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74화 (74/501)

# 74

한남동 비밀요정 (2)

금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정장을 하고 한남동으로 나갔다. 겨울철이라 해가 일찍 떨어져 어두워졌지만 한남동 순천향병원 근방은 가게들이 많아 불빛이 많았다.

“동네가 분위기 있네.”

이곳은 단독주택이 많은 동네였다. 그래서 대사관들도 많아 순천향병원 앞 도로를 대사관로라고 불렀다. 스위스, 태국, 캄보디아 등 여러 나라 대사관들이 있는 곳이었다.

“여기요, 여기!”

이회장을 모시고 다니는 권부장이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오래간만이요. 나도 반갑소.”

구건호는 권부장과 악수를 하였다. 구건호는 권부장을 따라 어느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권부장은 정원이 있는 어느 양옥집을 들어가라고 하였다. 입구에 식당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대문 옆 붉은 벽돌 담 벽에 컴퓨터 모니터만한 아크릴 간판이 있었다.

“솔?”

간판은 솔이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 아주 작은 글씨로 대중음식점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음식점으로 알고 들어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정장을 한 젊은이가 나와 인사를 하였다. 권부장과 젊은이는 구건호를 현관에 들이지 않고 뒤채로 안내했다. 뒤채는 옆집과 통하는 작은 문이 있었다. 옆집도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이리로 오십시오. 돌계단 조심하십시오.”

소나무가 있는 고요한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한복을 입은 오십대 여성이 나와 인사를 하였다. 나이는 들었지만 상당한 미인이었다. 넓은 방에는 자수병풍이 드리워져 있었고 조끼만 입은 이회장과 박도사가 술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장마담 방석 내와요.”

장마담이란 한복의 여성이 학이 수놓아져 있는 방석을 내왔다.“

“앉아요.”

“나는 요 옆에 있는 복어 요리 집으로 가자고 했는데 박도사가 이리로 오자고 해서 왔소.”

이회장이 이상한 집으로 안내한 것 같아 미안해하면서 말했다. 박도사가 구건호 앞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신왕재왕 젊은이! 부자 됐지? 내가 35세에 부자 된다고 했지? 맞지?”

“예,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기억력이 대단하십니다.”

“나는 자네 사주 기둥을 외워. 특이하니까! 더러운 부자 될 사주니까!”

이회장이 박도사 말을 듣고 민망한 모양이었다.

“부자면 부자지 더러운 부자는 또 뭔가?”

“어때! 젊은이! 몇 십억 벌었지?”

“예? 아, 예. 버, 벌었습니다.”

“그럼 오늘 여기서 얻어먹어도 되겠다. 장마담 한상 잘 봐와!”

여자가 품위 있는 웃음을 날리며 일어섰다.

“구건호군, 이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그, 글쎄요.”

박도사의 말에 구건호가 마담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기도 했다.

“자네 세대는 잘 모를지 모르지만 옛날 은막에서 날렸던 스타 장미향이네.”

그러고 보니 어느 잡지에서 본 듯도 하였다.

“아, 그러십니까?”

잠시 후 흰 와이셔츠를 입은 젊은 남성 두 명이 커다란 교자상을 마주 들고 왔다. 음식은 한식인데 가지 수가 많았다. 신선로까지 있었다.

마담이 들어와 반짝거리는 황금색 주전자에 있는 술을 따랐다.

“너는 나이를 거꾸로 먹냐? 어째 늙지도 않고 이렇게 피부가 탱탱하냐?”

“호호호, 제가 도사님처럼 쭈굴쭈굴 하면 좋겠어요?”

“내가 어째서 쭈굴쭈굴하냐. 젊은 오빠지. 요년 말하는 것 좀 봐.”

박도사는 입이 거친 모양이었다. 말 할 때마다 이년 저년 하였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면서 한복을 입은 젊은 여성 두 명이 더 왔다. 이들은 이회장과 구건호 옆에 앉아 음식 시중을 들었다.

구건호가 시중을 드는 젊은 여성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속눈썹이 긴 20대 중반쯤의 여성이었다. 룸싸롱 여성들보다는 분위기가 달랐다. 조신해 보이기도 하였다.

‘야, 이년들아! 너희들도 한잔씩 받아라!“

여자들은 박도사가 술을 따라주자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한손으로 입을 막은 채 마셨다.

“마담, 앞에 있는 젊은 사장 잘 봐두어. 앞으로 크게 부자소리 들을 사람이야.”

“지금도 몇 십억 벌었다면서요? 그럼 지금도 부자네요 뭐.”

마담은 소고기 갈비찜을 한 점 덜어 구건호의 접시에 올려 주었다.

“몇 십억이 무슨 부자냐? 그건 너도 있잖아. 너도 부자잖아.”

“제가 무슨 부자에요.”

“부자지! 젊었을 땐 남자 홀려서 돈 벌고, 지금은 요런 요정해서 돈 벌고.”

“아이고, 그런 소리 마세요. 요즘 도사님이 자주 안와 문 닫게 생겼어요.”

“구사장, 한잔 부딪칠까?”

이회장은 구건호를 구사장이라고 불렀다. 구건호 옆에 있던 여자가 구건호의 술잔에 술을 더 첨잔했다.

“그래, 무엇을 해서 벌었나?”

“부동산과 주식입니다. 부동산은 중국서 벌었고 주식은 이번에 좀 벌었습니다.”

“4대강 관련주 하신 모양이군.”

구건호는 말없이 웃기만 하였다.

“부동산은 괜찮은데 주식은 길게 하지 마시게. 벌었으면 빠져 나와야 해. 확실한 패가 없다면 말이네.”

“명심하겠습니다.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주식은 내부자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어. 유동화 회사 같은 것 만들어 주식 담보 잡히고 돈 빼고 주가 떨어지면 공매도로 돈 벌고 그러지. 공매도 제도가 있는 한 정보 없는 개미는 돈 벌기가 아주 힘든 시스템이야. 이번에 4대강 같은 정치주는 워낙 바람이 거셌지만 확실한 패 없으면 건드리지 말게.”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주식이 올라가면 CB나 발행하고 양아치 같은 내부자들이 많지.”

“아, 예.”

구건호는 지금 이회장이 하는 말을 듣고 오늘 술값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큰 이익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주식 시장은 위축될 걸세. 지금 내가 말한 것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말이네. 다른 대체 투자 모델이 생긴다면 그리로 몰려갈 가능성이 많지. 이를테면 가상화폐 같은 것 말일세.”

“가상화폐요?”

“하하, 인터넷 시대가 되어 그냥 잠시 생각해 본 것이네.”

구건호는 나중에 이회장이 당시 한말을 두고 감탄을 하였다. 최근에 비트코인 광풍이 부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던 가상화폐 같은걸 생각하다니 과연 보통 노인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현자가 따로 없었다. 지하철에서 자리 안 비켜 준다고 떠드는 개념 없는 틀딱들 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제 앞으로 뭘 할 셈이신가?”

“우선 작게 임대업 하다가 기회 봐서 기업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흠.... ”

박도사가 재미가 없는지 짜증을 냈다.

“돈 이야기들 그만해. 노는데 왔으면 놀아야지 무슨 돈 이야기인가! 야, 이년들아! 노래를 부르던지 악기를 가져와 놀던지 해라.”

젊은 여자들이 가야금을 가지고 왔다. 구건호 옆에 있던 여성이 가야금을 타는데 프로급 수준이었다. 한 여자가 조명을 반쯤 끄자 밖의 정원이 환하게 보였다. 밖의 조명이 더 강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정원의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금준미주(金樽美酒)에 미인의 가야금 소리를 들으니 젊은 구건호가 보더라도 분위기 한번 죽여준다고 생각되었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한 가야금 소리가 나오자 이회장과 박도사는 몸까지 흔들거리며 흥에 취해 술을 마셨다.

가야금 연주가 끝나자 이회장과 박도사는 박수를 쳤다.

“수고했다. 한잔 받아라.”

이회장이 여자에게 술을 한잔 따라주었다.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이회장과 박도사는 서로 자기들 끼리 지나간 옛날이야기 하느라고 바빴다. 구건호가 심심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권부장님도 들어오라고 할 걸.”

구건호는 말 상대가 없어 가야금을 타던 옆의 여성과 말을 나누었다.

“가야금을 잘 타시네요. 어디서 배웠어요?”

“학교에서요.”

여자가 살며시 웃자 볼우물이 매력적이라 생각되었다.

“학교를 어디서 다니셨어요?”

“전주에서요.”

말하고 있는 사이에 마담이 들어왔다. 박도사가 대뜸 핀잔을 주었다.

“너는 왜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 왔다 갔다 하냐? 샛서방이라도 왔냐? 썩을 년!”

“하이고, 도사님 입은 여전해!”

“앞에 있는 젊은 사장이 총각이다. 네가 중매 한번 서라.”

“정말이에요?”

마담이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자 구건호는 창피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가야금을 타던 옆에 여자도 쳐다보는 것 같아 얼굴이 더욱 달아올랐다.

“우리 집 자주 놀러 오세요. 나한테 잘 보이면 좋은 색시 감 얻어 걸릴 줄 누가 알아요?”

“너 노래 한번 해봐라.”

“술도 한잔 안주고 무슨 노래에요.”

“망할 년!”

“박도사는 마담에게 술을 한잔 따라 주었다.

마담이 노래를 불렀다. ‘전선야곡’이라는 노래인데 구건호는 잘 모르는 노래였다. 아마 나이 지긋한 이회장과 박도사를 위해 부르는 노래 같았다. 마담의 노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프로 가수 같아 구건호는 깜작 놀랐다.

“썩을 년이 노래 하나는 잘 불러!”

박도사는 술을 한잔 더 따라 마담에게 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와 산해진미 속에 한남동의 밤은 깊어갔다.

이들은 가야금 연주 한곡을 더 듣고 한남동 비밀 요정을 나왔다. 마담은 은밀히 구건호의 양복 주머니에 자기의 명함을 한 장 찔러 넣어 주었다.

마당으로 나오자 권부장이 쫓아 나왔다.

“어? 부장님, 어디 계셨어요. 같이 식사를 하지 그랬어요?”

“아니오. 나는 밖이 편해. 노인들 옆에 있으면 답답해.”

이회장과 박도사는 약간 취했는지 몸을 건들거리다가 화장실로 갔다. 구건호가 권부장에게 다가갔다.

“이런 요정이 있는 줄 몰랐네요.”

“여긴 정치인이나 재벌들도 많이 와요. 박도사가 여기서 은밀히 고관들 사주도 봐주고 그래요.”

“아, 그렇습니까?”

“한남동과 이태원에 거물들이 많이 살아 여기 제법 굵직한 손님들이 와요. 어? 저기 회장님 나오시네.”

권부장이 쫓아 나갔다.

구건호는 그동안 돈 번 김에 룸싸롱도 가보고 요정도 가 보았다.

“공돌이가 출세했네. 돈도 몇 백 깨졌지만 얻은 것도 있다. 그런데 룸싸롱은 내 체질이 아니야. 그런데 가는 것은 좀 삼가야 되겠다.”

구건호는 지난번에 본 타워팰리스 아파트 경매 나온 것을 자문 받기 위해 경매학원 원장을 찾았다.

원장은 요즘 강의가 없는지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오, 구선생 아니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그래, 어떤 물건을 상의하시려고 그럽니까?”

“아파트입니다.”

“아, 토지가 아니고 아파트 입니까?”

“도곡동에 있는 타워팰리스입니다.”

“감정가가 얼마로 나와 있습니까?”

“18억 원입니다. 50평짜리입니다.”

“헉! 18억! 가격이 만만치 않은 물건이네요. 혹시 부모님이 돈을 지원하는 물건입니까?”

“하하, 적당히 생각하십시오. 이번 투자는 투자 목적도 있습니다.”

“거긴 주상복합이긴 한데 워낙 인기지역이라 잡아두면 손해는 없습니다.”

“그래서 욕심이 나긴한데 아무래도 제가 경매 경험이 없어서 원장님을 찾은 겁니다.”

“가만있자. 도곡동이면 경매 컨설팅업을 하는 내 후배가 좋겠네요. 강남에서 아주 전문적으로 잘 하는 후배가 있습니다. 난 월요일부터 새로운 강의가 있어 바빠질 것 같아 손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후배를 소개하지요.”

원장이 후배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오상무? 나네.”

“아, 형님, 어쩐 일이세요?”

“도곡동 아파트 하나 경매 받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신데 한번 보내드릴까?”

“오후 2시 넘어 오시면 됩니다. 오늘 오전에 법원에서 경매가 있어서요.”

구건호는 경매학원 원장이 가르쳐준 약도를 가지고 부동산 컨설팅 업체를 찾았다. 서초동 서울교대 근방에 있는 어느 빌딩이었다.

조그만 빌딩 3층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는 직원 두 사람이 사무를 보고 있었고 운동모자를 쓴 젊은 사람이 쇼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오상무님 계십니까?”

“난데요.”

“경매학원 원장님이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아, 예. 앉으세요.”

“도곡동 아파트 하나 받으려고 합니다.”

“사건번호 아세요?”

“예? 그건 잘 모르겠고 도곡동 타워팰리스입니다.”

오상무라는 사람이 자기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렸다.

“50평짜리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 아파트는 신건(新件)이네요. 한번 유찰되면 다시 오세요. 인기 지역이라 두 번 까지 유찰은 안 되겠네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지요?”

“이번 유찰되는 것 보시고 다음 경매일은 구정지나 24일에 있네요. 그때 입찰 보증금 가지고 오세요.”

“얼마나 준비해야 합니까?”

오상무가 전자계산기를 두드려 본다.

“1억 4천 4백만 원 가지고 오세요. 신분증과 인감도장 준비하시고요. 컨설팅 계약은 지금하시지요.”

“그럼 명도까지 책임지십니까?”

“물론이지요. 경매되면 지금 입주자 내 보내고 빈집상태에서 아파트 키를 손님에게 넘겨드립니다.”

구건호가 보기에 컨설팅업체가 별로 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내가 할일 없는것 처럼 보이지만 입주자 내보내가 아주 힘듭니다. 손님께서 직접 하시면 험한 꼴 당할 수도 있습니다.”

“험한 꼴요?”

“입주자가 버티고 안 나가면 어떻게 할 거에요? 멱살 잡고 끌어내실 거예요? 선생님이 입주자한테 경매 되었으니 왜 나가지 않느냐고 해보세요. 당장 이사비용 많이 요구할 텐데요. 혼자 하시고 싶으면 하셔도 됩니다.”

“그런 일이 있겠군요.”

“선생님은 거기 들어가 살 분인데 입주자와 몸싸움까지 하면서 야박하게 내보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웃에게도 소문이 안 좋을 수 있습니다.”

구건호가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구건호는 컨설팅 계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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