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83화 (83/501)

# 83

사람 사는 맛 (2)

구건호는 아침 일찍 왕교수와 함께 상해로 출발했다.

구건호는 렌트카를 이용해 곤산시까지 가려고 했으나 왕교수가 한사코 말렸다. 왕교수는 상해까지 고속버스로 이동하고 거기서 택시를 타자고 하였다.

“렌트카는 비용이 많이 들어. 좀 불편하더라도 버스를 타자.”

구건호와 왕교수는 상해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G42번 경호(京滬) 고속도로를 달렸다.

“왕교수, 너도 이번에 합자사 설립을 하면 참여한다고 했지?”

“그랬지. 그런데 그게 좀 쉬울 것 같지는 않아.”

왕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왜?”

“하고는 싶은데 어려울 것 같아. 실은 난 5% 정도만 참여하기로 했었어. 곤산시 금계건설이 50%, 한국이 45%, 내가 5%, 이렇게 하려고 했었지.”

“흠.”

“사실 중국에서 합자할 때 50:50은 잘 안 해. 대개 51:49로 하지. 그건 경영권 문제 때문에 그래.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거야.”

“합자하는 다른 나라 파트너가 경영에 대한 시시콜콜한 간섭이 있을까봐 그런가?”

“그렇지.”

“그런데 5%를 끼어드는 건 뭐야.”

“그건 우리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서 지분 참여하고 돈이 벌리면 리스캉을 좀 지원하려고 했었어.”

“무슨 지원?”

“리스캉은 장래가 촉망되는 친구야. 공직 사회에서 깨끗하다고 평이 나 있는 친구지. 집안도 할아버지 때부터 장정에 참여한 팔로군 출신이고 아버지도 깨끗한 현장(縣長) 출신이네.”

“그거와 이게 무슨 상관이지?”

“리스캉이 공직 생활 중 돈의 유혹을 받으면 안 되잖아? 그래서 우리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지분 참여하고 나중에 배당을 받으면 리스캉을 좀 지원해 주기로 했었지. 뇌물 같은 것 먹지 말고 깨끗하게 일해라. 나중에 성장도 되고 중앙의 정치국 위원도 되어 가문도 빛내고 우리 고향도 빛내게 해 달라 그런 뜻이었지.”

“흠.”

“그런데 친구들이 뜻은 있는데 돈이 없어. 설립될 합자사 자본금이 300만 달러인데 5%면 15만 달러나 되는데 그거 모으기가 쉽지 않더군.”

“흠.”

“리스캉은 모르고 있어. 자기 지원하려고 한다 하면 펄쩍 뛰겠지. 보기보다는 깐깐한 친구야. 공청단 단장 출신으로 자존심도 대단해. 북경대학 출신에다가 집안도 좋은데 철강회사 공돌이부터 시작하는 거 봐.”

“흠.”

“중국에서 15만 달러면 큰돈이다. 세계적 재벌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도 5십만 위안이 없어 사람들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하지 않았냐?“

“그래서 이번에 5% 참여는 안하기로 했나?”

“빠져야 될 것 같아. 50개 회사 정도만 입주하면 관리만 해도 이익은 나는 구조인데. 그게 그렇게 힘드네."

“말이 그렇지 50개 기업 모으기가 쉽겠나? 요즘 한국 회사들 중국 진출하면 돈 벌기 힘들다는 소문이 자자해.”

“그건 우리도 알고 있어. 하지만 곤산시는 상해와 소주의 대도시 사이에 있어서 입지적 조건이 최고지. 그리고 곤산시도 파격적인 법인세 감면 등 좋은 조건을 제시할거야.”

“흠.”

“물론 한국이나 일본에 가서 입주기업 모집을 위한 사업 설명회는 하겠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여기에 이미 나와 있는 기업들이 오히려 더 관심 가질 것 같아. 현재 하고 있는 공장의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생산물품 운송 때문에 이리 올 가능성들이 있어.”

“흠.”

“두고 봐. 한국에서 새로 모집해 들어오는 기업이 30%라면 70%는 이미 중국에 나와 있는 기업들이 들어올 테니 말이야. 어? 곤산시 다 왔다.”

곤산시 상무호텔에 들어가니 로비의 의자에 리스캉 부시장이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여! 구건호!”

“반갑다. 리스캉!”

서로 악수를 하였다.

“참, 인사해라. 곤산시 금계건설 총경리(사장)다.”

안경을 낀 50대 초반의 뚱뚱한 남자가 인사를 했다.

“구건호입니다.”

“선칭꿔(沈慶國: 심경국)입니다.”

왕교수도 선칭꿔와 인사하고 명함을 교환했다.

“구건호! 오늘 금계 산업공단 안내는 선쫑(沈總: 심사장)이 해 줄 거다. 난 오늘 시 정부에서 중요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 봐야 돼. 공단 둘러보고 저녁때 다시 만나자. 저녁 만찬은 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준비하는 걸로 하겠다.”

금계건설 선쫑이 자기 차를 가져왔다. 운전기사까지 딸린 차인데 뷰익 엑셀르란 차였다. 차는 그리 고급스러워보이지는 않았다.

곤산시는 소 운하가 많았다. 선쫑이 설명을 했다.

“옛날에는 운하가 교통수단이었지요. 이 고장은 호수도 많고 유적지도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곤산시 금계진(錦溪鎭)은 90평방 키로미터로 작은 촌이지만 상해와 소주가 가깝습니다. 여기에 산업공단을 설치한다면 물류비용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양질의 인력 공급에도 아주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장에 도착했다. 아직은 허허벌판이었다. 군데군데 붉은 깃발이 꽂혀 있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흙을 퍼 나르고 있었다.

선쫑은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는 곳에 차를 세우게 했다. 차에서 내리자 입간판 앞에 노란 헬멧을 쓴 사람 둘이서 긴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입간판은 조감도였다.

선쫑은 노란 헬멧을 쓴 사람들에게 브리핑 할 것을 지시했다. 노란헬멧을 든 사람은 막대기로 입간판을 집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금계 산업단지는 총면적 69만 5천 평방미터로 3통작업은 20xx년 4월에 마칠 예정입니다. 총공사비는 .....”

공단 조감도는 약간 등 굽은 새우깡처럼 생겼다. 선쫑이 막대기를 뺏어서 보충 설명을 하였다.

“이 끝부분이 폐수를 처리할 수 있는 종말처리장(sewage treatment plant)이고 가운데 들어간 부분에 관리동이 세워질 것입니다.”

구건호가 보기에 종말처리장과 도로의 포장공사가 완공되려면 시간이 한참 더 걸릴 것으로 보였다.

“도로도 포장이 되고 종말처리장이 완공되어야 분양이 될 것 같습니다.”

구건호가 이런 말을 하자 금계건설의 선쫑은 헛웃음만 지었다.

구건호는 리스캉이 주선한 만찬에 참석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구건호가 시계를 보는척하자 왕교수가 근처 관광지나 돌아보자고 하였다.

“그러지 뭐.”

옆에서 듣고 있던 선쫑이 자기 차로 안내해 주겠다고 하였다.

선쫑은 주장(周庄) 풍경구를 구경시켜 주었다.

운하의 양 옆으로 오래 된 가옥이 늘어서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와, 멋있다!”

구건호가 감탄을 하였다. 운하의 물은 맑지 않았지만 정말 옛날 중국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경치 한번 죽여주네!”

구건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자 선쫑도 기분이 좋아 한마디 했다.

“한국도 이런 곳이 있습니까?”

“한국은 운하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도 경치 좋은 곳은 많습니다.”

“한국은 많이 발달된 나라라고 하는데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이번엔 왕교수가 선쫑의 팔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번 합작만 잘 되면 여기 구사장이 잘 안내해 줄 겁니다. 하하”

리스캉 부시장은 구건호를 화동찬청(華東餐廳)이라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은 호화스러웠다. 커다란 홀에는 흰색 보를 깔은 정갈한 테이블이 줄지어 있고, 천장에는 수실이 달린 전통 종이 등이 매달려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는 옛날식으로 고풍스러웠다.

“오우 식당이 멋있네요.”

리스캉 부시장은 혼자 오지 않았다. 일행 두 명이 더 있었다. 리 부시장은 일행을 소개했다.

“곤산시 건설국장입니다.”

“구건호라고 합니다.”

구건호와 건설국장이 명함을 교환했다.

리 부시장은 건설국장과 왕교수도 서로 인사를 시켰다.

“구사장과 왕교수는 나의 친구입니다.”

또 다른 사람도 소개했다. 실내에서도 검은 안경을 낀 30대였다.

“운전기사입니다.”

구건호가 손을 내밀었다. 아마도 리 부시장을 모시고 다니는 운전기사 같았다. 금계건설 선쫑과 선쫑 기사까지 합하여 모두 7명이 식사를 했다.

음식은 민물게 튀김이나 새우요리 등이 나왔다.

“구사장, 지난번에 내가 한국 가서 신세를 많이 졌네. 이탈리아 음식도 먹어보고 이태원인가 어딘가 하는데 가서 구경도 잘했네.”

옆에서 왕교수도 거들었다.

“리스캉은 아마 그런데 머리털 나고 처음 가보았을 거야. 하하.”

“너는 미국서 공부한 놈이 언제 그런 델 갔었냐? 너도 처음이지?”

“하하, 나도 처음이야. 중국도 좋은데 많다고 들었는데 가보질 못했다.”

리 부시장은 테이블 위에 있는 잔을 모두 자기 자리에 모아놓고 백주(白酒)를 따랐다. 50도짜리의 바이주였다.

리 부시장이 술잔을 각자에게 나누어주며 말했다.

“친구가 멀리서 오면 연거푸 3잔을 대접하는 것이 우리 중국 전통 예법이다. 그러니 구사장은 연거푸 3잔을 마셔야 한다.”

리 부시장의 말에 모두 손뼉을 쳤다.

술이 몇 잔 돌고 분위기가 좋아졌다.

“구사장, 오늘 산업공단은 잘 돌아보았지? 어때 생각 있나? 진입로 공사는 3월까지 끝낼 예정이네.”

“아스팔트 포장까지 다 하려면 시간 좀 걸리겠던데?”

“포장까지는 글쎄. 춘절(春節: 음력설)이 끼어서 어쩔라나 모르겠지만 공사를 다그쳐 빨리 하도록 하기는 할 거야.”

“입주기업 유치를 위한 발표회는 준비 자료가 부실하면 안 되겠지. 도로와 종말처리장까지 완공후 사진 찍은걸 가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건 맞는 이야기야. 우리가 최대한 빨리 하도록 할게.”

리 부시장이 건설국장과 금계건설 선쫑을 보고 말했다.

“여기 한국에서 오신 구사장 이야기 잘 들었지요? 계획대로 3통 작업과 종말처리장은 빨리 완공시키도록 합시다.”

건설국장과 금계건설 사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구건호의 빈 잔에 옆에 있던 왕교수가 술을 따라 주었다. 구건호가 술을 받아 마시고 다시 질문했다.

“리 부시장, 한 가지만 더 질문할게. 자꾸 질문해서 미안하지만 말이야.”

“아니야, 질문 해야지. 사업가라면 응당 그래야지.”

“자본금 300만달러면 중국 측도 현금 출자인가?”

“현물 출자네.”

“흠.”

옆에 있던 왕교수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아까 보았던 산업공단의 가운데 관리동이 중국측 출자지분이네.”

“그게 300만 달러의 절반인 150만 달러가 될까?”

“되지. 약 5무(약1,000평) 정도의 토지와 관리사무실로 쓸 가건물을 지어주는 조건이네.”

“흠.”

“일단은 춘절 전까지 사업계획서를 작성할거야.”

술안주용 새우 껍질을 까고 있던 금계건설 사장이 말했다.

“사업계획서는 우리 금계건설 기획실에서 지금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어이, 구건호! 구체적인 합자 이야기는 사업계획서가 나오면 다시 하도록 하지. 오늘은 이쯤해서 끝내고 즐겁게 술들이나 마시자.”

리 부시장은 술잔을 들어 모두의 잔에 부딪쳤다.

구건호는 2박 3일의 중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 날이 되었다.

구건호는 포동 공항 면세점에서 중국술과 담배 같은걸 사고 아시아나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탑승객은 중국서 사업을 하거나 상사 주재원들이 주로 많았다. 간혹 학생들도 있었고 중국인들도 있었다. 뒷좌석에는 단체로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어르신들도 있어 시끄러웠다. 구건호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합자사에 참여를 하는 것이 좋은가를 따져보았다.

[중국은 현물 출자니 합자사의 급여 같은 건 한국 측이 납입한 돈 가지고 쓰겠군. 분양이 되면 이후에는 분양대금 가지고 쓰겠지만 말이야.]

구건호는 안전벨트를 매라는 기장의 방송이 나오자 벨트를 맸다. 그리고 또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런 합자사는 크게 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굳이 합자사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만 한국과 합자하면 한국기업을 유치하는데 도움은 되겠지.

분양대금은 금계건설로 들어가니 합자사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분양 대행회사고 이후 관리나 하는 회사란 말이야. 그렇다면 대박을 바라보는 아이템은 아닌데. 왕교수는 그랬지 대박은 아니지만 확실한 캐쉬카우(Cash Cow)사업이라고 했어.]

비행기가 활주로를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합자사 치고는 자본금이 적긴 해. 15억만 가지고 50%지분을 갖게 되니 말이야. 리스캉은 앞으로 계속 클 재목이니 아주 이 기회에 인연을 맺고 추후 더 큰걸 노릴까?]

구건호는 합자사 자체 보다는 향후 리스캉과의 꽌시(關係)를 위해 투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손해가 나면서 까지는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꼼꼼히 따져 이익이 나오는 쪽으로 검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건호가 이렇게 고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자리의 50대 한국인들이 시끄럽게 떠들었다. 조용히 하라고 할까 하다가 시비가 될 것 같아 참았다. 이들은 일행도 많고 인상들도 고약해 잘못 건드리면 귀찮은 일만 벌어질 것 같았다.

“야, 짱개들 돈 먹기 존나 힘들다. 난 1년 동안 집구석에 생활비 한 푼 못 보냈어.”

“야, 우리 공장에 뭐 볼 것 있다고 감사가 그렇게 많으냐. 환경검사, 소방검사, 위생검사 더럽게 많더라.”

“야, 내가 한국 본사에서 받는 급여를 장깨들이 소득세 물겠다고 지랄하고 있어.”

“우리 회사도 그래.”

“씨팔, 우리처럼 중국 나가 있는 놈들은 돈 못 벌고 이 아시아나 항공사만 돈 번 것 같네.”

“항공료 싼 동방항공 탈걸 그랬지?”

“동방항공은 좀 후져.”

“아시아나 이 새끼들은 항공료 좀 안 내리려나?”

“아시아나 회장은 요즘 동생하고 싸운다고 하데. 경영권 다툼인가?”

“있는 놈들은 그게 지랄이야.”

이들은 한참 떠들다가 기내식을 먹고는 잠에 골아 떨어졌다.

구건호가 차창 밖으로 흰 구름을 바라보았다.

“돈... 돈이 좋긴 좋지. 나도 재벌이 되면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바둥거리고 싸우고 그럴까? 재벌들은 얼마를 더 가져야 형제간의 싸움을 멈출까? 재벌들 형제간 싸움은 롯데가 그랬고, 금호 아시아나도 그랬고, 옛날엔 삼성과 현대의 아들들도 다툼이 심했다고 했지?”

구건호는 착잡한 심정이 되어 차창 밖 구름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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