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75화 (75/501)

# 75

강남 입성 (1)

구정이 지났다.

구건호는 부모님의 집을 사드리기 위해 인천 시청옆 구월동을 찾았다. 지하철 석천사거리에서 내리니 새로 지은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두 분이 사신다면 25평짜리나 30평도 좋은데 정아까지 데리고 있으니 큰 걸 사드려야겠다.”

마침 상가에 부동산이 있어 들어갔다. 부동산 주인은 40대 후반쯤 되는 여성이었다.

“아파트 하나 보러 왔습니다.”

“사실 겁니까? 파실 겁니까?”

“살 건데요. 50평짜리요.”

여자가 대학노트를 펼치더니 나온 매물을 찾았다.

“4층에 하나 나온 것 있는데 보실래요?”

“얼마에 나왔는데요?”

“4억 2천이요.(현재는 조금 더 감)”

“비싸네요. 급매물 없어요?”

급매물은 없고 전세 끼고 나온 건 있어요.“

“전세 만료가 언제인데요?”

“올 가을이니 한 6개월 남았어요.”

“그건 좀 곤란할 것 같네요. 연락처 적어드릴 테니 로얄층으로 나오는 것 있으면 연락주세요.”

“잠시 계셔보세요. 내가 급매물 한번 찾아볼게요.”

부동산 주인은 다른 부동산으로 전화를 했다.

“동우 부동산이에요. 거기 50평짜리 급매 나온 것 있지요?”

“50평짜리는 없고 511동에 45평짜리 나온 건 있어요.”

“얼마에 나왔어요?”

“4억 이하론 안판다고 그러네요.”

구건호가 생각해보니 식구 수도 많지 않은데 50평짜리는 청소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45평짜리로 하지요.”

부동산 주인은 다시 전화를 했다. 부동산끼리 다 연결된 모양이었다. 부동산 주인이 전화를 끊었다.

“마침 집이 비어있다고 하는데 보시겠어요?”

구건호가 45평짜리 아파트를 구경했다. 새 아파트라 손댈 곳도 없었다.

“도배장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방과 화장실도 새것 그대로네요. 전망도 좋고요.”

부동산 주인은 침을 튀겨가며 아파트 자랑을 하였다.

구건호는 당장 계약을 했다. 집주인이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 연락했더니 바로 나왔다. 60대쯤 되는 남자였다.

“비어있는 집이니 이사 날짜는 잔금만 치루면 바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잔금은 일주일 후에 치루겠습니다.”

집주인이 아파트 등기부등본과 관리비 마지막으로 낸 영수증을 주었다.

구건호는 계약 후 부동산 사무실을 나와서 다시 웅장한 아파트를 쳐다보았다.

“아아, 중, 고등학교 다닐 때 이 정도의 집만 살았어도 내가 부자 소리 듣고 기죽지 않았을 텐데.”

구건호는 만감이 교차했다.

부모님께 들렸다. 마침 골목 입구 슈퍼에서 무언가를 사고 있던 아빠와 정아를 만났다.

“건호냐? 웬일이냐? 정아야, 삼촌 왔다. 삼촌 안녕하세요? 해봐!”

“안녕하세요?”

정아가 과자봉지를 부둥켜 앉고 앙증맞게 인사를 했다. 구건호는 웃으며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정아에게 주었다.

“구월동에 아파트 계약하고 오는 길이에요. 이 연립주택 이제는 내놓으세요.”

“계약했다고? 그렇게 빨리? 네 엄마 오면 빨리 의논해서 내 놓겠다.”

“저, 바빠서 집에 못 들리고 갑니다. 정아야, 삼촌 간다. 빠이빠이.”

구건호는 아파트 잔금을 치렀다. 아파트는 자기 명의로 할까 하다가 타워팰리스 아파트를 경락받으면 1가구 2주택이 되므로 아빠와 엄마 공동 명의로 했다.

“연립주택에서 쓰던 물건은 다 버리고 오도록 해야겠다.”

구건호는 냉장고와 쇼파, 식탁, 세탁기, 가스레인지, 거실용 대형 TV등을 고급으로 사서 들여 놓았다. 정아 책상까지 샀다. 가구가 들어오니 사람 사는 집 같았다. 45평짜리 넓은 아파트는 고급 가구와 어울려 품위가 더 있어 보였다.

에어컨은 아직 여름이 멀었으므로 들여 놓지 않았다.

이사 가는날 구건호는 주안에 있는 부모님 집에 들렀다. 일요일이라 누님도 공장에 출근을 안 하는지 짐 싸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냉장고, 식탁, TV 다 버리세요. 가스레인지도 있으니 기름때 많이 뭍은 것은 갖다 버리세요.”

“이걸 왜 버리나. 닦으면 다 쓸 수 있는 것들인데.”

엄마와 아빠는 이삿짐 차에 냉장고, 가스레인지, 식탁 같은걸 꾸역꾸역 싣고 있었다. 구건호가 다시 언성을 높이며 실었던 물건을 내려놓자. 아쉬운 듯 버려진 물건들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이사 짐은 가구들을 모두 버려서 그런지 단출했다. 고가 사다리차를 빌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여기가 아빠, 엄마가 살집이에요.”

아파트 내부를 보고 엄마와 아빠는 크게 놀랐다. 30평짜리 고모네 집만 같다 와서도 부러워 신세 한탄을 하시던 분들이 45평 새 아파트를 보니 입이 쩍 벌어졌다. 거기다가 투 도어 냉장고며 쇼파와 식탁까지 있으니 더욱 놀라는 것 같았다.

“시상에! 시상에!”

엄마는 감탄만 하였다.

“두 분 돌아가실 때까지 여기서 평생 사세요.”

“하이고, 이 바닥 좀 봐.”

엄마는 매끌매끌한 바닥을 쓰다듬다가 끝내 거실 바닥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고맙다. 내가 오래 살다보니 이렇게 자식 덕도 보는구나.”

엄마는 주름진 얼굴에 대추씨 같이 작아진 눈을 깜박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구건호의 양손을 잡았다. 엄마의 손이 너무 거칠고 쭈그러진 것을 보고 구건호도 가슴이 뭉클했다. 정아가 뛰어나왔다.

“할머니, 여기가 우리 집이야?”

“아냐.”

누나가 황급히 정아의 손을 끌어 당겼다.

“우리 집 맞다. 삼촌이 네 책상도 저기 사다 놓았다.”

“와, 내 책상이다.”

정아가 건너 방으로 뛰어 나갔다.

세간을 대충 정리하고 가전제품 사용방법을 엄마와 아빠에게 알려드렸다. 짐도 대충 정리가 끝나자 구건호는 중국집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다.

이사짐 센터 직원들은 밥을 안 먹고 그냥 가버렸다. 가족들과 함께 새 식탁에서 밥을 먹으니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다.

구건호는 밥을 먹고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누나가 다가왔다.

“정아를 맡겨 미안하다. 새로 산 네 집인데 정아가 어디 긁어 놓을까봐 걱정이 된다.”

“이게 내 집 아니야. 엄마, 아빠 집이야.”

“정아를 좀 더 여기 있게 해도 되겠니? 내가 사정이 지금 그렇게 되었다.”

“응? 그거 나하고 의논할 필요 없어. 엄마 아빠 집이니까, 엄마 아빠가 오케이 하면 되는 거야. 엄마 아빠도 정아가 있으니까 적적하지 않고 좋아하시던데?”

“고맙다. 누나가 못나서.”

누나는 눈물을 글썽 거렸다.

구건호는 이사가 모두 끝나고 짐정리도 대충 끝나자 서울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방도 널널한데 여기서 자고 가지 그러냐? 목욕탕 물도 잘 나오고 밥도 새로 앉혔는데.”

“이사하느라고 힘들었으니 모두 편히 쉬세요. 생활비는 엄마 계좌로 보내드릴 테니 아파트 관리비는 제날짜에 꼭꼭 내세요. 그럼 가 볼게요. 정아야 삼촌 간다!”

구건호는 아파트를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구건호가 아파트의 건물을 다시 돌아보았다.

“부모님은 이제 걱정 마!”

아파트가 웅장하게 버티어 서서 늠름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 집을 옮겨드리고 며칠이 지났다.

서초동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타워팰리스 아파트는 한번 유찰되고 다음번 경매일이 내일 모래인 것 아시지요?”

“예, 입찰보증금은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저께 서초동 법원 경매7계에 들어가서 경매서류 열람했습니다. 현장도 답사했고요. 아파트 위치는 좋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등기부등본에 나와 있는 근저당 설정자들은 낙찰되면 다 소멸됩니다. 매각물건 명세서나 임대차 조사서, 감정평가서는 확인해 보니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아, 예.”

“대항력이 있는 세입자는 없고 매각 물건에 현재 집주인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아, 예.”

“경매 당일 제가 법원에 미리 나가 있겠습니다. 오실 때 신분증과 도장도 가져오시고요. 입찰보증금은 혹시 경쟁자가 있을지 모르니 조금 더 준비하셔야겠습니다.”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요?”

“100만 원짜리 수표로 20장만 준비하세요. 상황 봐서 경쟁자가 많지 않으면 다 필요하진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응찰 요령에 대하여는 경매 당일 날 또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경매 당일 구건호는 서초동 서울 지방법원 중앙지원으로 나갔다. 경매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올라가는 입구에는 경매 정보지를 나누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구사장님 여기입니다.”

컨설팅회사 오상무가 미리 나와 있었다. 운동모자를 쓰고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타워팰리스는 워낙 고가의 아파트라 응찰자가 많지 않을 겁니다. 일단 저 앞에 있는 입찰표와 입찰봉투 챙기세요.”

컨설팅 회사 오상무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컨설팅 하는지 누구를 또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시간되면 법원 집행관이 나올 겁니다. 입찰표는 금액을 잘 써넣어야 합니다. 숫자 잘못 쓰면 입찰보증금 날라 가는 수가 있습니다. 사건번호 잘 확인하세요.”

오상무가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 아줌마였다.

“사모님 물건은 경쟁자가 좀 있을 것 같네요. 거기 상가 장사 좀 되요.”

“그럼 어쩌지요? 꼭 받고 싶은데.”

“두 장만 더 올려서 적으세요.”

어떤 남자가 와서 오상무에게 인사를 하였다.

“야, 너도 이 사모님 물건 경매 참여할 거지? 이번엔 좀 빠져라.”

남자는 아줌마의 얼굴을 힐긋 보고 실실 웃기만 하였다.

법정 안에서 자리를 정돈하라는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구건호도 들어가 장의자에 앉았다. 법정은 사람들로 꽉 차고 뒤에는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종이 울리자 집행관이 나와서 입찰 개시 선언을 하였다. 잠시 입찰표 작성 요령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구건호는 컨설던트 오상무가 알려준 대로 15억 1천 2백만 원을 써 냈다. 입찰 보증금은 응찰가의 10%인 1억 5천 1백 20만원을 봉투에 넣었다.

“하늘이시여, 저에게 낙찰의 행운을!”

구건호는 낙찰되기를 빌며 입찰봉투를 입찰함에 넣었다. 구건호의 물건에는 세 사람이 경매에 참여한 것 같았다.

구건호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깨끗한 양복을 입은 신사나 멋쟁이 여자는 없고 전부 잠바나 코트를 걸친 아저씨 아줌마들이었다. 지하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경매 물건 중에는 수십억짜리 강남 아파트와 빌딩도 있는데 이들은 그만한 자금 동원능력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되었다.

법정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응찰이 모두 끝나자 법원 집행관이 입찰 마감을 선언했다.

집행관은 옆에 직원이 입찰봉투를 개봉 후 낙찰자를 날려주면 사건번호와 낙찰자의 이름, 낙찰금액을 공개했다.

“사건번호 000번은 15억 1천 2백만 원을 써 내신 구건호씨가 낙찰되었습니다.”

“됐다!”

구건호는 벌떡 일어나 집행관 앞으로 나가 신분증을 제시하고 낙찰표를 받았다.

법정 밖을 나오니 오상무가 껌을 씹고 서 있었다.

“축하합니다.”

“벌써 아셨어요?”

“밖에서 다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작업 들어가십니까?”

“아니요. 항고(抗告) 기일까지는 기다리셔야 합니다. 현 소유주나 이해 관계자들이 항고할 수 있는 기간이 있습니다. 항고는 안하겠지만 그래도 이 기간은 지나야 합니다.”

“아, 그래요?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열흘입니다.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슬슬 잔금 준비하세요.”

열흘이 지나자 컨설팅 회사의 오상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항고기간이 끝났으므로 제가 전 소유주와 협상을 해야 합니다. 소유주가 저항 없이 잘 나가도록 하려면 이사비용 보조를 해야 합니다. 이사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지요?”

“교육 받을 때 들은 적은 있습니다. 얼마를 줘야 하나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천만 원 요구할 수도 있고 대중없습니다.”

“법적으로 꼭 주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안 나가고 버티니까 문제지요. 그들은 이미 망한 사람들이라 이판사판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요?”

“염려마세요. 그걸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가서 공갈도 치고 잘 구슬리기도 해야지요. 명도 소송을 해도 안 나가면 애들 시켜서 세간사리 길바닥에 끌어내야지요.”

“그렇게 까지....”

구건호는 토지나 건물이 아닌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경매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오상무님이 잘 알아서 하세요. 깎을 수 있는데 까지 깎아보시고 가셔서 언성 높이지는 마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만나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구건호는 이런 일은 자기가 직접 하는 것 보다 컨설팅 회사를 이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안에는 이사를 갈수 있겠지.”

구건호는 잔금을 치르려면 증권회사에 가서 돈을 인출해야 했다. 작은 금액 같으면 각 은행 현금 자동지급기에서 인출하면 되지만 큰돈은 직접 가야했다. 거래 지점이 옛날에 거래를 튼 수원지점이라 수원까지 가야했다.

“거, 귀찮군. 타워펠리스로 이사하면 지점을 옮겨야겠네. 지난번 인천 구월동 부모님 아파트잔금 치룰 때도 수원에 갔었는데 또 가게 되었군. 회사 설립을 해야 될지 모르니 아예 한 30억만 빼서 은행에 이체시켜 놓아야겠다.”

구건호가 창구에서 현금 이체 신청을 하자 증권사 여직원이 놀랐다.

“헉! 30억이네요?”

구건호가 증권사 객장 의자에 앉아 있는데 안경을 쓴 중년의 남자가 안에서 급하게 나왔다.

“구선생님이시지요? 이곳 지점장입니다.”

지점장은 깍듯이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지난번 구월동 잔금 인출시에는 지점장이 없었는데 오늘은 자리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제 방으로 가시지요. 차 한잔하시지요.”

구건호는 귀찮게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마지못해 의자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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