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충남 아산행 (1)
(24)
구건호는 양주로 돌아와 다시 방일가스에 열심히 다녔다.
매출이 발생하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수입과 지출은 엑셀에 <일일 수지 현황>이라는 표를 작성하여 사장에게 보고하였다.
지출 영수증은 꼭 챙겼다가 문방구에서 사온 전표에 따로 작성하고 전표 뒤에 풀로 영수증을 붙였다. LPG가스료 입금이 안 된 업체는 독촉 전화도 하였다. 그밖에 사장의 잔심부름도 하였다.
“이렇게 세월만 가는 건가?”
구건호는 지금의 처지가 먹고는 살지만 저축이 힘들어 나이만 자꾸 먹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초조감도 들었다.
“수요일이 되었는데 아산에 면접 본 회사는 연락도 없네.”
구건호는 수요일이 되자 문자메세라도 왔는가 하여 열심히 스마트폰을 보았다. 혹시 전화 소리를 못 들을까 걱정하여 벨소리 음성도 크게 키워 놓았다. 그러나 전화는커녕 문자 메시지도 없었다.
“튼 모양이다. 미련 갖지 말자.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데 나 같은 스펙과 경력 가지고 되겠어? 면접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 해야지.”
수요일이 지나고 목요일과 금요일이 지나자 구건호는 아산에 있는 회사는 체념하였다. 다시 워크넷과 벼룩신문을 훑어보았지만 눈에 확 띠는 회사가 없었다.
“벼룩 신문에 나오는 경리 모집은 여사원이나 뽑지 나 뽑겠나. 혹시 남자를 뽑으면 여기처럼 반쪽짜리 업무에 잡일과 겸하는 것들일 테지.”
구건호는 퇴근하면 희미한 조명 아래서 노트북으로 인터넷이나 보던가 아니면 동네 피시방으로 갔다. 고등학교 동창들보다 한없이 밀리는 것 같아 우울했다.
“결혼한 조원철은 잘 살겠지? 카이스트 나와 판교 벤처기업 연구소에 나간다는 황병태도 결혼 한다며? 짜식, 페이스북에 결혼한다는 글 올렸던데, 나한테는 연락도 없네. 조원철이나 다른 동창들한테 연락하면 내 전화 알 것을.”
구건호는 이틀에 한번 꼴로 소주를 사다 마시니 주량만 늘었다.
“나는 촌구석에서 살 팔자인가 보다. 팔자가 이렇게 더러운데 뭐? 신왕재왕한 사주팔자라고? 개뿔! 신왕재왕은 무슨 얼어 죽을!”
구건호가 면접을 본 아산에 있는 회사는 면접을 본지가 보름이나 지나버렸다. 이제 언제 면접을 보았었든가 하고 기억 속에 사라지려고 할 무렵 아산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뜻밖이었다.
“구건호씨죠? 안녕하세요? 아산 와이에스테크 경리부장입니다.”
“아, 예. 구건호입니다.”
“연락 늦게 드려 미안합니다. 이번 경리사원 모집에 채용 확정되었습니다. 다음달 1일부터 출근 가능하시지요?”
구건호는 느닷없는 전화에 정신이 번쩍했다.
“아, 예,예. 가 가능합니다.”
“다음달 1일이라고 해도 5일 정도 남았는데요. 어떻게 지금 계신 곳 정리 다하고 오실 수 있어요?”
“무 물론입니다. 가능합니다!”
“그럼 오실 때 준비서류를 불러드리지요. 메모 가능하시지요?”
“아, 예 예.”
구건호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메모지와 볼펜을 찾다가 휴대폰도 떨어트리고 컴퓨터 줄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였다.
“오실 때 준비서류는 주민등록등본 한통, 병역사항 기재된 주민등록 초본 한통, 최종학교 졸업증명서 한통, 정보이용 동의서 한통, 신원진술서 한통, 지금 다니는 회사 경력증명서 한통 이렇게 준비해 가지고 오세요. 정보이용 동의서와 신원진술서 양식은 이력서에 나와 있는 메일 주소로 보내드리지요.”
“아, 알겠습니다. 준비하여 가지고 가겠습니다!”
“1일 날 오실 때 아침 8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너무도 황송하여 감사합니다를 두 번이나 복창했다.
“됐구나! 됐어!”
구건호는 손뼉을 쳤다. 기분이 하늘로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왜 지금 연락하지? 지난주 수요일까지 연락한다고 해 놓고서.”
구건호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옳아, 뽑아 논 사람이 사정이 생겨 못 오니까 나를 대타로 뽑은 거야. 그러면 그렇지. 나 같은 놈을 뽑겠어? 어쨌든 뽑는다고 했으니 내려가자.”
구건호는 수금하러 나갔다가 오는 길에 은현면 면사무소를 들렸다. 주민등록 등본과 초본을 발급받았다.
“최종학교 졸업증명서는 인터넷에 들어가 뽑으면 되는데 경력증명서? 이런 건 방일가스에 없는데. 인터넷 보고 하나 만들지 뭐.”
구건호는 사무실에 돌아와 인터넷을 보고 경력증명서 하나를 만들었다.
“사장님 직인을 찍어야 하는데.... 세금계산서에 찍는 사용인감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그냥 팡팡 찍어?”
그래도 사장한테 말해야 되는 게 순서일 것 같았다.
“사장이 배관 수리하러 나갔으니 오시면 잘 말씀드리자.”
오후 5시가 넘어 사장이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개자식들! 수리비용까지 깎으려고 하네. 고쳐주지 않고 그냥 돌아올걸. 에이!”
사장은 피곤한 모습으로 자기 의자에 풀썩하고 앉았다. 구건호는 사장에게 회사를 그만 둔다는 말을 할까 했지만 피곤한 사장의 얼굴을 보고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익? 5시 반이네. 구 주임 이제 들어가 봐요.”
구건호가 미적거리자 사장이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왜? 네게 할 말이라도 있소?”
“저... 이런 말씀 드리기가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부모님 계신 곳으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왜? 아버님이 입원했다고 해서 그러슈?”
“부모님이 제가 오길 바라고, 또 부모님들도 연세가 많아서...”
“끙....”
사장의 얼굴이 벌레 씹은 표정이었다.
“누구를 또 앉히지. 구주임이 딱 좋았는데.”
“저, 여러 가지 생각해 보았는데 제 자리는 사모님이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인건비 부담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집사람이? 그 사람이 컴퓨터를 아나?”
“요령만 알면 됩니다. 한두 달 하다보면 속도도 빨라 질것입니다.”
“인건비 절감이야 되겠지만... 그 여편네 회사 나오면 자꾸 나하고 싸우려고 하는 통에 그게 문제야.”
“하하. 사장님 좋으셔서 그런 것 아닙니까.”
“하여튼 생각 좀 해 보겠네.”
“그럼 제가 이달 말까지 근무하고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빨리?”
“부모님 재촉이 심해서요.”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에이.”
“그리고 제가 내려가면 혹시 필요할지 몰라 여기 회사 근무한 경력증명서 하나 만들겠습니다.”
“경력증명서? 나 그런 것 만들어 본적 없는데?”
“양식은 제가 만들어서 타이핑 했습니다. 사장님 도장만 찍어주시면 됩니다. 세금계산서에 찍는 사용 인감 찍어도 됩니다.”
“그래? 그럼 그건 알아서 하슈.”
“감사합니다.”
“날씨 어두어지기전에 얼른 퇴근하슈.”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공장을 나오면서 뒤돌아보았다.
“방일가스. 내 추억이 어린 공장이다. 사장님이나 사모님이 모두 좋으신 분들이니 성공하면 꼭 한번 인사를 와야겠다.”
구건호는 어스름 무렵 차를 몰고 원룸이 있는 광적면 면사무소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원룸 주인에게 방을 빼야겠다고 전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