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창업 준비 (1)
(37)
구건호는 원래 성격이 외향적이지 못했다.
더군다나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가 특출 나지도 않았고 집안도 가난하다보니 주눅이 들어서 늘 소심했었다. 친구도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지방대에 다니다가 등록금 조달도 힘들고 생활비도 벅차 그만 두었다. 그 후 학사편입이라도 하려고 사이버대학을 다녔고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다보니 그나마 사귄 친구들과도 멀어졌었다.
노량진을 떠나서 경기도 화성과 포천, 양주 등으로 떠돌아다니며 공돌이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친구들과의 관계는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공장에 같이 다녔던 후배 박종석과 겨우 어울리는 정도였다.
이번에 아산시 둔포에 있는 회사에서 경리사원으로 일하다가 뜻밖에 5억 원이 생겼지만 떳떳하게 번 것이 아니므로 뭔가를 감추려들고 오로지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만 갖게 되었다. 이후 엄청난 돈을 벌고 강남 큰손이 되었어도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은둔형 인물이 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원인이 된 것으로 보여 진다.
아직은 구건호가 어려운 시절이 지속되고 있을 때였다.
“이석호가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술장사를 해? 육군사관학교 간다고 깝죽거리던 놈이었는데 술장사를 한다니 사람 앞길은 모를 일이네.”
구건호는 이석호에게 좋지 못한 추억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싸웠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싸웠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던 기억이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고 할 때 갑자기 비가 왔었지. 그때 그놈이 내 우산을 자기 우산이라고 하면서 가져가 싸움이 붙었지. 내가 덩치도 작은데 무슨 수로 그놈을 이기나. 오히려 얻어맞고 눈탱이까지 퍼렇게 멍이 들었는데 반 친구들은 그놈 편만 들었었지. 분해서 비 맞고 집에 와 엄청 울었던 기억만 나네. 이놈이 내가 찾아가면 깜작 놀라겠지?”
구건호는 히죽 히죽 웃으며 노량진 역에서 152번 버스를 탔다.
“삼각지에서 내려 지하철 타면 되겠지. 이곳에서 멀지는 않네. 아직 12시도 안됐으니.”
구건호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이태원으로 왔다.
“인터넷 보니까 이쪽 길인 것 같은데 맞나 모르겠다. 뭔 언덕길이 이렇게 나 있어?”
구건호가 슬슬 언덕 쪽으로 접근하자 ‘국군 재경지원단’ 이란 건물이 나왔다.
“여기가 육군 중앙 경리단 건물인가? 뭐, 건물은 별로인데, 길도 그렇고.”
경리단을 지나자 요상한 간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살롱데얼스, 디코드, 비스테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구건호는 경리단 길을 한참 헤맨 후에 박종석이 가르쳐준 이석호의 가게를 찾았다.
“이태원 주민센터 쪽에 있다고 하면 쉽게 찾았을 텐데 여기 있는 걸 몰랐으니.”
가게는 식당인지 술집인지 어지러운 간판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문을 열어 보았다. 아직 영업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잠겨있었다.
“술파는 집이라 늦게 문을 여는 모양이네.”
구건호는 할 수없이 이태원 쪽으로 가서 점심이나 먹고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가게는 얼마나 할까? 큰 것 같진 않은데. 메인 도로에서 벗어난 가게라 투자비용이 크진 않을 것 같은데... 이태원에 가서 점심이나 먹고 오자.”
경리단길 옆에 있는 이태원 쪽은 역시 사람들이 많고 번화했다. 서양 사람도 많았고 시커먼 흑인도 많았다.
“여기 대로변 가게들은 얼마나 할까? 비싸겠지? 내가 이런 가게를 열면 잘 할 수 있을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인데 잘못 덤비면 안 될 거야.”
구건호는 돈까스를 하나 사먹고 또다시 어슬렁거리며 이태원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이런 옷 파는 가게들은 하루 매상이 얼마나 오를까? 나가는 비용은 집세하고 인건비 외에는 없을 것 같은데...”
구건호는 스마트폰의 시계를 보았다. 오후 2시 10분이었다.
“이제 이석호가 돌아 왔을려나.”
구건호는 다시 경리단길로 갔다.
“이태원에 비하면 여긴 아직 사람 왕래도 그렇고 길도 언덕인데 왜 유명한지 모르겠어.”
구건호가 이석호의 가게로 다시 왔다.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앞에서 누가 쓰레기봉투를 정리하고 있어 자세히 보니 이석호였다. 몸이 많이 변했으나 틀림없는 이석호였다.
“야, 이석호. 오래간만이다.”
사람 부르는 소리에 이석호가 고개를 들고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눈을 껌벅이는데 누군지 잘 몰라보는 눈치였다.
“나 구건호다. 고등학교 동창.”
“오, 구건호구나. 잘 몰라봤네. 전엔 홀쭉했던 것 같은데 살이 많이 붙었네.”
“너도 살쪘다. 여기에서 네가 장사한다고 박종석한테 들었다.”
“박종석?”
“부천 설농탕집 아들 말이야.”
“아, 그 녀석! 까불이!.”
“응, 맞아.”
“그런데 너도 여기 경리단길에 있냐?”
“아냐. 장사 좀 해볼까 해서 자문 받으려고 왔어.”
“나한테? 아무튼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와라.”
구건호는 이종석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테이블이 12개 정도 되었다. 아직 청소 전이라 그런지 의자들이 막 흩어져 있었다.
“아직 청소 전이라 가게 안이 좀 지저분 할거다. 여기 앉아라. 녹차 한잔 가져올게.”
구건호가 의자에 앉아 가게 안을 돌아보았다. 벽에 기타를 든 서양 가수의 대형 사진과 노래 부르는 흑인가수의 사진 등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참, 정신 사납군.”
이석호가 녹차를 타가지고 왔다.
“야, 참 오래간만이다. 너 본지가 학교 졸업하고 10년도 넘은 것 같다.”
“그래,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넌 포천인가 어디에서 공장 다닌다고 한 것 같았는데.”
“응, 포천과 아산에 있는 공장에서 근무하다 최근 그만두었어.”
“그래? 뭣 좀 해 보려고?”
“아직 정하지는 않았어. 이 가게는 몇 평이나 되냐?”
“23평이야. 길이가 11미터, 폭이 7미터야.”
“장사는 잘 되냐?”
“오픈한지 1년 넘었어. 처음엔 고전했는데 요즘 쪼금 매상이 오르고 있어.”
“테이블이 12개가 되니 돈 좀 들어갔겠는데. 이정도 규모면 얼마정도 들어 가냐?”
“1억 5천 정도 들어갔어.”
“1억 5천? 너 그동안 돈 많이 번 모양이구나.”
“우리 나이에 1억 5천이 어디 있냐? 친구랑 셋이 같이해. 한 놈은 직장생활하기 때문에 여기 안 나오지만 두 명은 같이 여기서 일하고 있어. 인건비 아껴야지.”
“셋이면 한 사람당 5천씩 투자했니?”
“응, 그래. 나도 모아 논 것이 없어서 부모님께 손을 좀 벌렸어.”
“너의 아버님은 군인이셨던 것 같았는데. 여기 경리단에서 근무하셨냐?”
“아니야. 전방부대에 계시다가 벌써 예편하셨어. 대령으로 제대하셨어.”
“그러셨구나.”
“그래, 넌 뭘 하려고 그러냐? 돈은 얼마가지고 할거냐?”
“식당 쪽을 알아보고 있어. 돈은 나도 얼마 없는데 같이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나도 여기 오픈하기 전에 안 가본 데가 없어. 홍대 앞도 가보고 건대 앞도 가보고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도 가보고 그랬어.”
“그런데는 가게가 비싸지?”
“말마. 2, 3억 가지고 있어도 후미진 뒷골목 손바닥만한 가게밖에 못 얻어. 그리고 우리나라 는 음식점들이 너무 많아.”
말 하고 있는 사이에 이석호와 가게를 같이 한다는 친구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