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1화 (31/501)

# 31

B2B 전자결제 (5)

(31)

구건호는 병원 구내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100만원을 찾았다.

“엄마, 이거 100만원이에요. 우선 가지고 계세요.”

“웬 돈이냐?”

“병원 검사결과에 따라 아빠 수술이 결정되겠지만 우선 입원 보증금이 나갈 테니 갖고 계세요.”

옆에 있던 누님이 한마디 했다.

“100만원 가지고는 택도 없어. 에휴, 나도 요즘 이사해서 돈이 궁한데 큰일 났네.”

구건호는 잠시 병원 로비에서 천정을 바라보다가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주름진 얼굴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엄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민망했다.

“내일 나 출근해야 되니 아산에 내려 가봐야 되요. 뭔 일 있으면 전화로 연락하세요.”

“그래, 얼른 가봐라. 늦기 전에. 회사의 웃 사람들 한테 잘 하고.”

한밤중이 되어 인천에서 천안 숙소까지 오는 동안 내내 기분이 착잡했다.

“수중에 있는 120만 원중 100만원을 엄마 드렸으니 20만원가지고 한 달 버텨야 한다.”

구건호는 슬슬 공포감이 들었다.

“이럴 때 신용카드라도 만들어 놓을 걸, 체크카드 밖에 없으니.... 은행 융자가 가능할까? 햇살론과 옛날 장학재단 학자금 융자 등 기존 대출이 있어 안 될 테지. 병원비도 누나 말마따나 100만 원가지고는 택도 없을 텐데.... 우아아아아아아! 미치겠네!”

구건호는 핸들을 잡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구건호는 말이 없어졌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말없이 자기 일만 했다.

“구건호씨!”

사장이 불렀다. 구건호는 잡념 때문에 사장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구건호씨!”

다시 사장이 큰소리로 부르자 깜작 놀라 뛰어갔다. 사장실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

“뭐하는 거요? 사람이 부르는데!”

“죄송합니다. 전화를 받고 있어서 못 들었습니다.”

“인사드려요. 우리 거래하는 기업은행 지점장님이세요.”

지점장이 생글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구건호라고 합니다.”

사장이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구건호씨, 작년도 결산서 가지고 와 봐요.”

“결산서요? 아,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자기자리 뒤에 있는 책꽂이에서 결산서를 찾았다. 결산서는 두꺼운 책자로 되어 있었다.

“여기 분명히 있었는데....”

이상하게 늘 꽂혀있던 결산서가 보이지 않았다. 2년 전 결산서와 3년 년 결산서는 모두 있는데 하필이면 작년도 것이 보이지 않았다. 사장 방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구건호씨 뭐해요! 빨리 가지고 와요!”

“아, 네. 네.”

구건호는 허둥거렸다. 한참 만에 작년도 결산서를 찾았다. 책꽂이 아래층 칸에 있는 걸 이상하게 못 보았다. 구건호는 결산서를 들고 사장 방으로 뛰어갔다.

“이런 건 보이는데 잘 둬야지, 그렇게 찾는데 시간 걸리면 어떡하나?”

“죄, 죄송합니다.”

사장이 결산서를 뒤적이면서 말했다.

“작년도에 우리가 단기차입금이 증가하지는 않았지요?”

“네? 아, 네. 네.”

구건호는 단기차입금이 증가했는지 줄었는지 알지 못했다. 결산서를 한번 보긴 보았는데 건성으로 보고 자세히 숙지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얼떨결에 ‘네’ 라고 대답하고 불안했다. 사장이 손짓을 했다.

“구건호씨는 이만 나가봐요.”

“아, 네. 네.”

구건호는 사장과 지점장에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구건호는 창고에서 작년도 결산서를 한부 찾아와 단기차입금 항목을 보았다. 전전 기수보다 소폭 증가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에효, 사장이 나중에 또 뭐라고 안 할려나.”

구건호는 결산서 한부를 품에 넣고 창고를 나왔다. 집에 가서 결산서를 숙독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구건호는 자기 자리에 와서 멍한 상태로 앉았다.

인천의 아빠 검사결과가 어떨지 모르고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 되었다. 지점장이 간후 사장이 불러 야단이나 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바로 이때 후배 박종석한테 전화가 왔다.

“형, 모래 일요일 낚시가자!”

“포천까지?”

“2시간 반이면 온다고 했잖아. 소주하고 통닭은 내가 사가지고 같 테니 몸만 와.”

구건호는 요즘 집이나 회사, 모두 골치가 아파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었다.

“그래, 가자! 씨팔.”

“그런데 오면 왔지 왜 씨팔 소리가 들어가?”

“그런 일이 있어.”

“뭐가 잘 안 풀리는 모양이군. 여기 와서 바람 쏘이고 기분전환 하고 가!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포천 낚시터로 향했다.

“대한민국이 도로 하나나는 좋네. 국민들 살긴 힘들어도 말이야.”

낚시터에서 박종석을 만났다. 반가웠다.

“야, 이게 얼마만이냐. 반갑다. 어? 그런데 너 살쪘다.”

“삼겹살 많이 먹어서 그래. 공장에서 회식이 자주 있어. 그런데 형은 좀 말랐네.”

“고달파서 그런 모양이다.”

“어? 저기 뭐야. 청담동 이회장이란 분 앉아 있네. 와-, 다시 또 보게 됐다. 수행하는 권 부장이란 아저씨도 같이 있네.”

“회장님 안녕하세요?”

“오, 젊은이들. 반갑네. 잘들 있으셨나? 난 여기 가끔 오는데 젊은이들은 오래간만에 나타난 것 같네.”

“예, 저는 양주에서 일하고 있지만 형은 아산에서 일해요.”

“아산? 멀리도 갔군. 그래 요즘도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고 있나?”

“형은 경리부에서 일해요. 전산회계 자격증 따고요.”

“오, 그런가? 신왕재왕 사주가 본격적으로 회계를 접하게 되었군. 그래 할만 해요?”

“공돌이 할 것 잘못했어요. 툭하면 야근이고 급여 올라간 것도 없어요.”

“하하하. 신왕재왕 사주가 기신대운(忌神大運)에 수업료를 톡톡히 내는군.”

“예?”

“아니, 나 혼자 한 말이네.”

“사주 그거 엉터리에요. 강남 진여 철학원 박도사가 5년 후에 큰 부자가 된다고 했는데 벌써 2년이 다 되어가요. 오히려 사는 게 전보다 더 팍팍해요.”

“하하하 그런가?”

구건호는 박도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박도사가 최고의 사기꾼처럼 보였다. 자기가 뭘 좀 아는 것처럼 지껄이며 사람들 호주머니나 터는 사악한 인물임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이때 멀리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회장과 함께 온 권 부장이 일어나서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건너편 축사 포크레인으로 부수는 모양인데요? 아휴, 멀리서 보아도 먼지가 많이 일어나네요. 건축 폐기물 많이 나오겠다.”

“소리 때문에 고기들 다 도망가겠는데.”

이회장이 낚시대를 다시 던지며 말했다.

“요즘 건축 폐기물이 많아요. 아까 낚시터 올라오는 아스팔트 도로 입구에도 건축 폐기물이 잔뜩 싸여 옆으로 피해서 왔잖습니까?”

“흠... 폐기물이라... 저 폐기물가지고 돈 번 사람이 있지.”

“예? 저게 돈이 되요?”

권 부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회장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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