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55화 (55/501)

# 55

중국 공상은행 지점장 (1)

(55)

구건호는 한식당에 오전 9시쯤 출근한다.

다른 종업원들은 대개 10시쯤 출근하고 11시30분 정도면 점심 손님 받을 준비를 한다. 노량진에 있을 땐 종업원이 조선족 아줌마 1명이라 이것저것 다했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인건비가 저렴하니까 8명을 채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역할이 있어서 구건호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주방 아줌마들 4명이 있고, 카운터는 딩밍이 있고, 서빙은 김매향과 다른 아가씨 2명이 있으니 그런대로 잘 돌아가네.”

구건호는 늘 빈자리에 앉아 중국 현지 신문을 자주 보았다. 부동산 동정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문장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김매향에게 번역을 시켰다. 구건호의 역할은 하나 더 있었다. 저녁에 한국 상사원이나 현지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오면 접대하는 일이었다. 이것만큼은 중국 종업원들이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오늘은 자전거 타고 서호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서호에서 바오추루(保俶路) 쪽으로 고급 아파트를 많이 짓는 모양인데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

서호 주변에는 역시 관광객들로 붐볐다. 구건호는 신나게 자전거를 몰고 서호 주변을 달렸다.

“와, 저 아파트 단지에는 고급 단독주택들이 많이 있네. 저런 집은 서울 성북동에 있는 집들 하고 비슷하네. 얼마나 할까?”

구건호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길가에서 호떡을 팔면 사먹기도 했다. 생수도 사먹고 과자도 사 먹었다.

“헤헤. 내가 얼마냐고 말하는 중국말을 장사꾼들이 알아듣긴 하네.”

구건호가 서호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후 5시쯤 만도호텔 한식당으로 돌아왔다. 아직 손님들은 없었다. 손님들은 한 두 시간이 더 있어야 오기 시작한다.

“김매향이는 어디 갔나?”

구건호가 홀 안을 돌아보았다. 기둥 뒤쪽 테이블에서 김매향과 왠 여자가 밥을 먹고 있었다.

“어머 쥐쫑 오셨어요? 제 친구야요.”

김매향이 일어나 밥을 먹던 여자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일어나서 구건호에게 인사를 하였다.

“고향 친구야요. 길림대학을 졸업했는데 일자리 찾으러 여기 왔어요.”

“오, 그래요? 식사들 하시지요.”

구건호는 다른 빈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저녁신문 왔나?”

구건호는 저녁 신문을 보았다. 말은 못해도 한문은 약간 아니 큰 글자는 대충 뜻을 이해했다. 모르는 부분은 표시를 해 두었다가 김매향에게 물어보면 되었다. 한참 신문을 보고 있는데 김매향이 쪼르르 구건호에게 왔다.

“저, 쥐쫑. 혹시 푸다오(輔導) 필요하지 않으세요?”

“푸다오?”

“가정교사 말이에요. 중국어 가정교사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저.. 저기 있는 제 친구가 지금 우리 집에 같이 있어요. 취업이 되면 나갈 거야요. 저 친구가 길림대학에서 한어를 전공했어요. 쥐쫑께서 필요하시면 제 친구한테 하루 두 시간씩 중국어 배우면 어떻겠어요? 조선어, 중국어 다 잘해요. 월급은 600위안(한국 돈 7만 2천원)만 줘도 되요.”

“흠...”

“전에 상해에서도 한국 사람한테 푸다오한 경력도 있어요. 잘 가르쳐요.”

“이리 오라고 하시오.”

김매향 친구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구건호 앞으로 왔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는 구건호라고 합니다.”

“조은화(趙恩花)야요. 길림서 왔어요.”

“조선족이시군. 푸다오는 여기 식당에서 해도 되겠어요? 주위가 산만할 텐데.”

“일 없어요. 아무데서나 괜찮아요. 여기 식당은 호텔 식당이라 얼마나 아늑하고 좋아요.”

“시간은 언제가 좋겠습니까?”

“손님 없는 오전이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여기서 하면 어떨까요. 주방 아줌마들이 10시에 출근하니까.”

“좋아요. 찬성 이야요.”

구건호는 다음날부터 조은화에게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조은화는 북방 출신이라 발음이 좋았다.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했고 한국어도 잘 알았다. 구건호는 중국어 실력이 눈에 띠게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조은화가 그래도 선생이라고 숙제를 많이 내주네.”

구건호는 조은화가 내준 숙제를 열심히 했다. 조은화는 회화 책을 다 마스터하자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도 가져와 아예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배우게 했다.

“중국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하면 한자를 3,000자 정도 알아요. 쥐쫑께서도 그렇게 하시면 중국 신문이나 잡지 보는 건 지장 없을 거야요.”

두 달 정도가 지나자 구건호의 귀에 간단한 중국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에 온지 4개월이 지났다.

구건호의 중국 생활은 그런대로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어느새 여름이 되었다. 중국 양자강 이남 지역은 엄청 더웠다. 말 그대로 화로 같았다. 하지만 구건호가 있는 한식당은 호텔 내부에 있어 에어컨이 잘 돌아갔다. 종업원들도 집에 가면 더워서 못살겠다고 식당에 남아서 늦게 퇴근하기도 하였다.

하루는 카운터 보는 딩링이 구건호에게 전화가 왔다고 하였다.

“어디라고 합니까?”

“공상은행이라고 합니다. 쥐쫑을 찾는다고 하는데요?”

구건호는 은행 전화는 자기의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는 못 받을 것 같았다. 김매향을 불렀다.

“한번 받아 봐요.”

김매향이 통역이라고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공상은행 지점장인데 쥐쫑을 한번 만나고 싶다는데요?”

“날? 왜? 언제 만나면 좋겠냐고 해봐요.”

김매향이 다시 통화를 했다.

“내일 12시 서호변에 있는 중국식당 핑후(平湖)주점이 어떠냐고 하네요.”

“만나는 거야 뭐 어렵지 않겠지요. 좋다고 하십시오.”

구건호는 통역 김매향을 데리고 핑후주점으로 나갔다. 지점장을 만나는데 자전거 타고가기가 뭐해서 택시를 타고 갔다.

“앞으로 이런 사람들 만날 때는 렌트카라도 있어야겠는데.”

핑후주점은 상당히 넓었다. 공상은행 예약 손님이라고 하니 치파오를 입은 종업원들이 2층으로 안내했다. 칸막이가 있는 방이었다. 큰 유리창 너머로 시원하게 서호가 다 보였다. 지점장 일행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점장은 40대 후반으로 보였다. 은행원으로 보이는 30대 여성 2명도 함께 와 있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구건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공상은행 장빙차오(張炳朝)라고 합니다.”

구건호는 ‘만도식품 유한공사 총경리’ 명함을 주었다. 같이 온 여행원 2명에게도 주었다. 공상은행 지점장이 명함을 주었다. 명함에 지점장이 아니고 행장(行長)이라고 되어 있었다.

“행장? 은행장이 북경 본사에서 직접 왔단 말인가?”

김매향이 고개를 들고 지점장 명함을 보았다.

“지점장이세요. 중국은 지점장을 행장이라고 해요.”

“아, 그래요?”

구건호는 행장의 뜻을 알고 쓴 웃음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