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강남 입성 (2)
증권사 수원지점장은 자기 명함을 구건호에게 주었다.
“저는 지금 명함이 없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구선생님은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고액 투자자는 별도 관리 합니다.”
구건호가 단호히 말했다.
“다음 달에 사업 때문에 저는 돈을 인출해야 합니다.”
“전액 말입니까?”
지점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집도 인천에서 서울 강남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거래 지점도 옮겨야할 입장입니다.”
“일부만 남겨 놓으시지요. 우리가 증권정보를 VIP는 따로 문자서비스 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내는 스팸과 같은 정보는 아니고 신뢰할만한 정보를 보내드립니다.”
“고려해 보겠습니다.”
구건호은 지점장의 호의를 야박하게 털어버리기도 어려워 일단은 고려해 보겠다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 증권사를 빠져 나왔다.
“내가 햇살론 대출받아 천만 원 입금할 땐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지점장까지 나와서 차까지 대접하네. 우리 엄마 말마따나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야.”
구건호는 수원역 근방에서 맛사지 하는 곳을 들렸다. 발마사지를 받고 있는데 오다가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졸음이 솔솔 왔다.
“지금 이 시간엔, 내가 다녔던 공장의 공돌이들은 열나게 일을 하고 있겠지? 돈이 좋긴 좋다.”
컨설팅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사비용은 500만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수고하셨습니다.”
구건호는 전 소유자 이사비용과 컨설팅 비용을 모두 보내주었다.
보름 후에 구건호는 오상무로부터 키를 받았다. 전 소유주가 낸 아파트 관리비 영수증과 도시 가스비 영수증도 받았다.
“싸게 먹힌 겁니다. 제가 손댔기에 그 정도지 다른 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오상무는 여전히 운동모자를 쓰고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실력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구건호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좋은 물건 잡으시면 바로 연락주세요.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오상무는 구건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거수경례까지 붙였다.
“하하하.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저녁때가 되어 타워팰리스에 가 보았다.
“역시 고급 아파트라 외제 차들이 많네.”
구건호가 문을 따고 아파트에 들어서자 내부의 횡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50평이라 넓긴 넓네. 세간살이가 없으니까 더욱 그러네.”
아파트는 사람이 몇 년간 살던 곳이라 벽지 같은 것을 새로 해야 될 것 같았다.
“벽지도 새로 하고, 화장실도 기분 나쁘니 바꿔야겠다.”
다음날 구건호는 인테리어 업자를 불렀다.
“벽지와 화장실 공사를 하려고 합니다.”
“벽지 선택은 어느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인테리어 업자가 벽지 샘플을 들고 와 말했다.
“여러 개 있으니 고르기가 힘드네요. 그냥 환한 것으로 하지요.”
“이거 어떻습니까? 요즘 젊은 부인들이 이 색깔을 많이 선택합니다.”
“그럼, 그 그걸로 하지요.”
인테리어 업자가 아파트의 각 방을 한번 돌아보았다.
“아이고 사장님, 주방도 싹 바꾸시지요.”
“아직 멀쩡한 것 같은데요?”
“사장님, 도배 새로 하면 주방이 더 우중충해 보이십니다. 비싼 고급아파트가 그러면 되겠어요? 제가 싸게 해 드리지요. 전등도 싹 바꾸어야 합니다. 요즘 세련된 디자인의 전등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파트 가격이 달라집니다.”
아파트 가격이 달라진다는 말에 구건호는 주방과 전등도 전부 교체하기로 하였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고 구건호가 아파트를 가 보았다.
“야, 역시 좋긴 좋구나. 돈이 좀 들어서 그렇지 완전 새 아파트네. 기술들이 참 좋다.”
구건호는 쇼파나 식탁 등 가구와 냉장고, 세탁기등 가전제품을 최고급으로 들여 놓았다. 고급침대와 원목 책상과 책장도 들여 놓았다.
“혼자 쓰기엔 운동장이지만 3년 후에 1억을 붙여 팔면 이것만 해서도 매년 3천만 원 이상 버는 것이 된다.”
구건호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강남에 입성했다. 더구나 부동산을 통하지 않고 경매로 싸게 사서 기분이 좋았다. 구건호는 자동차도 한 대 뽑고 싶었다.
“BMW를 한 대 살까? 낚시터 가끔 가니 SUV를 살까? 랜드로버나 한 대 사자.”
구건호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한 대를 1억 주고 샀다.
“타워팰리스와 구월동아파트 구입비, 랜드로버 자동차, 인테리어비용 등으로 얼마 깨졌나 보자.”
구건호는 그동안 쓴 돈을 정리해 보았다.
“20억 원이 좀 넘게 깨졌네. 아파트야 소모품이 아니니 나중에 되팔면 되니까 꼭 깨졌다고 볼 수야 없겠지. 현재 177억 원이 약간 넘게 남았다. 이제 이 돈에서 조금 인출하여 슬슬 사업거리를 찾아보자.”
구건호는 50평짜리 타워팰리스에 살면서 랜드로버를 타고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 좀 하고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안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동창 김민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민혁은 국회도서관 앞에서 우연히 만났던 친구였다.
“어, 김민혁이구나. 너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냐?”
“안됐어. 능력이 안 되는 모양이다.”
“힘내라. 늦게 합격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다.”
“너는 요즘 뭐해? 아직도 영등포에서 살고 있지?‘
“아니, 나, 이사했어.”
구건호는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이사했다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어, 그래? 실은 내가 영등포에 있는 고시원에 총무로 일하기로 했어. 돈도 없고 그래서 총무 일 하면서 공무원 시험공부 하려고 해. 네가 영등포 산다고 해서 가깝게 있으면 만나서 소주라도 한잔 하려고 했는데 그랬다.”
“소주는 내가 한잔 사지.”
“내가 멀리 못나가. 여기 총무 자리도 어렵게 찾았어. 강남 같은 고급 고시텔 총무는 경쟁자가 많아 그것도 박 터져.”
“그래?”
“혹시 이쪽으로 지나가는 일이 있으면 연락해라.”
“그래. 알았다. 연락 주어서 고맙다.”
“고시원이라....”
구건호는 고시원을 생각해 보았다.
자기도 한참 9급 공무원 할 때의 그 고시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창문도 없는 비좁은 공간에 화장실도 없어서 개고생 했지.”
구건호는 진절머리가 나는지 머리까지 흔들었다.
“시험은 자꾸 떨어지고 식대를 아끼려고 고시원에서 밥과 김치만 먹었지. 고시원에서 다행히 밥과 김치는 준비해 두어 그걸 살금살금 기어가 퍼먹었지만 에효, 지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구건호는 친구 김민혁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걔도 나하고 동갑이라 올해 설이 지났으니 한국나이로 치면 36살이 되는데 안됐네. 9급 공무원 합격해 보았자 200만 원 정도나 받을 까? 그것 받아가지고 언제 집사고 장가가고 그러겠나.”
구건호는 친구 김민혁의 중학교 때 모습도 그려보았다.
“아이는 참 좋은 친구였는데 그렇게도 운이 없군. 걔네 아버지도 버스 운전사 이제 은퇴 했을 텐데. 거, 참.”
구건호는 커피를 마시며 옛날을 반추해 보았다.
“인천 주안이나 부평에서 살 때는 반 친구들 중에서 3억짜리 아파트에서만 살아도 한없이 부러워했는데 지금도 그러겠지? 학교 다닐 때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빈부에 민감한지. 조금 살았다 싶으면 없는 애들 왕따 시키고 그랬지. 그러니 내가 무슨 공부를 잘하고 기를 폈겠어.”
구건호는 지금의 자기를 생각해 보았다.
“강남에 5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억대의 외제 차 굴리고 헬스클럽만 다니니 지금도 그쪽 사람들에게는 꿈의 삶이고 전설이겠지.”
구건호는 돈의 의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다.
중국에 있을 땐 중국인들은 곧잘 이런 말들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중국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여 중산층이면 집 현관 입구에 재신(財神) 상을 모셔두고 나갈 때와 들어올 때 두 손을 모으고 빌기도 한다.
서양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었다.
“Money talks everything."
돈이 말을 하는 것이지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돈은 또한 인격 그 자체였다. 돈이 없으면 인격도 없고 돈이 많으면 인격도 고상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춘추전국시대에 맹자도 이런 말을 했었다.
“가난하면 예(禮)가 무너진다.”
가난하면 예의도 없는 무례한 사람이 되고 돈이 있어야 예의 바른 모양이었다.
구건호는 아직 배가 고프다.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은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이 ‘높은 문화’라고 했는데 구건호는 ‘돈’을 더 갖고 싶었다. 한없이 갖고 싶었다.
구건호는 생활비를 벌어들이는 고정적 직업을 하나 갖고 싶었다.
“갖고 있는 현금 177억 원 중에서 5%만 투자해봐?”
구건호는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김민혁이 총무로 있다는 고시원에 마음이 갔다.
“고시원은 구질구질하니까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고시텔을 하나 할까? 그것도 집에서 가까운 강남에서 말이야.”
구건호는 전에 인터넷에 있는 고시원넷을 보니까 강남에 있는 고시텔이 3억 정도에 매물이 나온 것을 보았었다.
“총알은 충분히 있으니 3개 정도 운영해 볼까? 그러면 개인 소득세가 많을 텐데. 아주 법인으로 설립해 볼까?”
구건호는 전에 공장에 다닐 때 월 매출 1억 이상이면 사장들이 공장을 법인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시텔 3개 정도 인수하고 법인으로 운영하면 랜드로버 차량 유지비나 내가 헬스클럽 다니는 비용도 법인카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구건호는 충남 아산에 있는 와이에스테크 주식회사에 다닐 때 경리 담당이라 법인관련 업무를 잠깐 보았었다. 감사나 이사 변경 같은 것이 있으면 거래하는 법무사 사무실에 가서 수수료를 내고 변경을 하곤 했었다.
“나도 법인으로 해보자.”
구건호는 법인을 설립하여 대표이사 명함을 갖고 싶었다.
“내가 하는 법인은 과세표준이 얼마 높지 않아서 법인세 20%만 내면 될 것이다. 거기에서 내 급여와 용돈도 빼 쓸 수 있으면 그게 좋을 것 같다. 또 돈 있다고 빈둥빈둥 헬스클럽이나 다니는 것 보다는 남 보기에도 더 건전해 보일 것 아닌가? 명함도 대표이사 명함 가지고 다니니까 얼마나 폼이 나겠나. 그래 당장 법인 만들자.”
구건호는 가까운 법무사 사무실에 들려 법인 설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자본금을 얼마로 하지?”
구건호는 자본금을 3억 정도로 한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고시텔 3개 인수하면 10억 가까이 들 테니까 자본금을 넘는 것은 부채계정으로 하자. 임원 가수금을 넣는 것으로 하지 뭐.”
구건호는 법인의 이름을 뭘로 할까 생각했지만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남 박도사님께 상호를 지어달라고 할까? 그 양반 아이 이름도 짓는 모양이던데. 아니야, 그 양반은 구시대 인물이라 참신한 이름은 못 지을 거야.”
후배 박종석 한테서 전화가 왔다.
“형이야? 나 과장 됐어.”
“어? 그래? 축하한다.”
“형, 전에 경매학원 다닌다고 했는데 경매 한건 했어?”
“했지.”
“뭘 했는데.”
“도곡동 타워팰리스 한건 했다.”
“타워팰리스? 거긴 부자들이 산다는 고급 아파트 아니야? 형 그만한 돈 있었어?”
“경매를 어디 내 돈만 가지고 하나?”
“야, 수단 좋은데. 그럼 그 아파트 팔 거야?”
“팔긴 팔아야 하는데 좀 천천히 할 거다.”
“왜?”
“우선 법인부터 설립하려고.”
“법인? 야, 형 붕붕 날라 가네.”
“고시원도 운영하고 경매물건도 잡았다 팔고 하는 회사 설립하려고 해. 회사 이름 좋은 거 뭐 없겠냐?”
“회사이름은 지에이치 개발이 어때?”
“지에이치 개발?”
“응, 형 이름이 건호니까 영문 이니셜로 GH 아니야? 그걸로 그냥하지 뭐.”
“흠, 그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결국 구건호는 상호명 ‘(주)지에이치 개발’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구건호는 법인 설립시 관련 서류가 뭣이 있는 가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정관도 필요하고 이사나 감사 한사람도 필요하네.”
구건호는 이사나 감사를 누굴 선임할까 생각해 보았다.
“박종석에게 부탁할까? 인감증명서도 받아야하고 취임 승낙서도 필요한데. 그리고 나중에 이해관계가 생기지 않을까? 구건호는 여러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이석호나 김민혁은 어떨까?”
이석호나 김민혁도 미덥지가 못했다.
“누나나 매형은?”
그것도 나중에 복잡해 질 것 같았다.
“차라리 아버지는?”
아버지는 괜찮을 것 같았다. 믿을 수도 있고 경영에 관여를 안 하니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족도 되는지 몰랐다. 법무사 사무실에 전화를 하였다.
“아버지도 됩니다.”
구건호는 자본금 3억에 상호는 지에이치개발(주), 등기 이사는 구건호와 아버지 두 사람으로 했다. 주 사무실 주소를 위해서 강남역 근방에 오피스텔도 하나 얻었다. 오피스텔은 영등포에 있었던 코딱지 만한 오피스텔이 아니고 방이 두 개나 있는 30평형이었다.
“오피스텔은 내 개인 명의로 사고 (주)케이에이치개발에서 임대하여 쓰는 것으로 하자.”
구건호는 인천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주민등록등본하고 인감증명서가 필요합니다.”
“그건, 왜?”
“이번에 법인 설립을 합니다. 주식회사 지에이치개발이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지에이 뭐라고?”
“회사를 설립했다고요. 아빠가 거기 등기이사로 들어갑니다. 제가 대표이사고요.”
“회사를 설립했다고? 오, 그래? 뭐하는 회사인데.”
“부동산 개발회사에요. 부동산 임대업도 하고요.”
“그런 건 돈이 많이 들어갈 텐데. 난 잘 모르겠으니 잘 해라. 서류는 내일 떼어 놓겠다.”
구건호는 서초동 법무사 사무실에가서 법인설립 의뢰를 하였다.
상호와 법인주소지, 통장 잔고내역, 등기이사의 인감과 인감도장을 제시하니 처리 후 연락해 주겠다고 하였다.
구건호는 자기 오피스텔에 들려 사무실 집기를 들여놓고 팩스와 인터넷 선을 깔고 컴퓨터도 준비했다. 오피스텔은 넓어 직원은 없지만 직원용 책상도 두 개 더 들여 놓았다.
“간판도 달자.”
구건호는 오피스텔 문 입구에 (주)지에이취개발 이라는 아크릴 간판을 걸었다. 여기 오피스텔은 면적이 넓어서 그런지 주거용보다는 사무실용으로 많이 쓰는 모양이었다. 오른쪽에 있는 방도 ‘부동산 개발’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고 왼쪽 방은 무슨 디자인 회사 간판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