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89화 (89/501)

# 89

토지 매각 (1)

양지건설 사장이 돌아가자 강부장이 말했다.

“사장님 그거 조심하십시오. 건축업자들이 땅주인한테 돈 없이 건물 올릴 수 있다고 하면 나중에 땅 다 뺏깁니다.”

“그런 이야기는 나도 어디서 들은 것 같습니다.”

“건축업자들은 땅 주인이 융자받은 돈으로 건물 짓고 나면 손해 볼 것 없습니다. 만약에 건물 짓고 나서 분양이 늦어지면 이자감당은 어떻게 합니까? 고스란히 땅주인 몫입니다. 남 좋은 일만하고 그대로 땅 뺏기는 것이 됩니다.”

“토지보유세가 만만치 않다고 하는데요.”

“주차장과 포장마차 임대료가 들어오니까 견딜 만은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지요.”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증권계좌를 열어보았다.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100억원어치 사 놓았다가 지난번 강동구 토지 지분 인수 때 돈이 모자라 3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은 상태였었다. 따라서 매도가정시의 금액은 97억원이 맞을 듯 한데 그동안 주식이 약간 올라 변동이 생겼다.

“헤, 3.5% 정도 올라 매도 가정시 금액이 100억원이 되었네.”

구건호는 지금 당장 주식을 팔아도 100억원의 현금 자산이 있게 된 것이다.

구건호는 사무실에서 기지개를 편 후 옷걸이에 걸린 양복저고리를 입었다.

“정지영씨, 강부장은 고시텔 순회점검 나갔나요?”

“예, 그렇습니다.”

“어제 수입금 얼마지요?”

“4개 고시텔 수입금 180만원입니다.”

“흠.”

“새로 들어온 총무는 4대 보험 가입해 주었나요?”

“아닙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아서 안했습니다.”

“회계처리 어떻게 하려고?”

“우선 일용직 처리했습니다.”

“알겠어요. 나, 나갔다 올게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골프 연습장에 나갔다. 한참 치고 있는데 코치가 왔다.

“코치님은 전보다 더 예뻐졌네요.”

“예뻐지긴요. 사장님 중국 갔다 오셨다면서요?”

“아이구, 잘도 아시네.”

“선물도 하나 안사가지고 오셨어요?”

“저런, 내가 깜박 잊었네.”

“농담이에요. 열심히 치세요. 고개 너무 숙이지 마시고요.”

구건호는 한 시간 가량 골프 연습을 하고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커피숍에서 쥬스를 마셨다.

“시간이 얼마 안 되었네? 바람이나 쏘일 겸 고속도로에 나가볼까? 용인과 안성의 골프장이나 한번 들려보자. 내가 정식 골프장 구경은 해보지도 못했지 않은가. 맨날 연습장이나 왔다 갔다 했지.”

구건호는 용인에 있는 두 군데 골프장을 구경했다.

“좋군. 그린이 아름다워.”

구건호는 안성으로 향했다.

“안성도 봐 두어야지. 회원권이 용인보다는 싸겠지. 이런, 오줌이 나오려고 하네. 휴게소에 들릴까? 저기 안성 휴게소가 보이네.”

구건호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소변을 보고 호두과자 한 봉지를 샀다. 바나나 우유와 함께 호두과자를 우물우물 먹고 있는데 누가 아는 채를 하였다.

“어? 이게 누구야! 구건호씨 아니오?”

구건호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아, 아산 와이에스테크의 황선홍 과장님 아니십니까?”

“야, 구건호씨 때깔 좋네. 신수가 훤한걸 보니 잘 나가는 모양이네. 요즘 무슨 일 해요?”

“조그만 부동산개발회사 하고 있습니다. 와이에스테크의 박영식 사장님도 안녕하시지요?”

“다들 잘 있어요.”

황선홍 과장은 전보다 좀 늙어보였다. 머리숱도 더 빠져있고 눈밑 잔주름도 늘은 것 같았다.

“회사는 여전하시지요?”

“요즘 힘들어. 요즘 뭐 잘 되는 게 있어야지.”

“납품이 잘 안 돼요?”

“말마. 주 거래처인 물파산업이 휘청거리니까 오더가 팍 줄어버렸어요.”

“물파산업이 왜요?”

“물파산업 회장 아들이 중국에 벌려 놓은 게 잘 안 되는 모양이요. 지금 우리가 매월 물파산업에 5억원씩 납품했는데 3억으로 확 줄어버렸소.”

“아이고 저런! 그럼 종업원도 줄었겠네요.”

“종업원 100명이 넘는 회사가 지금 종업원 70명으로 줄었다오. 나도 언제 잘릴지 몰라. 그러나 저러나 구건호씨는 정말 신수가 훤해. 돈도 좀 붙게 생겼는데?”

“하하. 돈이 붙긴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와이에스테크의 박영식 사장이 보고 싶었다.

“사실 그 양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겠지. 오랫동안 은혜를 베푼 사람을 잊고 있었네.”

그러나 구건호는 지금 와이에스테크 사장을 도울 힘이 부족했다. 옛날에 신세를 졌다고 갈비짝을 사갖고 갈수도 없고, 한두 푼 현금 지원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아직은 좀 더 지켜보고 정말 힘들 때 한번 찾아가 뵙도록 하자.”

와이에스테크가 힘들어 진건 주 거래처인 주식회사 물파산업의 휘청거림에 있다. 구건호는 와이에스테크가 살아나려면 거래처를 다양화하는 길밖에 없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하청업체의 대부분이 실력으로 납품처를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인맥이 있어야 돼. 하청업체의 기술이라야 실상은 다 거기서 거길 테니까 인맥이 있어야 돼.”

다음날 구건호는 사무실에 출근하자 말자 정지영씨에게 지시를 내렸다.

“정지영씨,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다트(DART)에 들어가면 기업정보를 볼수 있는 것 알지요?”

“예, 압니다.”

“여기 두 회사의 공시내용을 가끔 모니터링하세요. 지나간 건 필요 없고 앞으로의 것만 하시면 됩니다. 와이에스테크와 물파산업이라는 회사입나다.”

“알겠습니다.”

“변동 내용이 있으면 보고하시고 기업정보 유료사이트에 들어가서 신용 조사한 것 출력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결재서류를 처리하고 신문을 보고 있는데 정지영씨가 보고했다.

“다트에 들어가니까 물파산업은 있는데 와이에스테크는 자료가 안 뜹니다.”

“그래요? 그러면 할수 없지. 앞으로 물파산업것만 조사하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눈을 감고 혼자 말을 하였다.

“와이에스테크가 빠졌다니 매출 축소로 공시 의무기업에서 탈락한 모양이군.”

정지영씨가 기업 신용정보를 알려주는 유료 사이트에 들어가 물파산업의 재무제표를 출력해 가지고 왔다. 구건호는 공돌이 할 때 의정부에서 경리학원을 다녔고 아산 공장에서 직접 경리 실무를 본 경험이 있다. 또 그동안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서 내공도 쌓았다. 기업의 상태를 즉각 판단할 줄 알았다.

“단기 채무가 늘고 있어.”

구건호는 물파산업의 부채가 늘고 있음을 주목했다.

“외상매입금과 미지급금도 증가하고 있으니 위험해.”

이 회사가 아프다고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해외 자회사 투자자산은 왜 이렇게 많은가!”

구건호는 손익계산서를 분석했다.

“매출도 전년도에 비해 줄고 있고 당기순이익도 마이너스야.”

구건호는 이 회사에 납품을 하고 있는 와이에스테크도 엄청난 시련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파산업은 코스닥 등록 기업은 아니라도 우량기업이었다. 구건호가 와이에스테크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물파산업은 매출액이 700억원을 넘었었다.

“그때 코스닥 등록을 추진한다고 했었는데 안 됐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신용등급이-C네.”

구건호는 물파산업의 동향을 주시하기로 하였다.

양지건설 사장 유광호가 다시 찾아왔다.

“구 사장님, 어떻게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아무래도 돈이 없어 안 되겠습니다.”

“허허, 이렇게 딱하시긴. 그렇다면 그 토지를 우리한테 넘길 생각은 없습니까?”

“그 땅을 나대지 상태에서 팔란 말입니까?”

“네, 우리가 개발하지요.”

“얼마를 주겠다는 말씀입니까?”“나머지 지분을 얼마에 인수하셨습니까?”

“금액을 말씀드리면 믿겠습니까?”

“물론 낙찰가보다 조금 더 주기는 했겠지요.”

구건호는 양지건설 사장과 시소게임도 퍽이나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0% 지분을 가지고 있던 그 영감님 고집이 대단했어요.”

“나도 그 영감님을 잘 압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미제 물건 떼다가 장사했던 사람입니다. 아들도 이름 깨나 있는 연극배우고요.”

“잘 아시네요.”

“알다마다요. 그 집 아들과 딸이 배가 다르다는 것도 알지요.”

“그래요?”

“그건 그렇고 65억 드릴 테니까 넘기세요.”

65억이면 구건호가 이 토지를 산 금액과 거의 비슷했다. 낙찰 받은 금액이 29억 8천만원에 삼풍아파트 노인 지분 인수금이 35억으로 합하면 정확히 64억 8천만원이었다.

구건호는 번들거리는 양지건설 유광호 사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요놈의 자식은 완전히 빠꿈이 같은 놈이네]

“하하, 어째 내가 구입한 가격보다 더 싸게 팔란 말입니까?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얼마에 구입했는데요?”

“80억 들어갔습니다.”

“말도 안 돼는 소리! 그 토지 70억 넘게 주었다면 내 손목을 자르겠습니다.”

“사장님 손목 날라 가게 생겼네요.”

“그러지 맙시다. 그동안 발품도 들어갔고 삼풍 아파트 노인 설득하느라 약도 팔았을 테니 70억 드리지요.”

“그냥 가세요. 팔 의향 없습니다.”

“혹시 토지 감정평가는 받아놓으신 것이 있습니까?”

“왜요? 그런 거 우리 안했습니다. 파이넨스 일으킬 일도 없고요.”

구건호의 이 말에 양지건설 유광호 사장의 입가에 은밀한 미소가 번졌다.

다음날도 유광호 사장은 또 왔다.

“자주 오십니다.”

“내가 여기 자주오니 여기 직원 같습니다.”

유광호 사장은 비위 좋게 웃었다.

“70억에 파세요.”

“유 사장님, 이제 그만 하세요. 서로 피곤하지 않습니까? 이제 포기하세요.”

“그 땅 팔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그 삼풍 아파트 노인처럼 되시려고 그럽니까?”

유광호 사장의 말에 구건호는 뜨끔은 하였다.

[개발을 하던가, 팔 던가 그래야겠지? 그 영감님처럼 움켜쥐고 있는 것만이 좋은 일은 아니겠지?]

“구건호 사장님, 갑시다!”

“어딜 가요?”

“점심 때가 되었으니 내가 밥이나 사지요.”

“사장님 밥 얻어먹고 체하면 어쩌려고요.”

“정문 앞에 서 계세요. 내가 지하주차장에서 내차를 가지고 올 테니.”

구건호가 자기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텔 건물 정문에 서서 유광호 사장의 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지하 주차장에서 유사장이 차를 끌고 나왔다. 차는 놀랍게도 번쩍거리는 벤츠600이었다. 기사까지 있었다.

“타세요, 멀리 갈 필요 없이 요 앞에 역삼동으로 가지요.”

“그러세요.”

“역삼동에 초밥 잘하는 집이 있습니다. 가게는 조그만데 손님은 많은 곳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가면 손님 좀 뜸할 겁니다.”

구건호와 양지건설 사장 유광호는 역삼동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다. ‘미나도’라는 일식집이었다.

“반주도 한잔 할까요?”

“좋으실 대로!”

“주방장! 여기 초밥 3인분하고 희레사케 한잔씩 주세요.”

쓰끼다시와 술이 먼저 나왔다. 술잔 위에 복어 껍데기가 불타고 있었다. 주방장이 초밥을 만들고 있다가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저.... 혹시 구건호 사장님 아니십니까?”

“예?”

구건호가 주방장을 자세히 보니 노량진에서 장사하던 까까머리였다.

“오, 안녕하십니까?‘

구건호가 일어서서 악수를 청 하였다.

주방장이 카운터를 향해 소리쳤다.

“삼촌! 삼촌!”

“카운터에 앉아있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중국 호텔 식당을 구건호에게 팔았던 변희열 사장이었다.

“여기 중국의 구건호 사장님 왔네요.”

“오, 구사장!”

“아이고, 안녕하셨습니까? 여기에 계셨군요.”

양지건설 유광호 사장도 웃었다.

“아는 사이들인 모양이네. 내가 여기 잘 왔네. 허허.”

구건호가 변희열 사장에게 물었다.

“장사 잘 되시죠?”

“뭐, 그럭저럭. 조카가 음식 솜씨가 있어 잘해요.”

“조카 분은 일본에서 조리기술을 배웠다고 했지요?”

“예, 그렇습니다. 구사장님은 그럼 중국 식당은 파셨나요?”

“네, 한국에 와서 지금은 부동산 개발 일을 합니다.”

구건호가 변희열 사장에게 명함을 주었다.

“회사가 이 근처네요. 우리집 자주 놀러오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마침 손님들이 또 와서 변희열 사장은 다른 테이블로 갔다.

유광호사장이 희레사케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구사장님은 중국에서 식당 하셨군요. 식당 운영보다는 식당 팔아서 돈 좀 번 것 아닙니까?”

“식당 보다는 거기서도 부동산으로 좀 벌었습니다. 사장님은 어떻게 하다가 건설 회사를 하시게 되었습니까?”

“나는 원래 대기업 건설 회사를 다녔습니다. 현장 소장도 하고 해외 공사현장 책임자로도 있었지요. 그러다가 아버님이 하는 작은 건설 회사를 물려받았습니다. 아버님때 보다는 내가 회사를 더 키워놓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구건호와 유광호 사장은 사케 한잔에 얼굴이 약간 벌건채 식당을 나왔다. 구건호는 까까머리 주방장과 변희열 사장에게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하였다.

유광호 사장이 구건호의 팔을 잡았다.

“우리 사무실에 가서 차 한잔 합시다.”

“사무실이 어딘데요?”

“영동시장 근처요.”

구건호가 그렇지 않아도 유광호라는 인물이 아직 미덥지가 않았는데 사무실을 가자고 하니 흔쾌히 따라 나섰다.

사무실은 7층 건물의 6층에 있었다. 직원들이 의외로 많았다. 30명 가량 되는 직원들이 흰 와이셔츠만 입은 채 근무들을 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유광호를 보고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유광호가 구건호를 사장실로 안내하였다. 사장실 입구에 책상이 놓여 있었고 젊은 여성이 일어서서 인사를 하였다.

“나한테 전화 온데 없지?”

“남부 타일의 오사장님과 동원토건의 박사장님 전화가 있었습니다.”

“그래? 여기 차 좀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구건호가 넓은 사장실 쇼파에 앉았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요. 벌려 논 공사현장이 많습니까?”

“서울엔 없고 전부 수도권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저희 지에이치 개발은 구멍가게입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구사장님 이야말로 알부자입니다.”

“별말씀을!”

“아니요. 진심입니다. 나이도 나보다 한 10년은 아래로 보이는데 젊은 분이 70억짜리 땅을 척척 사니 대단합니다. 이 건축 계통은 사기꾼도 많고 날나리들도 많은데 구사장님은 숨은 실력자입니다.”

유광호 사장의 사탕발림 소리가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업은 사업이었다.

“확실하게 말씀드리지요. 첫째, 토지매매 대금은 80억 이하로는 절대 안 됩니다. 그 이하의 금액을 계속 요구하신다면 다음부턴 유사장님을 만나지 않겠습니다. 또 계약서는 65억으로 해야 합니다.”

“다운계약서를 만들어달란 말이군요.”

“나도 세금 두둘겨 맞는 것은 피하고 싶습니다.”

“다운 계약서라...”

유사장은 피곤한 듯 고개를 쇼파 뒤로 젖히고 한참을 생각했다.

침묵이 흘렀다.

눈을 감고 생각만 하던 유사장이 갑자기 눈을 뜨며 고함을 질렀다.

“좋다! 80억에 내가 먹겠다!”

구건호가 웃으며 박수를 쳤다.

“역시 유사장님은 사업가이십니다. 토지나 주식이나 확실한 패가 보인다면 칼 같은 결단이 필요하지요. 건설은 내가 전문가가 아닙니다. 건설 쪽 전문가는 유사장님입니다. 감정평가 100억만 받아놓아도 금융권에서 80억은 땡길 수가 있습니다. 유사장님은 조감도만 가지고도 분양을 잘할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저기 벽에 걸린 그 사진들이 증명합니다.”

구건호는 결국 65억 정도에 산 강동구 토지를 80억에 팔았다.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양도소득세는 피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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