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79화 (79/501)

# 79

토지 경매 (1)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술집을 하는 이석호에게 전화가 왔다.

“구건호? 나야. 이석호.”

“어? 석호 아니냐?”

“너, 사장 됐다며? 김민혁한테 이야기 들었다.”

“응, 조그만 부동산 회사야. 직원 두 명이 손바닥만한 오피스텔에서 일하는데 뭐.”

“대단하다. 그러면 부동산 중개하는 회사냐? 김민혁 말로는 고시텔도 인수해 운영한다며?”

“고시텔도 하지만 구멍가게 수준이야.”

“박종석이가 내일 나한테 온다고 하니까 한번 들릴게.”

“박종석이가 일 안해? 일요일도 아닌데.”

“걔, 을지로 3가 공구 상가에 모터 사러 온다고 했어. 서울 나온 김에 나하고 점심먹자고 했어.”

“이리와라. 점심은 내가 살게.”

이석호와 박종석이 사무실로 왔다.

이들은 조그만 오피스텔인줄 알았는데 오피스텔이 30평형이라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더구나 강부장과 정지영씨가 단정히 앉아있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앉아라. 사무실이 좁아 미안하다.”

“좋은데 뭐.”

두 사람은 사무실 주위를 돌아보았다.

정지영씨가 녹차를 가져왔다.

“고,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원래 크게 떠들고 웃고 하는 친구들인데 강부장과 정지영씨가 있어 얌전해졌다.

“점심 안 먹었지? 나가자!”

이들은 강남역 근방의 중국음식점 ‘딘타이펑’으로 갔다.

음식점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박종석이 싼 곳으로 가자고 했다.

“여기서 먹자. 괜찮아. 싼 것 시킬게.”

“A코스로 주세요.”

샤오롱빠오와 새우야채 춘권 등이 나왔다.

“맥주도 한잔 해야지?”

이들은 말없이 음식만 먹었다.

“왜들 갑자기 점잖아졌어. 웃고 떠들고 그래야 박종석이지.”

“응? 알았어, 형. 그런데 요즘 형이 너무 앞서가니까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하하. 그런 게 어디 있냐. 한번 구건호면 영원한 구건호지.”

이석호가 샤오롱빠오를 먹으며 물었다.

“강남 지역의 고시텔은 비싸지? 김민혁한테 들으니 고시텔이 더 있다고 들었는데 너 알고 보니 부자다.”

“부자는 뭘! 여기 강남지역은 부자가 널렸는데.”

“나도 술집 집어치우고 고시텔 할까? 김민혁이 총무로 있는 방배동 고시텔은 얼마나 하냐?”

“한 3억 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곳이 방배동에 하나, 서초동에 하나, 대치동에 하나 등 모두 3개야. 9억 가까이 들어갔어.”

“헉! 9억!”

이석호와 박종석이 9억이란 소리를 듣고 놀랐다. 구건호가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 녀석들은 내가 현금 164억이 있다는 걸 알면 까무라치겠는데!]

“우리 동창들 중에서 네가 제일 잘나가는 것 같다.”

“에이, 그런 소리 마라. 연세대 나와서 대기업 들어간 조원철이도 있고 카이스트 나와서 판교 연구소에 다니는 황병태도 있는데 난 쨉도 안 된다.”

“아니야. 걔들은 월급쟁이일 뿐이야.”

“하하,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

구건호가 이석호의 맥주잔에 술을 더 따라 주었다.

“형, 그럼 지금도 영등포 살아? 여기까지 좀 멀겠는데?”

“아니야, 나 집 옮겼어.”

“어디로? 이 근처로?”

“도곡동이야. 아파트 하나 샀어.”

“아파트를 하나 사? 어딘데?”

“도곡동 타워팰리스야. 경매로 하나 샀어.”

“타워팰리스?”

이석호와 박종석이 놀라 얼굴을 마주 보았다.

“거긴 굉장히 비쌀 텐데. 부모님은 아직 인천 주안에 계셔?”

“아니, 부모님도 아파트 한 채 사 드렸어. 구월동 힐스테이트아파트 50평짜리 하나 사 드렸어.”

“그래?”

박종석은 이 소리를 듣고 맥주를 마시다가 흘렸다.

이석호와 박종석은 얼굴이 굳어진 채 밥만 먹었다.

구건호는 이석호와 박종석을 보내놓고 사무실에 앉아서 신문을 보다가 졸았다.

잠결에 전화가 와서 보니 전화번호가 길게 찍힌 것이 떴다. 국제전화인 모양이었다.

“보이스피싱인가?”

구건호는 전화를 꺼버렸다.

전화가 또 왔다.

“어떤 놈이 자꾸 전화하는 거야! 여보세요!”

“오우! 쥐지엔하오(구건호)?”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듣는 자기의 중국식 이름이었다.

“니스 나웨이아(누구십니까)?”

“아, 나야! 절강대학 왕지엔 교수야(이하 중국 발음 생략).”

“아, 왕교수! 반갑다. 오래간만이다. 잘 지냈지?”

“응, 나 이번에 한국에 간다. 한국에 유명한 C일보사에서 초청했어. 신문사 주최로 동북아 경제 포럼이 있어.”

“어, 그래? 반갑다. 와서 만나자. 네 얼굴도 보고 싶다.”

구건호가 유창한 중국말로 전화 통화를 하자 강부장과 정지영씨가 놀라서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와, 사장님 중국어도 저렇게 잘 하시네!”

두 사람은 신기한 듯이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전화는 계속되었다.

“이번에 리스캉(李石康)도 같이가.”

“아, 상해시 건설국 부국장하는 친구!”

“아니, 걔 이번에 상해 옆에 있는 조그만 도시 부시장으로 갔어.”

“그래? 빨리 와라. 술 한 잔 살게.”

“공식 행사가 있어 시간은 없겠지만 중간에 하루는 자유시간 있어. 일정 잡히면 다시 연락할게.”

“그래, 또 연락하자.”

전화를 끊자 강부장이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어휴, 사장님 중국어 잘하시는데요?”

“잘하는 건 아닙니다. 중국어 공부한 사람들이 들으면 엉터리죠.”

이번엔 정지영씨가 말했다.

“사장님, 혹시 중국서 대학 안다니셨어요?”

“네, 맞아요. 중국서 학교 다녔어요.”

“어쩐지. 중국 대학동창 전화에요?”

“동창은 아니고 잘 아는 친구들인데 한국 온다는 군요.”

“사업하시는 분들 인 모양이지요?”

“사업은 아니고 한사람은 절강대 교수이고 한사람은 상해 옆에 있는 도시의 부시장입니다. 신문사 주최 경제포럼에 참석하는 모양입니다.”

“교수와 부시장?”

강부장과 정지영씨가 다소 놀라는 표정으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구건호는 중국을 잊고 있었다.

“그래, 주식회사 지에이치 개발을 더욱 키워 드넓은 중국으로 가야지.”

구건호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지금은 작은 부동산 임대나 하는 회사지만 앞으로 사업을 다각화 시켜 자동차, 관광, 운수, 화학 각 분야로 뻗어 GH그룹을 만들어 보자.”

구건호는 차를 몰고 사우나에 가서 몸을 풀고 싶었다.

복잡한 강남역 근방보다는 외곽이 좋았다. 교육문화회관 안에 있는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였다, 천천히 온 몸에 비누질을 하였다.

“과거의 구건호를 모두 지우자.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거다. 아직은 내가 모르는 분야가 너무 많다. 국제통인 왕교수와도 계속 친분을 쌓고 독서도 많이 하자.”

목욕을 하고 나와 양재천변을 걸으며 구건호는 더 높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야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강부장이 경매 나온 강동구 땅에 대한 답사 결과를 보고했다.

“현재 토지 주인은 2명이고요, 한 사람이 채무가 있어 경매 나온 것입니다.”

“경매 취소를 하거나 그러진 않겠습니까?”

“담보 설정등기를 한 채권자가 많고 가압류 건도 있어 취소는 어렵겠습니다.”

“흠, 그래요? 아, 참. 나머지 땅주인의 연세는 80대란 이야기기가 있습니다.”

“그 분을 수소문해서 접촉해 볼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낙찰 받고서 움직여도 됩니다. 우리가 낙찰 받을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선의의 세입자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주차장을 하는 세입자가 있습니다. 대로변에 있는 그렇게 좋은 땅은 비워두면 공한지(空閑地) 세가 많이 나옵니다. 주차장은 권장사항이라 보통 시가지의 미이용 토지는 주차장을 많이 합니다.”

“흠, 그런가요? 또 다른 세입자는 없습니까?”

“가건물을 지어놓고 과일가게를 하는 사람과 포장마차도 있지만 낙찰 받으면 바로 퇴거명령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차 경매일이 언제지요?”

“다음 주 목요일입니다.”

“알겠습니다. 경매 결과나 나중에 알려 주세요.”

강부장은 보고를 마치고 자기 의자에 앉으려다 말고 다시 일어섰다.

“저, 사장님.”

“뭐, 또 다른 일이 있습니까?”

“저희 지에이치개발은 자본금이 3억이고 자산은 고시텔 3개 정도입니다. 고시텔은 임대이기 때문에 은행권에서 담보 잡히고 돈 빌리려면 권리금은 인정 안합니다.”

“그래서 덩치 큰 강동구 천호동 대지를 어떻게 경매에 참여하나 하는 것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걱정이 되어서요.”

“하하, 그런 걱정은 마시고 강부장님은 일만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건호냐? 지금 전화 받을 수 있냐?”

“예, 괜찮아요. 말해 봐요.”

“다른 게 아니고, 너도 지금 나이가 차서 장가가야 되지 않겠어? 좋은 혼처가 나와서 전화 했다.”

“아니요, 아직 생각 없어요.”

“그러다가 자식이 늦는다. 너희 아빠도 손주를 보고 싶어 한다.”

“아, 정아 있잖아요.”

“외손자와 친손자는 다르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권사님 딸인데 간호원이란다. 사진을 보내왔는데 참하게 생겼다. 32살이란다.”

“아니, 나 지금 바빠요. 전화 끊어요.”

“얘야, 잠깐! 아휴, 전화를 벌써 끊었나?”

이번엔 고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건호냐? 너 요즘 잘 나간다는 소문은 들었다.”

“잘 나가기는요. 재웅이는 공무원 생활 잘하지요?”

재웅이는 사촌 동생으로 구건호와 2살 차이다. 몇 년 전 노동청에 9급 공무원으로 취업이 되어 그동안 집안의 자랑이었었다.

“걔는 잘 다니지. 걔는 요즘 사귀는 애가 있어 내년에 결혼할 예정이다. 같은 공무원이다.”

“그래요? 잘 되었네요.”

“그래서 말인데 너도 장가갈 때가 지나서 내가 한번 알아보았다. 우리 친목계원 조카인데 마을금고에 다닌다고 하는 색시다. 한번 만나볼래?”

“아닙니다. 아직 생각 없습니다.”

“그러다가 좋은 색시 다 놓쳐. 지금 이 색시도 나이는 좀 많아서 38살이지만 집안 살림은 지가 다 알아서 한다고 한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냐?”

“저, 지금 손님이 와서 그런데 나중에 말씀하시지요.”

구건호는 전화를 간신히 끊고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왕지엔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음 주 화요일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동북아 경제 포럼이 있다고 하였다.

“너도 게스트로 참석해라. 다이아몬드 홀이라고 한다. 한국의 언론인은 물론 재계 인사들도 많이 참석한다고 하니까 참석해라.”

구건호가 생각하기에 공식일정은 아무래도 따분할 것 같았다.

“공식일정 없는 날 만나자. 그래야 재미있게 놀지. 안 그래? 자유시간은 언제지?”

“주최 측에서 보내온 스케줄 표에 보니까 목요일이 빈다. 그날 오전에 쇼핑 잠깐 하고 오후에 만나자.”

“그래, 나도 빨리 보고 싶다.”

이번엔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또 중매이야기인가?”

구건호는 받기 싫은 전화를 억지로 받았다.

“건호냐? 바쁠 텐데 전화해서 미안하다.”

누나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다 기어가는 목소리였다.

“응, 괜찮아. 이야기 해봐.”

“실은 내가 이사를 하게 되었어.”

“또? 이사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집주인이 비워달라고 하는구나. 아들이 결혼해 들어와 살겠데.”

“그렇게 됐나?”

“그래서 말인데, 이런 이야기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말해봐. 뜸들이지 말고.”

“에효.”

“말해 보라니까! 나, 바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보증금 천만원에 월세 50인데 집을 얻기가 참 힘들다.”

“흠.”

“월세는 맞출 수 있는데 이 근처 쓸만한 집은 전부 보증금을 2천 달라고 해서 고민이야.”

구건호는 누나가 돈을 빌려달라고 이런 소리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정아도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있는데 우리가 구월동 아파트로 가서 당분간 살면 안 되겠니? 방도 4개라 비어있는 방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정아도 아빠, 엄마와 같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매형은 요즘 뭐해?”

“트럭 운전해.”

“전에도 말했지만 그 집은 엄마 아빠 집이니까 엄마 아빠 의사를 물어봐.”

“엄마 아빠에게 말했어. 좋다고 했지만 너하고 상의하라고 하더라. 집주인은 너니까.”

“아빠, 엄마가 좋다면 그렇게 해. 나는 상관없어.”

“고맙다. 흑흑. 우리가 힘이 잡히면 다시 이사 가도록 할게.”

“엄마, 아빠가 좋다면 얼마든지 같이 있어. 나 바빠 전화 끊는다.”

구건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집이 넓으니 괜찮겠지. 오히려 잘됐다. 엄마 아빠가 아프거나 할 때 모셔줄 사람이 있으니 내겐 다행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업에만 전념하자.”

강부장은 강동구 땅이 유찰되었다고 보고했다.

“다음번 경매 시작가는 얼마지요?”

“20% 떨어지니까 36억원입니다.”

“관심 가지고 잘 지켜보세요.”

“저, 그리고 사장님.”

“말씀하세요.”

“요즘 3군데 고시텔 날마다 점검을 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화재보험은 들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아, 그것 미처 생각 못했네요. 찜질방에 크게 화재가 발생하여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지요?”

“그렇습니다.”

구건호는 누나 친구 박승희가 생각났다. 학교 다닐 때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밥도 먹고 하던 누나였다. 깔끔하고 명랑했던 누나였다.

“그 누나 이혼하고 혼자되어서 보험 세일 하러다닌다고 했는데.”

구건호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승희 누나 요즘도 보험 하러 다니나?”

“응, 다녀.”

“우리 사무실로 보내. 우리 사무실에 와서 내가 없더라도 정지영씨를 찾으면 돼. 화재보험 하나 들어줄게.”

“고맙다. 걔가 들으면 아주 좋아하겠다. 당장 전화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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