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91화 (91/501)

# 91

기업 유치 설명회 (1)

구건호는 호텔 커피숍에서 잠깐 눈을 붙인 것이 효과는 있었다. 피로감이 싹 가시고 새로운 기운이 솟아올랐다. 이제 일어설까 하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김영진 변호사? 또 골프 치러 가자는 걸까?”

“나, 김영진이야.”

“어, 오래간만이다.”

“중국은 언제 갈 거냐? 정식 합자계약 서명해야지.”

“한 달 남았어.”

“가면 내 안부 전해. 그리고 혹시 전통식 한국 요리 집 아는데 없냐? 넌 사업하는 사람이니 그런데 잘 알 것 같아서 전화했어.”

“그거야 인사동 가면 많잖아?”

‘거긴 밥 먹긴 좋은데 술 마시가 좀 그래. 미국인 친구가 와서 접대 하려고 그래.“

“중요한 고객인 모양이지?”

“고객이기도 하지만 친구이기도 해. 왕지엔도 잘 아는 친구야. 예일대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지.”

“그래? 뭐하는 친구인데?”

“미국 라이먼델 디욘(lymondell dyeon)사의 임원으로 있는 친구야.”

“라이먼델 디욘? 유명한 글로벌 케미칼 회사인데.”

“너, 그 회사를 아는구나. 한국에서는 그쪽 관련 일하는 사람 이외는 잘 모르더라. 그런데 넌 어떻게 그 회사를 아냐?”

“나, 플라스틱 회사에 공돌이로 다녔잖아. 그 회사제품 한국에서도 팔려.”

“그래? 그럼 잘됐다. 너도 같이 술 한잔하자. 왕지엔과 친구이니 같은 친구들 아니냐. 나이도 우리하고 동갑이야.”

“에이, 만나서 뭐하냐. 내가 영어를 못해 답답하기만 할 텐데.”

“내가 있잖아.”

“그래도 답답할 것 같아. 내가 끼면.”

“그러지 말고 소개해 줘.”

“잘 아는 데가 한군데 있기는 한데.”

“어디냐? 오늘 저녁 당장 예약해라. 돈은 내가 내니까. 아니, 우리 로펌에서 낸다.”

“그래? 그럼 내가 오늘저녁 입 한번 호강하겠네.”

구건호는 한남동 장마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이게 누구시더라. 구건호 사장님 아니세요?”

“오늘 저녁 3사람 예약 해줘요.”

“몇 시에 오는데요?”

“음, 7시쯤으로 하지요.”

“오시는 분들이 구사장님처럼 젊은 분이세요?”

“예, 그렇습니다. 한사람은 미국인입니다.”

“어머, 그럼 영어 잘하는 애들을 옆에 앉혀야겠네요.”

“영어 잘하는 도우미들도 있습니까?”

“호호호, 우리 집은 일본어와 영어는 기본입니다.”

“완전히 국제적으로 노시네요.”

‘호호호, 구사장님도 국제적으로 노시는 분이 아니세요? 합자사 한다면서요?“

“에이, 난 쭝국이에요.”

“중국이 요즘 얼마나 잘나가요.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요인 한분이 지난주에 중국인 거물을 한번 모셔 왔었는데요.”

“중국인 거물?”

“우리 집은 손님 비밀을 철저히 지켜 드리는 곳 아닙니까? 더 이상 질문하면 내가 곤란해져요. 호호호.”

구건호는 김영진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한남동 순천향 병원 정문에서 만나자. 7시까지 내가 사람을 보내겠다.”

“사람까지 보내긴, 약도만 알려주면 우리가 찾아 갈게.”

“간판이 없는 집이라 안내자가 없으면 찾아오기 힘들어서 그래.”

“간판이 없는 집? 간판 없이 어떻게 장사를 하나.”

“그런 요상한 집이 있어. 와 보면 알아.”

“좋아, 거기로 하자. 내가 대치동에 있는 우리 집 가기 좋고 그 미국인 친구도 호텔가기 좋으니 좋다.”

구건호는 이발까지 하고 눈부시도록 흰 와이셔츠에 실크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었다. 중국 갔다가 올 때 면세점에서 산 향수도 옷에 살짝 뿌렸다. 구건호는 휘파람을 불며 렌드로버를 타고 한남동을 갔다.

“솔, 오래간만에 오네.”

입구에서 30살 안팎의 깍두기 두 사람이 구건호의 신원을 물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이들은 자세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고 정중하기 까지 했다.

“예약은 하셨습니까?”

“그렇소.”

“혹시 구사장님이십니까?”

“그렇소.”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구건호가 기침 소리를 내며 현관에 들어서자 한복을 멋지게 입은 장마담이 뛰어 나왔다.

“구사장님! 어서오세요. 구사장님은 언제 보아도 새신랑이야. 호호호.”

전통 민화가 그려져 있는 병풍 밑에 흰색 종이를 깔은 교자상이 놓여 있었고 학 무늬 방석 6개가 깔려 있었다.

장마담이 구건호의 양복 웃저고리를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전에는 시골에서 갓 올라온 분 같았는데 많이 세련되셨네요. 이제 완전히 사업가 티가 나네요. 호호호.”

“그래요? 흐흐흐. 세월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네요.”

“오신다는 분은 어디서 만나기로 하셨어요?”

“웨이터 한사람을 순천향 병원 앞으로 보내세요. 한사람은 미국인이고 한사람은 한국 사람이니 금방 찾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애들을 보내지요.”

“한국사람 이름은 김영진입니다. 김앤정 로펌 변호사입니다.”

“어머, 김앤정이요? 거기 시니어 몇 분 우리 집 다녀요.”

“이름은 밝힐 수 없겠지.”

“다 알면서.”

장미향 마담이 구건호의 팔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그녀에게서 향기로운 향수 냄새가 코끝을 풍겼다.“

구건호가 뜨듯한 오차물을 마시고 있을 때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문을 열고 김영진과 미국인이 들어섰다. 구건호가 일어섰다.

“야, 구건호 반갑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이 미국인 친구가 연거푸 원더플을 외친다.”

“그래? 잘되었네.”

‘인사해라. ’라이먼델 디욘‘사의 ’리차드 아미엘‘이라고 한다.

구건호와 아미엘이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명함을 서로 교환했다. 구건호는 두가지 명함이 있었다. 하나는 한글 명함 뒤에 중국어를 넣은 명함과 또 다른 하나는 영문을 집어넣은 명함이 있었다.

“리얼 에스테잇 디벨로먼트 캄페니(부동산 개발회사)?”

아미엘이 한참동안 명함을 보았다.

“자, 앉읍시다.”

구건호가 자리를 권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온돌식 방바닥에 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 앉아. 이 친구 동경에서 생활해서 방바닥에도 잘 앉아.”

아미엘은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오우, 원더풀!”

심지어 아미엘은 민화 병풍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김변호사, 저 병풍 500년된 골동품인데 시가 10억 짜리라고 통역 좀 해봐.”

김영진 병호사가 웃으며 통역을 했다.

“왓?”

아미엘은 크게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 모습이 우스워 구건호와 김영진이 같이 웃었다.

장마담이 들어왔다.

“뭐가 그렇게 재미가 있어서 웃어요? 호호호.”

“참, 인사해라. 장미향 마담이다. 옛날 은막의 스타이신 분이다.”

“오, 그래요? 김영진입니다.”

“이 친구는 김앤정 로펌의 변호사입니다.”

“호호호, 우리 집에 김앤정의 시니어 몇 분이 자주 들려요.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요.

“오, 그래요? 집이 아주 분위기 있습니다. 같이 온 미국인 친구가 아주 좋아합니다.”

말하고 있는 사이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상이 들어왔다. 아미엘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음식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씩 맛을 보았다.

비밀요정 한남동의 ‘솔’에서 술잔이 오고갔다. 방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20대 여성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세 사람이 들어왔다.

“오우, 원더풀!”

“이 친구 여자들이 들어오니 되게 좋아하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 싫어하는 사람 있나?”

여성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그녀는 거문고를 들고 들어왔다. 구건호가 지난번 이회장 일행과 함께 왔을 때 보던 여성이었다. 이 여성도 구건호를 보자 아는지 목례를 보냈다.

‘라이먼델 디욘’사의 ‘리차드 아미엘’이 호기심이 나는지 목을 길게 늘어트렸다.

고요한 한국의 가락이 울려 나왔다.

“딩딩, 딩도뎅, 딩딩.”

무슨 곡인지 알 수 없으나 심금을 울리는 가락이었다. 애절하기도 하고 환상적이었다.

아미엘은 눈을 감고 가야금 곡을 감상하였다. 이 틈을 타서 구건호는 아미엘의 명함을 자세히 보았다.

라이먼델 디욘사(社)의 일본 총판 사장, 아시아지역 총괄 사장이라고 명함에 되어 있었다. 뒷면은 일본어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일본에서 가져다 파는 건가?”

구건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변호사가 구건호의 팔을 툭 쳤다.

“구사장은 술 안 마셔? 이렇게 예쁜 언니들이 술을 따라 주는데.”

“응, 마셔, 마셔.”

가야금 곡이 끝나자 아미엘은 호들갑스럽게 박수를 치며 원더플을 외쳤다.

아미엘 옆의 여성이 아미엘에게 술을 한잔 더 하시라고 영어로 말했다. 아미엘은 영어를 하는 여성이 옆에 있어 더욱 기분이 좋았다. 옆의 여성과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미엘은 구건호 옆과 김변호사 옆의 여성에게도 몇 마디 말을 했다. 이들도 모두 영어를 할줄 알았다. 자연히 자리는 영어가 공용어가 되어버렸다.

구건호 혼자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거 쪽팔리는데, 나만 영어를 못하네!”

구건호는 술만 연거푸 마셨다.

“어머, 사장님은 화가 나신 모양이네요. 술만 마시네.”

구건호 옆자리의 여성이 게 살을 발라 구건호의 입에 넣어 주었다.

구건호는 김변호사에게 술을 권했다.

“어이, 김변호사. 아미엘이라는 이 친구한테 내가 디욘사의 제품을 쓰는 플라스틱 공장에 다녔었다고 말해봐.”

김변호사는 아미엘에게 구건호는 디욘사의 제품을 쓰는 큰 회사에 다녔고 지금 중국 지방 정부와 합자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였다. 의향서 서명까지 한 상태라고 하였다. 좀 과장되게 이야기 하였다.

“오, 그래요?”

아미엘의 눈동자가 커지며 주머니에서 구건호의 명함을 다시 꺼내 보았다.

“부동산 개발회사인데?”

“지금은 그렇다. 그러나 이 회사는 부채가 없기로 유명한 회사야.”

“그래?”

아미엘은 팔짱을 끼고 구건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김영진 변호사가 옆에서 초를 쳤다.

“야, 너도 디욘사의 한국 총판을 달라고 한번 해봐라.”

김변호사는 구건호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아미엘에게 구건호가 한국 총판을 하면 어떻겠냐고 하였다.

아미엘이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구건호가 잔을 김변호사에게 돌리며 말을 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야.”

“그럼 뭔데? 디욘사 총판은 아무나 안줘. 기회야.”

디욘사 제품은 일본에서 받아다 파는 한국 수입상이 있을 거야. 내 목적은 그게 아니야.“

“목적은 뭔데?”

“디욘사 제품을 한국에서 생산하는 거지.”

“뭐? 여기서 생산?”

“원천적 고급 기술이야 안주겠지만 디욘사 제품이라면 콤파운드 공장은 가능할거다.”

김변호사가 구건호의 말을 통역하려고 하자 구건호가 제지했다.

“하지마라. 세계적 기업인 디욘사 정도면 콤파운드 회사도 능력이 있는 회사와 하려고 할 거다.”

“무슨 능력?”

“현재 공장을 갖고 있는 회사와 하려고 하겠지.”

“그게 그런가?”

구건호와 김변호사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다행히 아미엘은 옆의 여자와 이야기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콤파운드 한다는 말이 정확히 무언가?”

“디욘사의 원재료를 들여와 가공하는 거지. 이를테면 가소제나 충전제, 착색제 등을 첨가하여 사용 가능한 제품을 만드는 거야.”

“그럼 공장도 있고 시설도 있어야 하겠구나.“

“그렇지.”

“흠.”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공장 지으면 망해.”

“왜”

“한국 시장은 작아. 중국, 아니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야지.”

“호, 그런가?”

구건호는 김변사의 잔에 술을 채워주며 계속 말했다.

“내 꿈이 뭔지 아는가? 나는 공돌이 출신이네. 그것도 영세한 하청업체의 마찌꼬바(町工場) 공돌이었지.”

“흠.”

“내가 부동산 개발회사를 하고 주식투자를 하고, 중국 공단 분양회사 합작을 하는 것도 나중엔 글로벌 거대한 생산 제조공장을 운영하기 위함이지.”

“흠.”

“나는 제조공장을 꼭 인수할 거야. 그때가 되면 저 아미엘이라는 친구와 다시 한 번 자리를 마련해 줘라.”

“큰 공장이면 수천명의 종업원을 관리해야 하는데 힘들지 않을까?”

“나는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싶지는 않네. 또 전문가도 아니고. CEO를 두고 단지 뒤에서 조정하는 큰 손이 되고 싶네.”

“흠.”

“케미칼 공장은 화공과 나온 사람이 해야 하고, 건설사는 건축이나 토목을 전공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네. 그래야 제대로 된 품질관리가 되는 것이지. 난 뒤에서 이들이 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격려하는 일만 하려고 하네. 돈놀이나 하는 큰 손이 아니라 거대 기업을 뒤에서 조정하는 큰 손이 되고 싶네.”

“은둔의 경영자 하워드 휴즈 처럼 말인가?”

“그렇게 까지는 안 되겠지만.”

“아무튼 구건호 자네는 대단해. 존경스럽네. 강남 제일의 큰손이 될 것이네. 자, 내 잔 한번 받아.”

한남동 비밀요정의 밤은 깊어갔다.

가야금 소리가 다시 들리고 여자들의 교성어린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가 되었다. 아미엘이 구건호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나와 자주 만나줄 수 있겠소? 부동산뿐만 아니라 케미칼 분야도 잘 아는 것 같으니 앞으로 친구 하고 싶소.”

“나도 당신이 좋소. 친구합시다.”

“동경에 한번 놀러 오시오. 동경에도 이런 요정이 있소. 음악도 있고 예기(藝妓)가 춤추는 곳도 있소.”

김변호사가 옆에서 손뼉을 쳤다.

“야, 둘이 잘 맞는 것 같다. 앞으로 잘 해봐라.”

세 사람은 비틀거리며 한남동 요정을 나왔다. 또 대리 운전자를 불러야 했다.

구건호는 아침에 출근했지만 머리가 아팠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모양이었다.

구건호는 아침 결재만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복어 해장국을 먹고 사우나탕을 찾았다.

사우나에서 몸을 씻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니 그제야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탕 속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였다.

“지금 내 증권계좌에 100억이 금호석유화학에 투자된 상태지? 돈을 좀 더 넣을까?”

구건호는 김을 쏘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강동구 땅 판 돈 80억 중에서 15억은 중국 합자사 출자금으로 회사에 넣고 65억이 남았는데 또 몰빵을 해?”

구건호는 뜨거운 물을 천천히 몸에 끼얹었다.

“금호아시아나가 형제 싸움 징조가 보이자 주식이 오를 줄 알고 개미들이 달라붙었지. 꿀을 보고 모여들 듯이 말이야. 그런데 2달이 지나도록 크게 오른 것이 없으니 개미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을 거다.”

구건호는 또 한 번 결심을 했다.

“65억 남은 것 중에서 50억만 추매해 보자.”

구건호는 사무실에 돌아와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50억원어치 또 샀다.

“투자액이 150억이 되었다. 이러다가 내가 금호석유화학 대주주가 되는 게 아니야?”

구건호는 사업을 즐기면서 느긋이 기다리기로 했다.

“형제간 싸움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구건호는 이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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