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창업 준비 (2)
(38)
이석호의 친구는 엄청 뚱뚱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산발을 하고 예술가처럼 턱수염까지 있었다.
“인사해라. 내 대학 동창이다.”
구건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건호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방한영이라고 합니다.”
덩치는 큰 사람이 목소리는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를 냈다.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하는데 손이 무척 부드러웠다. 구건호는 공장 다닐 때 노동을 많이 하여 거칠어진 자기 손이 좀 창피했다.
구건호는 방한영이란 사람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이석호에게 다시 물었다.
“식당 같은 것 하려면 어디가 좋을까?”
“발품 좀 팔아야 돼. 음식점이 많다고 해도 뜨는 데는 떠. 요 밑에 있는 태국음식점도 지금 잘되고 있어.”
“태국음식? 그건 주인이 만들지 알아야 되는 것 아니야?”
“레시피 간단해. 음식 맛도 좋아야 하지만 가게 위치도 중요해. 그런데 넌 지금 어디서 살고 있냐?”
“노량진에 있어.”
“노량진? 노량진 상권도 괜찮아. 수험생들 바글바글 하잖아. 지난번 TV에 보니까 거기 베트남 쌀국수로 대박 난 사람이 있어.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자가 여기보다 작은 가게에서 월 9천만 원 매상 올린다고 했어.”
“월 9천? 헉!”
“다 그런 건 아니고 노량진도 장사 안 되서 주인이 바뀌는데도 많아. 하여튼 고민이 많겠구나. 여기저기 조사해보고 시작해라.”
“여러 가지로 고맙다. 조언해 주어서.”
“조언은 무슨. 가게 시작해서 월 매출 1500만 원 이상 올리면 밥은 먹어.”
“그러면 하루 매상 50만원...”
“50만원 오르기도 쉽지 않아.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동네 장사는 20만원도 못 올리는 데가 많아. 하룻밤 자고나면 주인이 바뀌는데 뭘.”
“흠...”
대화하고 있는 중에 오토바이 헬멧을 쓴 사람이 커다란 박스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식재료 왔습니다.”
“거기 테이블 위에 올려놔요.”
이석호가 일어서자 구건호도 같이 일어섰다.
“바쁜 것 같으니 가봐야겠다. 오늘 고맙다.”
“가려고? 자주 놀러 와라. 여기 내 명함 있다.”
구건호는 이석호의 초록색 명함을 받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구건호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의 중요 상권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먼저 홍대 앞부터 가보자.”
구건호는 지하철을 타고 2호선 합정역에서 내렸다. 보보호텔 앞에서 우회전하여 홍대 쪽으로 걸었다. 인테리어가 훌륭한 가게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역시 여기 물이 좋군. 여대생들이 하나같이 예뻐 보이네.”
커피숍에 들러 비싼 커피도 마셔보았다. 전에는 이런데 들어오려면 머뭇거렸는데 이젠 거리낌이 없었다. 수중에 5억 원이란 돈이 있으니 자신감이 생겨났다.
“가게들 상호도 요란하군. 경리단길보다도 더 요상하네. 에이난, 땡스북스, 도로시, 세인트콕스... 난 음식점을 창업하면 상호를 뭐로 하지?”
구건호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길을 걸었다.
“그래, 9급 공무원은 포기하자. 초봉 200도 안 되는 공무원 해 보았자 어느 세월에 성공하겠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야.”
구건호는 홍대 클럽거리 삼거리까지 왔다.
“포차도 더러 있네. 쏠로포차, 광동포차. 이런 거나 한번 해볼까? 저건 뭔가 롯폰기 홍대? 포차는 평수 안 넓어도 되니 부동산에 물어나 보고 갈까?”
구건호는 마침 문이 열려져 있는 부동산이 있어 들어갔다. 부동산 사무실은 난생 처음 들어가 보았다.“
“어서 오세요.”
50대의 남자가 신문을 보다가 일어섰다. 부동산 사무실에는 남자 외에 40대 여성 한명이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포차 같은 것 하려면 얼마나 돈이 들어가는가 물어보러 왔습니다.”
“포차도 포차 나름이지요. 일단 앉으시지요.”
구건호는 머뭇머뭇하다가 소파에 앉았다.
“하나 나온 물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에 맞추어드릴까요?”
“네?”
“가지고 계신 자금과 맞추어야지요.”
부동산은 이렇게 말하면서 구건호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구건호는 5억 원이 있지만 이걸 몽땅 투자하다가 망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돈을 많이 투자하면 남들이 돈의 출처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1억 이상은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 있다는 물건은 얼마에 나온 것입니까?”
“요 밑에 로하스타워 오피스텔 건너편 골목에 있는데 위치는 괜찮습니다. 학생들은 물론 오피스텔 거주자들도 자주 오는 골목이니까요. 한번 보시겠습니까?”
“금액을...”
“18평인데 권리금 포함해서 1억 5천에 나왔습니다. 한번 보시고 생각 있으시면 내가 깎아달라고 주인하고 협상을 해 보겠습니다.”
구건호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머믓 거렸다.
“같이 가 보시죠.”
부동산 주인은 구건호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했다. 부동산 주인은 옷걸이에 걸어둔 웃옷을 입으며. 책상에 앉아 있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이 손님 안내 좀 하고 올 테니 자리 지키고 있어요. 어제 방 보러 온다고 전화한 사람 올지도 모르니까.”
부동산 주인과 구건호는 팔려고 내 논 포차를 보러갔다. 걸어가면서 부동산 주인이 말했다.
“젊은 분인 것 같은데 대단하네요. 1억 5천만 원을 동원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구건호는 얼굴만 붉힌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극동방송을 지나 오피스텔 앞 골목으로 들어갔다. 후미진 곳에 포차가 있었다. 근처의 가게중 인테리어가 가장 안 되어있는 점포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포차주인은 주방아줌마와 함께 대파를 다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가게를 보시겠다는 분이 있어 모시고 왔습니다.”
포차 주인은 부끄러운 듯이 서 있는데 부동산 주인이 자기 가게인양 침을 튀기며 말했다.
“이것 보세요. 18평이지만 넓어 보이잖아요. 주방기구도 여기 사장님이 다 놓고 갈 것입니다. 건물주도 교회 장로님이라 점잖고, 온수 잘 나오고, 화장실도 단독으로 쓰니 이런 물건 구하기 힘듭니다.”
구건호는 심난했다. 이렇게 허술하고 작은 가게가 1억 5천이라니 기가 막혔다. 구건호가 포차 주인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은 어디로 가실 겁니까?”
포차 주인대신 부동산 주인이 답변했다.
“여기 사장님은 원래 고깃집 하시던 분이에요. 신촌 쪽에 가게 더 넓혀가요. 이 가게도 장사는 잘 되었어요. 지금 낮이라 거리가 한산하지만 밤에 와 봐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아, 여기가 그 유명한 홍대거리 아닙니까?”
구건호가 대충 가게를 둘러보는 흉내를 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밖으로 나왔다. 부동산 주인이 따라오면서 구건호의 허리를 툭 쳤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구건호의 귀에다 대고 말을 하였다.
“내가 1억 4천까지 한번 쇼부를 쳐보겠습니다. 잘 되면 나 대포 값 좀 주셔야합니다.”
“예? 아, 예 예.”
구건호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부동산 주인이 유창한 솜씨로 또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