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03화 (103/501)

# 103

회생 기업 (1)

(103)

구건호는 누구 소개 받아서 이낙종 회계사를 찾는 것은 포기했다.

“그가 소개받아 가면 부담스러워할지 모르니 그냥 찾아가자. 회계 상담하러 왔다면 회계사는 누구든지 반기는 직업이니까.”

구건호는 천안 안창회계법인으로 전화를 했다. 물파산업 정도 규모 있는 회사의 거래 회계사라면 올챙이 회계사는 아닐 듯싶었다.

“이낙종 회계사님 계십니까?”

“지금 외근 나가셨는데 어디십니까?”

“회계 상담 좀 받으려고요. 언제 들어오십니까?”

“오후 2시 넘어서 들어오십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렌드로버를 타고 천안으로 향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흥얼거리며 악세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천안세무서는 청수동에 있다고 했지?”

“나는 기업을 사냥하는 예술가다. 한진그룹 창업자 조중훈 회장이 그랬잖아. 기업을 하는 것은 예술이라고. 맞아. 나는 아티스트야. 테이크오버 아티스트(Takeover Artist)야.”

구건호는 천안 세무소에 차를 주차시키고 세무서 앞 건물들을 살폈다. 회계사나 세무사들은 대개 세무서 앞에 사무실을 차린다.

“저기 5층에 있군. 회계법인이라도 지방이니까 회계사야 두세 명 밖에 없겠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직원 발딱 일어나며 말했다.

“세무 상담 때문에 이낙종 회계사님 좀 뵈러 왔습니다.”

“전화 약속하셨습니까?”

“전화 약속은 안했는데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여직원이 회계사 방을 들어가 서울에서 어떤 분이 상담하러오셨다고 했다.

“들어오시라고 해.”

구건호가 들어가 정중히 인사를 했다. 회계사는 오랜 경력이 있어 보이는 50대였다.

“무엇을 상담하러 오셨습니까?”

구건호가 명함을 주면서 말했다.

“저는 서울에서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중국 강소성에도 합작회사를 가지고 있고요.”

이낙종 회계사는 구건호의 명함을 받아들고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산에 있는 물파산업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물파산업 채권자이십니까?”

“채권자는 아닙니다. 그 회사에 납품했던 회사에 근무했던 사람으로 물파에 도움이 될게 있나 해서 왔습니다.”

“어떻게 도움을 준다는 말입니까?”

“저는 사채업도 하고 있습니다. 대부가 가능하다면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이낙종 회계사가 약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회사 재무제표는 보고 말씀하십니까?

“대략은 압니다.”

“그런대 무엇을 보고 돈을 빌려준단 말입니까?”

“담보 잡히지 않은 자산은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하다못해 기계류나 재공품이나 금형이라도 말입니다.”

이낙종 회계사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사이에 여직원이 들어와 뜨거운 녹차를 주고 나갔다.

“저는 공장에 근무했던 사람입니다. 공장은 담보 잡히지 않은 자산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고철덩어리를 보고 돈 빌려준다는 사람은 머리털 나고 처음 보았습니다. 나한테 얻을 것 없습니다. 그냥 돌아가세요.”

“그럼 한 가지 묻겠습니다. 거기 오너 회장님한테 내가 연리 20%라도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면 받겠습니까? 안 받겠습니까?”

“달라고 하겠지요. 채권자한테 시달리니까. 그런데 댁은 그 회사가 법정관리 들어간건 아십니까?”

구건호는 약간 놀랬으나 내색을 감추었다.

“실은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사건번호 좀 알려고요.”

“밖에 나가시면 우리 여직원한테 물어보면 압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저는 일이 밀려서 일해야 합니다.”

구건호는 회계사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또 인연이 있으면 뵙겠습니다. 회계사님 시간을 뺏었는데 상담료는 얼마입니까?”

“상담료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세요.”

구건호는 생글거리며 여직원한테 갔다.

“녹차 잘 마셨습니다. 물파산업 법정관리 사건 번호는 직원한테 물어보면 된다고 하네요.”

여직원이 한참 서류를 찾더니 노란색 포스트잇 메모지에 사건 번호를 적어준다.

“<대전지방법원 20xx 회합 000 회생>입니다.”

구건호는 메모지를 들고 회계사 사무실을 나왔다.

“채권자 수에 대하여 좀더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럴 정황도 아니군. 그런데 결국 이 회사가 이렇게 되었군. 어쨌든 사건번호라도 알고 가니 자동차 기름 값 날린 건 아니네.”

구건호는 그냥 갈까하다가 음료수 한 박스와 호두과자 한 상자를 샀다.

“회계사 사무실은 잘 해둘 필요가 있어.”

구건호는 음료수 박스와 호두과자 상자를 들고 다시 회계사 사무실로 갔다. 마침 회계사가 자기 방에서 나와 여직원과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요? 또?”

“회계사님이 상담료도 안 받고 그래서 음료수 하나 사왔습니다.”

여직원이 웃으면서 음료수와 호두과자 상자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회계사의 굳은 표정이 좀 누그러졌다.

“뭘 그런 걸 사옵니까. 나도 이제 그 회사 회계사가 아닙니다. 법정관리 들어가면 거래하던 회계 감사인은 자연 직권 해촉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구건호는 잘 몰라도 아는 척하며 다시 회계사 사무실을 나왔다.

“법정관리에 대하여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어.”

구건호는 김영진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핵심을 이야기하지 않고 너스레를 먼저 떨었다.

“언제 중국 가서도 골프 한번 쳐야지. 왕지엔 교수하고 말이야.”

“좋지. 그런데 요즘 내가 통 시간이 없네. 할 일이 너무 많아.”

“할일이 많다는 건 좋은 일 아닌가?”

“그래도 너무 많아.”

“아, 참. 그리고 법정관리에 대하여 잘 아는 변호사 있나? 내가 아는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고 해서.”

“왜, M&A하려고?”

“법정관리 들어가면 막 M&A하는 건가?”

“회생이 어려울 때 적극적 M&A를 하게 되지. 경제신문에 보면 주간사를 통한 회생기업 M&A 공고가 많이 나오잖아.”

“주간사?”

“일종의 M&A추진 대행기관이지. 회계법인도 될 수 있고, 우리 같은 로펌도 될 수 있지. 어디 그런 회사가 있어?”

“아니 그냥 법정관리 시스템이나 알려고.”

“그건 서초동에 있는 우리 선배 변호사가 잘 알아. 그거 전문이야. 거기 사무장이 이 일에 대해선 아주 베테랑이야.”

“그 사무장 좀 만나게 해줘.”

“그야 어렵지 않지. 내가 전화 해 놓을게. 선배 변호사 참 좋은 사람이야. 서초동이면 네 사무실하고도 가깝다.”

“그래, 항상 고맙다.”

“고맙긴, 친구끼리.”

저녁 때 쯤 해서 김영진 변호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변호사 사무장 이세길, 전화번호는 010-2485-0000번.”

구건호는 바로 사무장에게 전화했다.

“이세길 사무장님이세요? 김앤정 로펌에서 소개받은 사람입니다. 법정관리 시스템에 대해 자문 좀 받으려고 합니다.”

“법정관리 신청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미 신청 들어간 회사인데요. 그것보다도 전체적 제도에 대하여 알아보려고요.”

“신청 들어간 회사 사건번호 아세요?”

구건호는 이낙종 회계사 사무실에서 받은 번호를 알려주었다.

“잠깐 기다려 보세요.”

사무장은 1분도 안되어 무엇을 보고 알았는지 대뜸 말한다.

“물파산업 이거 이거 힘들겠네요. 채권자 수가 300명도 넘는 것 같네요. 공익 채권도 많고.”

“저, 사무장님 서초동에 계시니까 식사나 같이 하시지요. 저는 강남역에 있습니다.”

“저 지금 서울에 안 있어요. 안성에 있어요.”

“안성엔 왜?”

“안성에 법정관리 들어갈 회사가 있어요. 어제부터 이 회사 작업해요. 밤 10시까지 작업하는데 당분간 서울에 못가요.”

“아, 예 그렇군요.”

“바쁘면 이리 오세요. 여기 나 혼자 있어요. 자재 창고에.”

“창고에?”

“네, 창고에 혼자 있습니다.”

구건호는 사무장이 왜 남의 공장 창고에 혼자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럼 제가 안성으로 갈까요?”

“오세요. 네비 찍고 오세요. 비씨 특수강 이라는 회사에요.”

구건호는 사무장을 빨리 만나고 싶었다. 물파산업도 물파산업이지만 전반적 제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어서 그랬다.

구건호는 네비를 찍고 갔는데 길을 잘못 들어 한참 헤매다가 비씨특수강이란 공장을 찾았다.

“코 앞에 두고 그렇게 찾았네. 씨팔!”

구건호는 공장엘 들어갔다. 공장 경비실은 있는데 경비원은 없었다. 직원들도 몇몇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구건호는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 계십니까? 지금 공장 앞에 와 있습니다.”

“그러면 정문 앞에서 보면 본 건물 뒤에 작은 창고 같은 것이 보이지요?”

“네, 보입니다.”

“그 창고 안으로 들어오시면 맨 뒤쪽에 칸막이 쳐진 곳이 있습니다. 내가 그 안에 있어요.”

구건호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니, 이 사람이 그 창고에서 뭘 하는 거야?”

구건호는 창고엘 들어갔다.

인기척도 없었다. 칸막이가 있는 뒤편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거 참, 별난 일이네.”

칸막이 너머로 목이 하나 쑥 나왔다.

“여기요, 여기.”

“이세길 사무장님이세요?”

“예, 맞습니다. 이리 오세요. 파이프 쌓아 놓은 것 조심하시고요.”

“아니, 그런데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이 회사 법정관리 준비해요.”

“여기서요?”

“원래 이런데서 일해요. 직원들이 알면 웅성거리고 또 채권자들이 알면 난리 나기 때문에 그럽니다. 보안 때문에몰래 빨리 작업해야 하니까요. 컴퓨터 작업만 할 수 있는 공간이면 됩니다.”

"정식으로 인사하시지요. 저는 구건호라고 합니다."

"한빛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이세길입니다.“

둘이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다.

명함을 주고받고 막 의자에 앉는데 젊은 30대 남자가 들어왔다. 이 회사의 제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직원인 것 같았다.

“자동차 등록원부 떼 왔어요?”

“떼 왔습니다.”

“7대 모두 떼 왔어요? 지게차 까지?”

“네, 떼 왔습니다.”

“서류 책상위에 올려놓으세요. 손님이 왔으니 내가 있다가 보지요.”

“네.”

직원은 피곤한지 힘든 표정을 하고 나갔다.

“직원이 힘든 모양이네요.”

“월급 안 나와서 그렇겠지요. 뭐.”

“월급이 안 나와요?”

“법정관리 들어가는 회사 임금 체불은 기본이 3개월입니다. 시달리다 못해 법정관리 들어가는 거니까요.”

“법정관리 시스템에 대하여 전반적인 것을 알고 싶습니다.”

“그거 책보면 다 나와 있는데요. 인터넷에도 다 나와 있고.”

“그래도, 고명하신 분의 고견을 들어야지요.”

‘고명하신 분?“

사무장은 한참동안 낄낄거리고 웃었다.

“법정관리는 개인회생 생각하면 되요.“

“개인 회생이요?”

“개인회생은 빚 못 갚는 사람들한테 법원이 빚 독촉을 막아주고 분할해서 갚으라는 제도 아닙니까? 기초 생활비 떼고 남은 돈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빚 갚고 다시 살아나라는 뜻에서 회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 예.”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빚 독촉을 법원의 힘으로 막아 줄 테니 나누어서 갚고 회생하라는 취지지요. 그래서 회생기업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아까 보니까 직원이 자동차 등록원부를 가져다주는데 그건 뭡니까?”

“그건 법정관리 신청 서류에요.”

“신청서류에 등록원부가 들어갑니까?”

‘신청하려면 이 회사가 어려워진 이유와 현재의 빚 총액은 얼마이고, 자산은 얼마이다 하는 것을 보고해야겠지요.“

“법원에다가요?”

“그렇지요. 고등법원이 있는 대전지방법원 파산부에다가요.”

“파산부요?”

“회생업무는 파산부에서 합니다.”

‘아, 예.“

“이 회사의 자산이 얼마 있다 하는 것을 보고하려면 부동산은 등기부등본, 차량은 등록원부, 그런 것이 필요 하겠지요?”

“아, 예. 그래서 그걸 떼 왔군요.”

“법원이 신청을 받아주면 그때부터 법원이 임명한 회계사가 와서 실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인가여부를 결정합니다.”

“흠.”

“아까 물파산업을 법원 사이트에서 조회해 보니까 채권자 수가 300명이 넘어가더군요. 이 사람들 빚을 법원이 막아주고 나누어서 갚으라는 법원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게 법정관리 인가입니다.”

“물파산업은 인가 될 까요?”

“인가의 판단을 위해선 법원이 지정한 회계사가 이 회사의 존속 가치와 청산가치를 따집니다. 즉, 종업원을 해산시키고 문 닫는 게 나은지, 빚 막아주고 공장 돌려 살아나게 하는 게 나은지를 따집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판사는 인가 여부를 결정하지요.”

“물파산업을 누군가가 M&A하려면 그 300명이나 되는 채권자의 빚을 다 떠안아야 하겠지요?”

‘그렇겠지요.“

“그게 얼마나 될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요. 법원에 가서 열람해 보는 수밖에.”

구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뭔가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청담동 이회장이 말한 것이 기억났다.

“범을 잡으려면 범의 아가리로 들어가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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