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5화 (25/501)

# 25

충남 아산행 (2)

(25)

구건호는 방일가스 업무를 새로 모집한 경리에게 인계를 했다. 새로 온 경리는 40대 아줌마였다. 사장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자기 부인을 경리로 앉힐까 하다가 부담이 되었는지 벼룩신문 광고를 내라고 하였다.

벼룩신문 광고를 내자 경리 지원자가 11명이나 되었다. 사장은 면접 절차도 없이 그냥 회사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뽑으라고 하였다. 사장 부인은 더욱 도끼눈을 하고 사장과 자주 다투었다.

“여성을 뽑았으니 사모님께서 더욱 식식 거리겠는데.”

구건호는 슬며시 웃음이 났다.

구건호는 아산으로 출발하기 이틀 전 모든 짐을 정리했다. 가전제품이야 원래 원룸 주인 것이므로 이불과 옷, 책들만 챙겼다.

“포천공장에서 근무하다가 이곳으로 올 때 불필요한 짐을 잘 버렸지. 이번은 단출하네.”

그래도 짐은 아반떼 뒷 트렁크를 가득 채웠고 그것도 모자라 뒷좌석도 가득 채웠다.

구건호가 모는 아반떼 승용차는 털털거리며 양주 고읍동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탔다.

“잘 있거라. 양주시야.”

구건호는 멀리 있는 양주시의 아파트들을 돌아보았다. 콧마루가 괜히 시큰거렸다. 한참을 달리다가 포천시 갈림길이 나왔다.

“포천시 너도 잘 있거라.”

구건호는 이곳 생활을 가늠해 보았다. 포천에서 공돌이 생활 1년, 양주에서 공돌이 6개월, 경리 6개월, 모두 2년을 이곳에서 청춘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감회가 일어났다.

“화성시에서 공돌이 생활한 것을 보태면 그동안 4년이나 공장 생활했네. 남은 건 털털거리는 300만원도 못되는 낡은 아반떼 뿐이니 씨팔, 더럽게 한심하네.”

구건호의 아반떼가 경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차량이 많아졌다.

“앞에 가는 차 모두 고급차네. BMW, 벤츠, 랜드로바, 제너시스, 그랜저, K7, 빌어먹을! 내차 소리가 제일 요란하네.”

구건호는 이 길을 다시 밟을 줄 몰랐다. 면접 발표일을 하도 넘겨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런 행운이 오다니 실감이 안 났다.

“행운? 그래봤자 쫄다구고 월급 180정도겠지. 4년 동안 돈 한 푼 못 모으고 화성으로 포천으로 양주로, 이제는 32살이 되어 아산으로 떠도는 신세가 되었으니 나는 보헤미안임이 틀림없어.”

구건호는 지루한지 노래를 흥얼거렸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흘러나왔다.

“Is this the l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Caught in a landslide. No escape from reality."

(이것이 현실일까요? 아니면 정말 환상일까요?

흙더미에 갇혀 현실에서 도망 칠 수 없어요.)

구건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흥얼거림이 계속되었다.

“Open your eyes. Look up to the sky and see.

I'm just a poorboy. I need no sympathy.

Because I'm,

Easy come, Easy go, A little high, little low,

Any way the wind blows.

It does'nt really matter to me, to me."

(너의 눈을 떠 보아라. 하늘을 올려다보아라.

나는 가난한 소년일 뿐이에요. 동정은 필요 없어요.

왜냐면 나는

쉽게 오고, 쉽게 가고, 약간 높고, 약간 낮게 사니까요.

바람은 언제나 불었지, 나와는 정말 상관없는 일이에요. 나와는.)

구건호는 끝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구건호는 안성휴게소에 들려 화장실서 눈을 닦았다. 생수를 한 병 사 마시니 기운이 다시 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시간에 아산 둔포읍에서 원룸을 찾으면 바로 입주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 천안시 두정동으로 가자.”

구건호는 근무지가 될 와이에스테크 공장에서 멀지 않은 천안시 두정동으로 가기로 했다. 거기는 번화가이므로 고시텔도 있으니 바로 입주가 가능했다. 두정동은 전에 화성에서 플라스틱 공장 사출공으로 있을 때 한번 와본 동네이기도 하였다.

구건호는 두정동에서 쉽게 고시텔을 찾았다.

“고시텔과 찜질방은 나의 영원한 고향. 보헤미안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곳.”

구건호는 흥얼거리며 고시텔로 올라가 관리실 문을 두드렸다.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가 눈을 비비며 문을 열었다.

“한 달간 사용할 방 있습니까?”

“있긴 있는데 인터넷은 내일 연결됩니다.”

“괜찮습니다. 얼마지요?”

“26만원!”

구건호가 계산하려고 카드를 꺼내자 고시텔 주인은 눈을 크게 뜨며 현금으로 달라고 하였다.

“카드 계산하려면 28만원 주셔야 합니다. 부가세가 붙거든요.”

구건호도 현금이 없었다.

“ATM기에서 현금 뽑아오지요.”

구건호는 가까운 곳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찾아 고시텔 한 달 방값을 지불했다. 짐을 옮기고 고시텔 침대에 누었다.

“야, 이건 완전히 감옥 같군. 뭐가 이렇게 좁아. 화장실은 움직이기도 힘들겠네. 양주에 있는 원룸은 여기 비하면 아방궁이지. 어쨌든 여기서 한 달만 비벼보자.”

구건호는 입사서류가 든 대봉투를 들고 와이에스 테크 공장으로 출근했다. 종업원이 80명이라고 했으니 그동안 구건호가 다녔던 공장 규모로는 제일 컸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나왔네.”

“이봐요! 어디 가요?”

경비 아저씨가 쫓아와 불렀다.

“2층 경리부에 갑니다.”

“말을 해야지, 말을. 저 위 2층으로 가세요.”

구건호가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2층 사무실은 경리팀, 총무팀, 영업팀, 물류팀 등이 있었다. 말이 팀이지 책상 수로 보아서는 팀에 있는 직원은 한 두 명인 듯싶었다.

“안녕하십니까? 연락받고 왔습니다.”

“아, 구건호씨! 이리와 앉으세요.”

구건호가 경리부장이 내준 간이 의자에 앉았다. 가지고 온 서류를 제출했다. 경리부장이 서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조금 있으면 사장님 나오세요. 먼저 사장님께 인사드리고 내가 각 직원들 소개해 드리지요.”

누가 들어오자 건너편 책상에 앉아있는 직원들이 일어나 인사를 했다. 사장이 온 모양이었다. 경리부장은 책상위에 있는 서류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따라오세요.”

구건호는 경리부장을 따라 사장실로 갔다. 사장실로 가는 도중 구건호가 경리부장을 자세히 보니 배가 좀 불러있는 것 같았다. 임신 중인 모양이었다. 경리부장이 사장실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새로 경리부에 들어올 신입사원입니다.”

경리부장이 사장에게 구건호를 소개했다. 사장은 역시 미남이었다. 사장은 테이블 위에 있는 경제신문을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 그래? 이리와 앉아요.”

구건호가 조심스럽게 테이블의 맨 가장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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