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한국에서의 새출발 (2)
구건호는 과거 공돌이 생활로 모은 돈과 햇살론 융자 받은 돈 1천만 원을 합하여 주식투자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이때 6개월 이상 투자했지만 결국 돈을 몽땅 날리고 햇살론 빚만 지게 되어 빚 갚느라고 30대 초반의 세월을 다 날려 보냈었다.
“그때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데.”
구건호는 한숨을 쉬었다.
구건호는 그 후 아산 둔포의 와이에스 테크 다닐 때 공금으로 인선이엔티라는 폐기물 처리업체에 투자하여 뜻밖에도 5억 2천이란 돈을 모았었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이 때 번 돈을 가지고 지금의 종자돈을 만들었지. 노량진에서 시작한 베트남 쌀국수집은 재미를 못 보았지만 중국의 부동산 투자는 나름대로 성공을 했지.”
구건호는 인선이엔티 주식 투자 당시를 회상했다.
“나 같은 개미가 기업정보를 알 수 있나. 낚시터에서 만난 청담동 이회장이 폐기물 업체가 각광 받을 것이란 소리에 확신을 하고 투자한 것뿐이었지.”
구건호는 스틸산업에 대한 장래보다는 챠트와 거래량 분석에 의한 단기성과에 급급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후-, 아직 나는 멀었어. 큰손이 되려면 멀었어. 청담동 이회장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네도 확실한 패가 없으면 주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 않은가!”
그리고 보니 이회장을 보고 싶어졌다.
“중국에서 나와 그동안 경황이 없어 그 양반한테 인사도 못 갔네. 따지고 보면 내가 경리 실무를 배우고 인선이엔티라는 회사에 투자 했던 것도 그 양반과의 인연 때문이 아니었는가!”
구건호는 후배 박종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여러 번 울린 후에 박종석이 전화를 받았다.
“뭐하냐? 전화도 안 받고!”
“어, 형. 요즘 경매학원 다닌다고 했지? 잘 다녀?”
“잘 다녀. 너 낚시터는 계속 다니냐?”
“요즘 잘 안다녀. 우리 팀장이 등산을 좋아해 거기 같이 다녀. 따까리 해야지.”
“그럼 이회장님도 못 뵈었겠구나.”
“응, 못 봤어.”
“이번 일요일 낚시 안 갈래?”
“이번 일요일? 좀 봐야 돼. 공장 기계설비가 들어온다고 해서 스탠바이 중이야. 내가 내일 연락해 줄게.”
그래, 가급적 같이 가도록 하자.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
“형, 차 샀어?”
“아직, 안 샀어. 렌트카 하루 빌리지 뭐.”
“지하철 타고 와. 내가 마중 나갈게.”
“낚시대 들고 지하철을 어떻게 타냐. 렌트카 빌려서 가지. 그 정도 재력은 다 있어,”
“알았어. 연락 줄게.”
박종석은 다행히 일요일 시간을 내었다.
목련꽃이 활짝 핀 봄이었다. 중국의 날씨는 음침했지만 한국의 봄은 정말 포근하고 화창했다. 박종석과 구건호는 포천의 낚시터에서 만났다.
“반갑다. 종석아!”
“형, 경매학원은 다 끝났어?”
“아니, 아직.”
“빨리 끝내고 부동산계의 거물로 등장해야 할 텐데.”
“까불지 마라. 가지고 있는 게 많아야 거물이 되지.”
“경매로 이곳 포천 땅 잡아봐. 요즘 공장이 잘 안되어 넘어가는 물건들이 많다고 들었어.”
“하하, 공장이 뭐 한 두 푼이냐. 나는 연립주택이나 한번 손댈까 해.”
“오늘은 청담동 이회장님 안 나오셨네. 권부장도 안보이고.”
“요즈음도 권부장이 이회장 모시고 다니냐? 그 군인 출신이라는 사람 말이야. 대령 출신이었다고 그랬나?””
“아, 그 사람? 아직도 있어. 하하, 그런데 그 사람 대령 출신은 아니고 소령출신이야. 이회장이 장난으로 뻥치느라고 다른 사람들한테 가끔 대령출신이라고 하지.”
“어쩐지, 나이 하고 안 맞더라. 사람은 충직하게 보였는데.”
“응, 말이 별로 없어. 작년에 만났을 때 권부장은 이회장이 친척이 된다고 했어. 5촌 당숙이래. 학창 시절부터 이회장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더군.”
“그런가?”
구건호와 박종석은 낚시를 하며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했다. 박종석은 자주 돌아다녀서 그런지 인천이나 학교를 다녔던 부천에 있던 사람들의 정보를 많이 알았다.
“넌 참 정보통이다. 오지랖도 넓기도 하고!”
“형하곤 성격이 달라서 그래. 형은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잘 안돌아 다녔잖아. 형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형 집에 가면 형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우리 건호는 암사내라 통 안 돌아다니고 만화책이나 빌려다 본다고 했어.”
“하하, 그랬던가? 모처럼 만났으니 회나 실컷 사주마. 오다보니 의정부 민락동 근처에 큰 횟집이 하나 있더라. 주차하기도 편한 것 같으니 그리로 가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 가자!”
구건호는 이회장을 못 만난 것이 좀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주 일요일 또 낚시터를 가기로 했다.
“종석이를 자주 불러내기도 미안하니 오늘은 혼자 가자. 종석이도 회사에서 계장이 되었으니 회사 사람들하고 자주 어울려야 되겠지.”
구건호는 렌트카를 빌렸다.
“낚시터 가기전에 광화문 교보문고나 들릴까? ‘권력이동’과 ‘부의 원천’이란 책이나 사 보자. 어차피 주식은 큐엠테크에 물려있으니 책이나 보면서 마음이나 추스르자.”
구건호는 렌트카를 끌고 포천 낚시터를 가다가 잠깐 교보 문고에 들려 책을 샀다. 책을 사고 나오다가 길이 막혔다.
“어이쿠, 웬 길이 이렇게 막혀. 전경이 깔린걸 보니 데모하나?”
구건호가 창 밖으로 목을 빼어 보았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
“환경 파괴의 주범 4대강 사업이 웬 말이냐!”
“이명박은 물러가라!”
구건호가 한국으로 돌아 온 그 해는 대통령 선거가 한참 달아오를 때였다. 이명박 후보가 4대강 사업을 들고 나오자 반대편에서 공격을 했다. 환경단체에서도 프랑카드를 들고 쏟아져 나왔다.
대모데는 확성기로 구호를 부르짖고 경찰들은 방패를 들고 막고 있었다.
“난, 데모는 영 취미없어. 빨리 빠져 나가자!”
구건호는 한국에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데모같은 것을 해보지 못했다. 사이버대학을 다녀 캠퍼스의 낭만 같은 것도 없었다, 뒤늦게 중국에서 절강대학을 다녔지만 늙은 대학생이라 나이 어린 유학생들 하고 어울리지도 못했다.
“선거 끝날때까지 당분간 시끄럽겠네.”
구건호는 강변도로를 타지 못하고 돈암동의 미아리 고개를 넘어 쌍문동을 지나 의정부를 거쳐 포천으로 왔다.
“여기는 고요한 천국이구나. 세상은 시끄럽지만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 내 마음도 고요해 진다.”
구건호는 낚시대를 들고 둑 아래로 내려왔다.
쾌청한 날씨에 호수 위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두 사람이 낚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회장 같았다. 구건호가 다가가니 정말 이회장과 권부장이었다.
사람 인기척에 낚시하던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 젊은이는 구건호씨 아니신가?”
“아이고,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권부장님도 안녕하세요?”
권부장도 일어나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 중국에 갔다더니 아주 들어오신 건가?”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
“중국에선 재미 좀 보았나? 한식당한다고 했었지. 아마.”
“네, 식당하고 부동산 투자 좀 했었습니다.”
“흠... 식당은 잘 모르겠지만 부동산 투자는 재미 좀 보았겠는데?”
“예? 아, 예. 약간....”
“허허, 그래? 그럼 한국에선 무얼 하실 셈이신가?”
“아직 계획은 없고 경매학원에 다닙니다. 경매 좀 배우려고요.”
“중국 부동산 투자를 하다 보니 아주 경매까지 익히려는 모양이네. 안 그런가? 권대령.”
권부장은 이회장이 권대령이라고 부르자 펄쩍 뛰었다.
“아이고 아저씨, 아니, 회장님. 자꾸 남들 앞에서 권대령이라고 하지 마세요. 진짜인줄 알겠어요.”
“지금까지 그대로 군에 있었다면 대령 안 되었겠나?”
“아이고, 소령에서 벌써 제대했는데요. 쑥스러우니 그만하세요.”
“하하, 그런가? 그런데 구건호 군은 오늘 좀 늦게 왔네. 어디 먼데 사나?”
“오다가 광화문에서 데모대를 만나 차가 막혔어요. 4대강 반대 데모가 심하던데요?”
“4대강이라...”
이회장은 낚시대를 걷어 올리며 찌에 떡밥을 갈아주었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돈 버는 놈들 또 쏟아져 나오겠구먼.”
“예?”
“아닐세. 혼자 이야기네. 그런데 후배라는 젊은이 한사람은 같이 안 왔나?”
“예, 회사 일이 바빠서 못 왔습니다.”
“하긴 직장에 있는 사람은 오늘 같은 평일엔 못 오겠지.”
이회장이 낚시줄을 당겼다. 붕어 한 마리가 파닥거리며 올라왔다.
“손맛은 붕어가 좋아.”
옆에 있는 권부장도 고기를 한 마리 잡았다. 메기처럼 생긴 이상한 고기였다.
“오늘은 제법 물리는군.”
이회장과 권부장이 낚시 떡밥을 갈아주었다.
구건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뭉기적거렸다. 이회장한테 무언가 한수를 배우고 싶었다. 낚시가 아닌 돈 버는 방법을 말이다. 뭉기적거리는 구건호를 보고 이회장이 먼저 말을 걸었다.
“그래, 경매학원에 다니면서 아예 부동산 투자자로 나설 셈인가?”
“아직은 자금력이 약해서요. 낮엔 주식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주식? 주식은 하지 않는 게 좋네. 확실한 패를 모르지 않는가? 증권가에 나도는 정보조차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이 난무하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놀음이지.”
“헤헤, 그렇지 않아도 손해보고 있습니다. 다행히 많이 하지는 않고 조금만 재미삼아 해 보았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확실한 패가 아니면 손대지 말게. 돈이란 손해만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잘못하면 목숨까지 잃네.”
“예?”
“여기 권부장도 주식으로 거덜 난 사람이네. 소령 제대하고 주식에 손댔다가 집 잃고 건강까지 엉망이 되었던 적이 있던 사람이네.”
권부장이 쑥스러운 듯이 뒤통수를 긁었다.
“다행히 현명한 아내를 만나 살았지. 안 그런가?”
권부장이 그렇다는 긍정의 표현으로 고개를 두 번 숙였다.
“그런데 회장님. 아까 4대강 반대 데모가 있다고 말씀드리니까 돈 버는 사람 쏟아져 나온다는 이야기는 무슨 뜻입니까?”
이회장이 고개를 돌려 구건호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낸들 알 수 있나? 그냥 추측일 뿐이네.”
“어떤 추측이신지?”
이번에는 권부장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권부장도 이회장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MB가 당선이 확실할 것 같은가? 아닌가?”
“현재 가장 유력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MB가 당선되면 4대강 사업을 하겠나? 안 하겠나?”
“그, 그야 하겠지요. 공약이니까요.”
“그럼 4대강 사업을 하게 되면 누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될까?”
“그, 그건. 글쎄요.”
“답은 거기에 있네. 당선이라는 확실한 패를 읽을 수 있다면 말이네.”
구건호는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했다. 하지만 의심도 들었다.
“당선이 안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선거란 변수가 많으니까요.”
“그걸세. 현자와 바보는 패를 읽을 줄 아는 능력에 달렸네.”
“아, 예.”
“돈을 버는 사람은 사회가 혼란스럽거나 절망에 빠질 때를 오히려 기회로 삼지. 전쟁이 나면 돈 버는 사람이 있고, IMF로 모든 사람들이 어려울 때 오히려 돈 버는 사람이 있듯이 말일세.”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회장이 더 이상 말이 없자 구건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으신 말씀 고맙습니다. 저는 저쪽으로 가서 낚시를 즐기겠습니다.”
“호수 위에서 고기만 낚지 말고 호심(湖心)도 낚아보시게나. 하하.”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이회장에게 새로운 화두를 하나 선사받고 물러갔다.
구건호는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큐엠스틸을 공략한건 확실한 패는 아니었지. 다만 주가 차트가 근사해 들어갔다가 물린 거지.”
다음날 큐엠스틸의 공시 내용이 떴다, 상장폐지로 결정이 났다는 공시였다. 각 증권사이트의 토론장에서는 큐엠스틸의 경영자를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구건호는 오히려 담담했다.
“큐엠스틸의 정보를 아는 놈들이 주가를 막판에 올렸다가 패대기쳤지. 나는 그것을 모를 수밖에... 그냥 개미니까.”
구건호는 쓴 웃음을 웃었다.
“이건 나의 경솔함의 결과야. 호심을 낚지 않고 고기만 잡으려다 호수에 빠진 격이지.”
정리매매는 일주일간이었다. 투기꾼들은 정리매매기간에도 갖은 술수를 다 부렸다. 10분의 1로 줄어진 주가를 사정없이 끌어 올렸다가 패대기치고, 어떤 때는 사정없이 눌렀다가 크게 띄우기도 했다.
“정리매매 기간에도 돈 버는 놈이 나오고 있네. 거 참.”
구건호는 정보가 없으므로 무조건 현시가로 던졌다. 3천만 원을 투자하여 3백만 원을 건졌다.
“빚내서 큐엠스틸에 들어간 사람은 자살자도 나오겠군.”
구건호는 주식거래를 중단하고 머리도 식힐 겸 이태원의 경리단길 동창을 찾아갔다.
“이석호! 오래간만이내. 장사 잘돼?”
“오, 구건호구나. 한국 나왔으면 술 한 잔 해야지. 여기 앉아라.”
"같이 앉자."
“어떻게 지내나? 뭐 시작했나?”
“아직 안했어, 그냥 부동산 경매하는 것 배우고 있어.”
“그래? 참, 강민호 알지?”
“강민호? 아, 영어 잘했던 친구!”
“맞아, 걔가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서 금상도 받고 그랬지. 걔가 이따 우리 집에 와. 너 한번 같이 만나자.”
“걔는 뭐하는데?”
“걔가 중앙대학 졸업 후 지금 시민단체에 나가고 있어.”
“시민단체?”
“장래 정치에 뜻을 두는 모양이야.”
“그래? 학교 다닐 때 워낙 똑똑한 친구였으니까. 뭔가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