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중국 진출 (2)
(46)
구건호는 가게를 넘기면 중국 관광이나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네.”
구건호는 친구들이 어학연수다, 해외봉사 나간다, 라고 하면서 가방 들고 해외를 다녀왔지만 자기는 한 번도 해외를 못나갔다.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보니 돈도 없었고 나갈 기회도 없었다.
“여권은 포천서 공돌이 할 때 잘 만들어 놓았지. 박종석이 호주나 카나다 같은데 가서 용접일하면 돈 잘 번다고 해서 같이 만들어 놓았었는데 이제 한번 써먹어 봐야겠군.”
구건호는 여권과 베트남 쌀국수 대표 명함을 들고 노량진 역전 근방에 있는 여행사에 갔다. 수수료를 내니 3일후에 찾으러 오라고 하였다.
구건호는 가게를 양수받는 사람이 냉장고와 온수기를 그대로 쓰겠다고 하여 돈을 받고 팔았다.
“살 땐 비쌌는데 팔 땐 개 값이네.”
그래도 몇 푼 생기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가게를 넘기고 나니 할 일이 없어졌다. 가게를 할 때는 자기 시간이 거의 없어서 모임 참석이나 놀러갈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영화나 한편 때리자.”
구건호는 용산역에 있는 CGV영화관에 가서 오래간만에 영화도 보고 피시방에 가서 게임도 하였다. 그러나 피시방에 가는 것도 하루 지나니 시들해졌다.
“노량진 가게 손해 봐서 2천만 원 깨졌지만 아직 종자돈 4억 8천 남았다. 이제 무엇을 하고 살지? 아 참, 중국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알려달라고 했지. 여행사에 비자 나왔나 물어나 보자.”
여행사에서는 비자가 나왔으니 내일 오전 중 찾아가라고 하였다.
구건호는 노량진 고기집 빡빡머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옆집 베트남 쌀국수 하던 사람입니다. 삼촌한테 중국 한번 가보겠다고 말씀 전해주세요. 비자는 나왔습니다.”
“아, 그래요? 삼촌한테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빡빡머리 삼촌한테 전화가 왔다.
“사장님이세요? 중국 한번 가시겠다고요? 잘 하셨습니다. 제가 비행기 표를 예약할 테니 이름 문자로 알려주세요. 영문이름도 같이요.”
구건호가 문자로 한글이름과 영문이름을 알려주자 삼촌이라는 사람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틀 후에 김포공항에서 만나지요. 오후 2시 비행기입니다. 공항에는 1시간 전까지 나오시면 됩니다. 비행기 표 값은 카드 계산이 되지만 현금도 2, 30만원 준비해두면 좋겠습니다. 중국 현지에서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여행용 가방 하나하고 그냥 가벼운 옷차림으로 오시면 됩니다. 국제여객선 대합실 환전하는 곳 앞에서 만나지요.”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구건호는 후배 박종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석이냐? 나다. 나, 가게 처분했다.”
“그래? 좀 아쉬운데. 가게가 잘 되었으면 좋았을걸. 손해 많이 안 봤어?”
“좀 깨졌어. 걱정할 수준은 아니야. 그리고 나 내일 모레 중국에 간다.”
“중국?”
“식당자리 하나 나와서 그냥 관광 삼아 한번 가보려고.”
“형 중국말도 모르면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통역이 있고 중국말 몰라도 얼마든지 한데. 자세한건 일단 갔다 와서 이야기 해줄게.”
“모래 간다고 했나? 그럼 내일은 쉬겠네. 내일 일요일이니 낚시나 하러 가지. 지난주에 포천 낚시터 혼자 갔더니 청담동 이회장 나왔데.”
“그래? 그 양반 여전하구나.”
“이회장이 형 안부를 물었어, 왜 한번 안 오느냐고 했어. 내일 한번 와. 소주나 한잔하지.”
“여행용 가방도 하나 사야하는데.”
“가방 아무거나 하나 사. 오늘 사버려!”
“알았다. 내일 10시까지 가마.”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낚시터에 왔다. 복잡한 서울에 있다가 교외로 나오니 숨통이 확 터지는 것 같았다. 늦가을에 코스모스가 지기 시작했지만 잠자리들은 아직 하늘을 나르고 있었다.
“좋다. 우리나라 강산이 최고다.”
낚시 대를 들고 둑 아래로 내려가니 박종석이 먼저 와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종석아! 반갑다.”
“형, 반가워! 고생 많았지? 노량진 가게 일은 이제 잊어버려.”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해. 이회장님은 안보이네.”
“글쎄, 안 보이는데. 저 건너편 호수에 낚시하는 두 사람이 있는데 저분들 아닐까?”
“장소를 옮겼나?”
“저쪽으로 한번 가보자. 가서 인사만 드리고 이쪽으로 다시 오자.”
구건호와 박종석이 건너편으로 가 보았다. 낚시하는 사람은 이회장과 권부장이었다.
“안녕하세요?”
“오, 구건호씨! 박종석씨!”
“저희들 이름까지 기억하시네요.”
“기억하지. 내가 신왕재왕 사주를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예?”
“아니, 그렇다는 이야기네. 듣자니 아산에서 올라와 노량진에서 식당 한다며?”
“처분했습니다.”
“오, 그런가? 잘 했네. 식당은 인생 맨 마지막에 하는 거네.”
“네?”
“식당은 다른 것 하다 하다가 잘 안되었을 때 하는 것이란 말이 있네.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지.”
“힘은 듭니다.”
“식당은 아주 크게 기업 형으로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족 형으로 해야 되네. 인건비 따먹는 업종이라 가족의 노동력이 뒷받침 안 된다면 혼자서는 어렵다네. 그래 인제 뭐 하실 건가?”
“아직 계획은 없습니다. 누가 중국식당이 하나 나왔다고 해서 관광 삼아 중국엘 한번 가보려고 합니다.”
“중국이라...”
이회장은 낚시 대를 걷어 올리더니 떡밥을 갈아주었다. 호수 위의 찌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신왕재왕 사주가 대운을 받으니 그리로 가는구먼.”
구건호는 이회장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못들은 척 하였다.
“구건호 군은 아산에서 경리 일을 보았다고 했었지. 얼마나 했었나?”
“경리는 양주에서 6개월, 아산에서 4개월 정도 했습니다.”
“요즘도 기업들은 B2B결재를 하나?”
“예, 그렇습니다.”
“개새끼들!”
“예?”
구건호는 점잖은 이회장의 입에서 갑자기 개새끼란 소리가 나오자 크게 놀랐다.
이회장이 빙그레 웃으면서 구건호를 돌아보았다.
“미안하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와서!”
“무슨 사연이 있습니까?”
이회장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구건호 군. 실은 난 젊었을 때 명동에서 사채업자로 일했었네.”
“아, 그러셨군요..”
“그땐 B2B라는 제도가 없었지. 각 기업체의 경리나 자금 담당자들이 돈이 필요하면 어음을 들고 나를 만나려고 줄을 섰을 때 이야기네. 기업의 신용도 파악은 우리가 은행보다 빨랐지. 오히려 기업의 신용상태를 은행 지점장들이 나한테 묻기도 했었네. 신용도를 알아야 금리를 정했으니까.”
“아, 예. 그랬군요.”
“아산에 있던 회사의 B2B할인율은 얼마나 됐었지?”
“4.5%였습니다.”
“자식들! 잘 해먹고 있구먼”
“예?”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이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인 나에게 어음을 들고 오면, 지금의 은행처럼 할인 수수료를 떼고 돈을 내어주었지. 이른바 어음 ‘와리깡’이란 말이네. 돈을 참 잘 벌었지. 주어 담다시피 했어. 우리가 돈 좀 만지니까 그걸 은행 놈들이 제도권으로 흡수해서 뺏어간 거야.”
“아... 그랬군요.”
구건호는 이제 뭔가를 이해가 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