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00화 (100/501)

# 100

제조업 진출의 꿈 (2)

구건호는 증권사 지점장을 일식집에서 만났다.

“사장님 요즘 무슨 주식을 가지고 계십니까? 증권사 지점장이라도 고객 계좌는 마음대로 열어볼 수는 없습니다.”

“금호 석유화학이요.”

‘역시, 큰손의 촉감은 남다르십니다.“

“이 회사 정보 뭐 좀 없습니까?”

“금호아시아나는 형님 회장이 대우건설 인수 합병 실패로 동생 회장과 불화가 더욱 깊어진 모양입니다.”

“너무 큰 걸 삼키려고 했네요. 회장 주변의 스탭들이 회장 보필을 잘 못한 것 같군요.”

“금호가(家)는 원래 형제들이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10.1%씩 나누어 갖기로 했지요. 그런데 이 비율이 깨지면서 동생 회장이 석유화학 지분을 늘린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흠.”

“그렇게 되면 석유화학 주식은 또 올라가겠지요.”

“내가 당신네 증권사에 넣은 주식 평가액은 300억 가량 됩니다.”

“헉! 300억!”

“나보다도 큰손이 많겠지요? 강남의 증권사인데 돈 많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아이고, 강남이라도 그렇게 몇 백억씩 넣어 놓은 사람 없습니다. 사장님은 명실 공히 강남 큰손입니다.”

“내가 보유 주식을 팔고 금호석유화학으로 갈아탄다면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하면 되겠습니까?”

“저 같으면 금호석유화학은 30프로 비율까지 늘려도 무난할 것으로 봅니다.”

“나머지는?”

“맥쿼리인프라 어떻겠습니까? 기복이 심하지 않고 배당 수익도 기대해 볼 수 있는 회사 아닙니까?”

“맥궈리 그룹과 신한지주금융이 합작한 회사 아닙니까?”

“잘 아시네요.”

‘실은 나도 중국에 합자사를 갖고 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SOC에 투자하는 인프라회사는 망할 염려도 거의 없지요.”

“나는 승부사요. 변동성이 약한 주식은 별로입니다.”

“그래도 주식은 안전하게 가야합니다.”

“오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자주 불러주십시오. 큰손이신 분들에게는 우리도 많이 배웁니다.”

구건호는 사무실로 돌아와 증권사 지점장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금호가의 석유화학 주식 비율이 깨진다?”

구건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3개월 후 구건호는 주식 계좌를 열어보고 눈을 크게 떴다. 몸에서 열이 확 뿜어 올라왔다. 바로 표정관리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으흐흐, 금호석유화학 주식이 3배나 올랐다. 내 주식 평가액이 900억이 되었다.”

구건호는 웃고 싶은 생각이 났다. 지하 주차장으로 달려가 랜드로버 승용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룸미러를 보고 미친놈처럼 웃었다.

“으하하하하.”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또 랜드로버의 엔진 소리에 구건호의 웃음소리는 밖에선 전혀 들리지 않았다.

구건호는 금호화학 주식을 전량 매도하려고 하였다.

“형제 싸움도 안 끝났는데 주식을 매도해? 이 손목을 도끼로 자르지!”

구건호는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야. 청담동 이회장은 말했어. 주식은 하지 말라고. 주식은 상대의 패를 알 수 없는 싸움이라고 했어. 이번처럼 패가 보이는 주식은 일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하다. 여기서 팔면 안 돼!]

구건호는 물파산업을 마음 놓고 인수하기 위해 주식을 팔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

[안 돼! 안 돼! 패가 보이는 싸움은 자주 오는 게 아니야!]

구건호는 주식을 팔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싶어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었다.

하지만 해외여행은 일주일 이상 하면 지루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생긴다.

“한 6개월은 기다리면 좋겠는데, 6개월 동안 뭘 하지? 학원이나 다닐까? 전에 경매학원 다니듯이 말이야.”

구건호는 강남역 근방의 영어학원에 등록을 하였다. 오후에 또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어 학원도 등록했다. 공부 보다는 금호 석유화학 주식을 팔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간단한 인사말이나 배우자.”

구건호 역시 영어나 일본어 같은 어학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중국어를 더듬거리며 말하는데 현지 생활만 3년을 보냈지 않았나? 영어는 그저 인사말이나 하고 일본어는 ‘가다가나’와 ‘히라가나’를 읽는 정도 수준만 되도록 하자.”

구건호는 이런 마음으로 학원을 다녔다.

구건호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오전엔 대개 결재를 하고 강부장과 정지영씨의 업무 보고를 받았다. 신문은 3가지를 보았다. 경제신문 하나와 우익 성향의 일간지 하나, 좌익성향의 일간지 하나씩을 각각 구독해 보았다.

“좌익, 우익 신문을 같이 보는 건 균형 감각을 갖추기 위해서야.”

이렇게 신문 3가지를 보고나면 점심때가 되었다.

구건호는 돈이 있는 사람이니 점심은 고급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먹었다.

오후엔 학원 두 군데를 다니고 골프연습이나 휘트니스 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였다.

영어와 일본어는 젊은 원어민 여성한테 배우는데 재미도 있었다. 강남의 주부들도 많이 배우는데 공부를 빡세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공부 반, 노는 것이 반이었다.

주식회사 지에이치 개발은 변함없이 굴러갔다. 비록 고시텔 4개를 운영하는 작은 회사지만 직원들 2명 월급 주고 구건호가 출근하여 숨을 쉴 공간은 있었다. 또 필요한 심부름은 강부장이나 정지영씨에게 부탁할 수 있었다.

강부장과 정지영씨는 작은 회사지만 의외로 구건호가 돈이 많은 사람이란 것을 알고, 구건호 또한 이들을 인간적으로 대해 서로 신뢰하고 따랐다.

중국의 합자사에 15억원을 출자했지만 더 이상 유보금을 깎아먹는 일이 없다니 다행이었다. 추가 출자를 해야 될 상황은 아니었다. 구건호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실 합자사 만드는데 15억원 투자면 껌 값이지.”

합자사가 돈을 확확 버는 회사는 아니지만 안정적이고 향후 거대한 중국시장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데 뿌듯함이 있었다.

중국의 책임자 역시 동창 김민혁이지만 그가 고생을 많이 해본 흙수저 출신이라 서로 잘 통했다. 또 김민혁이 원래 불량기가 없는 얌전한 인물이라 관리 쪽은 그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구건호가 지금 모든 신경을 동원하여 집중하고 있는 것은 금호석유화학 주식이었다. 이 주식은 벌써 3배나 올라 구건호의 평가액이 900억원이 넘고 있었다.

구건호는 주식을 팔지 않고 움켜쥐고 있었다. 형제의 난이 봉합되었다는 소문이 없어 그대로 가자는 쪽에 도박을 걸었다.

“분명 더 오른다. 다만 팔고 싶어 손목이 근질근질할 뿐이다!”

구건호는 자기 손목을 밧줄로 묶고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식 거래창은 아예 컴퓨터에 띄우지도 않았다.

구건호는 위기에 처한 물파산업을 인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수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인수후가 걱정되었다. 인수하면 이 회사의 부채를 떠맡아야 하는데 그게 자신이 없었다.

“부채가 분명 500억은 넘는다. 또 숨겨진 부채가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구건호는 관망만 하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주식을 모두 처분해 인수를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구건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재산 모두를 털어 넣었다가 물리게 되면 거덜이 나기 때문이었다.

“징검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라는 말이 있다.”

구건호는 용의주도했다. 없었던 시절의 설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 돈을 함부로 투자하지 않았다. 투자를 할 때는 두 번, 세 번 생각을 하였다.

라이먼델 디욘사의 한국 합자사 설립은 불발이 된 모양이었다.

구건호는 김영진 변호사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김 변호사? 디욘사 합작 건은 잘 되어가나?”

“되 가긴, 날 샌 것 같아.”

“잘 안된 모양이구나.”

“이지노팩 사장의 요구사항이 많아서 안됐어.”

주식회사 이지노팩은 해마다 신입사원 모집 광고를 내면 경쟁률이 100대1을 넘는 회사였다. 요구하는 스팩도 엄청났다.

“이 회사는 지방대 출신은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지.”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형이 서울 중위권 대학을 나와 토익 950점인데 이지노팩 서류심사도 통과 못했어.”

“그 회사 자소서는 엄청 까다롭다고 소문났다지?”

“이지노팩은 신입사원도 초봉이 년간 5,000만원 찍는다고 하더라.”

이런 엄청난 회사를 구건호는 그 회사 오너 겸 사장인 사람과 차를 한잔 같이 마셨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타이어처럼 큰 얼굴에 작은 눈을 한 이지노팩 사장은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던 인물이었다.

언젠가 이지노팩 사장의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우리는 진취적이고 주인의식이 강한 사원을 원합니다. 저는 온갖 경영 위기를 넘기고 오늘날 이 자리에 왔습니다.”

구건호는 픽 웃었다.

“아버지가 해방 후 일본 놈 적산 공장을 인수해서 부자 된 사람이지. 할아버지는 친일을 위해 비행기를 헌납했던 사람이고. 그런데 이 사장님 따님은 서울 상위권대학의 교수네. 공부를 잘했던 모양이지?”

구건호는 김영진 변호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디욘사와 이지노팩의 출자액 총액은 얼마라고 했지.”

“2천만 달러야.”

“흠, 서로 100억원 정도씩 투자하겠군. 말이 1백억이지 쉬운 돈은 아니지.”

구건호는 이지노팩의 투자금은 공장 부지 제공과 설비 값으로 보았다.

[100억이면 지방 공단에서 공장 하나는 첨단시설로 건설할 수 있다. 압출기 기계도 리스 없이 10여대 깔아 놓을 수 있다. 그런데 디욘사의 출자액이 100억이나 된다니 웃음 나오네.

원재료 값이야 얼마 되겠어? 무형자신인 굿윌(영업권) 가격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노량진에서 식당 할 때처럼 일종의 권리금이지. 하긴 권리금이 비싸도 돈 잘 벌면 그만이지만 말이야.]

구건호는 이렇게 생각했다.

김영진 변호사는 디욘사를 두둔했다.

“디욘사가 글로벌 기업인데 시달리면서 하겠어?‘

“그럼 아미엘은 다른 합작 대상자를 찾고 있나?‘

“급할 건 없는 모양이야. 일본 합자사는 일본내 내수 판매만 하더라도 상당한 모양이야.”

“일본은 경제 규모가 크니 그럴 만도 하겠지.”

“참, 아미엘이 너하고 나하고 동경 한번 놀러 오라고 한다. 한번 같이 안 갈래?”

“바람이나 한번 쐴까?”

“내가 이번에 어떤 대기업의 해외 전환사채 발행업무를 맡았어. 이번 주는 안 되고 다음 주에 가자.”

“전환사채? 그런 건 증권사에서 하는 것 아닌가?”

"법률적 자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우리한테 의뢰가 들어와. 서류가 전부 영어로 되어있어.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밥 먹고 살지. 해외 전환사채 발행 업무는 모건 스탠리나 골드만 삭스 같은 글로벌 자산 운영사들이 하고 있고 국내 증권사들도 하긴 해."

“음, 그런 게 있었구나.”

“다음 주에는 이 일이 마무리 될 것 같으니 동경엘 가자.”

“알았다. 연락해라.”

구건호는 주식을 팔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동경에 가서 신나게 놀고 오기로 했다.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는 해외 전환사채 업무를 끝내고 연차휴가를 냈다. 구건호와 동경에 가기 위함이었다.

김영진 변호사는 로펌의 업무로 가는 형식이 아니라 동경 체제 경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구사장? 호텔은 내가 예약을 할게. 경비를 좀 아껴야 하지 않겠어?:

“어디로 할 건데?”

“미나미센주(南千住)에 싼 호텔이 있어. 거긴 아미엘의 사무실이 있는 니혼바시와도 가까워.”

“자주 가는 곳도 아닌데 시설 좋은 곳으로 가자. 경비는 내가 낼게.”

“누가 내든 아껴야 하잖아?”

“내가 전에 관광 갈 때 보니까 아카사카(赤坂)에 있는 뉴오타니 호텔이 좋아 보였어. 거길 내가 예약해 놓지.”

구건호는 전에 중국에서 돌아와 일본 관광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뉴오타니 같은 고급호텔은 숙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구건호는 그때와 다르다. 그는 주식 평가액 900억이 있는 자산가였다.

“비행기표는 내가 못 사주지만 호텔비는 걱정 마. 사흘 정도 묵을 건데 뭐.”

“그래도.”

“걱정마. 내가 예약할게. 전화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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