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회생기업 (2)
(104)
구건호는 이세길 사무장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
“못 나갑니다. 신청서류가 책 몇 권 분량은 됩니다. 우선 자산 내용을 다 파악해야 하니까요. 이 회사도 종업원 50명의 작은 회사지만 채권자 수가 150명을 넘습니다.”
“그렇게나 많아요?”
“구내식당에서 간장 한 병 외상으로 사와서 못 갚으면 그것도 상거래 채권이죠.”
“거 참,”
구건호는 점심 값이나 하라고 하면서 흰 봉투에 돈 20만원을 넣어 사무장에게 주었다.
“뭘, 이런걸.”
사무장은 헤헤거리며 봉투를 얼른 받았다.
“또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오세요. 기업회생 업무는 변호사들보다도 실무는 우리가 더 빠삭합니다. 개인회생도 회생 신청하러 법무사 사무실 가면 어디 법무사가 일합니까? 그 밑에 있는 실장이라는 여직원이 다 하지요.”
“아, 그런가요? 하긴 실무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제가 일을 빨리 해야 되므로 여기서 밤샘도 합니다. 기업회생 절차 개시 신청이 들어가야 금지 명령을 빨리 받을 수 있으니까요.”
“금지 명령이요?”
“절차개시 신청서와 동시에 법원의 금지명령을 신청해야 합니다. 금지명령은 채권자들의 독촉을 금지시키는 일입니다. 지금 사장이 채권자들한테 시달리니 당분간 법원에서 강제적으로 빚 독촉을 막아주는 것이지요. 이게 급한 업무입니다.”
“그렇겠군요. 잘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일 하는데 방해하는 것 같군요.”
“명함 보니까 구사장님 사무실이 강남역 근방인데 우리 사무실하고 가깝군요. 식사나 한번 하시지요.”
“그러지요.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서울로 돌아와서 또 생각에 잠겼다.
“물파를 어떻게 한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뜻밖에도 청담동 이회장한테 전화가 왔다.
“아무리 바빠도 낚시는 손 놓은 겐가?”
“아, 아닙니다. 회장님 나오시면 언제라도 가겠습니다.”
“박종석씨 혼자서 낚시하는 것을 보면 안 돼 보여서 그래요.”
“이번 주 일요일 한번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하니 후배 박종석한테 그동안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은 내가 공돌이 할 때 많은 위로를 주었는데 안부전화 한번 못해주었군.”
구건호는 박종석에게 전화를 했다.
“어? 형! 목소리 들어본지 오래네.”
“잘 지냈어?”
“나야 잘 있지. 형은 요즘 일본으로 골프나 치러 다닌다는 소문이 있던데?”
“딱 한번 갔었어. 사업상.”
“나 같은 사람 완전히 잊은 줄 알았어.”
“내가 왜 너를 잊냐? 이번 일요일 낚시 갈려고 한다. 너도 약속 없으면 와라.”
“형이 오라면 약속이 있어도 가야지.”
“이번 주 일요일 날은 이회장님도 온다더라.”
“알았어. 소주하고 통닭이나 사와.”
일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낚시 도구를 챙겨 포천으로 향했다. 실상은 낚시보다는 이회장을 더 만나보고 싶었다.
“그분은 번뜩이는 지혜가 있어. 오랜 경륜에서 묻어나오는 나름대로의 심오한 내공을 갖고 있어.”
구건호는 포천 시청 근처에서 통닭 두 마리와 김밥, 소주 등을 샀다.
구건호가 낚시터에 도착했다.
이제 나무들은 5월의 태양 아래서 푸릇푸릇한 잎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회장과 권부장, 그리고 박종석은 먼저 와 있었다.
“형! 오래 간만이야. 몸이 더 불은 것 같네.”
“너한테 혼날까봐 통닭하고 소주는 사왔다. 뒤 트렁크에 있어.”
이화장이 낚시를 하다말고 돌아서서 웃었다.
“회장님 안녕하셨어요? 권부장님도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어서 와요. 서울 강남에서 이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했겠구먼.”
“동부 간선도로 타고 금방 왔어요. 토요일은 많이 밀려도 일요일은 차가 잘 빠지네요.”
“오늘은 둘이 많이 잡아봐. 박종석 과장은 구건호 사장이 오니까 흥이 나는 모양이네. 얼굴 표정이 밝아졌어.”
“제 얼굴이 언제는 어두웠습니까?”
박종석이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밝았지. 그런데 구사장이 오니 더 밝아졌어.”
“저희들은 언제나 루어 낚시를 하니 건너편으로 가지요.”
“그러시게나.”
“권부장님, 한 시간 후에 다시 이 자리로 올게요. 통닭 사왔어요.”
“아, 그래요? 좋지.”
권부장이 활짝 웃었다.
호수 건너편으로 간 구건호와 박종석은 말없이 낚시만 했다.
“입질 좀 하냐? 내거는 통 감이 없네.”
“내 것도 그래. 열심히 던져봐 팔뚝만한 것 잡힐 테니. 어? 왔다!”
박종석이 낚시줄을 잡아 당겼다. 소주병만한 베스 한 마리가 잡혀 파닥거렸다.
“이놈이 형이 왔다고 인사하러 나온 모양이네.”
한 시간 동안 낚시했지만 구건호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박종석은 두 마리나 잡았다.
“너, 나 없는 동안 낚시 실력이 많이 늘었다.”
“운이 작용한 거지. 돈 버는 것도 다 운이야.”
“그건 네 말이 맞다. 운이 작용하는 것 같아. 내가 돈을 번 것도 실은 운 때가 맞은 거지.‘
“형,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지?”
“하하, 기회는 일생에 세 번 온다더라, 기다려 봐라.”
“형은 정말 잘 됐어. 공무원 시험 집어치우기 잘 했지.”
“치우고 싶어서 치웠냐? 실력이 안 되니까 치웠지.”
‘공무원 해가지고 언제 집을 사겠어? 빵땅 치기 전에는 어렵겠지. 형이 살고 있는 타워팰리스 아파트는 공무원 세계에선 꿈도 못 꿔.“
“집 이야기 그만 하고 고기나 잡자.”
“형, 아까 권부장한테 한 시간 후에 온다고 하지 않았어?‘”
‘벌써 한 시간 됐나? 이제 저쪽으로 건너가자.“
구건호와 박종석은 이회장과 권부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통닭과 김밥을 깔아 놓았다.
“회장님 닭다리 하나 드십시오.”
‘나는 튀김음식 안 좋아하네. 김밥이나 한 덩어리 먹지.“
이회장을 제외한 세 사람은 통닭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소주도 한잔씩 했다.
“한잔씩만 하세. 다들 차 가져 왔으니. 한잔 정도면 낚시 두 시간 하면 깰 거야.”
“이회장이 일어섰다.”
“왜, 더 드시지요?”
“아니, 소변 좀 보려고, 나이가 드니 전립선이 약해 졌나 소변이 자주 나와.”
이회장은 소변을 보려고 산쪽에 있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권부장이 숲속으로 사라져가는 이회장을 보고 말했다.
“사실 나는 이회장님에게 반한 사람이야. 이 낚시터에서 멀지 않은 이회장님 별장을 보고 놀랐어.”
“별장이 큰가요?”
“크지. 아마 대지 천평은 넘을 걸? 그 별장을 보고 이회장님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더라니까.”
“천평요? 그렇게 커요?”
구건호와 박종석은 천평의 대지 위에 지은 별장이 얼마나 멋있고 좋을까 상상을 해 보았다.
이회장이 금방 다시 돌아오는 바람에 더 이상의 대화를 못했다.
“늙어서 오줌도 많이 안 나오네. 왜 통닭들 더 안 먹어? 많이 남았네.”
“예, 먹고 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앉은 자리에서 두 마리는 거뜬히 먹어 치웠지.”
이회장은 다시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구건호는 물파산업에 대하여 이회장에게 이야기 좀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구사장은 지난번에 거덜 난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돌아다니더니 어떻게 되었나?”
“참, 그 회사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그 회사가 법정관리 들어갔다고 합니다.”
“흠, 그런가?”
“그럼 법원에서 빚 막아주고 그러면 회생될 수도 있겠네요.”
“막아주면 살아날까?”
“막아주면 숨통 트이겠지요.”
“자넨 경제신문 보지?”
“예, 매일 봅니다.”
“회계법인들이 광고하는 법정관리 회사 M&A 공고가 가끔 뜨지?”
“예, 보았습니다.”
“그 회사들은 빚을 막아주었을 텐데 왜 매각하려고 할까?”
“회장이 빚 독촉에 그동안 진저리가 났거나, 팔고 편히 살려고 그런 마음으로 그랬겠지요.”
“아니야.”
이회장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존속가치보다는 청산가치가 높기 때문이네.”
닭 날개를 소금에 찍어먹던 박종석이 말했다.
“존속가치가 뭐고, 청산가치가 뭡니까?”
“그건 구건호 사장이 설명해주게. 사랑하는 후배를 위해서 말이네.”
구건호가 어떻게 설명할까 하고 망설이는데 다시 이회장이 말을 계속했다.
“지난번 거덜 난 회사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물파산업이요.”
“옳지. 그 물파의 영업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잘 보았겠지? 영업이익이 안 나는 회사네.”
“부채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요.”
“쯧쯧쯧.”
이회장의 혀 차는 소리에 구건호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회장을 쳐다보았다.
“내가 자네를 5년 전 여기서 만났을 때 경리부터 배우라고 했었네. 재무제표에서 무엇을 보는가? 물파는 부채를 막아주어도 영업이익이 안 나는 회사네. 원가 비중이 높고 채산성이 악화되었다는 말이네.”
“그럼 인수해도 영업신장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하겠네요.”
“그렇지. 바로 그거네. 판매를 더 늘리는 재주가 없다면 인건비를 줄이던가 원재료를 가격을 경쟁력 있는 것으로 대체하든가 해야겠지.”
“그런데 그 회사는 매출채권이 많다는 것은 판매를 많이 하고 아직 외상값을 못 받았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것도 미래의 자산 아닙니까?”
“이런 바보! 그 매출은 허수라는 게 아직 안보이나?”
“아하, 부채를 줄이지 못하니까 받지 못하는 매출채권도 그대로 두었군요. 그게 누적이 되었고요. 차변 대변은 균형을 맞추어 놓아야 하니까요.”
“이제 머리가 좀 돌아가네.”
박종석이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 무슨 말을 하는지 통 모르겠네요. 에이 나는 통닭이나 뜯자.”
권부장도 따라서 말했다.
“허허,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나도 통닭이나 뜯을 라네.”
이회장이 빙그레 웃었다.
“모르고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네. 골치 아픈 것 알면 더 골치 아프지. 인생이 말이야.”
“휴-”
구건호는 땅이 꺼져라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회장이 생수를 컵에 따라 마시다가 구건호를 보고 말했다.
“왜 그렇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가? 그 회사 꼭 인수하고 싶은가?”
“하고 싶어도 거기 오너 회장님이 안 팔겠다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팔게 해야지.”
“어떻게요?”
“쪼아야지.”
“쪼아요?”
“갖고 있을수록 거덜 난다는 것을 인식 시켜줘야지.”
구건호는 이회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이보시게, 구건호군.”
이회장은 구건호에게 구사장이라고 안 부르고 구건호군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더 다정다감하게 들렸다.
“돈을 벌려면 좀 냉혹해야 하네. 인정에 이끌리면 돈을 못 버네.”
“갑자기 무슨 말씀을.”
박종석은 이회장과 구건호의 대화가 재미가 없는지 하픔을 하였다. 그러더니 낚시대를 들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권부장도 잠이나 자겠다며 제너시스 승용차로 올라갔다.
호숫가에는 이회장과 구건호만 남았다.
이회장이 잔잔한 미소를 날리며 말했다.
“나는 말일세. 젊은 날 명동 사채시장에서 일할 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란 말을 들었네. 나한테 돈을 빌려간 남대문 장사꾼들이 나에게 돈을 못 갚자 어땠는지 아는가?”
“호통을 치셨습니까?”
“그가 사는 미아리 산꼭대기 집을 찾아가서 솥단지까지 뺏어 왔네.”
“허.”
“나보고 돈만 아는 냉혈한이라고 하지만 내가 돈이 없을 때 나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네. 자네도 공돌이 할 때는 단돈 10만원을 빌릴 수 없었을 것이네.”
“그, 그건 그랬습니다.”
“자네가 중국에서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었단 소리를 듣고 나는 미소를 지었었네. 부동산 투자는 종자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짧은 기간 안에 종자돈을 어떻게 만드는가. 그것도 흙수저 중의 상 흙수저가.”
“그, 그건, 저.”
“말 안 해도 잘 알겠네. 뭐 떳떳한 방법은 아니었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구건호는 무언가를 들킨 것 같아 얼굴만 빨개졌다.
“우리나라는 부의 사다리가 거의 없어졌네. 자네가 한 행동을 반성한다면 나중에 많은 돈을 벌고 옳은 일을 하면 되네. 실은 나도 그렇게 살려고 했지만 그러지를 못해 늘 후회스럽기는 하네.”
구건호는 아무 말 없이 침만 꼴깍 삼켰다.
“자네 물파산업을 인수하고 싶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 회사에 취업을 하게.”
“취업을요? 누가 써주기나 하나요?”
“써주지. 부사장이나 전무이사 자리 하나쯤 하나 달라고 하게.”
“네?”
“그 회사 정보 알겠다고 거래하는 은행이나 회계사 찾아다니지는 말게.”
구건호는 물파산업 거래하는 이낙종 회계사를 찾아간 일이 있어 또 얼굴이 빨개졌다.
“회, 회계사를 한번 찾아가 보았습니다. 법정관리 들어갔다는 정보는 거기서 알았습니다.”
“기업 주변의 변호사나 회계사나 은행지점장, 이런 인간들에게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 가진자가 최고네. 그들을 부려먹을 생각을 하게. 그것도 내 발밑에 두고 말일세.”
“아직 그런 실력이 안 됩니다. 저는.”
‘당치 않은 소리! 자네는 이미 많은 돈을 가지고 있네.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네. 자네만 모를 뿐이지.“
“그런데 조금 전에 말씀하신 그 회사 취업은 어떻게 합니까?”
“그 회사 오너 회장을 직접 만나게.”
“일면식도 없는데 만나 줄까요?”
“그 사람은 지금 코너에 몰려 있을 걸세. 일단 법정관리 들어가면 거기 회장은 이전에 받았던 사람대접은 못 받네. 외롭고 우울해 있을 거네. 자네가 직접 찾아가 돈 좀 있는 대부업자라고 해보세. 바로 반색을 할 거네.”
“정말 그럴 가요?”
“내 말이 틀림없네. 그리고 그 회사의 법정 관리인이 누가되었나?”
“법원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두 사람이던데요?”
이회장은 또 빙그레 웃었다.
“한 놈은 법원에서 임명한 놈이고, 또 한 놈은 그 회사 오너 회장이란 놈이겠군. 잘됐네. 힘의 중심이 지금 법원에서 새로 임명한 관리인으로 쪽으로 옮겨가고 있을 거네. 권력의 이동(Power Shift)이지. 오너 화장은 지금 아주 외롭게 되었네. 접근해 보게. 다리 거치지 말고 직접 말일세.”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결심에 찬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안됐군.”
“예? 누가요?”
“누구긴, 그 회사의 오너 회장 말일세. 지금 경영 장악력도 없어지고 감자(減資)를 당할 위기에 있어 더욱 외로울 걸세.”
“감자를 당하다니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법원은 빚 독촉을 막아주는 대신 오너 회장의 지분을 감소시키는 징벌적 감자를 실시하지.”
“아, 그, 그런가요.”
구건호는 머리털이 쭈빗해지며 세상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