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중국 진출 (3)
(47)
이회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은행이 사채업자들이 하던 어음 할인을 뺏어가니 사채업자들은 된서리를 맞았지. 그래서 나는 명동 사채시장을 떠나 강남 압구정동으로 와서 아파트 투자를 시작했다네. 강남 아파트는 그때도 비쌌지만 더 올라갈 것이란 확신이 있었지. 사람들은 편리함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좋은 동네 산다는 과시욕도 있음을 간파한 것이지.”
“아파트 투자로 많이 버셨겠네요.”
“벌었지. 그러다가 IMF를 맞았지.”
“어이쿠, 그때 손해 보셨겠네요.”
“아니야.”
이회장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돈을 벌 수 있는 큰 기회가 왔다고 쾌재를 불렀지.”
“예? IMF때요?”
“IMF 직전에 경제의 균열 신호가 오자 경제장관들이 나와서 우리는 펀더맨탈이 괜찮다고 떠들어댔지. 그렇지만 사채시장에서 오랫동안 뼈가 굵은 나는 그 반대로 보았다네. 이미 수십 채의 압구정동 아파트를 팔아 현금을 확보했고 갖고 있던 어음도 모두 팔아 현금을 확보했지. 현금 확보만이 살길이라 여겼지.”
“예, 그랬군요.”
“IMF가 터지자 치솟는 금리를 감당 못한 빌딩들이 매물로 나왔고 기업들도 부채가 많은 경우는 도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네. 그때 나는 청담동에 250억 짜리 건물이 나와서 하나를 땡겼지.”
“아, 예.”
옆에 있던 권부장과 박종석도 흥미 있게 이회장의 말을 경청했다.
“지금 그 빌딩이 얼마 가는 줄 아는가?”
“글쎄요. 한 300억? 400억? 잘 모르겠는데요.”
“지금 2천억 가네.”
“헉! 2천억!”
“임대료 수입도 만만치 않으니까 거래하던 은행 지점장이 찾아와서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회장님의 건물은 부채가 없으니 1천억 융자해 드리겠다고 하더군. 그리고는 자기네 은행에서 담보 잡았다가 경매 넘어갈 빌딩을 하나 더 잡으라고 간청을 했지. 나는 1천억은 필요 없고 600억만 받아서 400억을 주고 제지회사를 인수했고 나머지 200억으로 꼬마빌딩을 매입했네.”
“아, 그러셨군요.”
“제지회사는 택배산업이 발달하니까 골판지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았지. 마침 아들놈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라 기업 하나는 물려주어야 할 것 같아 인수했지. 지금은 처음에 은행에서 빌렸던 600억도 다 갚았다네. 제지회사도 자산이 늘어 지금은 1천억이 넘네. 꼬마빌딩도 지금 700억쯤 하네.”
“헉!”
듣고 있던 세 사람이 모두 헉 하고 감탄했다.
“난 더 이상 욕심이 없어 이렇게 낚시만 하고 지내고 있네. 이제 어음이나 부동산으로 돈 벌 시기는 모두 지나갔네. 종이어음이 B2B가 되듯이 부동산도 양도소득세니 초과이득세니 하면서 내가 이익 보았던 것을 지금은 정부에서 훑어가지 않는가? 앞으로 흙수저는 아마 올라서기가 불가능할지도 모르네. 불평등이 고착화 될 수도 있겠지.”
“휴.”
듣고 있던 세 사람이 똑같이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 말이 없던 내가 오늘 길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시는가?”
“잘 모르겠는데요?”
“구건호군이 중국에 간다고 하니 말하는 거네.”
“예? 중국은 아직 결정된 건 없습니다. 그냥 어떤가 한번 보러가는 것뿐입니다.”
“나는 사업에 대해선 잘 모르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대부분 망해서 오고 개인사업자들은 사기 당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네. 하지만 확실한건 하나 있네.”
“예? 그게 뭡니까?”
“부동산이네.”
“예? 부동산이요?”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얼마인가? 10% 가까이 되지 않는가? 3년이면 30%네. 부동산은 경제 성장율은 반드시 따라가게 되어있네. 거기다 붐까지 일면 플러스 알파도 있겠지.”
“그럼 중국 부동산은 계속 올라가겠네요.”
“아니야.”
이회장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부동산이 계속 올라가면 중국 정부가 칼을 빼어들지. 우리나라처럼 말일세. 세원(稅源) 발굴도 해야겠고 중국도 빈부차이가 극심해 지는 건 원치 않을 테니까. 중국 부동산은 지금이 황금기네. 대박은 아니더라도 경제 성장율은 반드시 커버하네. 관심 가져보게.”
구건호는 이 말을 듣고 ‘저는 부동산 투자할 돈이 없는 데요’라고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이회장은 틀림없이 ‘너 이놈아, 경리할 때 회사 돈 잠시 빼내서 돈 벌었잖아’ 할 것만 같았다. 모든 걸 알고 있는 무서운 사람으로 보였다.
“하하. 참고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 고맙습니다.”
“앗, 한 마리 물렸다!”
이회장은 낚시대를 들어 올렸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자 이회장과 권부장은 돌아가고 박종석과 구건호는 돗자리를 깔고 술판을 벌였다. 박종석이 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면서 말했다.
“이회장도 이상한 사람이야.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 부동산에 관심 가져 보라고 해.”
“하하. 그러게 말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구건호는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역시 이회장은 고수야. 나 같은 초짜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화경에 든 초 절정 고수야.”
구건호는 김포공항에서 빡빡머리 삼촌을 만났다.
“주무실 호텔도 예약해 두었습니다.”
“중국 호텔요? 호텔 값은 비싸지 않나요?”
“3성급으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모텔급 정도 비용으로 주무실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참, 내 이름은 변희열이라고 합니다. L그룹에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3년 전에 퇴직한 사람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중국 식당은 어떤 인연으로 하게 되었습니까?”
“내가 마지막 근무지가 L그룹 상해지사였습니다. 퇴직 후 사업을 하다가 사기 비슷한 것에 걸려 퇴직금 털어먹고 5천 정도 남았기에 항주의 식당을 인수했습니다. 내가 창업한 것은 아니고 누가 하던 것을 인수한 것입니다.”
“아, 그랬군요.”
“구사장님도 직장생활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저는 조금 했습니다. 아산의 전자 조립회사에 근무했었습니다.”
“아, 그럼 원래부터 장사하시던 분은 아니었네요.”
“장사는 노량진이 처음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나이 차이도 많은데 말씀 놓으시지요.”
“놓긴.... 환전 안했으면 여기서 하시지요.”
“얼마나 할까요?”
“20만원이나 30만원이나 알아서 하십시오. 오늘 환율은 저 위 전광판에 나와 있네요.”
구건호는 한국 돈 30만원을 중국 돈으로 바꾸었다. 당시 구건호가 중국에 들어갈 때의 매입 환율은 120대1이었다. 중국 돈 인민폐 2,500원을 받았다.
비행기에 탑승하자 구건호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햐, 비행기도 타보고 구건호 출세했다! 비록 노량진에서 2천 까먹긴 했어도 말이다!”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자 구건호는 창문 밖으로 연신 밖을 내다보았다. 솜털 같은 구름만 보였다. 옆의 변희열 사장의 얼굴을 보니 그는 피곤한지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