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2화 (2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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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사원이 된 공돌이 (3)

(22)

구건호는 워크넷 사이트를 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다니는 방일가스에선 배울 것이 없어. 되든 안 되든 집에 가서 이력서를 쓰자. 이력서는 메일로 보내도 되니까 그렇게 하자.”

구건호는 이렇게 말 하면서 화면을 다시 스크롤 하여 모집 광고를 낸 회사의 상호를 유심히 보았다.

“아산에 있는 회사 상호가 와이에스 테크네. 와이에스면 전에 대통령 김영삼 아닌가? 여기와 관련 있나? 하하 그건 아니겠지. 자본금 3억 원에 종업원 80명 회사네. 좀 규모가 있는 회사 같은데?”

구건호는 낚시 장비를 거두어 차에 실었다.

구건호는 원룸에 돌아와 이력서를 썼다. 써 놓고 보니까 이전보다 이력서 한 줄이 더 늘었다. ‘(주)방일가스 경리담당 근무’라고 쓰니 근사해 보였다. 물론 자격 취득 란에 전산회계 2급, 워드 프로세스 1급, ITQ엑셀 자격 등을 적었다.

“전산 회계가 1급이면 좋았겠는데. 뭐, 초보자 환영이라고 했으니 괜찮을 거야. 월급 많이 받는 고참들이 초보자 환영하는데 지원하겠어?”

구건호는 이렇게 자기를 위로하면서 이력서를 메일로 보냈다. 이력서를 보내고 나니 밤 11시가 넘었다. 배도 출출하고 한건 했다는 뿌듯함에 그냥 잘 수가 없었다.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와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맥주, 오징어 땅콩을 샀다.

“종업원 80명 회사니 제대로 된 경리업무를 배워야지. 경리는 사장과 접촉이 많으니 신임이라도 받으면 급여도 올라갈 것 아닌가? 연봉 4,000이상 되면 지방 도시에서 취미생활하며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지. 그런데 아산시는 내가 지나가다 보았어도 살아보진 않았는데, 지방 도시들이야 다 똑같겠지.”

구건호는 오늘따라 맥주 맛이 꿀맛이었다. 낚시터에 갔다 와 운동도 적당히 했고 이력서도 보내어 맥주가 잘 땡겼다. 알딸딸한 기분이 되어 잠이 들었다.

구건호는 양주시 은현면에 있는 방일가스 경리담당으로 착실히 근무했다.

“매일 똑같은 일 하니 지루해.”

구건호는 사장이 배관 수리하러 나가면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말이 회사지 직장 동료 하나도 없고 상사와 부하도 없는 회사였다.

“내가 말이 경리지 실상 경리는 아니지. 그냥 수금사원 정도겠지. 그런데 아산에 있는 회사는 이력서 낸지가 열흘이 넘었는데 어째 소식이 없나?”

과거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포기하고 취업을 위해 이력서와 자소서를 많이 냈었다. 아산에 있는 회사는 특별히 자소서가 없고 그냥 이력서만 낸 상태였다.

“틀린 모양이다. 또 나보다 스펙 좋은 년들이 많이 지원한 모양이다.”

아산에 있다는 이력서 낸 회사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슬슬 장래가 걱정되었다.

“회사 같지도 않은 이곳에서 처박혀 있으면 결혼은 언제 하지? 월급 180 받아서 방값, 자동차 할부 값, 햇살론 이자, 대학 다닐 때 등록금 융자받은 장학재단 이자, 통신료... 이런 것들 빼면 남는 것도 없는데. 외국인 여자를 사귈까? 걔네들도 내가 모아 논 돈도 없으니 좋아하지 않겠지?”

구건호는 이렇게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에이, 씨. 우리 부모는 왜 돈이 없는 거야! 그러면 결혼들을 하지 말지!”

이러면서 부모님까지 원망하였다.

구건호가 다니는 방일가스는 직원도 없어 따로 점심을 시켜먹지 않는다. 사장과 교대로 마을 입구에 있는 한식집에 가서 먹고 왔다. 이 한식집은 주변에 있는 공장 직원들이 이용해 낮12시가 되면 작업복 입은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오늘은 돼지고기네!”

구건호는 좋아하는 돼지고기가 나오자 배식판에 잔뜩 담았다. 상추까지 있어 같이 담았다. 자리가 없어 여자 2명이 있는 테이블에 합석을 했다.

“여기 앉아도 되지요?”

여자들이 고개를 드는데 동남아 여성들 같았다.

“오늘은 재수가 좋은데, 여성들 옆에 앉으니.”

지방 소도시의 영세 공장지역은 젊은이들이 많지 않았다. 작업복을 입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40대, 50대였다. 단, 외국인 노동자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구건호는 앞에 있는 여성들이 젊은 사람이라 슬그머니 곁눈질 하여 보았다.

“생긴 것은 우리와 약간 달라도 몸매는 호리 호리 하네.”

구건호는 이런 생각을 하며 밥을 먹었다. 작업복을 입은 외국인 여성들도 젊은 구건호를 호기심 있게 보았다.

구건호는 밥을 먹으면서 스마트 폰을 보았다. 메시지가 하나 들어와 있어 열어 보았다.

“이게 뭐야? 연체이자 독촉인가?”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력서를 냈던 아산의 와이에스 테크 라는 회사에서 온 것이었다.

“당사의 경리사원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 수요일 오전 10시 면접을 진행할 예정이오니당사 회의실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왔구나!”

구건호는 소름이 끼쳤다. 몸에서 금방 열이 올라 얼굴이 빨개졌다. 어쩌면 행운의 기회가 될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지난번 제약회사 경리 지원처럼 실력 있는 사람들이 지원한다면?”

괜히 아산까지 왔다 갔다 헛고생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구건호는 신나게 밥을 먹고 식당을 나왔다. 노래가 절로 나왔다. 가수 아이유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사장은 없고 사모님이 앉아 있었다.

“뭐, 좋은 일 있슈?”

“아, 아닙니다.”

“노래까지 부르고 오는 것 같은데? 좋은 일 있다고 얼굴에 쓰여 있는데, 뭘. 여자 생겼나?”

“아, 아닙니다.”

“구 주임 밥 먹고 왔으니 난 가요. 사장님은 시청에 일 보러 가셨어요.”

“아, 그러십니까?”

구건호는 사모님이 나가자 다음 주 수요일 무슨 명목으로 결근을 할까 하고 고민했다.

“아산까지 자동차로 3시간 잡으면 되겠지. 아침이라 차가 밀리거나 공장을 못 찾아서 헤매면 안 되니까 4시간 전에 출발한다면, 새벽 6시에는 출발해야 안전하겠다.”

구건호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면접이 11시에 끝난다면 점심 먹지 않고 오면 오후 2시 안에는 오겠지. 사장한테는 부모님 주소지로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왔다고 할까? 아니면 아프다고 할까?”

구건호는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렸다. 아버님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오는 것으로 말하기로 했다.

“주안에 계신 아버님 인천 길 병원에 입원시키고 오후에 출근한다고 하면 봐 주겠지. 대신 밀린 일은 퇴근 후 늦게까지 하고 들어간다고 해야겠다. 아산에 있는 회사 면접만 보고 떨어지면 여기라도 계속 다녀야 하니까.”

수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옷을 새로 갈아입고 머리도 단정히 빗었다.

“머리는 어제 헤어숍에서 깎고 오길 잘했지.”

구건호는 구두도 반짝반짝 닦았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구건호는 아산으로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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