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5화 (15/501)

# 15

구건호 회계 공부 시작 (1)

구건호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기술자격증을 따서 뭐하겠나. 환경기사나 용접기사 같은 걸 받아 봤자 월급 20만원, 30만원 오르는 것 밖에 더 있겠나. 공돌이 신세 면하지 못하는 것은 똑 같다. 빌어먹을! 어차피 공돌이 인생 모험이나 한 번 해보자.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마찬가지 아니냐.”

마침내 구건호는 전산회계를 배우려고 모진 마음을 먹었다. 숫자에 약해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수학이 빵점이었지. 그래서 지잡대지만 인문계를 갔었고 9급 공무원 시험도 수학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매달렸던 것인데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전산회계를 교육을 하는 직업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양주시에는 전산회계를 가르치는 직업학교가 없어서 의정부에 있는 직업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직업학교죠? “전산회계2급반 야간도 모집하나요?”

“재직자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

“재직자반은 야간반과 주말반이 있습니다. 지금 주말반은 마감되었고 야간반이 있습니다.”

“야간반은 몇 시에 시작하는가요?”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입니다.”

“수강료는 국비도 가능한가요?”

“네, 내일 배움카드가 있으면 됩니다.”

“남자도 가능한가요?”

“하하, 남자,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누구나 가능합니다.”

"수강 자격 같은 것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대졸이건 중졸이건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구건호는 학원까지의 거리를 따져 보았다. 왕복 40키로가 넘는 거리지만 바삐 서두르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자동차 기름 값이 만만치 않겠는데. 한번 해봐?”

구건호는 공장 일이 오후 5시 30분에 끝났다. 원래는 5시 퇴근인데 오전과 오후에 각각 15분씩 휴식 시간이 있어서 그렇다. 공장 생산직의 경우 노동 강도가 심해 중간에 15분씩 휴식을 갖지 않으면 일하기 어려웠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통상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2시간 빡세게 일하고 15분 휴식했다.

일을 할 때는 중간에 오줌 누러 가기도 어려웠다. 내가 작업한 것을 다음 공정에 넘겨야 하는데 중간에 오줌을 누러 가면 다음 공정의 사람도 작업을 멈추어야 했다. 10시 15분부터 다시 작업에 들어가고 12시가 되면 오전 작업이 끝났다. 오후 작업은 1시부터 3시까지이고 3시부터 15분간 휴식이다. 이 15분 안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새참도 먹는다. 새참은 주로 빵과 우유였다. 그리고 오후 3시 15분부터 5시 30분까지 다시 빡세게 일한다.

“5시 30분에 끝나면 손 씻고, 옷 갈아입고, 주변 정리하고, 원룸에 들어오면 6시 30분. 직업학교까지 30분 잡으면 교육은 받을 수 있겠다.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 배는 좀 곯겠구나.”

구건호는 직업학교 등록을 했다. 20명 가까이 되는 수강생중 남자는 3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자들이었다. 혹시 남자가 자기 혼자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3명이라 위로가 되었다.

“오늘은 첫 시간이니 회계의 원리나 개념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구건호와 나이 차이가 별로 없을 것 같은 여자 강사가 나와 설명을 했다. 나름 흥미도 있었다. 둘쨋날 회계의 순환과정 설명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재무상태표나 손익계산서 설명에서는 용어도 어려웠지만 무슨 소리인지 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정자산, 유동자산, 고정부채, 유동부채의 개념 이해 하셨지요?”

“글쎄요.”

“잘 모르시는 분들은 집에 가셔서 나누어드린 교재 다시 한 번 읽고 오세요.”

구건호는 아무리 보아도 이해가 안 되었다.

“이거, 내가 잘못 들어온 것 아닌가?”

구건호는 자신의 적성을 의심했다. .아직 실기는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계정과목별 회계처리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차변이 무언지 대변이 무언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부터 시작된 거래 자료의 입력 및 조회부터는 두 손을 들어야만 했다.

후배 박종석이 전화를 받다가 낄낄거렸다.

“형이 회계학을 배운다고? 9급 공무원 시험과목이나 보던 사람이 회계학을 배운다고? 그래 할만 해?”

“아무리 봐도 난 회계 쪽 적성은 아닌 것 같아.”

“낄낄.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상과대학 나온 사람도 잘 몰라 벅벅 기어.”

“그런데 여자들은 잘 하더라. 상과대학 다닌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모르긴 몰라도 회계 분야 같은 건 꼼꼼해야 되기 때문에 여자들이 더 적성에 맞을 수도 있어.”

“넌 용접 잘 배우고 있냐?”

“응, 재미있어. 나 가스용접, 아크용접 다 할 줄 알아.”

“잘 한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형 왜 목소리에 힘이 없어? 어제 뭐했지? 거기 갔었지?”

“거기가 어디? 집에서 해골 굴렸는데.”

“기분전환 겸 낚시나 가자. 낚시터 간지가 꽤 됐다.”

“가자. 그래.”

“아 씨,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나까지 다 기운 빠지려고 하네.”

“미안하다.”

낚시터는 코스모스가 질 무렵이라 바람이 불고 쌀쌀했다.

“계절이 금방 바뀌는 것 같아. 날씨 추워진 것 봐.”

“어? 청담동 이회장님 벌써 와 계시네.”

“저 양반도 낚시에 미쳤군.”

구건호와 박종석은 낚시 도구와 가방을 들고 호수가로 내려갔다.

“벌써 와 계시는군요. 안녕하셨어요?”

“오, 구건호와 박종석군. 오래간만이네. 요즘 어째 뜸한가? 지난주엔 안보이데.”

“예, 좀 바빴어요. 학원에 다니느라 정신도 없었고요.”

“학원? 잘들 하셨네. 그래 무슨 학원을 다니시나.”

“저는 직업학교에서 전산회계 2급 과정엘 다니고 후배는 용접학원에 다닙니다.”

“전산회계? 오, 그랬군. 결심 잘 했네. 교육은 어째, 받을 만 한가?”

“아니요. 강의 내용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적성에도 안 맞는 것 같아요.”

“허허. 그래? 박종석군. 용접학원은 어떠신가?”

“예, 재미있어요. 이제 웬만한 용접은 다 할 줄 알아요.”

“허허. 그것 참 다행이네. 그런데 구건호군은 전산회계 무엇이 어려운가?”

“대차대조표 용어도 처음 듣는 단어들이라 어려웠습니다. 회계 실무도 전표 입력방법이 헷갈립니다.”

“대차대조표가 어렵다... 대차대조표를 누가 만든지 아는가?”

“예? 만든 사람이요? 그거야 옛날 유명한 학자들이 만들었겠지요.”

“아니야.”

이회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고명한 학자가 만든 것도 아니고 스카이 대학교 상과대학을 나온 박사들이 만든 것도 아니네.”

“그럼 누가 만들었어요?”

“대차대조표는 구건호군보다도 훨씬 못한 노예들이 만들었다네.”

“옛? 노예요?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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