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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큰손 이야기-11화 (11/501)

# 11

청담동 건물주 이회장 (1)

(11)

발신음이 한참 간 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종석이냐?”

“어, 형!”

“왜 전화 안 받냐?”

“화장실에 있었어.”

“오늘 면접 보러간 것 어떻게 됐냐?”

“면접 안 봤어.”

“왜?”

“아빠가 하지 말래.”

“왜?”

“9급 공무원 행정직 적성에 안 맞으면 경찰관 시험 보래.”

“경찰관도 좋지. 경찰관도 시험 보겠다는 사람이 많아 빡셀 거다.”

“그래서 자격시험 먼저 볼까해.”

“자격시험?”

“지난번 고용센타에 가서 내일 배움카드 만들었잖아. 형도 만들었잖아.”

“그랬지.”

“그걸로 용접 기술이나 전기기사 자격시험 공부를 하려고. 경찰관 시험 보는데 기술 자격증 있으면 가산점 있는 모양이야.”

“흠.... 그런데 너 경찰관은 적성에 맞는 것 같냐?”

“맞을 것도, 안 맞을 것도 없는데 부모님이 저렇게 성화니 한번 해 볼까해.”

“그럼 너 노량진으로 또 갈 거냐?”

“인강도 있지만... 아무래도 노량진에 가서 경단기 반에 들어갈까 해.”

“잘 생각 했다. 사실 공돌이는 희망이 없다. 일도 힘들고 월급도 작아 누가 한다면 말려야 될 직업이다.”

“형 같이 공부하면 안 돼?”

“난 포기했다. 넌 부모님이 그래도 뒷 밭침 해줄 수 있지만 난 어려워. 당장 내가 돈 벌어야 해.”

“벌어 놓은 것이 있으면 좋았었는데.... 주식에 꼴아 박지 않았어도 좋았었는데...”

“그 이야기 그만하자. 주식 이야기 나오면 속이 뒤집힌다.”

“하하. 알았어.”

“전화 끊는다. 잘 자거라.”

“안녕!”

전화를 끊고 나서 구건호도 생각을 해 보았다.

“나도 자격증 하나 따 볼까? 당장 회사에서 지게차 운전이나 용접기술 같은걸 배우면 하다못해 수당이라도 올라갈 것 같은데.”

구건호가 다니는 공장에선 용접기술이나 전기기사, 환경기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대우를 조금 더 받았다.

“퇴근하면 저녁 6시 정도 되니까 야간에 공부할 것 찾아보자. 피곤하더라도 내가 살려면 그 길밖에 없는 것 같다.”

구건호는 무슨 자격증이 좋을까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지게차나 굴삭기 같은 면허는 쉽게 받겠는데 너무 흔할 것 같고... 용접기술이나 환경기사 자격증을 받아 볼까? 아니야 그런 것 보다는 성형기술이나 캐드 교육을 받아 볼까?”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공장 일이 끝나고 야간에 교육 받아볼만한 것이 없었다.

“내일 배움카드 만들어 놓은 것이 있어 돈 안 드는 국비교육은 받을 것 같은데.... 야간 국비 교육은 컴퓨터 웹디자인이나 캐드교육만 있네. 조금 멀더라도 서울 쪽에 다른 기술 배울만한 것이 있으면 찾아보자.”

구건호는 들어 누워서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쓰발, 마땅한 것이 없네. 기왕 공돌이 생활 하는 거 자격증이라도 있으면 몸값이라도 더 받는데 말이야.”

구건호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발도 씻지 않고 방에 불도 끄지 않은 채 잠이 들어 버렸다.

구건호는 토요일이 되자 후배 박종석을 불러내어 포천 저수지로 루어 낚시를 갔다.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가을철이라 낚시하기도 알맞은 계절이었다.

"형, 오늘은 인상이 밝아 보이네.“

“내가 언제는 어두워 보였냐?”

“어? 제네시스 리무진 또 와 있는데.”

구건호가 물가로 내려가자 지난번에 보았던 60대와 40대가 라디오를 틀어 놓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구건호가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많이 잡으셨어요?“

“오, 신왕재왕 젊은이구먼. 이리와요. 오늘은 큰 것 두 마리 잡았어요.”

후배 박종석이 구건호의 팔을 슬쩍 치며 말했다.

“저 아저씨 벙어리가 아니었네.”

“쉿! 말조심해. 회장님이래.”

“회장님?”

60대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구건호에게 자기 있는 곳으로 오라고 손짓까지 하였다.

“이것 봐요. 크지요?”

60대가 그물망을 들어 올리자 손바닥보다도 더 큰 붕어 두 마리가 펄떡거렸다.

“씨알이 굵네요. 큰 것 잡았으니 축하드립니다.”

“지난번 강남 철학관에서 보고 이렇게 또 만나니 젊은이와 나는 인연이 있는 것 같군. 옆에 있는 젊은이는 친구요?”

“아니, 후배입니다. 2년 후배입니다.”

“그래요? 그러고 보니 좀 더 젊어 보이는군.”

박종석이 의외라는 듯이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강남 철학관 운운 하니 처음 듣는 소리라 의아해 하는 것 같았다.

“종석아. 이 분들을 지난주 강남 철학관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전생에 인연이 있으니 만났겠지. 자 이리 와서 앉아요. 이곳에서 몇 번 뵈었으니 우리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나는 이회장이라고 해요.”

60대가 이회장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며 명함을 구건호와 박종석에게 주었다. 언제나 무뚝뚝한 40대도 오늘은 얼굴에 미소를 띠는 것 같았다.

“젊은이들은 무슨 일을 하지요?”

“예, 저는 양주에서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 하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후배는 지금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 그랬군요.”

구건호는 조금 전에 60대가 준 명함을 다시 찬찬히 보았다. 주식회사 동일제지 회장이라는 명함이었다.

“제지회사 회장님이시네요. 지난번 강남 철학관 원장님이 청담동 빌딩주인이라고 하셔서 그런 줄 알았는데...”

“하하. 제지회사 회장도 맞고 빌딩 건물주도 맞아요. 참, 옆에 있는 사람도 서로 인사를 합시다. 동일제지 권부장이에요.”

이회장이란 60대가 40대를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구건호입니다.”

“만나서 반갑소.”

“권부장이 좀 무뚝뚝해요. 전역한지가 얼마 안 되는 소령 출신입니다. 태권도 6단이고 아주 성실한 사람이에요.”

권부장이란 40대가 무뚝뚝한 표정을 풀고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동일 제지는 안산에 있는 회사인데 내 큰놈이 사장으로 있고 난 그저 이렇게 낚시나 하러 다닌다오. 큰놈이 아버지 신변보호 해드리라고 관리부장인 권부장을 내 옆에 있게 해 같이 다녀요. 하하.”

“그런데 회장님은 강남 철학관 원장님이랑 친구 분이십니까?”

“박도사 말이요? 박도사와는 어릴 때부터 친구지요. 한 고향 사람이에요.”

“아, 그리셨군요.”

“그 친구 참 재미있는 친구지요. 20대 때부터 종교에 심취하여 교회에 열심히 다니다가 절에 들어가 행자승도 하고, 대종교와 대순진리교도 믿고 했지요. 약간 박수 끼도 있어서 한때는 무당도 따라 다닌곤 했는데 결국 역술인이 되었네요.”

“용하시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용하긴, 맞는 사람에겐 맞고 안 맞는 사람에겐 안 맞는 거지. 뭐.”

“예?”

“손님이 많은 것 보니 용하긴 한 모양이네요. 하하.”

이회장은 낚시 줄을 걷어 올리더니 다시 힘차게 호수의 깊은 곳으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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