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1화 (21/501)

# 21

경리사원이 된 공돌이 (2)

(21)

구건호는 우체국에 내용증명을 부치지 못한 채 회사로 돌아왔다.

“벌써 갔다 오슈?”

사장이 의자에 앉아 졸고 있다가 말했다.

“아, 예. 핸드폰을 놓고 가서요.”

“끙...”

사장은 안 좋은 표정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사장이 나간 사이 내용증명 두 장 얼른 뽑자.”

구건호는 내용증명 두 장을 더 프린트 했다. 구건호는 다시 부리나케 우체국으로 차를 몰았다. 우체국에 갔더니 이번엔 얼굴 새카만 외국인이 무엇을 부치고 있었다. 구건호 차례가 되어 내용증명 3장을 내밀었다. 우체국 직원이 내용증명을 펼쳐 꼼꼼히 살폈다.

“이거 도장이 빠졌네요. 발신자 도장말예요.”

구건호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신자는 사장 명의로 되어있는데 도장이나 싸인이 빠진 것이다. 하다못해 목도장이라도 찍어올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의 목도장 하나는 경리가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 예. 다시 해오겠습니다.”

우체국 직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도장 찍을 때 간인도 찍으셔야 됩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내용증명 3장을 도로 챙기면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여직원이 날 얼마나 무식하다고 할까.”

이러면서 돌아서는데 여직원이 또 한마디 한다.

“발신자가 본인 아니시면 저 앞에 있는 위임장 한 장 가져가세요. 위임장 써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구건호는 또 창피했다. 얼른 홀 안에 비치된 위임장을 한 장 뽑았다. 나오면서 구건호가 우체국을 돌아보았다.

“나쁜 뇬. 처음서부터 가르쳐 주지. 세 번씩 사람 오게 만드네. 쓰벌!”

구건호가 사무실에 되돌아오자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연장을 챙겼다.

“가스배관 수리 가십니까?”

“사무실 잘 지키쇼.”

구건호는 사장이 배관 수리하러 간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얼른 서랍에서 사장의 목도장을 꺼내 발신자 도장을 찍고 간인도 찍었다. 위임장도 쓰고 사장 도장도 찍었다. 사장의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쏜살같이 우체국으로 차를 몰았다.

“오늘 업무 막 끝났는데요.”

우체국 직원이 일어서며 말했다. 구건호는 당황했다.

“아니, 이것 하나만 봐주세요. 이것 때문에 오늘 여기 3번이나 왔어요.”

우체국 직원은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마지못해 도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주세요.”

우체국 직원은 내용증명을 보더니 망치처럼 생긴 스탬프 도장을 가지고 와서 팡팡 찍었다. 그리고 도장 찍은 한부를 구건호에게 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허리가 땅에 닿도록 우체국 직원에게 인사를 했다.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는 우체국에서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다시 콧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하면서 배워가는 거지 뭐.”

방일가스에서 경리생활을 한지 6개월이 넘었다.

“코스모스가 피었네.”

세월은 결코 사람을 속이는 법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청담동 이회장님을 만난 것이 꼭 1년 되었어.”

구건호가 포천 낚시터에서 이회장을 처음 볼 때도 코스모스가 막 피었을 때였다.

“이제 이곳 업무도 숙달되었으니 슬슬 진짜 경리할 자리를 알아봐?”

구건호는 규모가 있는 회사에 들어가 진짜 경리 업무를 해 보고 싶었다. 다시 워크넷에 들어가 경리직 모집 광고를 살폈다.

“여기 사장님과 사모님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좀 미안하네. 뭐 또 다른 사람 모집하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창밖의 코스모스를 바라보았다.

“참, 주말에 포천 낚시터나 가볼까? 이회장님 만나서 경리 일 하고 있다고 말하면 뭐라고 할까 궁금하군.”

이렇게 말하면서 후배 박종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종석도 경험을 쌓는다고 냉동기계를 제작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지금은 공무팀 쫄다구로 일한다고 하였다. 전화가 한참 가도 받지를 않았다.

“빡세게 일하는 모양이군. 전화도 못 받으니 말이야.”

전화를 끊고 20분 정도 지나자 박종석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어, 형. 왜 전화했어.”

“왜 전화 안 받냐?”

“응, 콤푸레샤 고치고 있었어.”

“너, 콤푸레샤 고칠 줄도 아냐?”

“아냐. 팀장이 고치는데 따까리 하고 있어.”

“야, 이번 주말에 포천 낚시 안 갈래?”

“이번 주말?”

“야, 거기 안간지 꼭 1년 됐다.”

“나, 못가.”

“왜?”

“이번 주말 팀장 딸이 결혼해. 거기 가봐야지. 공장직원 모두 가는데.”

“그래? 그럼 다음에 가자.”

전화를 끊고 나니 낚시 생각이 더 났고 이회장 근황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회장을 어서 만나 경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도 싶었다.

“이번 주말은 나 혼자 가보자. 할 일도 없는데.”

구건호는 주말이 되자 포천 낚시터를 찾았다. 산북면을 지나서 한참가야 되는 곳이다. 서울에서 멀고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찾는 사람도 거의 없는 저수지였다.

“여기도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구나. 1년만이네.”

구건호는 혹시 이회장이 왔나 주위를 살폈다.

“주말이면 오시곤 했는데. 안 보이네.”

구건호는 프라스틱으로 만든 찌를 끼우고 루어 낚시를 시작했다.

“고기가 안무네. 내가 온다고 다 도망갔나?”

구건호는 루어 낚시줄을 연신 감아올리면서 저수지를 반이나 돌았다.

“물렸다.”

구건호는 파닥거리는 고기를 당겨 낚시찌를 뺏다. 손바닥만한 베스였다.

“잔챙이네.”

구건호는 베스를 도로 살려줄까 하다가 토종 물고기 씨를 말리는 놈이라 그냥 풀숲 위에 던졌다.

“한 두 시간 있으면 해 넘어 가니까 고기들이 나올 텐데 그냥가자.”

구건호는 혼자 하는 낚시가 재미없는지 낚시대를 걷어 올리고 바위 돌 위에 앉아 스마트 폰을 보았다. 문자 메시지 온 것이 없나 하고 살피다가 워크넷 사이트에 들어갔다. 눈에 띠는 광고가 하나 나왔다.

“경리사원 모집. 초보자 환영. 단, 남자는 병역필자. 자차 소유자 환영.”

남자는 병역필자 라고 한 것을 보니 남자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구건호는 이걸 보자 소름이 끼쳤다.

“여가 어디냐? 어이쿠, 멀기도 하네. 충남 아산이네.”

충남 아산이면 지금 살고 있는 원룸을 옮겨야 한다. 보증금이 한 달 월세만 낸 상태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았다.

“자차 소유자 환영이라고 한걸 보니 여기도 교통 사정이 썩 좋은 데는 아닌 모양이다.”

구건호가 그동안 옮겨 다닌 공장들은 대개 교통편이 나쁜 외진 곳에 있었다. 종업원이 20명 미만인 회사들은 출퇴근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곳도 많아 자차 소유자를 환영하였다. 그래서 공장의 직공들은 대부분 썩은 차라도 타고 다닌다.

외국인 공돌이들도 드물게는 털털거리는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여자들도 오토바이를 잘 타고 다녔다.

“차를 그때 화성 공장에서 근무할 때 잘 샀지. 요즘 중고차도 할부가 되니 좀 좋아? 신용불량자도 재직증명서만 있으면 되니 얼마나 좋아.”

구건호는 화성에서 플라스틱 공장 사출공으로 일할 때 차를 샀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다니는 버스를 자주 놓쳐 큰맘 먹고 아반떼XD 06년식을 300만원 주고 샀었다. 당시 주행키로는 13만키로 정도 되었었다. 처음엔 운전이 서툴러 몇 번 박치기도 하여 돈을 모을 틈이 없었지만 지금은 사고 없이 잘 타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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