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3화 (13/501)

# 13

청담동 건물주 이회장 (3)

(13)

이회장이 계속 말을 하자 옆에 있던 권부장이 일어섰다. 권부장은 생수를 종이컵에 따라 이회장에게 드렸다.

“참, 젊은이들의 이름을 내가 들은 것도 같고, 안들은 것 같기도 하네.”

“구건호라고 합니다.”

“박종석입니다.”

“부기가 회계는 회계인데 요즘 뭐라고 하더라...”

“혹시 전산회계 아닙니까? 국비 기술교육 학원에 가니까 전산회계 2급 반이 있던데요?”

박종석이 대답했다.

“맞아! 바로 그거야. 전산회계! 구건호군은 그걸 한 번 교육 받아보게.”

이회장이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전산회계는 저도 들어서 압니다. 그건 주로 경리직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많이 받는 것 아닙니까? 저는 숫자와는 거리가 멉니다. 수학도 잘 못하고요.”

“수학을 못해도 더하기 빼기만 할 줄 알면 되네. 뭐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회계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재무제표 쯤은 볼 줄 알아야 큰 회사 기업 경영도 하고 부자도 되지 않겠어?”

“에이, 말씀은 고맙지만 저 같은 흙수저가 어떻게 큰 회사 기업 경영을 합니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듭니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님이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님이 회계 공부하던 시절은 옛날 아닙니까? 그냥 격려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아니야.”

이회장은 아니라고 하면서 고개를 또 좌우로 저었다.

"신왕재왕 사주! 난 흙수저인 자네가 신왕재왕 사주 팔자로 태어나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보고 싶네.”

“솔직한 말씀드려 저희 부모님은 월세 집에서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좋은 대학을 다니지 못했고 이렇다 할 스펙이나 자격증도 없습니다. 재산이라고는 튼튼한 몸 하나 뿐이라 공장 노동자로 월 180만원 받고 일하는 처지입니다. 강남 철학관 박 도사님이나 이회장님께서 젊은 사람들한테 너무 헛된 바람만 들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야.”

이 회장은 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저희들은 건너편 쪽으로 가서 낚시를 하겠습니다. 저희는 루어 낚시라 대낚시를 즐기는 회장님이나 권부장님께 방해를 끼칠 것 같아서요.”

“구건호군!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이미 가버렸다고들 하지. 흙수저 출신은 출세의 사다리가 끊어진 시대라고도 하지. 하지만 나는 자네를 흥미 있게 지켜보겠네. 하하.”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저희들은 건너편 호수 쪽으로 가겠습니다.”

“팔뚝만한 베스 한 마리 잡으시게.”

“회장님도 팔뚝만한 잉어 한 마리 잡으십시오.”

구건호와 박종석은 루어 낚시대를 들고 호수의 건너편 쪽으로 왔다. 박종석이 구건호의 허리를 툭 쳤다.

“형, 형! 전산회계 교육 한번 받아봐. 누가 알아? 저 이회장이란 분이 동일 제지에 취직시켜 줄지.”

“김칫국 마시지 마라.”

“그러니까 전산회계 교육 받으라고 저렇게 힘들여 이야기 하지. 한번 받아봐. 전산회계 2급도 국비로 받을 수 있어. 내 돈 안내고 받을 수 있단 말이야. 차제에 전산회계 2급 따고 전산회계 1급 따고, 그리고 내친김에 회계사 자격증도 따지 까짓것!”

“지랄하네!”

“형 사주가 좋다며? 해봐!”

“야, 병신 같은 놈아! 회계사는 일류대학 상과대학 출신들도 붙기 힘든 시험이다. 몇 년씩 달라붙어도 합격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 한데 뭐? 공돌이가 시험을 봐? 노동하느라고 퇴근하면 온 몸이 안 쑤시는 데가 없는데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퇴근 후 짜투리 시간 이용해 공부하라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그럼 전산회계 2급 따봐. 저 회장님이 동일제지 자회사 중 한군데 심어줄라고 그러는 것 아니겠어.”

“꿈 깨라니까!”

“사주팔자가 큰 부자가 된다고 하면서 형한테 관심 갖겠다는데 왜 못해? 나 같으면 하고도 남겠네.”

“옛날에 우리 이모가 사주 보러 갔었는데 자기 아들이 판검사 되고 딸은 대학총장 된다고 하더라. 지금 그 아들딸들이 뭐하는지 알아? ”

“뭐하는데?”

“아들은 백수고 딸은 문화센터에서 무슨 강의를 한다고 하는데 월 100만원도 못 벌고 있다.”

“그래? 그건 돌팔이한테 가서 물어봐서 그렇지. 형은 강남에 유명한 사람한테 봤다며?”

“참, 너도 딱하다. 그런 걸 믿고 그러냐?”

“형도 믿으니까 강남까지 가서 본 것 아냐?”

“고기나 잡자!”

구건호는 집에 와서 고민에 빠졌다.

“무슨 자격증 공부를 하지?”

지게차 운전을 배울까, 환경기사 자격증 공부를 할까. 용접을 배울까 하며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는 전산회계 2급도 끼어들어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정말 전산회계 2급을 배울까? 이회장이 혹시 정말로 어디 넣어줄려고 그러나? 아니야. 경리직은 여성들을 주로 쓰는데 그럴 리가 없어.”

구건호는 이제껏 다녔던 공장들의 경리직은 모두 여자였다. 심지어는 거래처의 경리도 여직원들이었다. 물론 대기업의 경리나 자금 부서는 상과대학을 나온 남성을 많이 쓴다.

“지게차 기사나 용접 같은 건 지금 다니는 공장에서도 당장 써 먹을 수 있지만 전산회계는 앞길이 불투명 해.”

구건호는 날마다 이 문제로 고민했다. 종석이 한테 전화가 왔다.

“형? 교육 받는 것 정했어?”

“아직...”

“못 정했어? 국비로 교육받을 수 있는 내일 배움카드는 유효기간이 1년이야. 1년 안에 무슨 교육이든지 받아야 한다고!”

“넌 정했냐?”

“정했냐? 지금 용접 교육 받은 지가 벌써 며칠 지났어. 이 자격증 따고 경찰공무원 안되면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나 가볼 생각도 있어.”

구건호는 당장 공장에서 써 먹을 수 있는 지게차 운전 교육을 받기로 결정했다. 반장들이 기본적으로 지게차 운전과 용접은 할 줄 알기 때문이었다.

지게차 운전 교육은 1종 면허를 갖고 2주 정도 교욱 받으면 되었다. 학원에서 면허를 딸 수 있으므로 해 볼만 하였다. 더구나 교육비가 공짜 아닌가.

“저 중장비 학원이죠? 지게차 운전 교육이나 포크레인 교육 야간에도 있나요?”

”물론입니다. 야간도 있습니다. 오는 15일부터 교육이 있을 예정이니 지금 등록하셔야 됩니다. 1종 면허는 있으시죠?”

“예, 있습니다.”

“그럼 빨리 오세요. 마감 되면 이번 달에는 야간 교육이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되지요?”

“백석읍인데 주소 문자 메세지 날릴 테니까 네비 찍고 오세요.”

“야간에도 접수하시는 분 있습니까?”

“그럼요. 빨리 오세요.”

구건호는 지게차를 배운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지게차 운전은 할줄 알지만 면허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김반장, 박반장, 이놈들! 그동안 지게차 만지지도 못하게 했지? 나도 면허 있다. 이놈들아!”

구건호는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벼룩신문이 있어 빼가지고 왔다.

“지게차 운전 할 줄 아는 사람 모집 광고도 꽤 뜨는데? 자격중 따면 여기서 개고생 하지 말고 지게차 운전이나 할까? 어? 이게 뭐야! 경리 모집? 남자도 가능?”

구건호는 경리 모집 광고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경리를 남자도 모집 하는구나...”

구건호는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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