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경리사원이 된 공돌이 (1)
(20)
구건호의 가스 배달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고객들에게 가스를 판매하면 세금계산서를 전자발행하고 엑셀에 기록을 하였다. 또 비용 지출한 것이 있으면 전표에 기재하고 엑셀에 기록을 하였다.
“구 주임, 전표는 문방구점에서 파는 것 쓰면 되요. 전에 있던 경리가 하는 것 보니까 돈 쓴 영수증 같다 주면 전표 뒤에 붙입디다.”
“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전표에 금액과 적요란 기재하고 영수증은 뒤에다 붙입니다. 그리고 월별 단위로 묶었다가 세무사 갖다주면 됩니다.”
“하여튼 잘 하쇼. 난 나갔다 오리다.”
사장은 가끔 연장을 소형 트럭에 실고 어디론가 다녀오곤 했다. 이럴 땐 사장님 사모님이 회사에 나왔다.
“사장님은 연장 싣고 어딜 날마다 가십니까?”
“보면 몰라요? 가스배관 수리하러 갑니다.”
“아, 그렇군요.”
“그 인간이 가스배관 수리하는 거 하나는 최고지요. 호호호.”
사장 사모님은 그렇게 부부싸움을 하면서도 은근히 남편 자랑을 했다.
“참, 배관 수리하고 받은 돈 총각한때 입금하라고 안 줘요?”
“아, 예. 받고 있습니다.”
사실 사장은 나간 횟수만큼 입금시키지는 않았다. 금액이 크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것들만 입금시켰다.
밖에서 1톤 트럭 엔진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사장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별일 없슈?”
사장은 밖에 나갔다 오면 항상 별일 없냐고 묻는다.
“예, 별일 없습니다. 덕수상회와 신천식품에서 가스 같다 달라고 해서 김 기사님 보냈습니다.”
“잘했소. 다음 달은 부가세 내는 달이요. 구 주임, 잊지 말고 잘 챙기쇼.”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한 번도 부가세 신고를 해본 경험이 없다. 국세청 홈텍스에 들어가면 부가세 신고하는 요령이 있지만 시도해보지 않았다.
“부가세는 이번에 예정신고지요?”
사장의 질문에 구건호는 당황했다. 교육받을 때 부가세는 확정신고와 예정신고가 있다는 말은 들었었다. 그런다고 경리 담당자가 모른다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일단은 대답을 해 버렸다.
“또, 돈 나갈 일이 생겼구먼.”
사장이 이렇게 말하면서 나가자 구건호는 얼른 국세청 홈텍스를 열어 보았다. 다행히 다음 달 부가세는 예정 신고기간이었다.
“휴, 다행이다.”
구건호는 다이어리에 국세청 부가세 내는 일정을 메모했다.
“이렇게 해서 배우는 거지 뭐.”
구건호는 방일가스가 거래하는 세무사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여직원이 받는다.
“세무사 사무실이죠? 여기 방일가스인데요.”
“방일가스요? 잠깐만요. 담당자 바꾸어드릴게요.”
이번엔 다른 여직원이 전화를 받는다.
“방일가스인데요. 새로 온 경리담당자입니다.”
구건호는 이렇게 전화를 하면서 쑥스러웠다. 전산회계를 다루지도 않고 분개도 하지 않는데 경리담당이라고 하기가 좀 낯간지러웠다.
“아, 방일가스요? 안녕하세요.”
세무사 사무실에서는 방일가스가 고객입장이라 상냥하게 전화 받는다.
“다음 달 부가세 신고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면 되나요?”
“세금계산서는 전표에 붙이지 말고 그냥 월별로 묶어서 보내주시고요. 비용 쓰신 것 하고 간이영수증 발행한 것들만 전표 뒤에 붙여 보내주시면 됩니다.”
“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자별로 간추려서 갖다 주시면 됩니다.”
“그럼, 전표와 세금계산서는 가지러 오시나요?”
“음... 그래도 되는데... 전에 하시던 분은 우리 사무실로 갖다 주시던데...”
“아, 예. 그럼 저도 그렇게 하지요. 담당자 성함이 어떻게 되지요?”
“강 과장 찾으시면 됩니다.”
“저는 구건호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아 예, 부탁은 우리가 해야지요. 감사합니다.”
공돌이 할 때는 들어보지 못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운이 더 나는 것 같았다.
구건호는 방일가스에서 전표작성하고 엑셀 다루는 일이 빨라졌다. 역시 실무를 하니 늘었다. 구건호는 이 일만 하면 편했는데 거래처에 입금 독촉 하는 일은 참 싫었다.
“덕수 상회지요? 방일가스입니다. 가스 같다드린 것 입금이 안됐는데요?”
“내일 드리지요.”
외상으로 가져간 사람들은 말은 잘 했지만 약속을 잘 안 지켰다.
“오늘 주신다고 했잖아요?”
“아니, 이 사람들이 그걸 누가 떼먹나? 아침부터 왜 이래. 당신 사장 바꿔봐!”
언성을 높이는 사람도 있어서 입씨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몇 달씩 밀린 사람들은 내용증명도 써서 보냈다.
“구 주임, 신촌 상회 그 자식들한테 내용증명 보내요. 망할 자식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이렇게 말했지만 내용증명을 어떻게 보내는지 몰랐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는데 잘 모르겠다.
“내용증명 안 써봤어요? 저 캐비넷 맨 위층에 내용증명 파일 철이 있으니 떠들어 보슈.”
사장의 이 말에 캐비넷에서 내용증명 파일 철을 꺼냈다.
“진작 이걸 볼걸.”
구건호는 노량진에서 살 때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자기 소개서를 수없이 써봤다. 9급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지고 돈도 떨어지자 회사 취업을 시도 했었다. 그러나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는데도 없었다. 지잡대 중퇴에 사이버대학 나온 그의 학력으로는 누가 받아주지를 않았다. 그래서 부득이 공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소서를 백장이상 써본 솜씨야. 이까짓 내용증명은 아무것도 아니야.”
구건호는 내용증명을 신나게 타이핑 쳤다.
“다 썼슈? 우체국 얼른 다녀 오슈. 문 닫기 전에.”
구건호는 내용증명이 들어있는 봉투를 들고 면사무소 부근에 있는 우체국으로 차를 몰았다.
차 안에서 콧노래가 나왔다.
“경리 생활도 뭐 별거 아니군.”
구건호는 노래까지 부르면서 운전을 했다.
“그래서 사람은 머리가 있어야 해. 내가 직업학교에 가서 전산회계 자격증 안 따고 용접이나 지게차 운전 배웠으면 공돌이 신세 아직도 못 벗어났을 거야.”
우체국에 갔더니 택배 부치는 사람이 앞에 있어 잠시 기다렸다.
“무슨 놈의 택배 물건이 이렇게 많아? 많은 건 택배회사에 부치지. 아, 짜증.”
한참 기다린 후에 구건호가 차례가 되어 내용증명 봉투를 내밀었다.
“무엇으로 부치실 겁니까?”
“내용증명으로 보낼 겁니다.”
우체국 여직원이 봉투에서 내용증명을 꺼내보더니 얼굴을 들고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왜 한 장입니까?”
“예?”
“내용증명은 3장 있어야 합니다.”
우체국 여직원은 내용증명을 도로 내주면서 다음 사람을 부르는 번호판 부자를 띵똥 하고 울렸다.
“그런가?”
구건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회사로 돌아왔다.
“사장이 있으면 쪽팔리겠는데. 뭐라고 둘러대지?”
구건호는 갈 땐 노래를 불렀지만 올 땐 맥 빠진 표정이 되어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