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눈물의 종자돈 (2)
(33)
구건호는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옷을 입은 채로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간밤에 치아도 안 닦고, 양말도 벗지 않은 채 잠들었었구나.”
좁은 방바닥에는 소주병이 여기저기 업어져 있었다.
“꼭 알콜 중독자 방 같네.”
구건호는 시계를 보았다. 아침 5시30분이었다.
“참, 차도 없으니 샤워하고 일찍 회사나 가자.”
구건호는 방을 대충 치운 후에 샤워를 했다. 아침은 거른 채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둔포면 신봉리요!”
구건호는 아침 7시가 되어 회사에 도착했다. 아직 직원들이 출근 전이라 회사는 조용했다. 구건호는 자기에 책상에 앉자마자 입을 앙 물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증권사이트인 팍스넷에 들어갔다.
“청담동 이 회장이 말한 회사가 인선이엔티라고 했지?”
구건호의 두 눈에선 파란 불꽃이 튀었다.
“흠... 매출 1,000억이 넘는 회사군. 재무제표도 그런대로 괜찮아. 창업자가 고졸출신? 참, 대단히 출세했군. 나라고 출세하지 못하란 법이 있냐!”
구건호는 과거 햇살론 융자받은 것 갖고 주식 투자할 때는 재무제표를 보지 않았다. 묻지 마 투자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리 물을 먹다보니 재무제표 분석을 제법 할 줄 알았다.
“챠트가 바닥을 기고 있어. 아직 세력들의 손이 안탔어. 거래량이 느는걸 보니 최근 매집이 조금씩 되고 있는 중이야.”
구건호는 입술을 깨물자 어제 터진 입술에서 다시 피가 흘러 내렸다.
구건호는 시재표를 작성하였다. 시재표는 매일 아침 경리에서 사장에게 올리는 보고서였다. 주로 전날 입출금 현황과 각 은행 잔고, 그리고 받아 논 보관어음 현황을 보고했다.
“금요일 주 거래처인 (주)물파산업에서 기업은행으로 B2B 5억 2천만 원이 들어왔다. 보창공업에서도 신한은행으로 B2B 2천 400만원이 들어왔군.”
구건호는 능숙한 솜씨로 엑셀 작업을 하였다.
B2B (Business to Business)는 기업간 전자 상거래로 한쪽 기업이 발행한 전자어음을 은행이 중간에 들어서 할인을 해주는 제도이다. 요즘 기업들은 큰 거래시 삐투삐 거래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공장 직원들은 대게 아침 8시에 출근한다. 8시가 되자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사장은 보통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여 현장을 한 바퀴 돌고 2층 사무실로 올라왔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아침 형 인간들이 많았다.
“안녕하십니까!”
사장이 들어오자 사무실 직원들이 일어나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흠, 흠. 어? 구건호 오늘은 일찍 나왔네.”
구건호가 시재표를 들고 사장을 따라 사장실로 들어갔다.
“오늘 시재표입니다.”
“빨리도 뽑았네.”
사장은 시재표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4개 은행 잔고가 640만원, 그리고 받을어음 B2B들어온 것이 물파산업 5억2천, 보창공업 2천400만원.... ”
“예, 그렇습니다. 보창 것은 할인하여 오늘 원재료 외상매입금 일부 집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물파는 오는 24일쯤 할인하여 종업원 임금지불에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그래, 미리 할인할 필요는 없지. 그만큼 수수료 나가니까.”
“예, 맞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장이 시원하게 시재표 결재란에 싸인을 하였다.
“구건호! 잘해!”
“예,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사장에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사장이 다시 불렀다.
“이거 청첩장인데 겉봉 주소로 20만원만 부쳐줘. 내 이름으로 말이야.”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절도 있게 다시 인사를 하고 사장이 준 청첩장을 들고 나왔다.
구건호는 잠시 밖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보고 깊은 숨을 들어 마셨다. 그리고 허리띠를 다시 멨다. 출전하러 나가는 장군의 비장한 모습을 하고 자기 의자에 앉았다. 기업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잠시만 빌린다. 내가 회사 돈을 한 푼도 축내지는 않는다!”
구건호의 눈빛에 핏발이 섰다. 구건호는 매출채권 조회로 들어가 물파산업의 B2B 5억2천만원을 할인했다. 순식간에 수수료를 뺀 5억 1천 5백만 원이 현금화가 되어 법인 통장으로 들어왔다.
“잠시만이다.”
구건호는 법인 통장의 5억 1천 5백만 원을 몽땅 자기 개인계좌에 다시 이체했다. 즉시 ‘이체실패’라는 창이 떴다.
“그렇지 와이에스테크 법인통장 이체 한도액이 5억이지.”
구건호는 다시 5억으로 조정하여 이체를 실행했다. 이번엔 이체 성공 창이 떴다.
“종업원 월급전날까지만 이용한다.”
이체 실행 후 구건호는 계속 눈에 불을 키고 컴퓨터 작업을 하였다. 구건호는 잠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구건호는 자기 다이어리 맨 뒤에 끼워 넣은 현대증권 카드를 꺼냈다. 전에 햇살론 융자받은 것 가지고 트레이딩 할 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내 개인통장은 이체 한도가 1억원. 우선 1억 원만 현대증권 계좌로 이체한다.”
구건호는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으니 이번엔 스피드 온라인 트레이딩을 다운 받자.”
구건호는 다이어리에 메모해 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현대증권 온라인 트레이딩 창에 입력했다.
“1억 원이 들어왔다!”
구건호는 1억 원으로 인선이엔티 주식을 몽땅 샀다. 오후에는 총무과장 차를 빌려 타고 둔포 우체국으로 갔다. 사장님 아는 사람 축의금을 부치고 오다가 은행까지 들려 자기 개인계좌의 이체 한도액을 3억 원으로 늘렸다.
“2억 마저 현대증권으로 보낸다.”
구건호는 당일 오후 인선이엔티 주식을 다시 2억 원어치 더 샀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오후 3시30분이 넘어 종가를 확인해보니 주가가 1.5% 빠졌다.
“삐투삐 할인료 500만원, 주가 손실 450만원, 제기랄! 증권거래 수수료까지 합치면 오늘 벌써 1천만 원이 박살났군. 순식간에 내 연봉 반이 날라 갔다!”
구건호는 이상했다. 전에는 차량수리비 10만원만 나가도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평온했다. 연봉이 반이 날라 갔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자기통장에 남아있던 2억 원마저도 증권계좌로 이체하고 인선이엔티 주식을 물타기 했다. 주식매입대금은 총 5억원 어치였다. 물타기 하자 손실평가액은 -1.5%에서 -0.65%로 낮아졌다.
“종업원 월급날까지 20일 남았다. 이제 하늘에 맡긴다.”
구건호는 20일 후에 돈을 버느냐, 아니면 감옥엘 가느냐 하는 운명의 판가름이 정해진다. 구건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환청이 들리는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