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눈물의 종자돈 (1)
(32)
이 회장은 물위에 떠있는 찌를 응시하며 말했다.
“쓸모없는 건축 폐기물이라고 우습게보지 말게. 건축 폐기물 처리로 큰돈을 번 사람이 있네.”
“그래요?”
인선이엔티라는 코스닥 기업이 있지. 거기 사장이 고졸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이네. 건축 폐기물 처리 하나만으로 돈을 벌어 코스닥까지 상장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폐기물 처리로 코스닥 기업이요? 아이고, 저것도 큰돈이 되는 모양이네요.”
“건축 폐기물은 아파트 재건축을 많이 하거니 뉴타운 건설이 시작되면 많이 나오겠지. 그러면 처리업체도 바빠지겠지.”
“인선이엔티라는 주식도 올라가겠네요.”
“주식이란 올랐다 내렸다 하는 것이므로 잘 알 수 없어. 하지만 인선이엔티는 상장한지 얼마 안 되고 아직 세력들의 손을 안탔으니 언젠가는 올라가겠지.”
주식 이야기가 나오자 구건호가 솔깃해 들었다. 구건호는 전에 화성에서 모아둔 돈과 햇살론 융자 받은 돈을 주식으로 몽땅 날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도 주식 하십니까?”
구건호의 물음에 이 회장은 뒤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나는 주식은 안한다네. 주식은 상대의 패를 알 수가 없지. 또 심리적으로 따면 즐거움이 3일 가는데 잃으면 7일 이상의 슬픔이 계속된다는 심리학자들 분석이 있어. 그래서 나는 안 한다네. 앗, 한 마리 물렸다!”
이 회장이 끌어 올리는 낚시 줄에 붕어 한 마리가 걸려 요동을 쳤다.
구건호는 낚시를 끝내고 후배 박종석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호숫가에 앉아 튀김 통닭과 함께 마시는 소주는 황제가 부럽지 않았다.
“갈 길이 머니 난 일어서야겠다.”
“일요일인데 차가 안 밀릴려나?”
“토요일이 밀리지 일요일은 괜찮을 거야.”
“형, 조심해서 가.”
“그래, 또 만나자. 내가 경리 맡은 지가 얼마 안 되고 집안에 우환이 있다 보니 요즘 우울했어. 여기 오니 기분전환이 되었다. 고맙다. 또 만나자.”
구건호는 기분이 좋아져 내려왔다. 아이유 노래를 들으며 고속도로를 달린 건 좋은데 차가 안성을 지나 북천안 IC를 거의 다 올 무렵 시동이 꺼졌다.
“벨트가 나갔나? 이런 일이 없었는데 시동이 저절로 꺼지네. 에이, 씨!”
구건호는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다.
30분 이상 고속도로 노견에서 기다린 끝에 보험회사에서 연락을 받은 긴급 출동반이 왔다. 출동반이 와서 본넷트 뚜껑을 열었다.
“차가 점검한지가 오래된 모양이네요.”
“네. 바쁘다 보니...”
“이런, 이런. 타이밍 기어가 나간 것 같은데요? 견인해야 될 것 같네요?”
“에? 견인요?”
구건호는 눈앞이 캄캄했다. 수중에 20만원 밖에 없었다. 월급날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큰일 났다 싶었다.
긴급 출동반이 연락한 견인차가 왔다. 견인차 기사는 구건호가 타던 낡은 아반떼를 끌고 성환읍내로 들어갔다. 성환의 자동차 정비소로 끌고 들어왔다. 정비사가 나와 이곳저곳을 점검 했다.
“아이고, 타이밍 기어가 나갔네요. 타이밍기어는 미리 교체하시지 그랬어요?”
“타이밍기어요? 얼마나 들어갈 것 같아요?”
“글쎄요. 점검을 더 해봐야 알겠지만 3, 40만원은 예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40이요?”
구건호는 앞이 캄캄했다.
“그럼 수리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차 여기다 놓고 내일 저녁때나 찾아갈 수 있습니다. 명함 있으면 주세요. 수리 다 되면 연락해 드리지요.”
“휴 -”
구건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고속도로상에서 사고 안 나기 다행입니다. 차 수리는 걱정 마세요. 깨끗이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구건호는 정비사에게 명함을 주고 비틀거리며 정비소를 나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두정동 가는 버스를 기다렸는데 버스가 오질 않았다. 깜깜한 밤에 비까지 내려 물독에 빠진 생쥐 같은 몰골을 했다.
“우 씨, 버스가 왜 안와!”
서울과 달라 지방은 버스의 배차 간격이 길었다. 30분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자 할 수없이 지나가는 택시를 탔다.
다행히 성환에서 천안 두정동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예상보다는 택시 요금이 적게 나왔다. 좁디좁은 고시텔 방에 들어가니 우편물이 하나 와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자동차 압류 예정 통지서였다. 자동차 세금미납 으로 자동차를 압류하겠다는 시청의 통지문이었다. 구건호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돈도 돈이지만 내일 아침 출근은 어떻게 하지? 버스 노선도 잘 모르겠는데...택시는 잘 잡히려나? 여기서 회사가 있는 둔포까지는 요금이 얼마나 나올까?”
“으아아아아아!”
구건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내일은 물파산업 삐투삐 들어오는 날이라 사장에게 시재표 보고를 해야 하는데.”
구건호는 미칠 것 같았다. 발을 닦고 양치질을 하고 침대에 누우니 잠도 오질 않았다.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가 소주와 새우깡을 사왔다.
“나라는 인간은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나! 자동차 수리비는 우선 회사 전도금 맡아 논 것 중에서 좀 쓰자. 다음 달 월급타면 메워 놓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밤늦은 시각에 가족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다. 구건호는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하고 긴장되어 전화를 받았다.
“건호냐? 아빠 수술 날짜가 잡혔다. 내일 모래야.”
“그래? 돈이 또 나가겠지?”
“큰일 났다. 수술비가 200정도 들어간데. 그런데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다고 한다. 그럼 600도 넘게 돈이 들어간다는데 이걸 어떻게 하냐?”
“의료보험 혜택을 왜 못 받아?”
“엄마가 요양보호사 나가기 전에 밀린 의료보험비가 240만원이나 된데. 그걸 납부하지 않으면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다고 한다. 넌 뭐했냐? 네 직장에서 피부양자 신고 좀 해 놓지!”
“아, 그걸 누가 알았나! 난, 몰라 이제. 100만원 드리고 왔으니 알아서들 하라고!”
“잘 한다. 어디서 도둑질이라도 해 가지고 와! 아빠 수술 못 받으면 장례비가 더 들어간다.”
“누나는 여태껏 뭐했어! 시집가기 전에 모아둔 돈은 다 어쨌어!”
“너는 여태껏 뭐했냐!”
“아, 씨팔! 우리 부모들은 왜 이렇게 돈이 없어! 내가 오죽하면 돈 때문에 9급 공무원 시험공부 포기했겠어!”
“누가 돈 벌기 싫어서 안 벌었냐? 아빠, 엄마도 살라고 애쓴 것 우리가 다 알잖아!”
“어떤 부모는 살라고 안했나? 에이 씨. 결혼들은 왜 했어! 남들처럼 돈은 못 물려줄지언정 자식들보고 수술비까지 대라니 이게 말이 돼!”
“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죄 받는다.”
“죄는 누가 받아?”
“너, 술 쳐 먹었냐? 나쁜 자식!”
“왜, 욕해. 이 썅!”
목소리가 높아져 누나와 언쟁이 높아지자 고시텔 주인이 쫓아왔다.
“전화는 나가서 받으세요. 다른 방에서 시끄럽다고 항의가 막 들어오고 있어요!”
“알았어요!”
구건호는 누나의 전화를 끊고 밤새도록 술만 마셨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가지고 술만 마셨다.
“음, 그래, 그렇게 해보자!”
구건호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흠칫 놀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구건호는 얼마나 입술을 세게 깨물었는지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