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한남동 비밀요정 (1)
구건호는 후배 박종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있었어?”
“어, 형. 요즘 뭐해?”
“이것저것 한다. 부동산 시장도 기웃거리고 증권시장도 기웃거린다.”
“직장생활이나 가게 같은 건 안할 거야?”
“직장생활은 이제 못하겠다. 자영업 하던 사람이라 틀에 박힌 조직생활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뭔가 해야 되지 않겠어?”
“아, 그리고 요즘 내가 몇 푼 벌었다. 그래서 너한테 술 한 잔 사려고 해.”
“정말?”
“정말이다. 언제 쉬냐?”
“날짜 맞추어 볼까?”
“경리단길 이석호도 같이 만나자. 이석호는 나보다도 네가 더 친하잖아.”
“그 형, 노는 날 그 가게 문 닫고 거기서 놀자.”
“그럼 더 좋지. 이석호와 이빨 맞추어 봐라.”
박종석과 전화를 끊자 낯선 곳에서 전화가 왔다.
“구건호 선생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증권사 지점장입니다. 한번 뵙고 식사라도 하고 싶습니다.”
구건호는 귀찮은 전화가 왔다고 생각되었다. 현재 거래하는 지점은 전에 화성에서 공돌이 생활할 때 햇살론 대출받고 거래를 튼 수원 지점이었다.
“저, 내일 해외 나가는데요.”
“아, 그러십니까? 그럼 다녀오시고 나면 꼭 한번 모시고 싶습니다.”
돈이 자그마치 198억 원이나 예금되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싶었다.
구건호는 전에 공장 여러 곳을 다녀서 중소기업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다. 이 공장들도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자본금은 10억 미만짜리들도 많았다. 중소공장의 년 간 매출액도 50억도 못되는 곳이 많았다.
그러니 구건호가 가지고 있는 198억 원은 엄청 큰돈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예금자는 개별 지점에서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중요 고객이었다.
“내가 이사를 하면 지점을 옮기려고 했는데 귀찮게 되었군.”
후배 박종석에게 전화가 왔다.
“형? 석호 형한테 의논했더니 셋째 주 월요일이 좋데. 그날이 쉬는 날이래.”
“그래? 월요일이면 너는 안 되잖아.”
“아, 나 그날 월차 쓰면 돼. 벌써 부장에게 그날은 일이 있어 쉰다고 했어.”
“그래? 그럼 그날 보자.”
구건호는 기왕이면 이 친구들을 좀 고급스러운 곳에 가서 한턱내고 싶었다.
구건호는 이석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석이에게 이야기 들었다. 월요일 몇 시가 좋겠냐?”
“응, 그날 내가 오전에 구청하고 세무서엘 가야되니 오후 5시가 좋겠다.”
월요일이 되었다.
아직 차를 사지 않은 구건호는 택시를 타고 이태원 경리단길을 갔다.
이석호의 가게는 오늘 쉬는 날이라 그런지 홀의 불이 꺼져있었고 의자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문은 반쯤 열려져 있었다.
“어, 형, 어서 와!”
박종석이 먼저 와 이석호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서 와!”
“뭐, 벌써 술판이 벌어졌냐?”
“어, 한잔 해. 종석이가 일찍 와서 같이 마시고 있어.”
“좋은 데를 안내하려고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늘어지면 어떡해?”
“여기서 목만 축이고 이태원 해밀턴 호텔 근방 음식 잘하는 집 소개할게.”
구건호는 가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에 악기 같은 것이 그대로 걸려있어 전에 동업을 한다는 친구가 생각났다.
“너, 같이 동업한다는 대학동창 잘 있냐? 방 모라고 하는 예술가처럼 생긴 친구 말이야.”
“아, 방한영! 걔 요즘 여기 안 있어. 강남에 있는 룸싸롱에서 일해.”
“룸싸롱?”
“걔 누나가 룸싸롱 마담이야.”
“그럼, 여기 동업은 안 하는 건가?”
“걔 지분은 그대로 있어. 내가 이익금 나면 절반은 보내주고 있어. 자기 투자금을 빼고 싶다고 하는데 내가 그럴 능력이 없어 지금 어쩡정한 상태야.”
“흠, 그렇구나.”
“룸싸롱 한번 가서 매상 올려주면 좋은데 내 주변에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지.”
박종석이 구건호와 이석호에게 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형, 친구들은 돈 있는 사람들 많잖아? 외제차 타고 다니는 형들도 많던데.”
“차들만 외제차지 룸싸롱 같은데 가서 돈 척척 쓸 놈은 없어. 큰 사업 하는 것도 아니고.”
구건호가 술을 한잔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거기로 가자!”
“형, 취했어? 룸싸롱 가면 한두 푼 깨지는 줄 알아?”
이석호도 말렸다.
“종석이 말이 맞다. 우리가 무슨 큰 거래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갈수는 없지. 너 룸싸롱 한 번도 못 가보았지? 객기 부리지 말고 앞에 있는 맥주나 마셔.”
구건호와 이석호, 박종석 세 사람은 가게를 나와 해밀턴 호텔 근방의 요상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거기서도 맥주를 마셨다. 세 사람이 모두 취하자 꼭지가 돌기 시작했다. 먼저 구건호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가자! 3차 가자! 3차는 방한영이란 고수머리 룸싸롱으로 가자!”
박종석도 비틀거리며 일어나며 외쳤다.
“꺼~억, 가자! 씨발, 건호 형이 돈 좀 벌었다는데 가자!”
“야, 이석호! 여기는 네 동네지? 콜택시 잡아라!”
“그래, 가자! 가서 발렌타인 17년산 한번 마시자!”
결국 이들은 콜택시를 타고 강남 삼성역 근방의 룸싸롱으로 갔다.
구건호는 너무 취해서 간판도 모르는 어느 빌딩 지하의 룸싸롱으로 갔다. 입구에서 깍두기 머리를 한 정장차림의 젊은이들이 나왔다.
“형님들 오셨습니까?”
이들은 90도 각도로 정중히 인사를 한 후 세 사람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지만 무슨 궁전처럼 럭셔리하게 꾸몄다. 이오니아식 흉내를 낸 기둥들이 있는 방이었다. 구건호는 취중에서도 이 기둥들이 진짜 돌인지 플라스틱 기둥인지 만져보며 들어갔다.
깍두기 한 놈이 요란하게 박수를 쳤다.
“형님들 오셨다. 잘 모셔라!”
흰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맨 족제비 같은 놈이 나와 살살 웃으며 방으로 안내했다.
“어이, 방실장 좀 오라고 해!”
“지금 여기 안계신데요.”
“어디 갔어? 내가 오라면 와야지!”
이석호가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서빙하는 여성 종업원이 생글거리며 쟁반에 물수건과 생수를 가져왔다.
나비넥타이가 다시 들어와 이석호의 웃옷을 받아 걸면서 말했다.
“실장님 조금 있다가 오신답니다. 우선 주문부터 받지요. 술은 뭘로?”
“발렌타인으로 합시다. 형님들!”
박종석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불쑥 말하자 의자에 기대에 가쁜 숨을 몰아쉬던 이석호가 벌떡 일어났다.
“발렌타인 너무 비싸! 그거 말고 시바스리갈 가져와! 박정희가 먹다 죽은 술 말이야.”
“알겠습니다. 안주는 셀러드하고 과일안주 우선 준비하겠습니다. 아가씨도 3명 부르겠습니다.”
“여기 물 좋단 소리 듣고 왔으니 잘 알아서 해. 방실장하고 나하고는 둘도 없는 친구야! 알아?”
“아, 알겠습니다. 형님들, 아니 사장님들!”
나비넥타이가 깍듯이 90도 각도로 인사했다.
잠시 후 서빙하는 여성 종업원 두 명이 귀여운 웃음을 펄펄 날리며 들어왔다. 시바스리갈과 앙증맞은 양주잔, 예쁘기 깎은 과일 안주 등을 가져왔다.
종업원들은 가지고 온 양주잔과 과일 안주 등을 세팅했다. 얼음까지 준비가 되었다.
“맥주도 서너 병 가져와요.”
이석호는 말하는 폼이 룸싸롱을 와 본 경험이 있는 듯하였다. 자연스럽게 시바스리갈 양주병을 따고 한잔씩 돌렸다.
양주가 한잔씩 돌아가고 맥주도 나왔다.
“폭탄주 할까?”
이태원에서 마신 술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구건호는 양팔을 저으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술이 약하기는 원, 그래가지고 어떻게 큰일을 하나?”
양주가 돌아가고 맥주도 돌아가고 10여분쯤 있으니 다시 나비넥타이 지배인이 들어왔다.
“아가씨 3명 왔으니 맘에 안 들면 바꾸셔도 됩니다.”
얇은 옷만 대충 걸친 세미누드의 젊은 아가씨 3명이 들어왔다. 화장이 짙었다.
“야, 너희들 중 누가 제일 영계냐?”
가장 어려보이는 아가씨가 앞으로 나왔다.
“너는 여기서 제일 막내인 저기 앉아라.”
이석호는 박종석 옆자리를 가리켰다. 지명된 아가씨가 냉큼 박종석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누가 더 예쁜가 보자.”
이석호는 남은 두 사람 중 약간 키가 작은 여자를 구건호 옆에 앉혔다. 그리고 키 큰 아가씨를 자기 옆자리에 앉혔다. 인물은 키가 작은 아가씨가 더 나은 듯하였다.
구건호는 세미누드의 여자가 옆자리에 앉자 긴장했다. 여자에게서는 샤넬 향수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여자는 대뜸 구건호에게 팔짱을 끼었다. 구건호는 화들짝 놀랐다. 이런 모습에 여자는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호호호, 오빠는 이런데 처음인 모양이네요.”
여자는 사과 과일을 반쯤 먹고 침 뭍은 나머지를 구건호의 입에 넣어주었다.
“괘, 괜찮습니다. 내, 내가 먹겠습니다.”
“호호호, 이 오빠 말까지 더듬네.”
이번엔 세 여자가 모두 깔깔대고 웃었다.
“야, 옆에 앉은 분들 모두 숫총각 들이다. 너희들 오늘밤 한번 잘해봐라.”
이석호는 양주를 잔에 반쯤 따라 아가씨들에게 돌리며 호탕하게 말했다. 아가씨들은 술을 받아 쪽쪽대며 마시더니 담배까지 꼬나물었다.
-이하 장면은 선정적인 장면이 많아 생략합니다.(이 소설은 19금 소설이 아님) -
구건호는 눈을 떴다. 집이 아닌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지?”
룸싸롱을 나와 깍두기들이 부축하는 대로 옆 건물 모텔로 들어간 것 까지는 기억이 났다.
“모텔이구나. 여기서 잔 것 같구나.”
구건호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5시였다. 구건호는 이석호와 박종석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모텔을 나오니 아직 해뜨기 전이라 어두웠다. 거리엔 청소차만 왔다 갔다 했다.
구건호는 대로변으로 나와 간신히 택시를 잡고 영등포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머리가 띵하고 몹시 아팠다. 구건호는 침대에 다시 누웠다.
구건호는 잠에서 깨어나 어제 쓴 돈을 계산해 보았다.
“술값과 아가씨들 팁까지 해서 족히 150만원은 깨졌군. 내가 공돌이 할 때 한 달 월급이 거의 날라 간 셈이네. 허, 이러니 서민들은 룸싸롱 가겠어? 그리고 양주는 나하고 잘 안 맞아. 호기심에서 룸싸롱 한번 가보았지만 역시 내 취향은 아니야.”
구건호는 돈은 있지만 직업이 없다. 남들이 뭐하냐고 물으면 대답하기도 곤란했다. 그래서 고정적으로 수입이 나오는 무언가를 해 보고 싶었다.
“뭘 하지? 롯데리아 같은 패스트후드점이나 스타벅스 같은 커피숍을 할까? 스타벅스는 개인에게 체인점 안준다니 탐엔탐스나 파스꾸찌를 할까? 아니야, 이런 것들은 벌리면 신경 쓸 것이 많아 안 되겠어. 내 주업은 앞으로 부동산이나 금융업이 될 텐데 말이야.”
구건호는 한참 생각을 하다가 오피스텔과 고시텔이 떠올랐다.
“오피스텔을 몇 채 사서 임대사업을 해?”
이것도 자기처럼 월세를 잘 주는 사람을 만나면 괜찮은데 월세를 잘 안내는 사람을 만나면 골치가 아플 것 같았다.
“고시텔을 할까? 한 달 40만 원 이상 받는 고급 고시텔 말이야. 나도 한때는 고시텔 총무하면서 9급 공무원 시험 계속하려고 했었잖아. 고시텔을 해 볼까?”
구건호는 인터넷에서 고시텔 매물을 검색해 보았다.
“새로 인테리어를 한 고급 고시텔이 3억 정도 하는군. 3채를 임대해도 10억 원이 안 되겠네. 광고는 월 순수입이 600만원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까지는 안 될 것 같고 400만원만 잡더라도 3채면 한 달 순수입이 1200만원이네. 관리인 한사람 두고 이걸 해봐? 다른 사업보다는 신경을 덜 쓰고 단순할 것 같은데?”
구건호는 일단 오피스텔에서 벗어나 자기가 살집을 마련하고 싶고 차도 한 대 사고 싶었다.
“내가 살 집은 강남에 사자. 다른 지역은 안 올라도 강남은 매년 오르는 지역이니 강남으로 가자. 투자 겸해서 사는 것이니까 좀 비싼 집 사자. 중국에서 고급아파트 투자해서 재미 본 것처럼 말이야.”
구건호는 경매사이트에 들어가 강남지역의 아파트 경매 나온 것을 살폈다. 하나가 눈에 띄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50평짜리가 18억에 나왔네. 한번 유찰되면 15억 아래에서 잡을 것 같군. 이걸 내가 무턱대고 하는 것 보다 전문가한테 물어 보는 게 났겠지? 내가 다녔던 용산의 경매학원 원장이 컨설팅도 한다고 하니 거기다 한번 물어나 보자.”
구건호는 다시 한 번 계산해 보았다.
“내가 갖고 있는 198억 원 중에서 고시텔 같은 임대사업 준비금 10억, 내가 살집 15억원, 부모님 사드리는 주택 4억, 승용차 구입과 아파트 가구 등 모든 경비 1억 잡으면 한 30억 빠져 나가겠다. 나머지 168억 원은 짱 박아 두었다가 큰 투자처나 사업거리 생기면 써도 되겠다.”
구건호는 이렇게 행복한 구상을 하다가 청담동 이회장이 생각났다.
“참, 청담동 이회장님과 강남 박도사님을 한번 모시고 싶은데 전화해도 될까? 젊은 놈이 건방지다고 하지 않을까?”
구건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중국 가기 전에 이회장에게서 받은 명함을 찾았다. 명함에는 핸드폰 전화는 없고 사무실 전화만 나와 있었다.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어 번 가고 나서 누가 전화를 받았는데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서인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동일제지 회장님실이죠? 회장님 계십니까?”
“실례지만 어디십니까?”
“저, 포천 낚시터에서 만난 구건호라고 하시면 아실 겁니다.”
“지금 자리에 안계십니다. 들어오시면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었다.
“혹시 있으면서 없다고 그러는 것 아니야?”
구건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짜장면이나 한 그릇 먹고 와야겠다고 하며 일어서는 순간 전화가 걸려 왔다.
“구건호군이신가? 전화 하셨다며?”
“아, 회장님이세요? 안녕하십니까?”
“요즘 날씨가 추워서 낚시터에 못 가는데 날 풀리면 한번 만납시다.”
“저, 다른 게 아니고 제가 최근에 투자한 것이 좋은 성적을 거두어 회장님을 한번 모시고 싶습니다.”
“나를? 투자가 성공했는데 왜 나를.”
“아닙니다. 회장님의 말씀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한가한 시간을 알려주시면 꼭 한번 모시고 싶습니다. 친구 분인 강남의 박도사님도 함께 모시고 싶습니다.”
“허허, 나까지 챙기다니 고맙소. 그럼 내가 날짜를 잡아 연락드리리다.”
저녁때쯤 이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금요일 날 한남동 어때요? 박도사도 나온다고 했어요.”
“좋습니다. 그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는 식당을 잘 모를 테니 한남동 순천향 병원 입구로 저녁 7시까지 나오세요. 권부장을 마중 나가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