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호텔 한식당 인수 (1)
(50)
숙소에 돌아온 구건호는 다시 한 번 한식당 인수문제를 고민해 보았다.
“내가 보기엔 매월 중국 돈 1만 원 정도 밖에 안 떨어질 것 같은데. 변사장 입장에선 그것 가지고 아이들 유학까지 보낼 순 없겠지.”
구건호는 혹시 변사장이 사기꾼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사기꾼은 아니겠지. 오히려 직장생활을 오래해 장사가 서툰 사람으로 보여. 또 빡빡머리 조카가 노량진에서 버젓이 식당을 하고 있는데 사기야 치겠어? 내가 당할 사람도 아니고.”
구건호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여기서 한식당 하고 방 2개짜리 아파트 하나 얻고 날마다 서호 산책이나 하면서 살까? 갖고 있는 돈 4억 8천중에서 5천 주고 한식당 인수하고 4억은 부동산을 구입할까? 청담동 이회장 말대로 부동산은 경제 성장률을 반영한다고 했으니 3년이면 30% 올라갈 것 아닌가?”
구건호는 얼른 계산을 해 보았다.
“4억 부동산 투자로 30% 이익이면 3년 후 귀국할 때 5억 2천만 원이 된다. 식당이 모두 까진다고 해도 5억 2천은 손에 쥔다. 손실은 아니지만 은행 금리보다는 낫겠네.”
구건호는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며 또 생각을 했다.
“이회장 말대로 부동산 붐이 일면 플러스 알파가 있다고 했지. 만약에 3년 후 50%나 급등했다면 6억 쥐고 귀국한다. 그동안 중국말이나 익히고 그 정도 손에 쥐고 들어간다면 꽤 괜찮은 장사가 아닐까?”
구건호는 테이블 위에 있는 칭따오 캔 맥주 2병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귀국 날이 되었다.
변사장이 상해의 홍차오 공항까지 따라왔다.
“어째, 잘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직요.”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시고 팍 결정을 내십시오. 아, 솔직히 말씀드려 5천만 원 가지고 한국에서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하하, 글쎄요.”
“가계약이도 쓰시고 가시지요. 계약금은 조금만 거셔도 됩니다.”
“가계약이라.... 아주 본 계약 하시지요!”
“예? 본 계약이라고 하셨습니까?”
구건호가 본 계약이라고 하자 변사장은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게도 뜸을 들이던 친구가 갑자기 결정을 내리니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계약서 가지고 왔어요?”
“예, 있습니다.”
변사장이 늘 가지고 다니던 대봉투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아이고, 결정은 늦는데 결정 후는 완전히 벼락같네요.”
구건호와 변사장은 홍차오 공항 대합실에서 계약서를 썼다.
“매도자가 만도식품 유한공사 대표 변희열로 되어있네요.”
“식당이 외국인 직접 운영이 어려워 중국인과 형식상 합작으로 되어있습니다. 제가 90%, 중국인이 10%로 되어 있지만 그냥 형식입니다.”
“오, 그렇군요.”
“저... 계약금은?”
“여기 홍차오에 한국 국민은행 있다고 했지요? 아주 찾아다 드리지요.”
변사장이 반색을 하였다.
계약서에는 10일 후에 잔금을 치르기로 했다.
“계약서는 중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 가시면 바로 번역하여 공증하시고 은행에 외화송금 신청할 때 제출하셔야 합니다. 여행경비는 1만 달러까지 자유지만 큰돈이 움직이는 것은 일일이 외환당국에 신고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아, 참 이것도 같이 가지고 가시지요. 제출해야 될지 모르니까요.”
“이게 뭡니까?”
“영업집조(營業執照) 사본입니다.”
“영업집조요?”
“한국의 사업자등록증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외국인등록증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습니다.”
“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식당 매매대금은 한국에서 원화로 받아도 되지만 이렇게 해두시는 게 좋습니다. 나중에 돈을 반출할 때 증거가 되니까요.”
“그렇겠군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영업집조 사본을 가방에 넣었다.
구건호는 귀국후 즉시 노량진의 방을 내놓았다. 이제 한국에서의 숙소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환 송금신청을 위해 중문으로 된 계약서와 매도자 영업집조 등도 번역 후 공증을 해 두었다.
“오래간만에 인천에 계신 부모님한테 들려보자. 앞으로 중국 들어가면 자주 못 뵐 것 아닌가?”
구건호는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인천 주안역에서 내렸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공단 종합시장에 있는 정육점에서 사골을 샀다.
“사골만 들고 들어가기가 좀 밋밋한데.”
마침 약국이 보였다.
“엄마, 아빠가 박카스를 좋아하니 이거나 두 박스 사자.”
구건호는 노량진 방을 내놓았기 때문에 중요한 서류나 물건 등은 여행용 가방에 넣어 가져왔다. 짐이 아주 무거웠다. 더구나 사골과 박카스 두 박스를 드니 더 무거웠다.
“짐은 부모님 집에다 맡겨놓고 중국 들어가야지 별수 있겠나.”
구건호는 주안 북초등학교를 지나 교회 쪽으로 힘겹게 걸어갔다.
“에이고 참, 우리 집이 멀기도 하다. 돈을 벌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해야지 왔다 갔다 하기가 되게 힘드네.”
구건호의 아버지는 젊었을 때 주안 산업단지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다. 명퇴후 조그만 분식점을 하다가 잘 안되자 하청업체에 노무자로 재취업했다. 그 후 하청업체에서 지하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허리를 다쳐 계속 일을 못하다 보니 가세가 급히 기울어졌었다.
“아빠는 심근경색으로도 한번 쓰러졌었는데 최근 많이 나아졌다니 그나마 다행이네.”
구건호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연립주택 3층을 짐까지 들고 낑낑거리며 올라갔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엄마의 목소리였다.
“응, 나.”
문이 활짝 열리며 엄마가 반색을 했다.
“우리 아들 왔구나! 왠 짐이 이렇게 많냐?”
집안에서 된장찌개 냄새가 확 풍겼다. 식사를 하려던 참인 모양이었다.“
“건호가 왔다고?”
아빠도 파자마 차림으로 나왔다. 전보다 얼굴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막 밥 먹으려던 참이다. 너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
“냄새가 좋네요. 그러지요. 뭐.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뭐냐?”
“사골이요.”
“이 비싼 건 뭐 하러 사왔냐? 아이고 박카스도 사왔네. 힘들게 이건 왜 들고 오냐?”
엄마는 짐을 받으며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차려준 된장찌개는 맛있었다.
“오래간만에 집밥을 먹으니 좋네요.”
“많이 먹어라. 밥도 마침 새로 해서 맛있다.”
구건호가 된장찌개에다 밥을 두 공기나 먹으니 엄마 아빠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 식사 안하고 뭐하세요? 왜 내 얼굴만 쳐다봐요.”
“너 밥 먹는 것 보니 좋아서 그렇다.”
“아빠는 건강이 어떠세요?”
“네 덕분에 좋아졌다. 그때 네가 수술비 안 보내 주었으면 나는 꼼짝없이 죽었을 거다.”
“별 말씀을!”
“네 아빠는 요새 노령연금도 20만원이나 나와 날마다 종로3가까지 출근하신다.”
“종로 3가요? 거긴 왜?”
“거기 탑골공원에 노인들 많이 모이잖아.”
구건호는 밥을 먹으면서 실소를 했다.
“그런데 저 여행용 가방에 든 건 뭐냐?”
“제 옷하고 책이에요. 잠시 여기다 맡겨두려고요. 저 중국가요.”
“중국?”
엄마 아빠가 놀란 듯이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