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8화 (18/501)

# 18

경리직 취업운동 (2)

면접관인 상무가 파일을 들쳐보며 말했다.

“서류를 보니 모두 인재들이라 직접 뵙고 결정하기 위해 오시라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은 교통이 좋지 않아 자기 차가 있어야 합니다. 모두 자기 차가 있지요?”

“있습니다.”

구건호가 힘차게 대답했다. 다른 여성 지원자들도 있다고 대답했다. 하긴 애초에 모집할 때 자차 소지자를 우대한다고 했으니 차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무가 서류를 쳐다보며 질문을 했다.

“오영미씨는 경리 경력이 많으시네요. 전산회계는 1급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구건호가 안경을 낀 오영미라는 지원자를 쳐다보았다.

“이크, 난 안 되겠다. 난 겨우 전산회계 2급 자격증이 있는데 1급이라니. 더구나 경력까지.”

구건호는 앉은 자리가 바늘방석이었다.

‘신유미씨는 전산회계 1급, 컴퓨터 워드프로세서 1급, ITQ엑셀 자격이 있네요. 참, 엑셀은 모두 할 줄 아시지요?“

모두 예, 예 하고 대답했다. 구건호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상무가 서류를 덮고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구건호 씨죠? 유일하게 남성분인데.... 공장 근무경력이 있으신 것 같은데 엑셀은 잘 하시지요?”

구건호는 이력서에 공장 근무한 것은 적었지만 구태여 생산직이라고 적지 않았었다. 상무는 구건호가 공장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한줄 아는 모양이었다. 엑셀을 할 줄 모르는 구건호는 진땀을 흘렸다.

“배우면서 하겠습니다.”

구건호의 이 말에 모두 고개를 들고 구건호를 이상한 듯이 쳐다보았다. 상무가 웃으면서 말했다.

“잘들 아시겠지만 경리는 엑셀도 잘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 회사의 회계프로그램은 더존 회계프로그램입니다. 가끔은 엑셀에 빽 데이터를 저장할 때도 있습니다.”

지원자 4명중 전산회계 1급 자격증 소지자가 2명이고 엑셀은 구건호만 빼고 모두 잘한다고 하였다. 구건호는 창피했다. 전산회계 2급만 가지고 있어도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동일테크 경리 보는 아줌마는 자격증도 없다는데 1급 자격증 소지자가 이렇게 있다니.”

구건호는 면접장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면접을 어떻게 치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어!”

면접이 끝나고 차를 몰고 나오면서 구건호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나보다 어린 여자들도 전산1급, 워드프로세서, 엑셀, 파워포인트 모두 잘한다고 하니 난 세상을 헛살았어.”

구건호는 울고 싶었다. 오히려 지금 다니고 있는 공장이 자기의 천직이고 고향인 것만 같았다. 구건호가 돌아오자 반장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뭐래?”

“주사 맞고 약 먹으니 조금 나아졌어요. 안정을 취하면 된데요.”

“집에서 쉬지 뭐 하러 나왔냐?”

“괜찮아요.”

“쨔식, 다행이다. 차 들어왔다. 상차 작업이나 같이 도와주자.”

며칠 후 경리사원 지원을 했던 에이에이취 테크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이번 경리사원 모집에 귀하를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 인연이 닿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친절은 필요 없는데.”

구건호는 문자 메시지를 바로 삭제했다.

“경리를 해 보고 싶으면 엑셀은 필수야. 그것도 모르고 지원을 했으니... 같이 시험 보러갔던 여자들이 비웃을 만 하지.”

구건호는 의정부에 있는 직업학교의 사무자동화반 등록을 했다. 워드프로세서와 엑셀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 였다. 워드는 할 줄 알지만 자격증이 없어 이 기회에 따놓을 심산이었다.

“자격증 더 따면 이력서가 두 세줄 늘어나니 폼은 나겠다.”

구건호는 공장 일이 끝나면 직업학교에 가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컴퓨터 실무를 익혔다. 엑셀은 몇 가지 표를 만들어 보니 나름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복잡한 것은 헷갈렸다.

“자, 졸지 마시고 여기 보세요.”

강사가 스크린에 비친 엑셀 화면을 집어가며 설명했다.

“자, 합계가 자동으로 되지요? 수식을 집어넣으면 평균치도 그대로 나오고요.”

강사는 위대해 보였다.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강사는 구건호보다 어린 여자 강사였다.

“요즘은 여성들이 남자보다 더 똑똑한 것 같아. 난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괜히 강남 철학관 박도사와 청담동 이회장이 바람 잡아서 여기까지는 오게 되었지만 내가 이거 해야 되는 거 맞는지 모르겠어.

“자, 평균값 합계를 내 보세요. 모두 76이 나왔지요?”

배우는 학생들이 모두 정답인 76이 나왔지만 구건호 혼자 48이 나왔다.

“수식을 그렇게 잡으시면 안 되지요. 내가 설명한대로만 따라 하세요.”

구건호는 이럴 땐 우울해져 이 길이 내가 갈 길인가 다시 반문해 보았다.

“괜한 개 고생하는 것 아닌가?”

구건호는 학원 다니느라 자동차 기름 값도 솔찬히 들어갔다.

“학원비는 국비로 했다고 해도 왕복 40키로 넘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하니 쓰벌, 기름 값이 만만치 않네.”

더구나 오늘은 학원 근처 주차장이 마땅치 않아 주택가에 주차하다가 어느 집 담벼락을 받았다. 뒷 범퍼가 흉하게 찌그러져 속상했다.

“에이! 짜증나. 범퍼 찌그러진 것 수리하려면 돈 좀 들어가겠는데.”

그래도 세월이 약이던가 몇 달 배우고 나니 워드프로세서와 엑셀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박종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석이냐?”

“어, 형. 나야.”

“너, 용접 기능사 자격증 써 먹었냐?”

“없어. 자격증만 가지곤 안 되고 실무 경력이 있어야 돼.”

“써먹을 데 아무 공장이나 들어가지 그래.”

“그 생각도 있는데 나 부모님 계신 부천으로 가야될 것 같아.”

“왜?”

“아빠가 몸이 많이 아프셔. 위암이래.”

“그래?”

“아빠가 일산에 있는 원자력 병원에 입원해서 엄마 식당 일이 힘든 모양이야.”

“저런! 그거 큰일 났구나.”

“그래서 부천에 가 집안일을 도와야겠어,”

“요새 위암 초기는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형은 참, 경리직 일자리 찾아 봤어?”

“한번 경리사원 모집 광고가 있어 지원했다가 떨어졌어.”

“왜? 실무경력이 없어서 그런가?”

“그건 아니고, 스펙이 대단한 년들이 지원해 난 탈락했어.”

“킥킥, 그래서 스펙 쌓고 있나?”

“컴퓨터 자격증 몇 개 땄어. 워드프로세서하고 엑셀 자격증 땄어. 경리사원 모집 광고 뜨면 바로 지원할 거야.”

“야, 그래도 형 대단하다.”

“뭘?”

“6개월 전 보다 화려해 졌잖아? 전산회계 2급에다가 워드자격, 엑셀 자격까지 있으니 말이야.”

“그런가?”

“강남 철학관 박도사와 청담동 이회장의 마술이 제대로 먹히는 것 같아.”

“별 소릴! 발 닦고 일찍 자거라. 전화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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