나머지 서류들은 임금채권 이행권고 결정문이나 물품대금 지급 청구소송인데 기일 안에 이의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십시오.”

“어떻게요?”

“회사가 어려워져 분할해서 갚겠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의 신청서를 제출하세요. 그러면 법원에서는 다툼이 있는 줄 알고 재판을 하게 되지요. 승소하지는 못해도 시간을 벌수 있습니다. 갚는 걸 늦추자는 거지요.”

“흠.”

“이의 신청서는 어떻게 작성하지요?”

“양식 샘플을 구사장님께 이메일로 보내드리지요.”

“서울에 있을 때는 구사장이 맞습니다만 법정관리 회사에는 전무이사로 부릅니다.”

“전무이사요? 법정관리 기간 동안은 임원 채용이 안 되는데?”

“법원엔 부장채용으로 보고하고 회사 내부에서는 전무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세길 사무장은 빙그레 웃었다.

“잘해 보십시오.”

“아까 임금채권 소송이 몇 건이라고 했지요?”

“17건입니다.”

“임금채권은 여유 되면 갚으세요. 종업원 급여를 안 준거니까 회사 이미지도 나빠집니다. 법원에서도 안 좋게 봅니다. 더구나 임금채권은 형사문제까지 발생합니다.”

“흠.”

“민사와 별도로 물파산업 회장님이 처벌 받습니다.”

“흠.”

이세길 사무장은 이제 다른 서류는 볼 필요 없다는 듯이 서류를 도로 덮었다.

“혹시 물파산업의 채권 총액이 얼마나 된답니까? 법원에 신고 된 채권 총액 말입니다.”

“700억이 좀 넘는 것 같더군요. 전년도 재무제표는 부채총액 500억인데 엄청 늘었네요.”

“그럼 구사장님이 그 700억을 안고 기업을 인수하시겠다는 겁니까?”

“하하, 내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전망 있는 기업 같으면 다른 업체하고 컨서시엄이라도 해보지요?”

“전망도 별로라 검토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구사장님이 맛있는 것 사주신다고 했는데 이거 어쩌나. 내가 인천 지방 법원에 빨리 가야할 일이 생겨서요.”

이세길 사무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시늉을 하였다. 구건호가 얼른 안 포켓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일이 있으시다니 붙잡기도 어렵네요. 이거 약소하지만 식사 값이라도 하세요.”

“헤헤헤, 매번 미안합니다.”

사무장은 사양하는 척도 안하고 봉투를 얼른 챙겨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아산의 물파산업으로 돌아온 구건호는 소송현황 자료를 분류별로 정리해 관리인에게 보고했다.

“소송 65건에 소송가액만 120억원입니다.

“흠.”

“이중 임금채권은 17건입니다. 납품대금 들어오면 임금채권부터 정리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구건호는 경리부장에게 다가갔다. 주머니에서 쵸코렛을 꺼내 살며시 주었다. 업무를 보던 경리부장이 고개를 들고 웃었다.

“이 회사에서 부장님이 제일 바쁜 것 같아요.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 때문에 눈코 뜰 새 없는 것 같네요.”

“아휴, 죽겠어요. 이 일을 아무한테나 시킬 수도 없고 힘들어 죽겠어요. 지난번 관리담당 상무님 나갈 때 같이 회사 그만 둘걸 잘못했나 봐요.”

“어제도 밤 10시 넘어 퇴근했지요?”

“오늘도 그렇게 생겼어요.”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법원에 자금 수지표 보고하는데 명세서를 뒤에 다 첨부해야 되요. 또 내일모래 월급날이라 임금지급 허가신청서도 작성해야 되요.”

“법원서류는 법정 관리인 두 분 도장을 다 받아야 하나요?”

“그것도 보통일이 아니에요. 새로 온 관리인 도장 받으면 회장님이 안계시고, 어떤 날은 회장님은 계신데 관리인이 안계시면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해요. 법원에서는 왜 관리인을 두 분으로 했는가 모르겠어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얌체 같은 영업 상무님이 회생채권 변제계획안 수정을 저보고 하라네요.”

“왜요?”

“자기는 숫자에 약하다고 하면서 일을 슬쩍 떠넘겨요.”

“흠.”

“영업상무도 바쁘긴 하겠지요. 매출계획 낮게 잡았다고 관리인이 다시 하라고 그랬데요.”

“흠.”

“매출계획을 부풀려야 존속가치 산출하는데 유리하데요.”

“흠, 그렇겠지요.”

“그래도 전무님이 오셔서 좋아요.”

“내가요?”

“소송관계 일을 확실히 맡아주시니 그건 신경 안 써도 되잖아요.”

“내가 역할을 한 게 아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전무님은 M&A 때문에 오신 거라는 소문이 있어요. 맞지요?”

“허허, 그런 소문이 났나요?”

“전무님은 젊은 분이라 전무님 뒤에 큰 손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파다해요.”

“허허, 그래요?”

“누군가 돈 많은 자본가가 이 회사 샀으면 좋겠어요. 지겨워 죽겠어요.”

“경리부장님은 이 회사에 얼마나 근무했어요?”

“올해 꼭 18년째에요. 한 것 없이 나이만 먹었네요.”

경리부는 직원들이 4명이나 더 있었지만 감히 경리부장이 하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업무 내용도 잘 모르고 짬밥이 안 되어서 그렇다. 경리부장은 머리가 영리하고 숫자에 밝았다. 새로 온 관리인이나 회장이 불러 물으면 컴퓨터처럼 대답했다.

구건호는 경리부장에게 한 가지 더 물었다.

“회생채권 신고 액이 700억이라고 했지요?”

“네 712억 4천7백이십만 원입니다. 이중 공익 채권이 122억 6천 4백만 원입니다.”

“공익채권은 세금이나 그런 건가요?”

“네, 세금이나 4대 보험 밀린 것, 임금 밀린 것 등입니다.”

“엄청 많네요.”

“그러니 법정관리 들어가기 전에 얼마나 채권자들에게 시달렸겠어요.”

구건호는 자기 의자에 앉아서 갈등하기 시작했다.

“712억이라. 상거래 채권을 눌러 논다고 해도 공익채권이 122억이나 되니 문제네.”

구건호는 다소 피곤해져 의자 뒤로 몸을 젖히고 눈을 감았다.

관리인 방에서 크게 고함 소리가 들렸다.

구건호와 경리부장이 쫓아 들어갔다. 관리인 방에서 오세영 회장과 관리인이 싸우고 있었다.

“이보시오. 아무리 법원에서 임명한 관리인이라고 하지만 이 회사는 30년 동안 내가 키운 회사요.”

“이게 회장님 개인 재산입니까? 채권자들의 돈과 땀으로 유지하고 있는 회사인데 회장님 마음대로 하십니까? 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법정관리 상태입니다. 현실을 인식하세요.”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법정관리 신청도 안 했을 거야! 이 회사가 중국 투자한건 세상이 다 아는데 거기 가는 출장비를 통제해?”

“법인이 다른데 어떻게 경비를 여기서 지출합니까?”

“당신이 공장에 대해서 뭘 알아? 은행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지점장이나 하던 사람 아냐?”

“뭐라고 하셔도 좋습니다만 출장비는 여기서 지출 안 됩니다.”

회장은 분한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싸우는 소리에 상무나 이사, 부장들이 왔지만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눈치만 보면서 이쪽 편을 들지도 못하고 저쪽 편을 들지도 못했다.

구건호가 나서서 두 사람을 말렸다. 구건호는 먼저 회장을 말렸다.

“고정하시고 회장님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회장이 자기 방의 책상에 앉자 구건호가 얼른 생수를 가져다주었다.

“어디서 개뼈다귀 같은 놈들이 들어와 사사건건 시비네. 법원 빽 믿고 저러는 건가? 개자식들!”

“하하, 회장님. 관리인이 워낙 에프엠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원래 공무원이나 은행원 출신들이 좀 그렇습니다.”

“구전무도 봤지요? 지금 관리인이란 녀석이 하는 짓거리를. 나이도 한참 젊은 것이 눈 똥그랗게 뜨는 것 봐. 에이!”

구건호는 회장을 달래놓고 관리인 방에 들어갔다.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나이 많은 양반이라 어떻게 할 수는 없고. 에이!”

관리인도 속이 타는지 생수를 벌컥대고 마셨다.

“관리인님이 잘 참으셨습니다.”

“구전무도 한번 생각해 보시오.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요? 엄연히 법인이 다른데.”

“회장님이 옛날 분이라 구분을 잘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들이 설립한 회사 가는데 출장비를 왜 이 회사에 청구해? 내가 구전무를 믿고 하는 소리인데 이러니까 회사가 어려워져 법정관리 들어간 것 아닙니까?”

구건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다시 등을 의자에 대고 눈을 감았다.

“골치 아픈 회사 포기할까? 평생 쓸 돈 있는 놈이 뭐 하러 이 회사를 인수하려고 하지?”

그러나 구건호는 꼭 공장을 가지고 싶었다. 더구나 매출액 700억이 넘으며 종업원 250명이 있는 회사라면 탐이 날만 했다.

“부채가 문제야. 매출액과 똑 같은 700억의 부채가 있으니 그게 문제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중국의 김민혁한테 연락이 왔다.

“어떻게 된 거야? 아산에 있는 회사 전무이사로 들어갔다며?”

“그렇게 됐어.”

“강부장 말로는 M&A 때문에 미리 회사 사정을 파악하려고 그랬다며?”

“맞아.”

“바쁘겠구나.”

“참, 전화 나온 김에 이거 하나 알아보자.”

“뭔데?”

“소주시 오현(吳縣)에 가면 ‘물파 기차배건(汽車配件) 유한공사’라고 있어.“

“기차배건? 자동차 부품공장인가?”

“맞아. 너 있는 곳 하고 멀지 않으니 한번 가봐. 문을 닫았는지, 가동 중인지 말이야.”

“지금 네가 전무이사로 들어간 회사의 출자산가?”

“여기 회장의 아드님이 운영했다고 하는데 망했어. 그 후 어떻게 됐는지 몰라서 그래.”

“알았다. 내가 가보고 연락할게.”

“그래, 수고해라.”

퇴근시간 무렵쯤 김민혁한테 연락이 왔다.

“가보고 왔는데 문 닫혀 있었어.”

“그래? 기계들은 다 있고?”

“기계는 다 있었어. 기계도 용량이 크고 전부 새것인 것 같았는데 멈추어 있으니 문제야. 기계가 저렇게 서 있으면 다 못쓰게 되는데.”

“직원은 없었나?”

“사람은 없었어. 거기 관리인 이야기 들으니 임대료를 6개월째 못 내고 종업원 급여가 밀려있데. 종업원들이 공장을 점거했다고 그러네.”

“흠.”

“전기료도 밀려 단전이 되었어. 종업원 대표가 사흘에 한 번씩 나와서 둘러보고 간다는데 만나 보려고 해. 관리인한테 내 연락처 남겨 놓았어.”

“그 회사가 거래처에 받을게 얼마고, 줄게 얼마인줄 모르겠네. 그 종업원 대표가 알까?“

“글쎄. 일단 만나보지.”

“공장은 몇 평이나 될 것 같아?”

“어림짐작으로 한 2천5백평 될 것 같아. 공장도 새 건물이야. 공장 그렇게 되어 아깝던데.”

“알았다. 수고했다. 나중에 종업원 대표 만나면 결과나 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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