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6화 (3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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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종자돈 (5)

(36)

사장은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구건호에게 다가왔다. 사장은 허리를 굽히고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로 구건호의 뺨을 잡고 좌우로 흔들었다.

“너, 회사 돈 빼서 뭐했냐? 주식투자했지?”

구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금 그대로 도로 가지고 왔으니 몇 푼 번 모양이구나. 얼마나 벌었냐? 몇 백 벌었냐? 아니면 몇 천만 원 벌었냐?”

“아닙니다. 처음엔 뺀 돈을 활용할까 하다가 무서워서 못했습니다. 그래서 회사로 재 입금 한 것 입니다.”

“거짓말마 이놈아! 나는 네 개인통장 열어보지 못해도 경찰에 고발하면 경찰은 수사상 열어 볼 수 있다.”

이 말에 구건호는 흠칫했다. 경찰이 통장 거래내역을 조회하면 모든 것이 들통이 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이놈아, 회사에 손실 끼친 것 없다고 해도 회사 돈 빼면 공금 유용이 되는 것 몰라?”

사장은 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일단 공금에 손을 댄 이상은 너를 데리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을 잘 모시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구건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를 떠나더라도 앞으로 경리 일은 하지마라. 공금에 손을 대다보면 언젠가 사고가 터지게 되어있다. 네가 빼낸 돈으로 뭘 하다가 손해 보았다면 회사도 난리가 났겠지만 너도 크게 신세를 조질 뻔 했다.”

사장은 책상 위에 있는 생수를 벌컥대고 마셨다. 그리고 의자에 길게 기대어 무엇을 생각하다가 스마트 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김 부장이요? 나요. 출산 휴가 중에 전화를 해서 미안하오.”

구건호는 경찰인가 했더니 경리부장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라 안심을 했다.

“구건호가 개인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소. 혹시 괜찮다면 새로운 직원 다시 뽑을 때까지 회사에 나올 수 있겠소?”

경리부장의 목소리가 스마트 폰 너머로 들렸다.

“그러지 않아도 갑갑하고 회사일도 궁금했는데 내일 당장 나가보겠습니다.”

“무리하진 말고 오전에만 잠깐 나와 자금 일만 해도 될 것이요.”

“아닙니다. 사장님. 친정 엄마가 와서 아이를 보아주고 있어 괜찮습니다. 출산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요. 뭘.”

“벌써 한 달 되었나요? 아기가 많이 커서 귀엽겠군. 그럼 오전만 나와서 일보는 것으로 합시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사장은 전화를 끊고 구건호를 돌아다보았다.

“일어서라. 흉하게 무릎을 꿇고 지랄이냐!”

“죄송합니다. 사장님.”

사장은 물을 다시 마시며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무척 피곤한 모습이었다. 구건호 역시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일을 확대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 회사가 금전적 손해를 본 것이 없다니 이것으로 끝내자. 이번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너도 좋을 것 없고 회사도 좋을 것 없다. 이 일은 너하고 나만 아는 것으로 하자.”

“죄송합니다.”

구건호는 머리를 사장실 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사장은 허공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말했다.

“5일과 6일 양일간 구건호가 빼낸 돈은 대표이사인 내가 임원 가수금(假受金)으로 빼낸 것으로 회계처리 한다. 그리고 20일 날 회사 돈을 입금시킨 것은 대표이사 임원 가수금 반제(返濟)로 처리 한다. 구건호는 경리부장이 내일 출근하면 업무 인계 후 바로 모래 날짜로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한다.”

사장의 말에 구건호는 목이 메었다.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구건호는 사장실 바닥에 머리를 댄 채 눈물을 펑펑 쏟았다. 구건호는 계속 흐느껴 울면서 자기 개인 통장에 있는 5억 3천만 원은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구건호는 경리부장에게 업무를 인계한 후 고시텔 짐을 정리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구건호는 짐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구건호는 성환 근방에서 차를 세워놓고 (주)와이에스테크가 있는 아산시 둔포 신봉리를 향해 큰 절을 했다.

“언젠가 성공하면 꼭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4개월 전 양주시에서 아산시 둔포로 올 때 불렀던 보헤미안 렙소디 노래를 불렀다. 그때는 취업이 되었다는 생각에 약간 상기된 상태인데 지금은 기분이 달랐다. 무언가 큰 짐을 안고 서울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구건호는 안주머니에서 은행 통장을 꺼내 펼쳐보았다.

“5억 3천만 원! 이것이 내 돈이란 말이지!”

구건호는 이런 큰돈은 평생 처음이었다. 병실에 계신 아버지는 물론 친척들도 이런 돈은 평생 만져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 어디로 가지? 내가 알고 있는 곳은 9급 공무원 시험 공부하던 노량진 일대밖에 없지 않은가? 일단 그리로 가자!”

구건호는 노량진에 와서 동작구청 뒤에 있는 연립주택 2층 방을 얻었다. 부엌과 화장실이 달린 방 1개짜리였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 원짜리인데 되게 후졌네.”

낡은 집이었지만 방은 컸다.

“양주시 광적면에 있던 방이 최고지. 거기보단 더 비싼 방인데도 이렇게 낡았으니... 그래도 이 근처 공시생들 보다는 내가 났다. 그놈들이 어떻게 이렇게 큰 방을 얻어.”

구건호가 얻은 집은 따로 옵션이 없었다. 세탁기와 냉장고 등은 중고 매매시장에 가서 중고품을 샀다. 심지어 밥통과 식탁까지도 중고품을 새로 사야했다. 책상은 먼저 살던 사람이 놓고 간 것이 있어 그대로 쓰기로 했다.

“통장에 있는 돈 5억 3천만 원 중에서 1,000만원 방값 보증금으로 나갔으니 5억 2천만 원 남았다. 우선 내일 빚부터 갚자. 햇살론, 장학재단 융자금 이 기회에 몽땅 갚자.”

구건호는 햇살론과 장학재단 융자금 등을 모두 갚았다. 전에 카드 값 쓴 것 리볼빙도 해제하고 다 갚았다. 2,000만 원 정도를 빚 갚는데 쓰고 나니 통장 잔액이 5억 원 정도 남았다.

“아껴 써야지. 이게 어떤 돈인데.”

구건호는 방에 들어 누워 앞으로의 장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노량진에 왔으니 9급 공무원 시험공부를 다시 해? 한 2년 공부하면 내가 34살... 35살부터 공무원 생활한다고 해도 너무 늦은 것 아닌가?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고....”

구건호는 사업 쪽을 생각해 보았다.

“인천 부모님 계신 데로 들어가? 인천에서 아파트 한 채 사고 치킨집이나 빵집을 할까? 5억원 그대로 짱박아 두고 공돌이나 경리사원 취업을 다시 할까?”

구건호는 이 생각 저 생각 해 보았지만 이것이 내 길이다 하고 끌리는 데가 없었다. 마침 후배 박종석한테 전화가 왔다.

“뭐해? 야동 봐?”

“아니야. 나 서울로 다시 올라왔어. 여기 노량진이야.”

“노량진? 그으래? 공무원 시험공부 또 하려고?”

“그건 아니고 조그만 가게 쪽도 생각하고 있어.”

“가게? 형 돈 있어?”

“돈은 없는데 누가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자기 돈도 아니고 투자한 돈 받아서 하면 더 큰일 나. 형 경험도 없잖아.”

“글쎄.”

“사업 그거 함부로 하지 마. 실패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그건 나도 알고 있어서 고민하고 있어.”

“그럼 형 동창 석호 형한테 물어봐.”

“석호? 걔가 뭘 하는데. 너는 어째 나보다도 더 내 동창들을 잘 아냐?”

“형은 잘 안 돌아다녀서 그래. 석호 형이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술집 하잖아.”

“그래? 걔 아빠 군인이었던 것 같은데.”

“맞아. 석호형이 돈 좀 번다는 소문이 있어. 한번 만나봐.”

“흠... 그래 알았다.”

구건호는 고등학교 때 이석호와 싸운 적이 있어서 찜찜했지만 한번 만나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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