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57화 (5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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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상은행 지점장 (3)

(57)

중국은 아파트를 팔 때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분양한다. 인테리어는 입주자의 취향에 맡게 얼마든지 변형해서 할 수 있다.

구건호는 인테리어는 가급적 최고급으로 주문을 했다.

구건호는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하는 곳을 보기 위해 자주 화강화원을 찾았다. 갈 때마다 자전거 타고 가기도 창피하고 택시도 잘 안 잡힐 때가 있어서 승용차를 렌트했다. 차는 이 도시에서 자주 보이는 아우디로 정했다.

“아우디 중고차인데 쓸 만하네. 6만키로밖에 안 뛰었으니 탈만 하지. 뭐. 한식당을 운영하는 만도 식품유한공사 명의니까 렌트료는 세액 공제도 받는다니 잘 됐네.”

구건호가 아우디를 타고 화강화원을 가니 이번엔 경비원이 통제하지 않았다. 구건호는 추석이 다가오자 경비원에게 수고한다면서 100위안(한국돈 1만 2천원)을 쥐어주었다. 경비원이 크게 놀랐다.

“혹시 한국인 사장님 아니세요?”

“맞습니다. 허허.”

100위안의 효력은 컸다. 경비원은 이때부터 구건호가 가면 칼같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경례를 멋있게 하네요. 인민해방군 출신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번에 제대했습니다.”

구건호는 수영장이 있는 방3개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아우디를 타고 다니고 호텔 한식당을 운영하니 현지 한인사회에서 잘나가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놈들아, 식당만 해가지고는 나처럼 못산다. 아파트 두 채 월세 나올 것이 있어 그렇지.”

구건호가 사놓은 화강화원 아파트 두 채는 인테리어가 다 되었다. 구건호는 아파를 월세로 세 놓았다. 새 아파트라 그런지 월세는 내놓기가 무섭게 나갔다. 월세는 5천 위안씩을 받기로 했다.

두 채니까 임대료 수입이 월 1만 위안이 되는 셈이다. 당시 중국 대졸 신입사원들 급여가 3천 위안이 못되므로 중국인들에게는 큰 액수였다.

“한 채는 외국 합작병원 원장인 홍콩인이 임대했고 한 채는 독일인 제약회사 사장이 임대했다. 월세 받는 데는 지장이 없겠다.”

구건호는 공상은행 지점장에게 전화를 했다.

“아파트 인테리어는 다되었고 임대도 다 되었습니다. 협조 많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혹시라도 자금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우린 친구 아닙니까? 하하.”

구건호는 계산을 해보았다.

월세 1만 위안에서 공상은행 대출 이자와 아우디 렌트카 비용을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제 올라갈 때만 기다리자. 한 3년만 기다려 보자. 돈이 돈을 번다. 내가 화성과 포천, 양주에서 공돌이 생활했지만 그곳의 아파트가 천만 원 올라갈 때 서울 강남 아파트는 1억 원이 올라가지 않았는가!”

구건호는 아파트를 사놓고는 중국어 공부를 무섭게 하기 시작했다.

“한국서는 너무 고민이 많아 공부가 안되었는데 여기서는 잘되네.”

구건호는 가정교사 조은화에게 오전 교육받은 것을 집에 가서 복습했다. 120평방미터(36평)짜리 아파트에 혼자 사니까 목청껏 소리 내어 발음 연습을 했다. 이렇게 또 몇 달이 지났다.

주방아줌마들이 수군댔다.

“쥐쫑 이제 중국어 잘하네요. 우리 하는 말 다 알아듣는 것 같아요.”

“쥐쫑 앞에서 무슨 말 못하겠다. 중국신문도 보던데?”

구건호는 카운터 보는 딩링과도 통역 없이 잘 이야기 했다. 조은화는 어느 날 구건호에게 한어 수평고시인 HSK시험을 보라고 권하였다.

“내가 HSK 볼 자격이 있나요? 중국어 전공자도 아닌데.”

“제가 상해에서 가정교사 할 때 저한테 배운 아줌마는 4개월 만에 5급 땄습니다. 어떤 아저씨는 3년 배웠는데도 2급도 못 땄고요. 모두 자기 하기 나름이야요. 쥐쫑 실력이면 5급 바라보아도 될 거야요.”

“HSK는 6급이 최고고 다음이 5급인데 그렇게 될까요? 알아보니까 5급 정도 따려면 한국서도 4년제 대학 중국어 학과를 나와야 겨우 딴다고 하는데요.”

“쥐쫑은 중국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보다 못할게 없어요."

“HSK 시험 보려면 한국엘 다녀와야 되나?”

구건호가 혼자 중얼 거리는 소리를 조은화가 들었다.

“HSK는 중국서도 볼 수 있어요. 상해에서 보아도 되요. 제가 한번 알아볼까요?”

구건호는 HSK문제집을 사다가 공부하기 시작했다.

“독해는 한국서 한자 급수시험 3급을 따고 이곳에 와서 1, 2급 공부도 해서 부담이 없는데...아무래도 듣기가 어려워. 그냥 한번 경험삼아 봐?”

그러다가 구건호는 상해까지 왔다 갔다 시간과 경비만 깨지는 것 아닌가 했다.

“조은화한테 중국어 배운지가 얼마나 되었지? 허, 벌써 6개월이 되었네. 한국에서 배운 사람들 보단 그래도 내가 낫겠지? 나는 바로 길거리나 시장에 나가 중국인들에게 배운 걸 써먹었으니 말이야. 그래, 한번 나를 테스트할 겸해서 HSK 시험 보자.”

구건호는 시험 접수를 했다.

접수를 하고 나니 더욱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험 얼마 안 남았네. 일주일 남았다. 미친 듯이 해보자.”

구건호는 머리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수도권에서 학교를 다녔고 가난하다보니 과와 같은 것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지방대를 다니다가 중퇴 후 사이버대학을 졸업했다. 사이버 대학을 졸업한건 부모님 집이 있는 인천이나 서울에 있는 대학을 학사 편입이라도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해 취업을 하려고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었다.

구건호는 넓은 아파트에서 HSK 공부를 하다가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오로지 HSK에만 매달리니 좋아. 옛날 노량진 시절은 참 힘들었지. 알바 후 지친 몸으로 돌아와 공부하기도 힘들었고 공부도 머리속에 잘 안 들어갔지.”

구건호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노량진 공시생일 때 안 해본 알바가 없네. 편의점 알바, 치킨 배달, 노량진 수산시장 얼음 나르기, 심지어 닥트공사 현장에도 따라 다녔었지. 그러니 무슨 공부가 되었겠어. 세월만 죽인거지.”

구건호는 지금을 생각해 보았다.

“고급 아파트 두 채 사 놓았지. 호텔 한식당 사장이 되었지. 아우디 외제 승용차 타고 출퇴근하지. 36평짜리 고급 아파트에 혼자 살지. 중국어 한과목만 공부하지. 거기다가 가정교사까지 있지. 이런데 못할게 뭐 있나?”

구건호는 TV를 틀었다. 중국 드라마를 보았다. 대사 중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았지만 간간히 짧은 대화는 알아들을 수 있어서 재미도 느꼈다.

“한 2, 3년 더 지나면 90% 이상 알아듣겠지?”

구건호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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