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토지 지분 인수 (1)
구건호는 2주일이 지나서 서초동 삼풍 아파트에 사는 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인은 낙찰 받은 강동구 토지의 절반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저, 어르신. 지난번에 찾아뵙든 사람입니다. 강동구 토지 낙찰 받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생각은 해 보셨어요?”
“무슨 생각이오? 안 팔아요.”
“어르신, 그러시면 자녀분들한테도 좋은 말씀 못 듣습니다. 우리한테 적당한 가격에 넘기세요.”
“안한다니까요.”
“그러면 이렇게 하시지요. 저희 지분을 어르신께서 아예 인수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토지는 지분을 합해 놓아야 경제적 가치가 올라갑니다. 팔기 싫으시면 사는 것도 방법일 수가 있습니다.”
“그거 살돈 나, 없어요.”
“팔기도 싫다, 사기도 싫다. 그러시면 어르신 옹고집 밖에 안 됩니다.”
노인은 말이 없이 가만히 있었다. 숨소리만 들렸다.
“저, 어르신 내일 제가 점심을 대접하지요. 삼풍아파트 밑에 순두부집 잘하는 집이 있더군요. 거기서 내일 오후 1시쯤 뵈었으면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좋을 대로 하시오.”
구건호가 전화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던 강부장이 물었다.
“뭐라고 합니까?”
“식사 같이 하자고 하니까 좋을 대로 하라고 하면서 끊네요.”
“그러면 됐습니다. 승낙한 겁니다.”
“내일 나올까요?”
“나옵니다. 저랑 내일 같이 가시지요.”
사무실에 갑자기 우편 집배원이 들어왔다.
“구건호씨 계세요?”
“전데요?”
“국제 우편물입니다. 여기 서명하세요.”
집배원이 EMS 서류 하나를 주면서 서명을 하는 단말기를 내밀었다.
서류는 중국 곤산시 금계건설 사장 선칭꿔가 보낸 것이었다.
“뭘 보냈을까?”
구건호가 개봉해 보니 A4용지 7매 정도의 서류였다. 서류의 제목은 가행성보고서(可行性報告書: 사업계획서)라고 되어 있었다.
“가행성 보고서!”
구건호는 읽어보다가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 사전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구건호가 서류를 책상위에 던져 놓자 강부장이 일어서서 서류를 보았다.
“가행성보고서가 뭡니까?”
“사업계획서입니다.”
구건호는 자기가 번역하다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아 번역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번역 사이트에 번역할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렸다.
구건호와 강부장은 삼풍아파트에 사는 노인을 만나기 위해 서초동 순두부집으로 갔다.
“아직 안 오신 모양이네.”
구건호와 강부장이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는데 장학철 노인이 들어왔다. 노인의 뒤로 건장한 체격의 40대가 같이 따라 들어왔다. 40대는 파마머리에 수염을 길러 딴지일보의 김어준 회장처럼 생겼다.
“안녕하십니까?”
구건호와 강부장이 일어서서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우리 아들이요.”
구건호는 연극을 한다는 그 아들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에게도 정중히 90도 각도로 인사했다.
“음식은 어르신이 오시면 시키려고 아직 안 시켰습니다.”
“아무거나 시킵시다. 이 기와집 순두부집은 콩탕이 유명해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콩탕하고 제육 생두부, 녹두전이 어떻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시구랴.”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정갈했다.
“어르신, 약주라도 한잔 하시겠습니까?”
“괜찮소, 됐소.”
구건호는 소주 한 병을 시켰다.
“한잔씩만 하시지요. 반주로.”
강부장이 이렇게 말하면서 음식을 노인 앞에 더 갖다 놓았다. 노인이 음식을 먹으면서 말했다.
“이 기와집 순두부집은 4대째 하고 있는 집입니다.”
“오, 그렇습니까?”
구건호와 강부장이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약간 오버 액션을 취했다. 노인은 구건호와 강부장의 행동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소주를 한잔 마셨다.
“그래, 오늘 할 말은 뭐요?”
“어르신께서 그 땅의 지분을 파시던가, 사시던가 해 달라고 해서 왔습니다.”
“판다면 얼마를 주겠소?”
“제가 낙찰 받은 금액이 29억 8천 1백만원입니다. 그건 법원에 조회해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금액입니다. 제가 30억 드리지요.”
“택도 없는 소리!”
노인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번엔 아들이 말했다.
“원래 그 땅은 전 소유자하고 40억에 흥정되었던 땅입니다.”
“40억은 우리도 어렵습니다. 그만한 돈도 없습니다.”
노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이하론 절대 못 팔아요. 아, 다 시세가 있는 건데!”
“어르신은 그 땅을 오래 가지고 계셔서 양도소득세도 많이 안 나올 겁니다. 저희도 어르신이 제시한 금액 그대로 인수하면 제가 낙찰 받은 30억과 어르신 지분 40억을 합하면 70억 땅이 됩니다.”
“그 땅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뭐를 해도 되는 땅 아닙니까?”
“땅값 70억에 건물 건축비용 들어가고 하면 채산성이 없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진짜 팔 의사가 없으신 것 같네요.”
구건호는 명함을 꺼내 아들에게 주었다. 아들도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구건호와 강부장에게 주었다. 아들의 명함은 기획사 대표와 극단 대표로 되어있었다.
“예술 활동을 하시는 군요. 부럽습니다. 저희는 예술 하시는 분들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강부장의 말에 아들은 헛기침만 했고 노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두부만 먹고 있었다.
“저희는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변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아, 그리고 주차장 임대료 절반은 우리에게 들어오도록 주차장 사장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포장마차는 보기 흉해서 쫓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거긴 쫓아내면 안 되는데. 오래 장사했던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어르신 뜻대로 하겠습니다. 들리는 말론 포장마차 주인이 어르신 조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맞습니까?”
“아니요. 먼 친척이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이야기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건호가 사무실에 들어와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힉! 번역하겠다는 지원자가 30명이나 들어왔어.”
중국의 금계건설이 보내온 사업계획서의 번역희망자 모집에 대한 지원 메일들이었다.
“A4용지 7장 번역이면 큰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네.”
지원서는 중국어과 대학생에서부터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강사로 있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조선족도 있었고 한족 유학생도 있었다.
“중국에서 박사학위 받고 대학 강사로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자.”
구건호는 대학 강사에게 서류를 보냈다.
사업계획서는 그럴 듯 했다. 추정 손익표까지 만들어 보냈는데 3년 후에 흑자 나는 것으로 되어있고 경영 정황을 보아 무상증자도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무상증자라...”
구건호는 무상증자 대목에서 마음이 끌렸다.
“3년 후에 흑자가 나는지, 안 나는지는 사업을 해봐야 아는 것이고 무상증자는 그 안에 확실하게 돈을 번다는 이야기인데 한번 해봐?”
왕지엔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금계건설 사장이 보낸 사업계획서 받았지?”
“응, 받았어.”
“생각 있으면 의향서 싸인 하자. 아, 그리고 곤산시 건설국 공무원하고 금계건설 직원들이 한국의 지방산업단지 시찰을 간다.”
“내가 안내해야 되나?”
“아니야. 한국의 지방도시하고 이야기가 되었어. 거기서 안내해.”
“언제 오나?”
“다음 주야. 5명이 한국에 2박 3일로 가. 그 사람들 출장 끝나면 중국에 와라.”
“알았다. 내가 일정 한번 맞추어 볼게.”
삼풍아파트에 사는 노인의 아들로 부터 전화가 왔다.
“아, 아드님 아니십니까?”
“제가 아버님을 설득시켜 보았습니다. 그 땅 시세가 있는 것이니까 40억은 무리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 마음에 변화가 있었습니까?”
“팔고 나서 양도세 걱정을 하시더군요.”
“보유기간이 오래되어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마침 세무사로 있는 내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걱정할 수준은 아닌 듯합니다.”
“그럴 겁니다.”
“확 까놓고 35억 합시다! 아버님은 아직도 반대하지만 그 가격이면 내가 밀어 붙이지요.”
“35억이요? 그러면... 제가 추가 융자를 받아야 됩니다. 이자 부담이 많을 듯 하네요.”
“그 이하는 우리도 어렵습니다. 아버님이 젊었을 때부터 고집이라면 유명하셨던 분입니다.”
“고민 좀 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강부장이 전화 내용을 옆에서 들었다.
“뭐라고 그럽니까?”
“아들 전화인데 35억 이하로는 절대 안 판답니다.”
“사장님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나도 무리이긴 한데, 욕심은 나네요.”
“지분이 완전히 합쳐지면 65억짜리 땅이 되는데...., 비싸긴 하지만 요즘 서울 시내에 그런 나대지(裸垈地)는 거의 없습니다.”
“강부장님 개인 생각은 어떻습니까?”
“제게 돈이 있다면 잡습니다.”
“흠.”
구건호는 머리도 식힐 겸 차를 타고 나왔다. 청계산 입구까지 차를 몰았다.
“복잡한 강남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녹음 속으로 들어오니 좋네.”
구건호는 차를 세워놓고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옛골 마을을 걸었다.
[낙찰 받은 금액이 29억 8천 1백만원이니까 나머지 지분을 35억원에 인수한다면 땅값이 정확히 얼마냐?]
구건호가 바위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땅값만 64억 8천 1백만원이네.”
구건호는 증권사에 100억이 있었고 은행에 64억원이 있었다. 4대강 관련주식으로 번 돈이 198억원이었는데 34억원이 빠져 나갔었다. 아파트와 자동차 사고, 회사 꾸미는데 돈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후 나머지 164억은 증권사와 은행에 각각 분산해 놓았던 것이다.
“증권사 예치금은 벌써 금호석유화학에 몰빵한 상태인데.”
구건호는 약간 조바심이 났다.
“은행에 있는 64억원중에서 회사 증자하는데 3억 들어갔고, 강동구 토지 경매 참여하느라 30억 인출했으니 31억 남았는데 어쩌지? 금호석유화학 주식 4억원어치만 팔아야겠네.”
구건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증권사 지점장이었다.
“사장님 잘 계시지요?‘
“예, 잘 있습니다.”
“라운딩 한번 하자는데 기회를 안주시네요. 바쁘신 일이 많은 모양이지요?”
“네, 뭐 그저.”
“혹시 회사채에 생각 없으십니까?”
“회사채요?”
“신용등급 A인 회사채를 만기까지 보유하시면 이자율이 쏠쏠합니다.”
“지금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시중금리 올라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시중금리 올라가면 채권가격이 내려가긴 합니다만 3년짜리 2.8%는 보장됩니다.”
“생각 없네요.”
“아까운 회사라 추천 드립니다. 본드몰에 들어가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글쎄요.”
“이자와 원금을 받으니 주식보다는 안전자산 아닙니까?”
“글쎄요.”
“뭐, 그건 그렇고 언제 한번 만날 기회 좀 주십시오. 핫핫핫.”
구건호는 전화를 끊었다.
“내가 지금 회사채까지는 신경 못쓴다. 이 사람아!”
구건호는 결국 35억원에 나머지 토지를 인수했다.
총 64억 8천 2백만원에 서울의 대로변 200평의 땅을 완전 인수한 것이다.
구건호보다도 강부장이 더 좋아했다.
“저, 사장님, 그 땅, 당장에 개발계획은 없으시지요?”
“왜요?”
“거기 주차장 사장과 포장마차 사장 등을 만나서 임대료를 올려 달라고 할까요?”
“아직은 놔두어 보세요.”
“토지 매입비용이 엄청 난데 혹시 파이넨스를 일으키지는 않았습니까?”
“그러진 않았지만 목돈이 들어가 내가 여유가 없어졌네요.”
“혹시 그 땅 담보로 융자 받으실 계획은 없습니까?”
“강부장님이 전직 은행원이시니까 말씀 드리는데요. 그 땅 융자 받으려면 최대 얼마까지 받을 수 있겠습니까?”
“감정평가액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지난번 법원 감정가는 50% 지분에 45억이었잖습니까?”
“법원은 시초가를 높이기 위해 좀 높게 잡아놓은 것 아닙니까?”
“큰 차이는 안 납니다.”
“그럼 이제 지분을 모두 샀으니 감정가만 90억원이 되겠네요.”
“그렇게 되네요.”
“그럼 60% 받는다면 54억 받네요.”
“신용 좋으면 80% 잡아주면 74억입니다.”
“그럼 땅 구입비 보다 더 나오네요. 하하.”
“일단은 융자 받으려면 감정평가서가 있어야 됩니다. 감정기관에 감정평가 의뢰하면 수수료가 제법 나갑니다.”
“하하, 융자는 안 받습니다. 그냥 해본 소리입니다. 일단 그 문제는 내가 중국에 갔다 와서 다시 이야기 하지요.”
구건호는 경리담당 정지영씨를 불렀다.
“정지영씨! 다음 주 수요일 중국 상해 가는 비행기 표 한 장만 예약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골프장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강부장이 불렀다.
“저, 사장님. 그리고...”
“무슨 말씀인데요?”
“방배동 고시텔 총무 김민혁씨 말입니다.”
“김민혁이가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그만 둔다고 합니까?”
“그게 아니고, 요즘 근무 중에 술을 자주 마시는 것 같아서 사장님께 말씀드립니다.”
“근무 중에 술 마시면 되나.”
“사장님 친구 분이시라 제가 주의를 주는 것 보다는 사장님이 한번 주의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그 친구 이번에 또 공무원시험에 떨어져 그런가?”
“공시생이라 스트레스 받는 건 알지만 자주 음주를 해서 말씀 드립니다.”
“그래요? 한번 만나 보도록 하지요.”
구건호는 골프 연습을 하고 돌아오다가 차속에서 김민혁에게 전화를 했다.
‘민혁이? 나다. 어째 총무생활 할 만 하냐?“
“어, 구건호, 아니 구사장. 할만 해.”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내가 오늘 방배동 쪽에 일이 있어. 그곳에 갔다가 오후 7시쯤 들릴게. 저녁이나 같이 하자.”
“오늘 저녁? 그래, 알았다. 기다릴게.”
구건호가 방배동 고시텔을 찾았을 때 김민혁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4층 입구에 작은 방 하나를 사무실 겸 총무 방으로 쓰고 있었다. 끔찍한 고시원 생활을 오래했던 구건호는 김민혁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 간만이다.”
구건호가 활기찬 음성으로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어, 정말 오래 간만에 왔구나.”
“어때? 할만 해? 힘들지?”
“괜찮아, 좋아.”
“왜 이렇게 힘이 없니? 이번 시험은 잘 봤어?”
“떨어졌어.”
“오, 벌써 발표가 났나? 국가직 안되면 지방직도 보고 그러다 보면 합격하겠지.”
”휴.“
김민혁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가자, 밥이나 먹으러 가자.”
김민혁은 총무 부재중이란 아크릴 간판을 사무실 입구에 매달아 놓았다. 부재중이란 간판 밑에는 총무 연락처 전화번호가 별도로 붙어 있었다.
“사무실이 빌 텐데.”
“총무 연락처 전화번호가 있으니 됐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