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M&A를 위한 준비작업 (1)
(106)
카이스트를 나온 동창 황병철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부고를 알린 것은 동창들 모임 단체인 서향회 회장 조원철이가 했다.
“황병철의 부모님은 아직도 인천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장례식장이 길 병원이야.”
“그래? 내일 저녁에 내가 가마.”
“나도 내일 저녁에 가보려고 해. 오후 7시에서 8시까지 우리 동창들 장례식장에서 모이자고 문자 보냈다. 너도 거기서 보자.”
“그래. 알았다. 황병철이 아버님은 젊었던 것 같은데.”
“간암이래. 황병철이 아버님은 고등학교 교사 출신이라 연금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70도 안되어 돌아가셨네.”
이번에도 구건호는 조화를 보내주었다. 주식회사 지에이치 개발 대표이사 명의로 보냈다.
구건호가 장례식장에 갔더니 동창 중 일부는 벌써부터 술에 취해 해롱거렸다.
“야, 건호 왔냐?”
동창들은 구건호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상스러운 소리를 해도 구건호한테는 그러지 않았다. 구건호에게 은근히 아부하는 동창까지도 있었다.
“야, 너도 재식이 한테 당했지?”
“재식이? 문재식이 말인가?”
“그 싸가지 없는 놈이 동창회 명부 만들었다고 해서 여러 놈 등쳤어.”
“뭐? 그럼 동창회 명부는 안 만들었다는 것인가?”
“난, 그 녀석 그런 줄 알고 돈 안 보냈지.”
“허.”
“구건호, 너는 돈 보냈지?”
“응, 보냈어.”
“얼마 보냈니?”
“10만원.”
“웬 10만원이나?”
“담임선생님한테도 한 부 보낸다고 해서 10만원 보냈지.”
“당했구나. 그 새끼 동창들 주머니 털고 날랐어.”
“어디로 날랐는데.”
“모르지 어디로 날랐는지. 알면 모가지를 비틀어버리지.”
구건호는 앞에 있는 파전 조각에 소주를 한잔마시면서 착잡했다.
“문재식 이 녀석이 얼마나 돈이 궁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도 옛날 햇살론 받아놓고 이자 돈도 제대로 못내 카드로 돌려막기 하던 때가 떠올랐다.
“동창들 전부 해보았자 삼, 사십명 밖에 안 될 텐데 그렇게 되었구나. 200만원도 안 되는 돈이지만 부디 그것 가지고 성공하길.”
구건호는 문재식을 욕하지 않았다, 그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조금 늦게 온 동창들은 고인에게 절을 한 후 대게 구건호 앞으로 모여들었다.
“구건호 왔구나.”
“건호야, 반갑다.”
구건호는 문재식의 일이 착잡하여 술만 마셨다.
구건호는 집이 멀어서 일어서야겠다고 하였다. 상주 완장을 찬 황병철이 따라 나왔다.
“고맙다. 와 주어서.”
구건호는 황병철을 쳐다보았다. 두꺼운 안경에 연구소일이 빡센지 그는 상당히 홀쭉해져 있었다. 황병철과 똑같이 생긴 동생도 홀쭉해 보였다.
구건호는 장래의 촉망받는 학생이라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칭찬받던 황병철이 기억났다. 고등학교 때 황병철은 전국 수학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한 수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황병철은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파산업 회장 오세영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번 만나 줄 수 있겠소?”
“한번 내려가겠습니다. 그쪽에 거래하는 다른 기업도 있어 자주 갑니다.”
“아, 그래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구건호가 물파산업 사무실을 들어서자 경리부장 김민화가 아는 채를 하였다. 구건호가 상자 하나를 경리부장에게 주었다.
“어머, 이게 뭐에요?”
“호도과자입니다. 천안에서 하나 샀습니다.”
“호호, 고맙습니다. 회장님 지금 회장님실에 계십니다.
구건호가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장의 목이 옆으로 꺾어진 것을 보니 졸고 있는 것 같았다. 구건호가 들어서자 반색을 하였다.
“와주어 고맙소.”
“별말씀 다 하십니다.”
“여동생이 오빠 때문에 나도 못살게 되었다고 난리인데 한 2억만 도와줄 수 있겠소? 방배동 아파트 담보설정 해 드리지요.”
“이자는 주는 겁니까?”
“많이는 못 드립니다. 내가 지금 수입이 없어요. 법정관리 들어가자 내 월급은 300만원으로 묶어놓아 내가 쓸 돈이 없습니다.”
“좋습니다. 1금융권 이자율로 해드리지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무슨 조건이요?”
“저를 이 회사에 채용해 주십시오. 법정관리 기간 동안만 일하겠습니다.“
“그, 그건 좀.”
“법원에서 임명한 조사위원들의 결과에 따라 이 회사의 향방은 정해집니다. 청산가치가 높다고 나온다면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취소됩니다.”
“끙.”
“그렇게 되면 이 회사는 공중분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보시오. 이 회사가 30년 된 회사요. 아무리 그래도 무너질까.”
“일단 채권자들도 문제지만 취소된 날 종업원이 다 떠납니다. 급여를 받을 희망이 없어지는데요. 그리고 바로 차압 같은 것이 들어옵니다.”
“끙.”
“저는 이 회사에 직원으로 들어와서 채권의 성질, 미지급금 현황파악, 자산 실사 같은걸 미리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M&A 공고를 하여도 매각 절차가 빨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흠.”
회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천장만 쳐다보았다. 직원 채용을 안 해주면 구건호가 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면 여동생한테 계속 시달리는 문제가 있었다.
“직원 채용은 법원에서 보낸 관리인과 협의해야 합니다.”
“그러겠지요. 그럼 제가 관리인을 직접 만나 보겠습니다. 회장님은 동의하신 것으로 보겠습니다.”
“관리인과 내가 사이가 좋지 못해 내가 직접 소개는 안합니다. 단지 당신이 직원으로 들어오면 나는 반대할 이유가 없고 도리어 환영할 일이요. 당신같이 자금을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나쁠 것은 없소.”
구건호가 관리인 방을 노크했다.
“들어오시오.”
구건호가 관리인 앞에 있는 손님용 의자에 앉았다.
“저는 대부업체 사장 구건호입니다.”
구건호가 명함을 주었다.
“구사장님이 최근 회장님 방을 드나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회사는 관리업체가 되어 지금 돈 빌릴 일 없습니다.
“저는 돈 빌려주는 것 보다는 M&A에 흥미가 있습니다.“
“아직 법원에서 임명한 조사위원들의 조사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사위원들은 존속가치가 없다고 조사할 가능성이 많겠지요? 영업이익이 없는 회사니까요.”
“그야 모르지요. 조사가 안 끝났으니까.”
“회생계획 수행이 불가능하다면 관리인은 지체 없이 제3자 매각을 수행해야 하는 것을 잘 아시겠지요?”
“알지요. 나도 여러 회사 관리인도 해보았고 은행 지점장도 했으니까요.”
“제가 회장님을 만난 건 여기 직원으로 채용해 달라고 했습니다. M&A를 하려면 미리 직원으로 들어와 부채규모를 파악하는 것도 좋지 않을 가요?”
“흠. 그러면 사장님은 기업 인수에 흥미를 갖고 계시군요.”
“그렇습니다. 제3자 매각을 빨리 추진하는 것도 관리인님께서 법원에 점수를 따는 길이기도 합니다. 회생절차 개시 전 매각으로 관리인님이 성공 수수료를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쁜 제안은 아닙니다. 단지 직원으로 들어오면 무언가 업무를 맡아야 됩니다. 소송관계 업무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그 업무를 맡은 사람이 일이 벅차다고 나가버렸습니다. 소송업무를 하시면서 부채도 파악하고 자산도 파악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좋습니다. 채용만 해 주십시오. 직급은 전무이사 정도를 희망합니다.”
“그건 안 됩니다. 회생 개시 전 임원 채용은 법원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회사 내부에서는 전무이사로 들어왔다고 공표를 하고 법원은 소송업무 담당할 부장 한사람 채용했다고 보고 하시지요.”
“흠.”
관리인은 의자를 옆으로 돌려 앉고 생각을 하는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은 좋다고 하셨습니까? 구사장님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을.”
“예, 좋다고 하십니다.”
“뭐, 회장이 좋다고 하면 그렇게 합시다. 일단은 제가 회장님하고 협의를 하겠습니다. 제가 연락을 드리지요.”
구건호는 회장에게 우선 2억원을 빌려주고 방배동 아파트를 근저당 설정했다. 회장은 2억원을 받자 얼굴색이 환해 졌다.
“이제 여동생한테 쪼깐 체면이 서겠네.”
구건호는 서울로 돌아와서 물파산업에서 연락이 올 때를 기다렸다.
“직원으로 들어간다면 소송업무를 맡게 한다고? 내가 소송업무를 모르는데 큰일 났군. 어떻게 한다? 그렇지 이세길 사무장이 있지. 그 친구나 써 먹자.”
구건호가 물파산업을 직원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그 회사의 부채나 자산규모를 파악해 M&A를 하더라도 실수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또 하나는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팔려는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서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일에 매이다 보면 석유화학 주식을 팔 생각도 시간도 없겠지. 주식은 푹 담가 놓고 올 겨울이나 잘 익었는지 꺼내보자.“
관리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회사에 출근하십시오. 약속대로 법원엔 소송업무를 담당할 관리부장으로 채용보고를 하겠습니다. 회사 내부에서는 전무이사를 채용했다고 공표를 할 예정인데 그건 제가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법원에서 파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공표는 회장님이 조회 때 발표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채용이기 때문에 입사서류는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이력서, 신원보증서, 주민등록등본, 최종학교 졸업증명서 등을 가지고 오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근로계약 기간은 6개월간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 안에 모든 것이 결정 날것입니다.”
구건호는 긴급히 강부장과 정지영씨를 불렀다.
“제가 내일부터 여기에 있지 않고 아산에 있는 어떤 제조회사 전무이사로 부임합니다.”
“예? 그럼 여기는 어떻게 하고요?”
두 사람은 눈이 둥그레졌다.
“두 분이 계시기 때문에 내가 내려가는 것입니다. 일은 그대로 하시고 중요한 일만 나한테 유선으로 보고해 주시면 됩니다.”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되었습니까?’
“물파산업이라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인데 실은 그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수요? 회사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제조회사면 종업원이 10명은 넘을 텐데요.”
‘현재 종업원 250명인 회사입니다.“
“250명이요?”
두 사람은 크게 놀라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구건호는 아산에 숙소를 마련할까 하다가 천안아산의 KTX역이 있는 곳에 아파트를 하나 월세로 얻었다. 25평 짜리였다.
“여기 아파트도 지은 지가 얼마 안 되어 괜찮네. 역이 코앞이라 KTX 타고 서울까지도 30분 밖에 안 걸리네.”
구건호는 물파산업으로 출근을 했다.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관리직 사원들 48명이 모였다. 생산직 사원들이 대부분이라 관리직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회장이 관리인과 직원들이 있는 앞에서 구건호를 소개했다.
“앞으로 우리 회사에 전무이사로 근무하실 분입니다. 성함은 구건호씨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소송업무를 주로 맡을 예정입니다."
구건호가 앞으로 나와 직원들 앞에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직원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회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에, 구건호 전무이사는 중국 절강대학 상경학과를 졸업하셨고 주식회사 지에이치 개발의 대표이사를 역임하셨습니다. 여러분들과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구건호가 다시 인사를 했다.
구건호는 경리부장에게 소송관련 파일 철을 달라고 하였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약 54건 정도 되었다.
구건호는 소송 들어온 것을 분류했다,.
“임금채권이 16건에 나머지는 다 상거래 채권이군.”
구건호는 이세길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구사장님 이십니까? 저 서초동에 와있는데요. 점심 같이 하시지요. 제가 슬슬 걸어가도 강남역까지 15분이면 됩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지금 아산에 있습니다. 어떤 회사를 M&A하려고 잠시 직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혹시 시간 있으면 서울역에서 만날래요? 맛있는 것 사 드리겠습니다. 법률 자문 좀 받으려고요.“
“그러시지요. 오늘은 저도 일이 없는데 잘됐네요.”
구건호는 물파산업 소송서류를 전부 여행용 가방에 담아 가지고 나와서 KTX 열차를 탔다. 구건호는 서울역 대합실에 있는 파스꾸찌 커피숍에서 사무장을 만났다.
“이게 다 뭡니까?‘
“소송서류입니다.”
구건호는 소송서류 하나하나를 사무장에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