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B2B 전자결제 (4)
(30)
구건호가 혼자 경리 일을 본지 열흘이 지났다.
세월이 약이던가 삐투삐 할인하는 것은 요령만 알면 되는 것이므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전표 전산 입력이나 정리 등은 업무량이 많아 날마다 야근을 하였다.
오래간만에 후배 박종석에게 전화가 왔다.
“형, 나야.”
“어, 종석이구나. 잘 있었냐?”
“형, 경리업무는 할만 해? 노동 안하고 사무직 되었으니 출세했네.”
“말마. 고달프다. 맨 날 야근한다.”
“사무직은 야근 수당 없잖아.”
“그래도 어떻게 하냐. 일이 밀리면 안 돼는 데.”
“월급은 좀 올랐어?”
“그대로야. 180.”
“킥킥, 나는 용접 좀 하고 기계도 좀 만지니까 월급 올랐어.”
“얼마 받는데?”
“200만원.”
“그래? 나도 그냥 공돌이 할 걸 그랬다.”
“나, 공돌이 아니야. 엄연한 용접기사야. 국가 기술자격증도 있잖아.”
“네가 나보다 더 잘한 것 같다. 요즘 부모님이 경찰 공무원 하라고 안하니?”
“안 해. 지난번 아버님 입원했을 때 내가 돈 모은 것 400만원 갖다드리니까 굉장히 좋아하셨어.”
“그랬구나. 넌 효자다.”
"뭘.“
“나하고 같이 있는 경리부장이 출산 휴가 들어가서 요즘 혼자 뺑이 친다.”
“사무직도 마냥 좋아 보였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네.”
“사무직 고달 퍼. 괜히 청담동 이 회장 말 듣고 경리학원 다녔나봐.”
“이제 멀리 떨어져서 낚시 못가겠네.”
“아냐, 고속도로 달리면 2시간 30분이면 포천 낚시터 갈수 있어. 내가 한가해 지면 한번 연락할게.”
“한번 와.”
“그래, 알았다. 들어가거라. 전화 끊는다.”
“안녕.”
구건호는 경리부장이 인계하고 간 외상매출처가 입금 날짜에 돈이 들어오는 가 매일 체크를 하였다. 제 날짜에 돈이 안 들어 오면 상대방 회사의 경리 담당자에게 독촉 전화도 하였다. 거래처 40군데 중 대부분 큰 회사는 삐투삐로 들어오고 5군데는 전자 어음으로도 돈이 들어왔다.
“전자어음은 사채시장에서도 할인 가능하다고 김 부장이 말했지? 김 부장이 알려준 사채업자 전화번호가 있으니 전화해보자.”
삐투삐가 아닌 전자어음은 해당 사채업자에 양도하고 할인 수수료를 공제한 나머지를 입금 받았다. 그러나 전자어음은 양도 많지 않고 금액도 적었다. 한번은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았다.
“구 선생님이시죠. 전자어음 할인은 다른 업자에게 할인하지 마시고 저희한테 맡겨주세요. 할인료를 싸게 해드리죠.”
외상매출처 중에서 2군데 영세업체는 아직도 종이어음을 발행했다. 한군데는 200만 원짜리 종이어음을 발행했고 다른 한군데는 300만 원짜리였다.
“종이어음은 피곤해. 이걸 받으러 내가 일일이 가야하니 되게 귀찮네.”
구건호는 외상매입처 돈을 결제 할 때는 삐투삐를 할인하고 전자어음을 할인하여 결제하지만 어느 때는 사장이 가지고 있는 TIME OTP를 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주요 매출처인 (주)물파산업만 기업은행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다른 소규모 거래처도 기업은행으로 삐투삐가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물파산업 외 10군데가 기업은행으로 들어왔다.
한국전력 전기료가 밀려 한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기료 1200만원이 밀렸습니다. 오늘까지 입금 안 되면 가산요금 붙습니다.”
구건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계좌를 조회하여 보았다. 잔고가 별로 없었다. 할 수없이 기업은행으로 들어 온 삐투삐를 할인해야 했다.
“사장님이 가지고 있는 OTP를 달라고 해야지.”
구건호는 사장실 문을 노크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인지 사장은 의자에서 졸고 있다가 깜짝 놀라 깨었다.“
“뭐야?”
“전기료 때문에 기업은행으로 들어온 삐투삐 할인을 해야겠습니다.”
사장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기업은행 OTP를 구건호에게 주면서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거 앞으로 자네가 갖고 있어. 수시로 달라고 하니 되게 귀찮네. 가져가!”
사장은 기업은행 TIME OTP를 구건호에게 휙 던져 주었다.
“제가 보관하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그래. 자꾸 귀찮게 내방 문 두드리고 들어오지 말게. 나도 귀찮지만 자네도 귀찮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사장이 준 TIME OTP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김 부장이 복귀할 때까지 자기가 보관하기로 했다.
구건호가 혼자 업무를 본지 2주가 지난 어느 날 시집간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건호냐? 혹시 너 돈 가지고 있는 것 있냐?”
“없어, 왜?”
“주인집에서 방을 비워달라고 하는데 돈이 좀 필요하다. 지금 있는 월세 보증금으론 이 근처에서 방 얻기가 힘들어 큰일 났다. 한 5백만 원 빌릴 수 없겠냐? 이자는 주겠다.”
“없어. 나 살기도 빠듯해.”
“넌 직장 다닌 지가 4년이 넘었는데 돈 5백도 못 모았냐?”
“월급이 적어 모으기 힘들어.”
“술 먹고 다니니까 그렇지.”
“그러는 매형은 왜 돈을 못 모았어.”
“지입차 운전해가지고 정아 유치원 보내는 것도 벅차다. 어휴, 이거 어디로 이사를 가지.”
“미안해, 도와주고 싶지만 진짜 돈 없어.”
“알았다. 너한테 이야기하는 내가 나쁜 년이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알았다니까. 전화 끊어!”
누님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한테까지 전화를 한걸 보니 급하긴 급한 모양이군, 그러나 나도 없으니 별수 있겠나.”
구건호는 찜찜하지만 할 수 없었다. 사흘 후에는 막 퇴근하려는데 엄마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큰일 났다. 너 인천에 좀 와야겠다. 아빠가 쓰러져 119 구급차 실려 갔다.”
“에? 어디가 어때서 그런 거예요?”
“나도 모르겠다. 병원비도 없는데 이거 어떻게 하나.”
엄마는 울먹이며 전화를 했다.
“알았어요. 내 지금 출발할게요. 에이 씨!”
구건호는 짜증을 내며 인천으로 출발했다.
인천 길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엄마와 누나가 와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지금 엑스레이 찍고 MRI 검사하고 있어.”
“의사가 뭐래요?”
“아직 말이 없어. 저기 담당 의사선생님 오시네.”
“보호자분이 누구세요? 아드님 없어요?”
구건호가 의사 앞으로 다가섰다.
“제가 아들입니다.”
“잠깐 이리 오시지요.”
“검사 결과가 어떻습니까?”
“심근경색입니다. 심장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관동맥이 막혀 심장근육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빨리 입원수속 밟으셔야 합니다. 심장 수축력이 급격히 저하되어 근육세포가 죽게 됩니다. 급성 저혈압 증상도 오게 되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빨리 입원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구건호는 불안했다.
“입원 후 수술하면 돈이 많이 깨질 텐데. 얼마나 나올까? 내 수중에 120만원밖에 없는데.”
구건호는 응급실 밖으로 나와 연신 담배만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