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54화 (5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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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아파트 (3)

(54)

구건호와 김매향, 부동산 업자가 월세로 내논 집을 구경했다.

집은 정말 넓었다. 방이 3개나 되고 화장실도 2개였다. 인테리어는 촌스러웠지만 책상과 장롱 등이 모두 한색으로 통일을 한 집이었다.

“어머나! 집이 넓고 참 좋아요. 어머나! 화장실도 2개고!”

구건호보다 김매향이 더 좋아했다.

구건호는 집안에서 중국 냄새가 너무 나는 것 같아 하루 정도는 창문을 모두 열어놓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집은 사흘 후에 비워주기로 했다.

구건호는 집을 계약했다. 120평미터짜리 아파트니까 한국 평수로는 36평이나 되었다.

“혼자 살기엔 너무나도 넓은 집이지만 마윈의 기를 좀 받자. 그동안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공부할 때 근처 교회도 가보고 도봉산 도선사에도 가서 부처에게 빌어보았지만 하나도 기도빨이 안 먹혔지 않은가!.

엄마가 대구 팔공산 갓바위 부처에게도 빌었지만 9급 공무원 국가직은 물론 지방직도 모두 떨어졌지 않은가! 세계적 재벌이라는 마윈 선생 기를 좀 받아보자!”

구건호는 집을 보고 나오다가 부동산 업자에게 물었다.

“항주에서 제일 비싼 집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서호가 보이는 곳이 제일 비싸겠지요.”

“거긴 얼마나 하는데요.”

“후빈루(湖濱路)에 새로 지은 집들은 3백만 위안 넘어가는 집들도 있어요.”

3백만 위안이면 한국돈 3억 6천만 원이다.

“흠... 거기가 서울의 강남에 해당되는 모양이구나!”

구건호는 언젠가 그쪽 부동산을 보러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구건호는 거류증 신청을 했다.

영업집조와 여권을 제출하니 신체검사 날자가 잡혔다. 신체검사를 받고 나면 거류증이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운전면허나 부동산 매입등도 가능해진다.

사흘이 지났다. 호반화원 입주 날이 되었다.

구건호는 호반화원에 들어가 집을 대청소 했다. 김매향이 사람을 사서 해도 된다고 하여 사람을 사서 청소했다. 부동산업자는 화장실 변기도 돈만 주면 바꿔준다고 하여 그렇게 했다.

“햐, 침대와 책상을 바꾸니 그럴 듯 해졌다. 여기선 내가 왕이다. 소리 내어 중국어 공부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으니 좋다.”

구건호는 한국에 있는 부모님을 모셔와 같이 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런 집을 한국에서 살려면 수억씩 하겠지? 만날 고시원이나 원룸 쪽방에서 살던 놈이 이렇게 큰 집에서 살아도 보고. 세상 참 오래살고 볼일이다. 하하.”

매월 돈이 2,500위안씩 나가지만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는 마윈이 살았던 1단원 202호실에 가서 그 앞을 왔다 갔다 해 보았다.

“이 집에서 세계적 갑부가 나왔단 말이지? 가끔 와서 기를 받자.”

구건호는 202호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까지 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부처님이시여, 천지신명이시여. 한국인 구건호도 마윈 선생처럼 갑부가 되게 하여주소서.”

이렇게 마음속으로 빌고 오면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구건호는 근사한 자전거도 한 대 샀다.

중국의 자전거는 뒤에 번호판까지 있었다. 자전거 길이 넓고 평지라 먼 거리도 쉽게 갔다. 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쪽팔릴 일도 별로 없었다.

“못가는 데가 없으니 좋아. 자전거 앞에 바구니도 달렸으니 장보기도 좋고.”

구건호는 간판 글씨를 하나씩 알아가니 좋았다.

“챠오스(超市) 저건 슈퍼고, 찬팅(餐廳)은 식당이고 ......”

거리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딩링이 저녁 마감하고 주는 일일 수입금은 은행에 또박 또박 입금을 하였다. 어떤 날은 하루 매상이 3천 위안이 안 될 때도 있어서 속상했지만 구건호의 목적은 딴 데 있어서 그리 큰 걱정은 안했다.

“식당은 현상 유지만 해라.”

김매향과 함께 여행사도 한 바퀴 돌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여기에 오는 한국 관광객들이 한국식당 찾겠어? 중국 왔으니 중국 전통음식 먹고 싶겠지.”

손님들은 오래 항주시에 체류 중인 한국 상사원들과 일본인 유학생, 그리고 호기심 많은 중국인들이었다. 한국 상사원들은 중국음식에 질려서 가끔 만도호텔 한식당을 찾았고 일본인 유학생들은 마땅한 일식집이 없어 한국식당을 찾았다.

구건호는 거류증을 만들기 위해서 신체검사도 받았다.

공안국에서는 거류증 신청서에 있는 주소를 보고 호반화원에 사느냐고 물었다. 호반화원이 평판은 좋은 듯이 보였다.

한국 유학생들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호텔 식당에 자주 못 오지만 상사원들은 자주 왔다. 구건호는 이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여긴 사장이 바뀌었네? 젊은 분이 오셨네.”

“잘 부탁합니다. 구건호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집 한국 음식 맛이 좀 안나요. 주방장을 한국에서 데려올 생각 없어요?”

“인건비 때문에 당장은 어렵지만 앞으로 장사가 잘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언제나 정중하게 인사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상사원들은 술을 마시다가 가끔은 구건호에게 술을 권하기도 하였다.

“사장님도 한잔 합시다. 다 같이 객지에서 외로울 텐데 이리 와요.”

“지금 영업 중이라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한 잔은 괜찮으니 받아요.”

노량진에서 베트남 쌀국수 장사할 때는 술을 팔지 않아 이런 일은 없었다. 이곳은 술을 파니 이렇게 술도 권하고 농담도 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사장님은 집이 어디슈?”

“호반화원에 삽니다.”

“오, 거기 월세가 만만치 않을 텐데. 좋은데 사네요.”

좋은데 산다는 말은 구건호가 한국 땅에선 평생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서울 강남에 사는 놈들은 아마 매일 이러한 기분이었으리라.

구건호가 중국에 온지 한달이 되었다.

중국말은 여전히 못하지만 간판글씨는 대부분 알게 되어 거리가 익숙해졌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니 몸도 튼튼해진 것 같았다.

한식당의 한달 결산을 해 보았다. 식자재와 인건비, 관리비 등을 빼고 36,000원 정도 남았다. 25,000원은 다음번 깔세를 위한 적립금으로 저금해두고 쓸 수 있는 돈은 11,000원이었다. 이중에서 호반화원 아파트 월세 2,500원을 빼고 나니 8,500원이 남았다. 한국 돈 100만원 남짓 하였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한달 번 돈이 구건호의 기대에는 택도 없었지만 현지 중국인들에게는 큰돈이었다. 주방 아줌마들이 가져가는 돈은 월 2,000위안도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거라도 됐다. 손해 안 봤으면 됐다.”

구건호는 마음 편하게 이렇게 생각했다.

구건호에 다행인 것은 그동안 거류증이 나왔고 중국 운전면허도 딴 사실이다. 구건호는 슬슬 부동산 투자에 대하여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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