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98화 (98/501)

# 98

제조업 진출의 꿈 (1)

카이스트에 출신인 황병철이도 만났다.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고 천재라고 소문난 친구였다.

“판교에 있다지? 무슨 연구소냐?”

두꺼운 안경을 낀 황병철이 명함을 주었다. 무슨 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이라고 되어있고 공학박사라는 글자가 한 옆에 인쇄되어 있었다.

“판교에 살겠구나.”

“아니, 수지에 살아.”

“결혼 아직 안했지?”

“내년에 할 거야. 사귀는 사람은 있어.”

“그래? 너 결혼식에 꼭 가마.”

“고맙다. 꼭 연락할게.”

“형, 나는 안 볼 거야?”

목소리 나는 곳으로 얼굴을 돌려보니 후배 박종석이었다.

“어? 종석이. 그렇지. 너는 석호하고 친했지.“

“석호 형보다는 내가 건호 형하고 더 친했지. 요즘 날 멀리하고 있지만.”

“내가 언제 널 멀리 했냐, 이놈아! 너 양복 입으니 한 인물 난다. 너도 장가가야겠다.”

“장가는, 순서가 있는데. 형이 먼저 간 후에 가야지.”

구건호는 혼자 생각해 보았다. 내가 포천이나 양주에서 공돌이 생활을 하면 여길 와서 기를 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결혼식이 끝난 후 일주일이 지났다. 이석호에게 연락이 왔다.

“건호냐? 고맙다. 내 결혼식에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 줘서.”

“신경은 무슨! 신혼여행 잘 다녀왔지?”

“응, 잘 갔다 왔어.”

“그래, 살림은 어디에 차렸냐?”

“보광동에 18평짜리 연립주택 하나 샀어. 부모님이 좀 도와주셨지.”

“그래? 경리단길 하고 가까워서 좋겠구나.”

“그리고 내가 동창들 몇하고 이야기 했는데 동창들 모임을 갖기로 했어.”

“그래?”

“내가 일정이 잡히면 연락 할게. 이건 결혼식 날 조원철이 제안해서 이루어진 거야.”

“일정 잡히면 연락해라.”

중국 합자사의 동사회(董事會) 일정이 다가왔다. 동사회는 우리나라의 이사회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주요 정책을 의논하고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인사를 단행한다.

구건호는 중국으로 출발했다.

합자사 사장인 김민혁이 자기 차인 아우디를 타고 왔다. 운전기사까지 딸린 차였다. 중국 측에서는 김민혁이 외국인이라 운전기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그렇게 했다.

“동사회는 금계건설 사장 선칭꿔와 합자사 부사장 까오꽝신이 들어오나?”

“두 사람 외에 회의록 정리를 위해 판공실(辦公室) 주임이 들어와.”

“그래? 그럼 우리까지 합쳐서 5명이 되겠구나.”

“아니, 통역도 한사람 들어오니 6명이 되겠다.”

“아 참, 그리고 경리단길 이석호한테 전화가 왔었어.”

“뭐라는데?”

“축의금도 보내주고 화환까지 보내주어 고맙다고 하더라.”

“그래? 싸가지 없는 놈이지만 잘 해주면 그만큼 다시 돌아오겠지.”

구건호는 금계 공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와, 7동을 지었는데 이렇게 웅장하구나!”

“지금도 계속 짓고 있어. 지나가다 보고 7개 업체가 계약을 했어. 모두 한국 기업이야.”

“음, 그랬지. 네가 보낸 주간업무보고에 나와 있었지.”

“어때 빠르지?”

“빠르다. 그리고 솜씨들도 대단하네.”

“그럼, 대단하지. 수 천년 전에 이미 만리장성을 쌓은 민족이니까.”

동사회의 의장은 금계건설 사장 선칭꿔였다. 선칭꿔가 개회 선언을 하였다.

“지금부터 중한 합자사 금계 산업공단 유한공사의 제1차 동사회를 개최하겠습니다.”

모두 고개를 들고 사회자를 쳐다보았다.

“오늘 나오신 분은 한국측 동사 구건호 선생입니다. 다음은 김민혁 선생입니다.”

구건호와 김민혁이 차례대로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중국측 동사로는 본인인 선칭꿔와 까오꽝신입니다.”

선칭꿔와 꽈오꽝신도 인사를 하였다.

동사들의 책상 위에는 사기그릇에 용이 새겨진 찻잔이 놓여 있었다. 판공실 주임이 뜨거운 물 주전자를 들고 돌아다니며 찻잔에 물을 따라 주었다.

“다음은 합자사 부사장 까오꽝신 선생의 공작(工作) 보고가 있겠습니다.”

“공작보고?”

구건호는 공작보고란 소리를 듣고 픽 웃었다.

“무슨 간첩활동 같네.”

까오꽝신이 종이에 써온 내용을 발표했다.

“합자사 설립이후 보증금이 들어온 총액은 520만 위안입니다. 공사비용은 840만 위안이며 경비지출로 120만 위안이 지출되었습니다.”

공작보고는 좀 지루 했다.

구건호가 질문을 했다.

“그래, 지금 합자사에 남아있는 유보금은 얼마나 됩니까?”

“350만 위안입니다.”

이번엔 앉아있던 금계건설 사장 선칭꿔가 말했다.

“에, 임대료가 7개 업체로부터 들어오는 지난 달 부터는 유보금이 줄어드는 것이 멈추었습니다.”

구건호는 입주업체가 다 차면 유보금이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임대업이니까 왕지엔 교수가 말한 대로 캐시카우(Cash Cow: 젖소의 젖을 짜듯이 왕창 돈을 버는 사업은 아니지만 또박또박 현금 이익을 창출하는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기업을 말함) 사업은 되겠구먼.”

까오꽝신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향후에도 공작 업무의 질을 높이도록 하고 과업을 다그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회의 내용에 별것은 없었지만 통역을 거치니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동사회가 12시가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안건 시간에 구건호는 김민혁의 급여를 6천 위안으로 올리자고 하였다.

중국측 동사들이 반대했다.

“반대합니다.”

“왜 반대인가?‘

중국 측 동사들은 총경리 급여를 올리는 것은 좋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직원들도 급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전체 급여가 올라가면 채산성이 약화됩니다.”

김민혁이 낮은 목소리로 구건호에게 말했다.

“내 급여는 괜찮아. 이 문제는 나중에 경영정황을 보아서 조정하는 게 좋겠다고 해.”

구건호는 총경리의 급여 문제는 경영성과에 따라 조정하겠다고 하였다.

“동의합니다.”

중국 측 동사들이 이번엔 동의한다고 똑같이 말했다.

구건호는 금계건설 출신들이 빠릿빠릿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막 되어먹은 놈들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국영기업 출신들이라 합리적인 데는 있군.”

동사회는 12시 30분이 지나서 끝났다.

“수고했습니다. 고생들 하셨으니 좋은 곳에 가 식사나 합시다.”

동사회 참석인원들은 주장찬관(周莊餐館)이란 음식점으로 갔다.

금계건설 사장 선칭꿔는 구건호를 상석에 앉혔다.

“내가 동사장이 아니고 당신이 동사장인데 상석에 앉아야지요.”

“무슨 소리. 다음번 동사장은 구사장이 할 것이고 지금은 또 멀리서 온 손님 아닌가요?”

서로 자리다툼을 하다가 구건호가 상석에 앉았다.

참석자들은 은은한 얼후 소리가 들리는 고급식당에서 푸짐한 음식을 시키고 바이주까지 시켰다.

“자, 모두 수고했습니다. 건배 한번 합시다.”

첫 잔을 부딪치고 한잔 마실 무렵 금계건설 사장이 전화를 받았다.

“구사장, 리스캉 부시장이 여길 온다고 하네. 음식 천천히 듭시다.”

“그래? 부시장이?”

음식을 거의 반 정도 먹었을 때 리스캉 부시장이 자기 운전기사와 함께 들어왔다.

“여, 구사장. 반갑네!”

“반갑다. 리스캉! 시청 일이 바쁠 텐데 여기까지 오셨네.”

“일찍 오려고 했는데 당(黨) 회의가 길어져서 그랬지. 끝나자마자 이리로 달려 왔어.”

“이리 앉아라.”

“아, 아냐. 상석은 네가 앉아.”

구건호와 리스캉이 서로 자리를 양보했다.

금계건설 사장이 얼른 자기 자리를 비워주었다.

중국의 고급식당에 가면 원형테이블이 있고 상석은 문이 마주 보이는 곳이다.

“앉아, 앉아.”

리스캉이 서 있는 구건호의 어깨를 눌러 앉혔다.

“뛰어 오느라고 숨찰 텐데 한잔 해. 부시장 운전기사 아저씨도 콜라 한잔 하시고.”

운전기사는 선글라스를 쓴 채 맨 말석에 앉으며 웃었다. 리스캉이 술 대신 엽차 한잔을 마시며 말했다.

“동사회는 잘 끝났지? 공작 보고는 어땠어?”

“응, 잘 끝났어. 만족해.”

“잘 됐구나. 사실 우린 공단의 3평 작업을 하면서 돈 많이 들어갔어.”

“그럴 테지. 원래 SOC 기간 사업은 돈이 많이 들지. 얼마나 들었나? 공단 만들면서.”

“그건 정부부문의 일이라 밝힐 수는 없지만 많이 들어갔어. 우리 목표는 공단 입주기업 유치로 인민들을 위한 고용 확대에 있어.”

“너는 참 좋은 관료다. 어이, 김민혁 사장, 그렇지 않은가?‘

“맞아. 나도 여기 와서 중국 공무원들 많이 만나보았지만 인민들을 위한 노고에는 존경을 하고 있어.”

“자, 구사장, 한잔 하자. 공자님 말씀이 ‘먼데서 친구가 오면 즐겁지 아니 한가’ 하시지 않았는가.”

리스캉 부시장은 구건호의 손을 잡았다.

“친구, 고마워. 합자사를 하게 되면 이것저것 따지고 간섭하는 한국인들이 많은데 구사장이 운영하는 지에이치 개발은 그런 게 없어서 좋아.”

“고맙긴. 여기 나와 있는 김민혁 총경리나 많이 보살펴 줘라.”

“김민혁 총경리는 여기 와서 아주 잘하고 있어.”

리스캉은 자기 술잔을 김민혁의 잔에 부딪쳤다.

술이 몇 순배 돌았다.

“구사장, 난 이곳에 와서 공단 조성으로 중앙의 점수는 땄어. 잘 하면 다시 상해로 복귀할 가능성도 있어.”

“그래? 그럼 영전이 아닌가?”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지만 공단 입주가 완료되고 고용지표가 상승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지.”

“넌 처자식이 모두 상해에 있잖아?”

“그래서 빨리 가고 싶기도 해. 하지만 이 곤산시도 좋아. 자연 환경도 좋고. 내 처가 상해 해관(세관)의 처장급으로 근무하는데 그렇지만 않았다면 이곳에 말뚝 박고 싶은 심정이야. 정이 많은 고장이야.”

이날 리스캉도 많이 마시고 구건호도 많이 마셨다. 일이 끝났다는 홀가분함 때문인지 금계건설 쪽이나 김민혁도 제법 마셨다.

풍성한 오찬을 즐기고 구건호는 리스캉과 헤어졌다. 구건호는 술이 깼으면 좋을 것 같아 김민혁에게 운하변으로 가자고 말했다.

“운하변 보다는 호수가가 어때? 운하는 물이 더러워.”

“그래, 호수로 가자.”

김민혁은 운전기사에게 양징호(陽澄湖)로 가자고 하였다.

양징호의 물은 푸르름으로 넘실댔다.

미풍도 살짝 불어와 갈대 잎을 흔들리게 하고 있었다.

“좋다. 중국의 호수는 한국보다 엄청 넓어서 좋다. 민혁아, 우리 내려서 걷자.”

“그러자.”

“이 안에는 사람 키만한 잉어가 살겠다.”

“중국은 땅도 넓고 호수도 넓고 다 좋은데 날씨는 별로야. 가끔 궂은 날이 많아.”

구건호와 김민혁은 호수의 바람을 맞으며 말없이 걸었다. 한참을 걷든 구건호가 김민혁의 손을 잡았다.

“민혁아, 많이 힘들지?”

“아니, 괜찮아. 네 덕분에 그래도 여기서 사장 소리 듣고 일하니 좋다.”

“중국어 실력은 많이 늘었어?”

“얼른 안 느네. 통역 조은화 한테 매일 배우고 있기는 한데 마음대로 안 되네.”

“혼자 밖에 나가 음식 같은 건 사먹을 수 있지?”

“그 정도는 가능해. 지난번에 조은화가 권해서 HSK시험을 상해에 가서 봤어. 4급 합격했어.”

“오, 그래? 왜 이야기 안했어?”

‘6급 정도는 받아야 이야기 하지. 4급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 하냐?“

“아냐, 4급도 대단해. 중국에 온지도 얼마 안 되는데.”

구건호가 다시 김민혁의 손을 꼭 잡았다.

“괜히 너를 잡아둔 것 같아 미안하다. 우리 조금만 참자. 좋은 날이 안 있겠냐.”

“고맙다. 방해나 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네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어. 공장 근로자의 아들인 나나 버스 운전기사의 아들인 너나 우린 다 같이 흙수저 잖아. 고생도 할 만큼 해 보았고. 더구나 너는 공장 품질관리팀 근무 경력도 있어 바로 이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난 부족한 것 투성이야.”

“민혁아, 실은 말이다. 지금 너는 산업공단 임대분양과 관리나 하고 있지만 앞으론 더 큰 세계로 나갈 거다.”

“내 능력이 그렇게 될까?”

“민혁아, 난 꿈이 생산 공장을 갖는 거야. 난 돈도 없고 머리도 우수하지 못해. 머리 좋은 천재들이나 하는 IT산업이나 재주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연예 사업 쪽엔 발도 못 붙이지.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공장은 갖고 싶어.”

“그렇구나. 네 꿈이.”

“그리고 중국에도 한국 규모와 같은 공장을 설립하고 싶어. 그래서 나는 절대적으로 네가 필요해.”

김민혁은 구건호의 손을 가만히 놓으며 찬찬히 얼굴을 쳐다보았다.

“건호야, 너는 내 친구지만 진짜 존경스럽다. 넌 젊은 나이에 어떻게 돈을 벌고 기업을 일으켰는지 이해가 안 간다. 친구들 말로는 네가 중국에 처음 와서 부동산으로 벌었다고 들었는데 그건 불가사의하다. 부동산도 종자돈이 있어야 하는데 참 대단하다.”

구건호는 속으로 뜨끔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 사람아, 그 종자돈은 나도 떳떳치 못한 방법이었네. 민혁이 너도 여기서 부동산 투자가 가능하겠지만 나와 다른 건 종자돈이 없다는 것이지. 그래서 흙수저와 금수저는 종자돈에서부터 빈부가 갈린다네.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내 종자돈은 피 눈물의 종자돈이었네. 이 양징호의 호수처럼 가슴이 맑은 친구 민혁아, 너는 나를 닮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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