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59화 (59/501)

# 59

중국대학 편입 (2)

(59)

볼링장은 의외로 넓고 좋았다.

밖은 더워서 동네 노인들은 웃통을 벗고 부채질을 했다. 장사하는 사람들, 학생들, 공사장 인부들은 땀을 줄줄 흘렸지만 보링장 안은 별천지였다. 에어컨이 빵빵 나왔다.

“어, 쥐쫑(具總: 구 사장), 이쪽이요! 이쪽!”

공상은행 지점장과 여자 은행원들은 미리 와서 볼링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10개의 핀을 다 쓰러트리는 스트라이크가 나오면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잘 치네요.”

구건호가 이렇게 말하면서 다가왔다. 사실 구건호는 볼링을 쳐보지 못했다. 한국에선 볼링장이 있긴 있지만 보편화되지는 못하였다. 볼링 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구건호는 은행원들이 치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세 발자국 떼고 공을 던지는데 별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쥐쫑도 한번 쳐보시지요.”

구건호는 카운터에서 볼링화를 빌려와 신고 공을 던졌다. 공은 제대로 구르지 못하고 라인 밖으로 나갔다. 은행원들이 까르르 웃었다. 지점장도 웃으며 말했다.

“한국인들은 볼링보다는 골프를 많이 치지요. 언제 한번 쥐쫑한테 골프를 배울까요?”

“아, 그, 저저.”

구건호는 한국에서 골프채를 만져 보지도 못하였다. 골프 치는 사람들은 딴 세상에서 노는 사람들로 여겼다. 지점장이 골프를 배워달라니 난감했다. 얼른 말을 돌렸다.

“볼링을 잘 못 치니 음료수를 사지요.”

구건호는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등을 사가지고 왔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지점장이 구건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무슨 축하요?”

“오늘 화강화원 아파트 시공사 사장하고 통화했습니다. 분양이 모두 끝나고 1년이 지나니까 화강화원 아파트에 프레미엄이 꽤 붙었다고 하는군요.

“아, 그래요? 중국의 경제성장율 정도는 올라갔겠지요?”

“그건 중국 전체 부동산의 평균을 말하는 것이지요. 화강화원 같은 곳은 위치가 좋아 더 많이 올라간다고 봐야지요. 벌써 20%는 더 붙었다고 하던데요?”

“아, 그래요?”

구건호는 계산을 해 보았다.

“4억 원을 인민폐로 바꾸어 투자했는데 20%면 8천만 원 올라갔겠네. 역시 돈이 돈을 벌어.”

은행원들이 수근 댔다.

“지금 지점장님 하고 한국인 사장하고 무슨 이야기야?”

“화강화원 아파트 값이 올라갔데.”

“흥, 고급아파트만 올라가네. 화강화원 같은 곳은 우린 평생 월급 모아도 못 들어가지.”

“그런 고급아파트가 폭등하는 건 부자들만의 리그야. 우리 같은 서민들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 에이! 볼링이나 치자!“

여자 행원들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배가 아픈지 담배들을 피워 물었다. 볼링장 안은 넓고 천장도 높아 마음대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공을 이렇게 잡고 던져보세요.”

지점장은 구건호에게 다가와 간간히 볼링 치는 법을 알려주었다. 지점장은 더 바싹 다가왔다.

“쥐쫑, 부동산 한번 갈아타실 의향 없으십니까?”

지점장이 오늘 볼링이나 치자고 한 것은 이 말을 위해서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 어떤 부동산을요?”

“난산루(南山路)에 짓다만 초대소(한국의 모텔 같은 곳) 건물이 있습니다. 화강화원 아파트 2채를 팔면 인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짓다만 건물이라고 했지요? 그럼 인수를 하더라도 완공 때까지는 공사비용이 많이 들어가겠네요.”

“그건 우리가 융자해 드리겠습니다.

“흠...”

“완공만 시키면 한국 관광객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겁니다.”

“글쎄요.”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갑자기 이야기를 들어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나한테 돈을 대준 한국에 계신분과 의논을 하겠습니다.”

“의논을 해 보십시오. 후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난산루 병원 바로 옆 건물입니다. 가시다 보면 대로변이라 바로 보이실 겁니다.”

구건호는 혼자 고민해 보았다.

“초대소를 인수한다.... 초대소라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꼭 북한 사람들 초대소가 생각나네. 아파트는 매월 월세가 나오고 있지만 초대소 건물은 완공 때까지는 월세가 안 나오니 그것도 문제네. 지금 렌트카 비용도 나가고 있는데.”

구건호는 아파트가 20% 올라서 기분은 좋은데 난데없이 짓다만 초대소를 인수하라니 난감했다.

“이런 문제를 누구와 상의하지? 옳지. 우리 한식당 카운터 보는 딩링의 언니에게 물어보자. 딩링 언니는 만도호텔 지배인 아닌가.”

딩링의 언니는 반대했다.

“그 건물 주인이 자주 바뀌었어요. 5백만 위안에 인수한다고 해도 건물 완공까지는 3백만 위안이 더 들어갈 거예요. 자기 돈 가지고 하면 모를까 3백만 위안씩이나 대출받아 하면 위험해요. 우선 당장 완공 때까지는 이자가 나갈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겠네요.”

“더군다나 한국관광객이 팍팍 늘어나는 것도 아니에요. 3, 4년 전만 하더라도 많이 늘어났지만 지금은 주춤 하잖아요. 그리고 관광객들 초대소에 잘 안잡니다. 기왕 해외에 나온 이상 호텔을 이용하려고 하지요. 그리고 짓다만 건물이라 권리 관계도 복잡할 겁니다.”

구건호는 딩링 언니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역시 호텔업계에 오래 계셨든 분이라 정확하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구건호는 공상은행 지점장에게 초대소 건물 인수는 포기하겠다고 했다.

“서울에 계신 투자자가 그냥 아파트만 갖고 있겠다고 했습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돈 갖고 계신분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하하. 미안해하실 것은 없습니다. 아파트가 20% 올라갔으니 혹시 사업을 하시다가 돈이 필요하시면 추가 대출을 해 드리지요.”

이 말에 청담동 이회장이 생각났다.

“이회장은 IMF때 250억 주고 산 건물이 나중에 2천억으로 폭등하여 은행에서 1천억을 융자 받았다고 했지. 그리고 그 융자금으로 제지회사와 꼬마빌딩을 더 매입했다고 했어. 완전히 돈의 마술이야. 지금 중국은 IMF가 아니니 건물이 싸게 나온 것은 아닐 거야. 아파트 20% 오른 것으로 만족하자.”

구건호는 이렇게 생각하고 학교 공부에 충실하기로 했다.

“한식당은 내가 사장이라 직접적 노동은 안하지만 학교를 다니니 피곤은 해. 읽어야할 책이 너무 많아. 사실 따라가는 것도 벅차.”

구건호는 겨우 과락을 면하면서 공부를 이어갔다. 4학년이 되었다. 미국에서 예일 대학 교수를 했다는 젊은 교수가 부임해 왔다.

“저 젊은 교수는 나이가 나하고 비슷하네. 저 교수가 교수들 중에서 제일 어리고 학생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나이가 많네. 씨팔.”

젊은 교수는 재무관리를 강의했다. 처음 그가 부임했을 때 학교 관계자는 이렇게 소개했다.

“새로 오신 교수님은 성함이 왕지엔(王建)입니다. 이곳 항주시 출신이지요.”

“왕지엔? 한국말로 하면 왕건이란 말이지. 고려 태조 왕건하고 이름이 똑같네.”

“왕교수는 대학입학 예비고사(高考)를 항주시 전체에서 일등을 하신 수재입니다. 북경대를 나오시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와, 스펙 짱이네.”

구건호는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벌써 미국 아이비리그 교수까지 했는데 자기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구건호는 이때까지만 해도 왕지엔과 일생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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