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7화 (17/501)

# 17

경리직 취업운동 (1)

(17)

구건호의 부모님은 인천 주안에서 살고 있다. 구건호는 경기도 화성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있었고 포천에서도 근무했고 현재는 양주시에서 일하고 있다.

“어차피 9급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사는 인생 아무 곳이면 어떠냐.”

이런 심정으로 구건호는 아무데서나 잘 적응하고 있었다. 공돌이로 일하다 보니 친구들과 멀어지고 같은 일을 했던 후배 박종석만 친하게 지냈다.

“종석아, 용접 기능사 자격증은 땄냐?”

“어, 형! 기능사 시험 봤어. 합격자 발표는 아직 안 났는데 되겠지 뭐.”

“그 자격증이 용접 기능사인가 기사인가?”

“기능사야. 용접기능사는 전기 아크 용접이 위주고 특수용접 기능사는 알곤 용접 위주야.”

“그렇게 나누어지나? 난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잘 해봐라.”

“형은 전산회계 2급 시험 봤나?”

“응, 교육은 다 마쳤어. 시험 준비하는데 1급은 어렵지만 2급은 무난히 딸 것 같아.”

“형, 요즘 낚시 못 갔지?”

“낚시 갈 틈도 없었다.”

“나도 날씨가 쌀쌀해져 안 갈려다가 지난주에 한번 갔었는데 허탕치고 왔어.”

“왜? 눈먼 고기가 없었냐?”

“잘 안 물려. 그리고 참,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이회장님도 이제 안 오시는가 안보이데.”

“연세 많으신 분이라 추워서 안 나온 모양이다.”

“그 양반이 형을 되게 좋아했던 것 같은데? 형보고 부자 될 사주라고 했잖아?”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겠지. 겨울 동안은 잘 지내고 봄엔 우리 모두 합격하여 만나자.”

“좋지! 날 풀리면 낚시도 가고 소주도 한잔 해야지.”

구건호는 이 해 겨울 열심히 공부했다. 2급 전산회계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밤늦게 까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열심히 공부했다.

“이제 조금씩 윤곽이 보이는군.”

구건호는 회계 시스템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흥미가 있다 보니 회계에 관련 돤 주변 도서를 읽게 되어 실력이 날마다 일취월장하였다.

“회계의 순환과정이 이런 것이었구나. 알고 보니 이해가 가네.”

구건호는 자기 사업을 하며 회계장부를 기록하고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꿈을 꾸었다.

혹독한 소한 대한을 지나 음력설과 대보름이 지났다. 3월초에 후배 박종석이 용접기능사 합격소식을 전해왔다.

“형! 나 용접기능사 시험에 합격했어!”

“그래? 잘됐다. 축하한다. 축하주 한잔 사라. 이제 경찰관 시험 볼 거니?”

“경찰관도 좋지만 그냥 조선소 같은데 시험 보고 싶어. 경찰관이나 9급 공무원은 월급이 너무 적은 것 같아. 말년에는 좋다고 하지만 말이야.”

“공무원이 좋긴 한데... 대기업 생산직은 들어갈 수 있나?”

“대기업은 빡세. 운도 있어야 하고. 내가 제대 군인이고 나이도 30세가 안되어 높은 평점은 받아. 하지만 나 같은 놈이 어디 한둘 이어야지.”

"그런가?"

“형, 전산회계 2급 시험은 언제 봐?”

“응, 원서는 3월 9일부터야. 시험은 4월 9일이고.”

“얼마 안 남았네. 그날 공장 일은 하루 빠져야겠네.”

“아니야. 그날이 토요일이라 괜찮아.”

“다행이다. 형이 회계공부가 흥미가 있고 적성에 맞는다니 꼭 될 거야.”

“고맙다.”

이 해 4월말 구건호는 전산회계 2급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을 하고나니 경리직 업무를 하고 싶었다. 실무 경험이 없어 걱정이 되었지만 혹시라도 남자 경리직을 모집하는 곳이 있으면 원서를 넣기로 했다. 벼룩신문을 보다가 눈에 띠는 광고가 있었다.

“경리사원 모집. 초보자 가능. 자동차 운전면허 소지자 우대.”

초보자도 가능하다면 선임자가 있어 보조하는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여자만 모집한다는 글이 없어 관심이 갔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에이에이취 테크죠? 경리직 모집광고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남자도 지원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이력서 제출은 직접 방문해야 합니까?”

“팩스로 먼저 보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심장이 뛰었다. 즉시 이력서를 보내기로 하였다.

“회사 팩스로 보내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니 밖에 나가서 보내자.”

구건호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보내기로 하였다. 점심시간에 밥도 못 먹고 면사무소 근방에 있는 문구점에서 팩스로 이력서를 보냈다.

“다행이다. 경리 모집한다는 회사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원룸은 안 옮겨도 되겠다.”

구건호는 공장 공돌이에서 벗어나 사무실 요원으로 근무하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공장 노동도 즐거웠다.

“야, 구건호. 너 뭐 즐거운 일 있냐?”

말이 없는 분쇄반 반장이 와서 물었다.

“아뇨, 아무 일 없습니다.”

“표정이 즐거워 보이는데? 애인이라도 생겼냐?”

“아뇨. 애인 없습니다.”

“요 옆에 있는 공장에 이쁜 아가씨들이 몇 명 있는 것 같더라. 한번 잘 꼬셔봐라.”

“저는 잘 못 봤는데요?”

“거기 월남 애 하나는 괜찮아.”

“반장님이 유심히 본 모양이네요.”

“난 관심 없다. 지금 하나있는 마누라도 건사하기 힘들다.”

며칠 후 경리직 원서를 낸 에이에이취 테크란 곳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공장을 하루 빠져야 하는데... 아프다고 하자.”

영세 공장의 일은 한사람이 빠지면 다른 사람이 피곤했다. 미안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구건호는 쇼를 하기로 했다.

“어제 먹은 게 잘못되었는지 도저히 일을 못하겠습니다.”

“왜 그래? 멀쩡하던 놈이! 어제 또 술 쳐 먹었구나.”

“아니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억억.”

토하는 시늉을 하자 반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병원에 가봐라.”

“아이고, 아이고, 쓰러질 것 같아요.”

“외국인 기숙사에 가서 좀 눕던지 해라.”

“배에 통증이 있어요.”

“통증이? 병원에 빨리 가봐라.”

구건호는 병원에 간다고 차를 몰고 공장을 나왔다.

“얏호, 살았다! 반장이 내가 하던 일까지 하게 되어 고달프겠다.”

구건호가 경리직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간 공장은 구건호가 다니는 공장보다 조금 컸다. 무엇을 하는 공장인지 모르지만 약품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의약품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곳 같았다.

“면접 보러 왔는데요.”

“저쪽 회의실에서 기다리세요.”

회의실에 가니 면접 보러 온 사람이 4명이나 있었다. 모두 여성들이었다. 구건호가 들어서자 힐끔 보더니 모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참 기다린 후 50대 초반의 남자와 40대 여자가 파일 철을 들고 들어왔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에이에이취 테크의 상무이사입니다. 옆에 계신 분은 경리부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의자에 앉았던 지원자들이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합창하듯이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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