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94화 (94/501)

# 94

보은(報恩) (1)

구건호는 전에 아산 공장에 다닐때의 총무과장인 황선홍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황부장님이세요? 구건호입니다.”

“오, 구건호! 잘 계셨소? 그런데 난 부장이 아니고 과장인데.”

“선배님 아직도 과장이세요? 회사가 인재를 몰라보네요. 더군다나 고생도 제일 많이 하시는 분인데.”

“회사가 기우뚱거리는데 승진시킬 여력도 없어.”

“월급은 잘 나오지요?”

“지난 달치 못나왔어요. 다행히 우린 빨리 사람을 정리했지만 물파산업은 지금 아우성이요.”

“왜, 안 풀려요?”

“물파는 3개월 치나 임금이 밀려 소송까지 건 종업원도 있어.”

“아이고, 저런! 큰일이네요.”

“구건호씨 보아하니 잘 나가는 모양인데 어디 나 취직자리 없어?”

“하하, 별 말씀을! 제가 어디 그런 능력 있나요.”

“요즘은 하루하루가 힘들다오.”

“오늘 시간 있으세요? 오늘 마침 금요일이니 두정동에서 맥주 한잔 하실래요?”

“오늘? 그런데 구건호씨 여기 안 사는 것 같은데 천안까지 올란가?”

“아이고, 선배님 모시는데 얼른 가야지요. 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 허허, 그럼 이따 7시에 만나요.”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천안을 갔다. 랜드로버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양주시에서 가스회사에 있다가 아산 둔포공장 면접 보러 올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지났네.”

구건호는 그때 털털거리는 폐차 직전의 차를 타고 오면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구건호는 그때의 노래를 흥얼거려 보았다.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Caught in a landslide. No escape from reality."

(이것이 현실일까요? 아니면 정말 환상일까요?

흙더미에 갇혀 현실에서 도망 칠 수 없어요.)

“그때 이 노래를 부르며 많이 울었었지. 에효, 돈이 뭔지.”

구건호는 지금의 자기를 비교해 보았다.

“부모님 사준 집 이외에 내가 살고 있는 강남아파트 15억, 은행예금액 15억, 주식평가액 300억, 주식회사 지에이치개발 자산액 약 9억, 오피스텔 5억, 중국 합자사 투자액 15억. 합쳐서 359억원을 가지고 있네. 아직도 난 배가 고파.”

구건호는 차를 천안 두정역에 세워 놓았다. 구건호는 황과장을 두정역에서 만나 이자카야 술집으로 갔다.

“뭘 이런 데로 오나? 그냥 통닭집으로 가지.”

“아닙니다. 과장님 한번 모시고 싶었습니다.”

구건호는 광어 사시미와 새우튀김을 시켰다. 술은 황과장이 청하를 먹자고하여 그렇게 했다.

“이거 비쌀 텐데.”

“많이 드십시오.”

구건호는 회를 황과장 앞으로 더 밀어 주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황과장은 담배를 꺼냈다.

“여기서 피워도 되나?”

황과장은 주위를 한번 돌아보았다. 아무도 음식점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자 담배를 도로 집어넣었다.

“한 병 더 시키지요.”

구건호는 술을 한 병 더 시켰다.

“구건호씨 있을 때가 좋았지.”

“그런가요?”

“그땐 회식도 자주 했는데 지금은 회식은커녕 분위기만 살벌해.”

“박영식 사장님도 고심이 많겠네요. 참, 사장님은 잘 계신가요? 성격이 불 같아서 그렇지 인정은 있으신 분인데.”

“요즘 사장님도 기가 많이 죽었어. 매형 회사인 물파산업이 저 모양이니 되는 일이 있어야지.”

“거래처를 다변화 시키면 좋은데 물파산업 의존도가 너무 컸던 것이 문제네요.”

“다변화가 어디 말처럼 쉬운가. 연줄이 있어야지.”

“경리부장님도 잘 있지요? 그때 출산했었는데 아이가 많이 컷겠네요.”

“그 여자 회사 그만두었어.”

“왜요?”

“돈 받으러 온 사람들이 악을 쓰니까 겁이 나는지 그만 두었어. 신랑도 그만 두라고 했나봐.”

“그럼 다른 회사로 갔나요?”

“회사는 아니고 어디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소문만 들었어.”

“와이에스테크의 거래하던 회계사는 그때 그곳인가요? 세무서 앞에 있던 회계사 사무실 말입니다.”

“그대로야. 거기 회계사 사무실도 수수료가 밀렸다고 하더군.”

황과장은 술을 잘했다. 벌써 3병째였다.

“괜찮겠어요? 운전하셔야 할 텐데.”

“이 정도는 괜찮아. 음주 단속하는 지점은 내가 잘 알아.”

“아휴, 그래도 대리운전 불러야지요.”

“괜찮아. 자, 구건호씨도 한잔 받아요.”

“저도 꽤 마신 것 같은데요.”

“뭘, 한 병 밖에 안한 것 같구먼.”

“물파는 회계사 사무실을 어디 거래하는지 아세요?”

“몰라,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물파 쪽에 친한 사람도 없고. 아, 참 사장님실에는 물파 결산보고서 한부가 책장에 꽂혀있는걸 본적이 있는데 거기 보면 회계사 이름이 나오겠지.”

구건호는 물파의 회계사 사무실 좀 알아봐 달라고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전에 와이에스테크의 박영식 사장에게 공금 유용 사건이 있었는데 또 의심 가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물파도 종업원이 많이 줄었겠네요. 공장은 참 크던데.

“크면 뭘 하나. 300명이 넘든 회사가 지금 절반으로 줄었다는데.”

“거기도 임금 많이 밀린다고 했지요?”

“우리 회사는 그래도 물파에서 납품대금을 잘 주니 그런대로 괜찮아. 우리 사장님이 돈 안주면 납품 못한다고 하니까 납품대금은 잘 주는 셈이야. 우리가 납품을 못하면 거기도 라인이 서버리거든.”

구건호는 의자를 끌어당기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런데 물파는 거기 회장님하고 사장으로 있던 아드님과 그렇게 사이가 나빴습니까?”

“뜻이 안 맞았지. 회장님 사람을 사장이 자르고 자기 사람을 채우고 그랬지. 중국 사업도 무리하게 추진해서 돈만 꿇어 박았다고 하네.”

“중국 공장은 돌아가는가요?”

“그건 잘 모르겠어.”

“아깝네요. 1.5벤다(Vendor) 회사인데요."

"그렇지 1.5벤다지.“

1차 벤다는 현대나 삼성 같은 대기업에 직접 납품하는 회사를 말한다. 2차 벤다는 삼성이나 현대에 직접 납품을 못하고 1차 벤다에 납품하는 하는 회사를 말한다. 또 2차 벤다에 납품하는 회사는 3차 벤다라고 한다.

알기 쉽게 말하면 요즘 MB의 소유라고 하는 ‘다스’라는 회사는 현대에 직접 납품을 하므로 1차 벤다이다. 다스에 납품하는 회사는 2차 벤다가 된다. 1차 벤다는 기술력과 자금력도 있는 회사들이다. 매출도 1조원이 넘어가는 회사들도 많다. 벤다는 3차, 4차, 5차로 계속 나간다.

“결국 자금력 때문인 모양이네요.”

“그럴 거야. 물파로 부터 납품을 받고 있는 1차 벤다 회사에서 납품을 막은 것이 아니니까.”

“중국에 공장 세우기 위해 현재 있는 공장 담보 잡혔겠군요.”

“그러면 좋게? 신용보증기금에서 끌어다 쓴 것도 많다는 소문이 있어.”

“그 회사 회장님은 출근하는가요?”

“이 사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내가 그 회사 직원도 아닌데. 그런데 구건호씨는 왜 물파에 관심이 많지? 혹시 그 회사 취업하려고? 하지 말아요. 더 좋은 회사들 많잖아요.”

구건호와 황과장이 이자카야 술집을 나왔다.

“황과장님 몸을 못 가누시는걸 보니 안 되겠네요. 대리를 부르겠습니다.”

구건호는 이자카야 사장에게 대리 운전기사를 불러달라고 하였다.

구건호는 차를 두정역에 주차시킨 채 걸어서 모텔을 찾아갔다. 모텔에서 하루 밤을 잤다.

“내일은 서울 올라가다가 물파산업 공장을 가보자.”

물파산업 공장은 아산시 영인면에 있었다.

공장의 생산량은 줄었다고 해도 5천평이 넘는 공장은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위실에 경비원이 버티고 서 있었으며 마당에 트럭들도 그대로 있었다. 단지 사람들이 건물 속으로 들어가 있는지 몇 사람 보이지 않았다.

“이 공장의 등기부등본이나 떼어보자.”

구건호는 사무실에 출근하자 컴퓨터를 켰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물파산업을 찍어 보았다. 규모가 있는 회사라 그런지 주소와 위치가 바로 떴다.

구건호는 법원사이트에 들어가 등기부등본을 열람용으로 떼어 보았다.

“과연 채권자로부터 가압류가 많이 들어와 있네.”

구건호는 근저당 설정과 가압류를 차차 읽어 내려갔다.

“이런 제기랄, 임금채권 가압류도 많네. 이 정도면 정말 휘청거리겠는데.”

구건호는 물파의 공장이 시가 어느 정도 갈까 생각해 보았다.

“공장부지가 5천평이 넘으니 50억 이상 가겠는데? 건물은 오래되어 계산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야.”

구건호는 슬슬 물파산업을 인수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내 실력으로 될까? 부채가 상당할 텐데.”

구건호는 눈을 감고 또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강부장이 중국에 출장 갔다가 돌아왔다.

“어휴, 중국 곤산시 산업단지 정말 대단하던데요. 부지도 넓고 신축한 공장을 보니 규모가 어마어마 하든데요. 사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 공단과 합자를 하시니 말입니다.”

구건호가 빙그레 웃었다.

“같이 간 사람들 반응은 어땠어요?”

“구경하는 공장 건물보고 모두 반한 것 같습니다. 또 보증금 2억이면 큰 공장 하는 사람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돈 아닙니까? 계약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조립식 건물이라 비가 세는 곳은 없겠지요?”

“그,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전에 내가 공장에 다닐 때 조립식 건물은 방수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더구나 그쪽 지역은 비가 자주 오는 고장인데....”

“비가 센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더구나 새 건물인데요. 뭐.”

김민혁씨는 잘 하고 있습니까?

“김사장님은 여기서 고시원 총무 할 때는 몰랐는데 거기서는 펄펄 날던데요.”

“어떻게 날라요?”

“직원들도 잘 부리고 중국어도 조금 익혀서 간단한 말은 할 줄 알던데요. 그리고 의외로 공장에 대하여 아는 것도 많았어요.”

“원래 공장의 품질관리팀에서 일했던 사람입니다. ISO 같은 건 직접 추진하기도 했고요.”

“사장님은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습니다. 그리고 김민혁 사장님도 저는 이번에 달리 보았습니다.”

“하하, 그래요?”

“같이 간 사람들한테 음식 대접도 잘 하고 가라오케까지 가서 사람들이 아주 뿅 갔습니다.”

“뿅 간 건 좋은데 계약으로 이어져야 할 텐데.”

“2개 업체가 계약했습니다. 주간 업무보고에 올라올 겁니다. 2개 업체는 마침 임원이 아닌 오너 사장님들이 와서 바로 계약 했습니다.”

“허허, 그래요?”

“그리고 이거....”

“이게 뭡니까?”

“출장비가 좀 남아서 면세점에서 사장님 넥타이 하나 사왔습니다.”

“허허, 그래요?”

“그리고 이건 정지영씨 것입니다.”

정지영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예요?”

“면세점에서 화장품 하나 샀습니다.”

“어머나, 제 것까지! 고맙습니다.”

정지영씨가 화장품 선물을 받고 얼굴을 활짝 폈다.

구건호가 창밖을 보고 상념에 잠겼다.

“현재 8개 업체의 공장을 지을 수 있겠군. 임대료 수입이 한국 돈 1,500만원 정도는 되겠다. 30명 중국 종업원 인건비는 충당 되겠네. 친구 민혁아, 너도 운이 좋게 펼치려는 모양이다. 거기서 당분간 사장 노릇은 몇 년 계속 하겠다. 아우디 타고 다니면서 말이다.”

합자사가 성립되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었다.

와이에스테크의 황선홍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구건호씨? 잘 있었소? 혹시 단기 대부업체 아는데 없어요?”

“왜요. 개인적으로 돈이 필요한건가요?”

“아니, 와이에스테크의 회사가 빌리려고. 사장님이 한번 대부업체를 알아보라고 해서 전화했습니다.”

“제2금융권에서 안된다고 합니까?”

“공장 담보로 빼 쓴 돈이 위험수위라고 해서 안 빌려준다고 하네요. 그나마 대부업체에서는 3번 대부도 해주는 데가 있다고 해서.”

“물파에서 납품대금이 안 들어 왔나요?”

“이번 달에는 늦네요. 우리도 종업원 급여를 집행해야 하는데. 딱 2억원만 있으면 좋겠는데.”

“흠.”

“물파산업은 견디다 못해 법정관리를 검토한다고 해요.”

“그래요? 납품대금 밀린 것 빨리 받으세요. 법정관리 들어가면 매출채권은 못 받을 수가 있습니다.”

“안 주는데 어떻게 하나.”

“사장님과 물파산업 회장님은 처남 매부지간이니까 가서 떼를 쓰더라도 달라고 해야 합니다.”

“말씀은 드려보지요.”

“대부업체는 인터넷 찾아보면 나옵니다. 전화 한번 해 보세요.”

“알았어요.”

구건호는 옛날 와이에스테크의 박사장님 은혜를 생각하면 당장 도와주고 싶었다.

“담보도 없을 텐데. 만약 빌려주었다 떼이면 영원히 인간관계가 깨질 수도 있단 말이야. 단발성이 아닌 오래 거래가 지속되는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구건호는 고민했다. 2억원을 빌려 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잘못하면 일이 이상하게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틀 후에 구건호는 황선홍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대부업체에서 돈 빌렸나요?”

“담보 없으면 무조건 안 된다고 하네. 재무제표보고 신용융자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하네요. 진짜 좆같아.”

“급여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못 줬지. 지금 종업원들이 술렁거리고 있어요.”

“월간 급여 총액이 얼마나 되나요?”

“종업원 많이 줄어들어 65명인데 넉넉잡고 한 2억 정도 나가요.”

“흠.”

“나도 이 달에 카드 값을 갚아야 하는데 월급 안 나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요.”

“내일 내가 사장님 뵈러 간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사장님을 왜?”

“어쩌면 돈이 융통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으래? 구건호씨가 무슨 돈이 있다고? 오지 말아요. 구건호씨가 요즘 돈이 좀 돌아가는 모양인데 그동안 애써 번 돈 잘못하면 날려요.”

“아니, 그냥 의논이나 해 보려고요.”

“적은 돈도 아니고 2억원이나 빌려주었다가 돈 떼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금융권이나 기업에서 빌리는 건 몰라도 개인은 이런 짓 하면 안 돼요. 구건호씨가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그래.”

“아니요. 제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대부업체 소개 좀 하려고요.”

“그래? 그렇다면 내가 사장님께 말씀 드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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