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85화 (85/501)

# 85

현자(賢者)와의 대화 (2)

권부장과 박종석은 아시아나 주식을 왜 팔지 말아야 하는 가, 그 이유를 몰랐다. 이회장과 구건호의 얼굴만 번갈아 보았다.

“구사장이 한번 설명해 보게. 구사장은 아는 것 같네.”

권부장과 박종석은 이번엔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제 생각엔 이렇습니다. 형제가 싸우면 서로 자기의 지분을 확보하려고 주식을 사려고 할 것입니다. 즉, 자기의 보유 지분을 늘려야 경영 장악력이 더 세게 되니까요. 그렇게 되면 주식 시장에서 사자 주문이 많으니 자연히 주식은 올라가겠지요.”

“흠,”

권부장이 구건호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박종석은 눈알을 뱅글뱅글 돌리는 것을 보니 알 듯 모를 듯한 모양이었다.

권부장이 구건호의 설명을 듣고 이회장에게 물었다.

“저, 회장님.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금호건설과 아시아나 항공을 형이 경영하고, 동생은 금호화학을 경영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형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이 낫겠지요? 아무래도 현재의 지분은 형의 것이 더 많을 테니까요.”

“그럴까.”

“제가 사논 주식이 아시아나 항공입니다. 2천만원 어치나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사 볼까요?”

“이론이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주식은 실제적으로는 아무도 알 수가 없어.”

“회장님 말씀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요.”

이회장은 권부장 말은 그냥 흘려버리고 구건호에게 질문했다.

“구사장 같으면 형에게 걸겠는가? 동생에게 걸겠는가?‘

“글쎄요. 저도 형 쪽이 낫지 않을 가요?”

“흠, 그래?”

이회장은 소주대신 종이컵에 있는 생수를 마셨다.

“주식은 알수 없다고 했지? 형제가 내일이라도 화해할 수가 있고 세력들이 반대로 움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어렸을 때 마을 어른들이 이런 소리를 하더군.”

모두 이회장을 쳐다보았다.

“본래 형은 욕심이 있고, 동생은 야심이 있다고 들었네. 누구 쪽에 걸어야 하는 것은 각자의 판단이겠지. 그러나 가급적 주식은 하지 말게. 핫핫.”

이회장은 호수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구건호가 눈을 크게 뜨고 이회장을 바라보았다.

[현자(賢者)다! 이회장은 현자다.]

박종석이 각자의 종이컵에 소주를 따르며 킥킥 웃었다.

“에이, 나는 주식 같은 것 없으니까! 편하다. 무주식 상팔자니까! 술들이나 마셔요.”

박종석의 말에 이회장도 빙그레 웃었다.

구건호는 아침에 출근하여 컴퓨터에 증권사 트레이딩 창을 띄었다.

“동생 회사에 건다. 오늘 금호석유화학 주식 30억 원어치 사자 주문을 낸다.”

구건호는 남보다 의사결정이 빨랐다. 확실하다고 생각되면 사정없이 질렀다. 이것이 그가 다른 사람과의 차이이다. 박종석은 낚시터에서 이회장의 이야기를 듣고도 건성으로 흘러들었겠지만 구건호는 달랐다. 발 빠른 움직임이 있었다.

“확실한 패다.”

구건호는 금호석유화학 같은 대형주는 확실하다면 많이 넣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잡주나 동전주 보다는 확실히 안전하다고 보았다.

구건호는 일주일에 걸쳐서 금호 석유화학 주식을 70억 원어치나 샀다. 음봉이 나올 때 마다 조금씩 분할하여 샀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결단력의 실행이었다.

“삼성전자를 사놓은 30억은 어떻게 핳까? 그것도 팔고 금호석유화학으로 옮겨 타?”

구건호는 고민했다.

“주식에서 몰빵처럼 위험한 짓은 없는데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질러?”

구건호는 마음이 답답했다.

“돈이 있어도 사람은 이렇게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동물인가 보다.”

구건호는 사무실을 나와 사우나탕엘 갔다. 사우나탕에서 목만 내민 채 수건을 머리에 엊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뇌하는 스님처럼 깊은 몰아의 경지에 들어갔다.

“삼성전자 것도 빼내?”

구건호는 오랜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탕에서 나왔다.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삼성전자 것도 금호석유화학으로 바꾼다!”

구건호는 삼성전자를 팔고 몽땅 금호석유화학을 샀다. 총 100억원을 투자한 것이다.

“1년만 담근다.”

구건호는 강부장과 함께 역삼동 고시텔을 가 보았다. 룸 45개인데 샤워시설과 옵션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이용자 임대료는 룸 하나당 45만원을 받는다고 하였다. 먼저 있던 총무의 말로는 공실율은 10% 내외라고 하였다. 건물주인에게 내는 월세가 비싼 게 흠이었지만 다른 것은 이상이 없었다.

“계약합시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강부장이 건물주인과 임대계약을 맺고 고시텔 전 주인에게는 권리금을 주어 내 보냈다.

총무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총무는 그대로 있지 어딜 가려고?”

강부장 말에 총무가 반색을 하며 가방을 내려놓는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고시텔은 개인이 아니고 회사에서 운영하므로 총무의 이력서와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합니다. 내일 보내줄 수 있겠어요?”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강남에 있는 고시텔이 4군데나 되니까 강부장도 바빠졌다.

총무들이 가끔 전화를 걸어 요구하는 사항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강부장님이세요? 전등이 나간 것이 3군데나 되어서 교체해야 하는데요.”

“강부장님이세요? 카드 단말기가 이상하게 안 되네요.”

“강부장님이세요? 건물주인이 강부장님을 좀 보자는 데요.”

“강부장님이세요? 저, 내일 시험보러 가는데요. 하루만 결근 어떻게 안 될까요?”

구건호는 강부장을 불렀다.

“강부장님. 총무 한사람 더 두세요. 각 사업장에 총무 쉴 때 대타로 근무하고 잔심부름도 할 사람 구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새로 뽑는 총무는 좀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좀 든 사람 뽑아도 되겠습니까?”

“왜요?”

“제 친척 중에 남편이 죽어 혼자된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는 55세인데 이 사람을 쓰면 대타 근무는 물론 고시텔을 순회하면서 주기적으로 청소 같은걸 시켰으면 합니다.”

“왜, 총무들이 청소를 안 해요?”

“하긴 합니다만 젊은 사람들이라 재활용 쓰레기 분류도 엉터리고, 바닥 물청소 같은걸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급여를 많이 주어야 하잖아요? 야간 근무도 있는데.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겠어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군대를 갔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급여는 현 총무 수준에서 맞추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흠, 그럼 그렇게 하세요. 강부장님이 감독 잘 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내일 모래가 강동구 토지 3차 경매일입니다.”

경매일이 되었다.

구건호와 강부장은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을 방문하였다. 경매일이라 그런지 법원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입구에서 경매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경매 대출상담이란 명함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작가가 28억 8천만원이라고 했지요?”

“맞습니다.”

“내가 입찰보증금으로 수표는 응찰가 10%인 2억 8천 8백 짜리 하나, 그리고 1,000만원 짜리 수표 2장, 100만원짜리 10장을 가져 왔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경쟁자가 없을 것 같으니 응찰가는 29억 8천 5백이 어떻겠습니까?”

“경쟁자가 없다면 29억 8천 1백도 괜찮을 겁니다.”

“흠.”

“저는 누가 그 물건에 손대나 슬슬 돌아다녀 볼게요.”

“그렇게 하세요.”

입찰표 적어 내는 것이 끝났다.

법원 집행관이 낙찰 결과를 발표했다.

“사건번호 000번, 토지는 구건호씨가 29억 8천 1백만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신분증 가지고 앞으로 나오세요.”

“와, 29억?”

“앞줄에 앉아있던 몇 사람이 낙찰금액이 큰 것을 보고 수근 댔다.

구건호는 이렇게 되어 강동구에 있는 주차장 토지 200평의 50% 소유주가 되었다.

경매된 강동구 토지의 항고기간이 끝나자 구건호는 나머지 지분 50%를 가지고 있다는 어르신을 만나고자 했다.

“어르신을 어디 가서 만나지? 전에 경매학원 모임에서 만났던 그 중개사를 만나볼까?”

구건호는 경매학원에 전화를 걸어 그 중개사의 연락처를 알고자 했다. 마침 출타 중이었던 강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강부장님, 낙찰 받은 강동구 토지 나머지 소유주를 어떻게 찾지요? 등기부등본에 주소가 서초동 삼풍 아파트로 되었던데.”

“거기 안 살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그 토지 앞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에 가보지요. 주차장이나 포장마차 등 세입자들이 있으면 임대차 계약 때문에 근처 부동산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다녀오세요.”

“알겠습니다.”

강부장이 돌아와 보고를 했다.

“근처 부동산하고 주차장 사장을 만났더니 그 영감님 삼풍 아파트에 사는 것 맞는다고 합니다.”

“삼풍이면 요 옆에 있는 교대 역에서 쭉 올라간 아파트 아닙니까?”

“맞습니다. 거기에 두 내외가 살고, 아들은 마포에 사는데 연극을 하는 사람이랍니다.”

“연극?”

“일단 한번 만나보시죠.”

구건호와 강부장이 건강 음료수 한통을 사들고 삼풍 아파트로 갔다.

“사장님, 여기 아파트는 좀 오래되었지만 강남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라 가격이 좀 나갑니다.”

“그래요?”

아파트 현관에서 벨을 눌렀다. 한참 눌러도 소식이 없다.

“아무도 없는 모양이지요? 전화번호를 모르니 그냥 갈까?

구건호와 강부장이 돌아설까 하는데 문이 열렸다.

“뉘시오?”

얼굴에 검버섯이 많은 80대 노인이 파자마 바람으로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장학철 어르신 되시지요.”

“그렇소만 누구시오?”

“이번에 강동구 토지 낙찰 받은 사람입니다. 어르신과 잠깐 말씀 좀 나누고자 해서 왔습니다.”

“음. 그래요? 들어오세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구건호와 강부장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 거실에 앉았다. 오래된 동양화 그림이 걸려있고 오래된 괘종시계가 벽에 걸린걸 보니 노인들만 사는 집이 맞는 것 같았다.

“이거, 치우질 않아서 집안이 어질러져 있네요.”

“아니, 괜찮습니다.”

“할망구가 병원에 가서 지금 나 혼자 자다가 일어났네요. 음료수 뭐 좀 드실까?

“아닙니다. 됐습니다. 음료수는 저희들도 여기 가져 왔습니다.”

장학철 노인이 왔다 갔다 하더니 녹차를 끓여 가지고 왔다.

“그래, 뭐 하려고 그 땅은 사셨수?”

“오피스텔을 한번 지어볼까 합니다. 혹시 어르신 그 땅 나머지 지분을 파실 생각은 없으신 가 해서 왔습니다.”

“안 팔아요.”

강부장이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연세도 많으신 것 같은데 팔고 자손들한테 좀 나누어 주고, 사모님이랑 두 분이 맛있는 것 도 사 드시고 하시지요.”

“안 팔아요. 그냥 차나 들고 가세요. 허허.”

구건호가 보기에 이 노인은 돈이 좀 있는 것 같았다. 땅을 팔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자녀분은 몇이나 두셨나요? 저희 또래는 되는 것 같은데요?”

“아들 하나에 딸 둘입니다. 다들 제 밥거리들은 하고 있어요.”

“아드님이 연극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넵.”

노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들이 연극을 한다는 것이 탐탁치 않은 모양이었다.

“따님들도 다 이 근방에 사시나요?”

“아니오, 하나는 인천에 살고 하나는 반포에 삽니다.”

“인천요? 저희 부모님도 인천에 사는데요.”

이 말도 이 노인한테는 반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구건호가 보기에 인천 사는 딸과 아들은 노인의 맘에 안든 것 같았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돌아가실 때 땅을 가지고 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임자 나왔을 때 적당한 가격에 파세요. 솔직히 말씀드려 어르신도 지분만 가지고 있어서 마땅히 활용을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거기 세입자들 임대료 절반은 나한테 들어와요.”

“그거 몇 푼이나 되겠습니까? 파시지요.”

“안 팔아요. 그렇게 아시고 차 들었으면 어서들 가보세요.”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혹시 전화번호라도 알려 주세요.”

노인이 전화번호를 불러 주었다.

“강부장님 명함을 드리시지요.”

구건호는 명함을 주지 않았다. 노인이 강부장의 명함을 한참 보았다.

“강부장님, 이렇게 합시다. 그 땅은 우리도 지분만 있어 활용하기가 어려우니 은행에 담보용으로만 활용합시다.”

“예, 감정가가 있으니 담보용으론 얼마든지 은행에서 잡아줍니다.”

“그럼, 어르신 건강하세요. 혹시라도 맘이 변하시면 연락 주세요.”

노인은 한참 무엇을 생각하는 눈치였다.

구건호와 강부장은 아파트를 나와 삼풍 아파트 근처의 순두부집 식당을 갔다.

밥을 먹으면서 강부장이 말했다.

“그 영감님 얼른 안팔 것 같은데요.”

“팔긴 팔 겁니다. 자식이 셋이면 그중 어려운 자식이 있을 테고, 또 나이가 들었으니 땅을 관속에 갖고 가는 게 아니니 팔 겁니다. 단지 가격을 높이려고 시소게임은 하겠지요.”

“그럼, 한 1, 2주 있다가 연락해 볼까요?”

“혹시 연극한다는 그 아들을 만나보는 게 어떨지...”

“그것도 괜찮은 방법일 겁니다. 한번 찾아볼까요?”

뜻밖에도 김앤정 로펌의 김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계셨어요? 절강대 왕교수가 요즘 시험기간이 끝나 한가하다고 합니다. 혹시 중국에 골프투어 안가시겠어요? 중국 골프장은 내가 안 가봐서요. 거기도 잘 만들어 놓았다고 하네요.”

“하하, 실은 제가 골프를 잘 못 칩니다. 요즘 배우고 있어요.”

“아, 그러세요?”

김변호사가 조금 실망하는 것 같았다.

“어디서 배우세요?”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인도어입니다.”

“그래요? 그럼 연습 부지런히 하세요. 구사장님 머리는 제가 올려드릴게요.”

“하하,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요즘 골프 연습이 뜸했었다.

“열심히 해야겠군. 머리 올려줄 사람 생겼네.”

구건호는 사무실을 나와 골프연습장으로 차를 몰았다.

골프 연습장에서 7번 아이언을 가지고 한참 연습을 하는데 코치가 왔다.

“사장님, 왜 지난번 빠지셨어요. 그러면 안 늘어요.”

“열심히 다닐게요.”

구건호가 동작을 멈추고 활짝 웃었다.

“팔을 이렇게 하세요. 손으로 그립을 다시 쥐어 보세요.”

코치가 구건호의 팔을 잡아주었다. 코치에게서 여성의 로션 냄새가 풍겼다.

“오늘은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쳐보세요.”

“알겠습니다.”

한참 치고 나니 구건호의 온몸에 땀이 흘렀다.

“헹, 이것도 운동이라고 제법 땀이 나네.”

코치가 다시 왔다.

“어드레스 할 때 왼팔은 가볍게 뻗고 오른팔은 가볍게 구부리세요.”

“생각보다 잘 안되네요.”

“깡!”

“임팩트 하는 순간 머리 들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체중의 힘은 왼발에 두고 다시 쳐보세요.”

“깡!”

볼이 슁 날아갔다.

“아까보다 나아졌네요.”

공이 조금 멀리 날아가자 구건호는 기분이 좋아졌다.

구건호는 매일 와서 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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