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5화 (35/501)

# 35

눈물의 종자돈 (4)

(35)

구건호는 회사에서 인출한 5억 1천 5백만원을 그대로 입금시켰다.

“1원도 착오 없이 입금시켰지만 회사 돈을 손댔으니 무사하진 못하겠지.”

구건호는 향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했다.

“법인통장에서 돈이 나가면 무조건 대체전표를 작성해야 된다. 그리고 돈이 들어오면 들어 온대로 대체전표를 작성해야 되는데 어떻게 하지? 사표 쓰고 그대로 도망갈까? 회사 돈 반환하고도 내 통장에 5억 3천만 원이나 있으니 혼자 살아가는 데는 지장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할까?”

구건호는 사장에게 사실대로 말할까도 생각했다.

“사장은 회사 돈 손댔다고 펄펄 뛰겠지? 사장한테 이야기 안한다고 하더라도 정기 감사에 걸릴 염려도 있고 또 외부감사인 CPA감사도 있는데....”

구건호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봤지만 답이 안 나왔다.

“사표 쓰고 도망가면 형사 고발될지 모르니 일단은 종업원들 월급부터 집행하고 보고하자. 그러나 내 통장에 있는 내 돈 5억 3천만 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할 텐데....”

구건호는 종업원 80여명의 급여를 집행하기 위해서 사장실에 들어갔다.

“오늘 오전에 종업원 급여를 집행하겠습니다.”

“흠.. 그래? 인건비 총액이 얼마나 되지?”

“2억 1천 4백만 원입니다. 물파산업 삐투삐 할인한 것으로 집행하겠습니다.”

“그럼 얼마나 남나?”

“3억 1백만 원 남습니다. 30일 원재료 집행금액이 몰려있어 그때 써야합니다. 또 28일에는 기업은행 공장 담보이자가 빠져나갑니다.”

“흠, 알았네.”

사장은 인건비 지출 결의서에 싸인했다.

구건호는 종업원 급여를 집행하고 나서 또다시 묘안을 짜 보았다.

“종업원 단기대차로 전표를 만들어? 아냐, 그러기에는 너무 금액이 커.”

회사에서는 종업원이 천재지변을 당하거나 수술비 등이 급하게 필요하면 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몇 백만 원에 불과하지 5억씩 빠져 나간 데는 어울리지 않았다.

“대표이사 가수금으로 해?”

대표이사는 집행기구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금을 뺐다가 집어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대표이사의 서명이 들어 가야하므로 불가능했다. 구건호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아물었던 입술이 다시 터지기 시작했다.

“음, 그렇지. 거래하는 회계사에게 물어보자.”

구건호는 와이에스테크와 거래하는 회계사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와이에스테크 경리 담당자라고 하자 사무실에 자주 오는 정부장이 전화를 받았다.

“정부장님이세요? 와이에스테크 구건호입니다. 혹시 회계사님 계신가요?”

“회계사님이요? 무슨 일인데요? 저한테 말씀하시지요.”

“아니, 그게 아니고 제 친구가 법률적 문제를 물어봐달라고 해서요.”

“회계사님이 계신가 모르겠네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한참 후에 어떤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나종수 회계사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저는 와이에스테크의 경리담당자 구건호입니다.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몇가지 문의사항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제 친구가... 회사 돈을 빼냈다가 며칠 후에 그대로 다시 입금을 시킨 모양입니다. 이 경우에 회사 손실이 없더라도 문제가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개인 계좌로 빼냈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개인계좌로 빼내는 것은 무조건 위법입니다.”

“회사 손실이 없더라도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회사 돈을 빼내고 돈을 모자라게 입금했다면 해당금액만큼은 공금 횡령(橫領)이 됩니다. 빼낸 금액을 축내지 않고 그대로 입금시켰다면 횡령은 아니더라도 공금 유용(流用)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경찰 구속됩니까?”

“횡령이라면 당연히 회사에게 고발하겠지요. 그러나 회사 손실이 없는 유용이라면 회사의 처리 방식에 달렸겠지요.”

“잘은 몰라도 제 친구가 회사 돈을 빼내 어디 투자했다가 몇 백만 원 이익을 본 모양입니다. 이건 제 친구 소유가 될 수 있는지요?”

“글쎄요. 법인이 주식투자를 할 수는 있습니다. 이 경우는 자본이득이 되어 투자이익금을 회사에 입금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계좌로 빼냈다가 이익을 본 것을 회사가 알았다면 입금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알기가 어렵겠지요.”

“공금유용은 회사가 고발하지 않으면 그대로 넘어갈 수 있습니까?”

“회사 손실이 없더라도 유용한 직원을 회사에서 그대로 두진 않겠지요. 경찰 고발여부는 회사의 판단에 의해서 하겠지요.”

"장시간 상담해 주어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언제라도 문의사항이 있으면 전화주십시요."

구건호는 모진 결심을 했다. 사장이 기분 좋은날을 택해 사표를 들고 사장실로 갔다.

“뭔가?”

“사장님께 죄를 진 것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구건호가 사표를 들이밀자 사장의 눈이 휘둥글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나?”

“실은... 회사 돈을 제 개인계좌로 빼냈다가 며칠 후에 그대로 다시 입금한 사실이 있습니다.”

“뭐라고?”

“죄송합니다. 사장님. 회사에 손실을 끼친 건 아니지만 떳떳치 못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음마, 음마, 야가 시방 뭔 소리를 하는 거여?”

사장이 벌떡 일어났다. 사장의 입에서 사투리가 쏟아져 나오는걸 보니 흥분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구건호가 사장에게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 시각 현재 이번 달 각 은행별 거래명세표 뽑아 와봐!”

“여기 방금 뽑아 논 것이 있습니다.”

구건호는 들고 있던 결재판 속에서 은행별 거래명세표를 꺼냈다.

사장이 은행별 거래명세표를 유심히 살폈다. 특히 기업은행 것을 자세히 살폈다.

“기업은행 삐투삐 할인한 것 5일 날 뺐다가 20일 정확히 뺀 금액 그대로 입금 했습니다.”

사장은 은행별 거래명세표를 한참 보다가 사정없이 구겨서 바닥에 던졌다.

“그러니까, 회사 돈에 손을 댔다 이거지?”

“죄송합니다.”

“이런 싹박아지 없는 자식!”

사장의 쪼인트가 날라 왔다.

“어이쿠!”

“야, 이놈아! 회사 돈은 엄연한 공금이라 나도 함부로 못 빼는데 니가 마음대로 넣다 뺐다 해? 손실 안 끼쳤으면 맘대로 해도 되는 거여?”

“죄송합니다.”

구건호는 사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널 막둥이 동생처럼 생각해서 앞으로 키워줄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런 짓을 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에라, 이 호로 자식!”

사장이 식식거리며 책상위에 있는 난초 화분을 구건호 옆에 던졌다. 화분이 박살나면서 흙이 튀었다.

“죄송합니다.”

구건호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다시 머리를 바닥에 대고 용서를 빌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