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4대강 대박 (3)
구건호는 이화공영과 삼목정공 주식을 팔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다.
“아니야! 대통령 선거전까지는 아직도 3개월 남았는데 팔지 말자.”
“아니야. 주식이라는 게 앞일을 모르니까 올랐을 때 팔아야 해.”
구건호는 양손을 내밀어 자판기를 두드릴까 하다가 다시 손을 움츠리고 다시 펴고를 반복했다.
경고 먹고 거래가 풀리자 이화공영은 또 거침없이 올라갔다. 삼목정공도 경고를 먹었다.
선거전이 본격화되자 주식시장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명박 후보는 4대강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정동영 후보 측에서는 4대강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연일 반박했다.
4대강 주식은 이성을 잃고 요동쳤다.
구건호는 주식이 올라 좋기는 한데 올라도 너무 올라 공포감이 들었다.
“이거 주식 시장이 미쳤군. 아니 대한민국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아.”
다음날도, 이튼 날도, 또 그다음날도 이화공영과 삼목정공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았다.
언론에서는 묻지 마 투자의 전형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지만 이화공영과 삼목정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증권거래소가 이상 과열을 진정 시키기 위해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s)를 발동하기도 했다.
“휴, 잠시 쉬어가자.”
구건호는 자기 주식 계좌를 열어보았다. 매도시 가정금액은 벌써 60억 원을 넘고 있었다. 구건호는 온 몸이 떨리고 소름에 닭살이 돋았다. 주식 상승으로 인한 돈은 처음엔 잘 안 늘어가도 일정한 금액을 넘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는다. 꼭 눈송이 굴리는 것과 같았다.
경리단길 이석호 가게에서 만났던 시민단체 강민호가 전화를 걸어왔다.
“구건호? 요즘 어떻게 지내냐? 직장은 잡었니?”
“아니, 아직.”
“그러면 내일 광화문으로 나와라.”
“거긴 왜?”
“내일 대대적으로 4대강 반대 투쟁을 한다. 각 사회단체에서 다 나오기로 했다. 너도 나와라.”
“글쎄.”
“글쎄라니! 재앙이 될 것이 뻔한데! 넌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
“아니, 4대강 한다면 오히려 좋아지지 않겠어? 홍수도 예방되고.”
“하, 이런 바보!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MB같은 사이비들이 날뛰는 거야. 내가 왜 이런 반대 투쟁을 하는 줄 알아? 내가 생기는 것이 있어서 그런가? 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야. 두말 말고 나와!”
“난, 내일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일은 무슨 일! 이 일보다 더 큰일이 있을까! 같은 하늘아래 숨 쉬는 젊은이로서 너만 어찌 이렇게 꽉 막혔냐? 그러니까 백수지! MB당선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 정동영 후보가 되어야 한다.”
이 말에 구건호는 ‘나는 MB 당선을 원한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왜 말이 없어. 나올 거지?”
“알았다.”
전화는 이렇게 끊었지만 구건호는 벽을 보고 독백을 했다.
“나는 4대강 사업이 좋은지 나쁜지는 모른다. 이명박 후보가 좋은지, 정동영 후보가 좋은지도 모른다. 단지 나는 주식 투자자일 뿐이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너희들은 내가 돈이 없어 받았던 멸시와 고통에 대하여는 모를 것이다. 나는 기필코 돈을 벌 것이다. 지금도 너희들의 내면에는 나를 깔보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구건호는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벽을 쳤다.
“나는 돈을 번다!”
쿵 소리가 나며 구건호의 두 주먹이 금방 벌겋게 부어올랐다.
구건호는 밖에 외출도 못한 채 날마다 모니터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사실은 지금이 중요할 때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주식은 세력이 이탈하면 순식간에 꺾이기 때문이었다.
“장대 음봉만 아니면 가지고 간다!”
구건호는 컴퓨터를 한 대 더 사서 두 개의 모니터로 검색을 하였다. 일봉챠트, 분봉차트, 틱챠트는 모두 창에 띄어놓고 눈에 핏발을 세웠다. 구건호는 눈이 침침해 거울을 보았다.
“눈이 충혈 되어 온통 빨갛다. 실핏줄이 터진 것 같다.”
구건호는 눈을 비비며 오후 3시가 넘어 주식 장이 끝나고 안과병원엘 갔다. 의사가 검안을 하며 물었다.
“눈을 과하게 쓰시면 안 됩니다. 당분간 컴퓨터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하지 마십시오. 실핏줄이 다 터졌네요.”
구건호는 안과병원에서 눈에 전기 찜질기를 대고 찜질을 하면서도 주식 생각만 했다.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 4대강 관련주 추세가 꺾이지 않았는데 큰일이다.”
구건호는 숙소인 오피스텔에 들어가 또 컴퓨터를 켰다.
“의사가 컴퓨터 보지 말라고 했지만 시력이야 잃겠나.”
구건호는 이화공영과 삼목정공의 챠트를 보았다.
“참 가파르게 올라왔네. 잘하면 주당 2만원을 넘기겠다. 과연 그럴까? 나같이 바닥에서 산 사람들은 숫자가 얼마나 될까?”
신문엔 4대강 관련주가 과열되어 지금 사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언론들은 온통 위험을 경고했지만 4대강 관련주식은 또 몇 일간 거침없이 올랐다.
“여기에 돈을 꼴아 박은 놈들은 운명을 MB와 함께 하자는 것이다.”
구건호는 오피스텔에서 밥과 김치, 단무지만 가지고 식사를 해결했다. 밖을 나가면 그 사이에 주식이 꺾일까봐 그랬다.
“이렇게 가파르게 올라온 주식은 세력이탈 조짐만 보이면 너도 나도 던지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 단 5분 사이에 장대 음봉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순식간에 벌었던 돈이 빠져 나간다.”
구건호는 눈에 연신 안약을 넣어가며 모니터를 보았다.
눈에 통증까지 있어 잠시 침대에 들어 누운 어느 날 이었다. TV뉴스만 켜놓고 화면은 보지 않은 채 볼륨만 높이고 있었는데 태안 앞바다에 유조선 충돌로 기름 유출사고가 크게 터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구건호는 벌떡 일어났다.
“뭐? 바다에 기름 유출? 그것도 대형사고? 그렇다면 강물도 이런 사고가 나면 온통 기름천지가 될 것 아닌가? 4대강 관련주 악재다!”
구건호는 필시 내일 아침이면 세력들이 서로 던지고 나갈 것으로 보았다. 벌만큼 벌었으니 기름 유출사고를 핑계 삼아 이탈할 것이 뻔했다.
“세력들은 내일 장이 열리기전 시간외로 나간다. 틀림없다!”
구건호는 내일 주식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가 아니라 그 이전 아침 8시 30분부터 세력들은 4대강 관련 주식을 서로 던지기 시작할 것으로 보았다.
구건호는 잠이 오지 않았다. 깜박하여 늦잠을 잔다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었다.
“세력들이 모두 던져 하한가를 맞는다면 매수자 실종이라 팔아먹지도 못하고 몇 일 하한가 맞는다!”
구건호는 눈에 쏟아지는 통증을 참아가며 밤을 세웠다. 밤은 길기도 하였다. 의자에 앉은 채 졸기도 하고 깨기도 하면서 아침을 맞았다. 컴퓨터 모니터를 켰다.
“오전 8시 30분이다.”
예감은 맞았다. 세력들은 시간외거래 시작과 동시에 4대강 주식을 던지기 시작했다. 모니터가 불을 뿜었다.
구건호도 정신없이 던지기 시작했다. 주식 수량이 많다보니 잘 걸리지도 않았고 팔자주문 가격도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화공영은 25,000원까지 갔던 주식이 24,000원, 23,000원으로 점점 낙하하였다.
“이런 키보드를 잘못 눌렀네. 정정주문이다!”
구건호는 당황하여 자판을 잘못 누르기도 하였다. 세력들이 주식을 던지는 속도는 선풍기 바람 돌아가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구건호가 주식을 다 던지고 나자 이화공영과 삼목정공은 하한가를 맞았다.
“악!”
눈에 엄청난 통증이 왓다. 눈을 싸맨 채 손익추정 창을 띄었다.
“현재 예수금 198억! 보유주식 0.”
구건호는 11억 원을 집어넣고 198억 원을 번 것이다.
“이제 모든 싸움은 끝났다!”
구건호는 맥이 탁 풀렸다. 두 대의 컴퓨터 모니터를 끄지도 않고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책상 바닥에 쓰러져 혼절 했다.
구건호는 컴퓨터 앞에서 쓰러진 채 잠이 들었다가 오후 4시가 되어서 일어났다.
구건호는 세면대로 달려가 얼굴을 씻고 거울을 보았다.
“눈이 충혈된 것은 그대로인데 통증은 많이 가셨다.”
한참을 자고나서 긴장도 풀리자 통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라앉았다. 구건호는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네.”
구건호는 영등포 시장부근에 있는 일식집으로 달려가 초밥을 시켜 먹었다. 오래간만에 술도 한 병 시켰다.
“198억! 내 돈 198억. 킥킥킥. 인생은 참 오묘해. 돈이 없어 마음껏 기 한번 펴고 살지 못하다가 198억을 벌었으니 인생은 참으로 오묘하지 않은가. 크크크.”
구건호는 술잔에 술을 따랐다.
“198억이 얼마인가? 내가 매월 1,000만원씩 쓴다고 해도 1년이면 1억 2천이다. 165년간 쓸수 있는 돈이다.”
구건호는 주위의 고마운 사람들한테 술도 한잔 사고 부모님 집이라도 우선 사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먼저 친구도 없는 나에게 말동무를 해준 후배 박종석이게 크게 한잔 사자. 경리단길 이석호, 그놈도 마음이 잘 안 들었던 놈인데 그래도 그놈 덕분에 노량진에서 쌀국수집도 하고 중국서 돈 벌어가지고 나왔으니 그놈도 한잔 사자. 그리고 더 살 사람 없나? 제기랄! 내가 이렇게 인간관계가 좁았었나.”
구건호는 청하 한 병을 더 시켰다. 흰 가운을 입은 주방장이 술을 주면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겠어요? 손님! 왼쪽 눈이 많이 부으신 것 같은데요?.”
“같이 한잔 하실래요?"
구건호는 투명한 잔에 맑은 청하를 따라 주방장에게 주었다.
“고맙습니다.”
술을 한잔 받아 마신 주방장은 서비스로 참치 회 한 덩어리를 구건호 앞에 내밀었다.
구건호는 두 번째 술병의 술을 마시며 또 신세진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렇지. 청담동 이회장님. 따지고 보면 그분한테는 큰 은혜를 입은 셈이지. 그런데 연세가 너무 높아 내가 술 한 잔 대접한다면 나올까? 강남 박도사! 그 양반도 대접할까? 내가 35세에 부자가 된다고 했는데 이제 12월 31일도 얼마 안 남았으니 맞긴 맞았네. 그 양반에게도 술 한 잔 올리고 싶다.”
구건호는 또 한잔했다. 술이 잘 받았다.
“부모님 집은 지금 사기 어렵겠지? 한 겨울이니 말이야. 음력설 지나서 바로 집을 내 놓으라고 해야겠다. 설 지나면 바로 이사철이 되니 잘 되었다.”
구건호는 자기의 장래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부자가 되었으니 기업을 해야 되겠지. 공장에 다닌 경험이 많으니 공장을 하나 할까?”
구건호는 일식집을 나와 영등포 거리를 헤매었다. 상점 간판에 빛나는 네온사인은 축복의 불빛 같았다.
해가 바뀌었다.
소한 대한이 지나고 약간 날이 풀리자 구건호는 인천 주안에 있는 집을 찾았다. 눈도 그동안 다 나아 있었다.
“어? 너, 음력설에 온다더니 웬일이냐?”
엄마가 반겼는데 엄마의 왼쪽 눈이 딸기처럼 뻘겋게 부어 있었다. 자기가 얼마 전에 앓았던 눈병보다 훨씬 더 심했다. 눈도 반쯤 감겨 있었다. 구건호는 깜짝 놀랐다.
“눈이 왜 그래요?”
“응?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아빠가 방문을 빼꼼히 열었다. 누님의 딸인 정아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다.
“건호 왔냐? 내가 허리가 아파 못 일어난다. 엄마 눈이 그런 것은 맞아서 그렇다.”
“맞아요?”
“응, 요양원에서 치매노인 돌보다가 맞은 모양이야.”
“요양원 이제 당장 그만 두세요!”
“그만두긴! 치매 노인이 의식도 없이 한 짓 가지고 탓할 수 있나!”
“정아 엄마는 어디 가고 정아만 있어요?”
“정아 엄마 요즘 일 나간다. 그래서 여기 맡겼어.”
“어딜 다니는데요?”
“종이컵 만드는 공장에서 일해. 좀 늦게 와. 에효, 걔도 정아 아빠 때문에 고생이 많다.”
“정아 아빠는 왜요?”
“정아 아빠도 요즘 일감이 없어 노가다 뛰고 있다. 쓸데없는 사업은 해가지고 왜 그 고생들인지 모르겠다. 다니던 공장이나 잘 다니지 사업은 해가지고 빚만 졌으니. 에효.”
엄마는 한쪽 눈만 뜨고 된장찌개를 잘 끓여 왔다.
구건호는 맛있게 먹고 엄마와 아빠를 불렀다.
“의논 할 것이 있어요.”
“뭔데? 뭔데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냐? 너도 빚졌냐? 빚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철렁한다.”
“구정이 얼마나 남았지요?”
“20일 남았을 거다.”
“구정 지나면 내가 집을 하나 사드릴 테니 여기 집 내놓으세요.”
“얘가 지금 무슨 소리야?”
엄마와 아빠는 의심에 찬 눈초리로 구건호를 바라보았다.
“저, 중국 갔다 온 거 아시죠? 사실은 그때 중국에서 돈 좀 벌었어요. 집을 하나 사 드릴게요. 여기는 매월 월세가 나가니 부담 되잖아요.”
“우린, 여기가 좋은데.”
“서울에 집을 하나 사려는데 가시겠어요?”
“서울은 싫다. 친구도 없고 삭막해서.”
“그럼 여기 구월동은 어때요? 엄마가 늘 그랬잖아요. 구월동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전생에 무슨 복을 타고 난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말이에요. 시청이 있는 구월동 쪽에 아파트 한 채 사 드릴게요. 생활비도 드릴 테니 요양원도 그만 나가시고요.”
“얘가 지금 정신 나간 소리 하네. 거기 아파트가 한 두 푼인 줄 알아? 3억이야, 3억. 너희 고모도 거기 30평찌리 살다가 집 줄이고 만수동 주공아파트로 갔어.”
“시청 옆에 새로 지은 힐스테이트 아파트 어때요?”
“아이구,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말고 밥 먹었으면 여기서 자고 가든지 서울로 가든지 해라.”
엄마와 아빠는 구건호가 하는 소리를 농담으로 들었다.
구건호가 약간 언성을 높였다.
“저, 진담으로 하는 소리예요. 돈 벌었어요.”
엄마와 아빠는 두 눈을 뜨고 반신반의 한 채 구건호를 쳐다보기만 했다. 구건호는 엄마의 반쯤 열린 부은 눈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고생 많으셨어요. 집 옮겨 드릴게요.”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아파트를 사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럼 이 집은 바로 내 놓으시면 돼요. 정아도 와 있고 하니 45평짜리 사 드릴게요.”
“허.”
아빠는 입만 벌리고 아무 소리 못했다. 엄마는 정신을 수습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집문서 가지고 오기 전엔 못 믿겠다. 45평이면 인천 바닥에선 부자들이 산다. 가격만 해도 4억이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설사 네가 돈 있다 하드라도 그런 집 못 들어간다.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한다. 그런 집은 관리비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하하, 알겠어요. 그리 아시고 저는 오늘 이만 가볼게요. 된장찌개 잘 먹었어요.”
구건호가 일어서자 엄마도 일어났다. 아빠도 허리를 구부린 채 간신히 일어났다.
“참, 전에 엄마 마을금고에서 천만 원 빌린 건 다 갚았어요?”
“그건 왜 묻냐? 원금과 이자를 같이 갚아나가고 있으니 한 600만원 남은 것 같다.”
구건호는 안 포켓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사 가기 전에 그 돈 갚으세요. 이거 천만 원이에요. 600만원 갚고 400은 보약 사서 드세요.”
“천만 원?”
“엄마와 아빠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