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강남 유명 역술인 박도사 (3)
구건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서울 강남의 유명 철학관은 꿈속에서 갔다 온 듯싶었다.
“그 철학관 박도사도 실은 고급 사기꾼일 거야. 사람의 운명을 어찌 인간이 알겠는가.”
후배 박종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 형! 토요일 날 어디 갔었어?”
“응, 강남의 용하다는 철학관이 있어서 거길 갔더랬어.”
“철학관? 그거 다 미신이야.”
“글쎄 나도 그렇게 보긴 한다만...”
“철학관에서 뭐라고 지껄이는데.”
“내가 아주 큰 부자가 된단다. 옛날로 치면 만석꾼이 사주래.”
“푸하하. 우리 같은 공돌이가 언제 부자가 돼? 월급 200만원도 못타는데. 이 악물고 100만원 모으더라도 10년 가야 1억 2천이야. 결혼하면 아이 생기는데 돈 모을 수 있겠어?”
“끙...”
“결혼도 안 하고 형 환갑 때까지 30년 모으면 3억 6천이야. 지금 강남의 아파트 값이 얼마인줄 알아? 30평짜리도 웬만하면 10억이야. 부자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휴...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다니지 말어. 다 사기꾼들이야. 어느 책에서 보니까 사람의 운명을 아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했어.”
“약국 한다는 원철이 엄마도 자주 간다는 유명한 집이라고 해서...”
“아 참, 내가 원철이 형 결혼한다는 것 때문에 전화 하려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새 버렸네.”
“원철이 전화 받았어.”
“그랬어? 결혼식 날 시청 앞에서 12시 30분에 만나 같이 들어가자.”
“그러지 뭐.”
“형도 이제 장가가야지.”
“난, 포기했다. 우리들은 3포, 5포들 아니냐?”
“자학은 여전하네. 나 오늘 면접 보러 가기 때문에 전화 끊는다.”
“어디 시험 보는데?”
“몰라. 무슨 테크라고 하는데 마찌꼬바 공장이겠지 뭐.”
“그래, 잘 해봐라.”
종석이의 전화를 끊고 벽에 걸린 카렌다를 보았다. 원철이의 결혼식 날이 하필이면 월급 전이었다.
“젠장, 은행 이자도 내야 하는데 결혼식이니... 축의금은 얼마를 내지? 보통 5만원이면 되는데 그렇게는 안 되겠지? 있는 집 자식이고 대기업에 다닌다니 10만원은 보내야 할 텐데. 이거 큰일이군. 돈 때문에”
공장 취업한지가 얼마 안 되어 월급 날짜가 아직 멀었다. 구건호는 양미간을 찌푸리고 고민을 했다.
“고작 10만원 때문에 인간 구건호가 이렇게 괴로워하다니! 에잇! 젓 같은 세상!”
구건호는 방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그러나 저러나 원철이 결혼식 날 뭘 입고 가지?”
구건호는 무의식적으로 냉장고에 가 소주를 꺼내왔다. 식탁 위에 있는 김 봉지를 뜯어 안주 삼아 마시기 시작했다.
“남들은 결혼도 하는데 난 희망이 없으니. 에효.”
구건호는 소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입에 직방으로 털어 넣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상무가 불렀다.
“구건호씨, 어때, 일 할만 해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드럼통 세척은 이제 안 해도 됩니다. 전에 일하던 아줌마가 다시 온다니 이제 분쇄반으로 옮기세요. 아줌마가 좀 이따 10시 넘어 나온다니 인계할 것 있으면 하세요.”
“잘 알겠습니다.”
분쇄반이 분쇄 기계를 다루지만 세척반이나 분쇄반이나 다 그게 그거다. 기계 소리 때문에 소음이 심하지만 힘은 좀 덜 든다. 약간 기분이 괜찮은 것은 깐족거리는 김 반장 낯짝을 안보니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척반에 새로 온다는 아줌마가 왔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다소 여유가 생겨 다시 나온다고 했다. 쟁반 같이 큰 얼굴의 아줌마가 대추씨 같은 눈에 웃음을 가득 띠고 공장엘 왔다. 김 반장은 구면인지 호들갑을 떨며 아줌마를 맞이했다.
“아이고, 더 젊어지셨네.”
“김 반장님이 더 젊어지셨네요. 이 총각은 누구에요? 알바생?”
“아니 새로 채용한 직원이요. 오늘부터 아줌마한테 업무 인계하고 분쇄반으로 갑니다.”
“그래요? 호호호. 잘 생긴 총각이네.”
구건호는 아줌마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인물은 없지만 아주 튼튼하게 생겼고 팔뚝도 구건호보다 더 굵어 보였다.
“A화학 드럼통은 저쪽 지게차 옆에 야적을 하시고요. B화학 제품은 컨테이너 뒤쪽에 쌓으시면 됩니다. 뚜껑은 각 표시가 되어 있고 B화학 제품은 주둥이 세척을 잘 해야 합니다. 불순물이 남아 있는 상태로 납품하면 클레임이 걸려 오니까요.”
“호호호, 설명 안 해도 알고 있어요. 여기 몇 개 남은 통이 있는데 저쪽으로 옮기지요. 지게차 왔다 갔다 하는데 방해가 되니.”
아줌마가 팔을 걷어 부치더니 드럼통 두 개를 끌고 야적장으로 갔다. 구건호는 한 개씩 했는데 아줌마는 두 개씩 들고 가 야적장 5단 높이까지 휙휙 던져 놓는다.
“무슨 아줌마가 저렇게 기운이 좋아!”
구건호는 아줌마의 솜씨를 보고 감탄을 하였다.
“나는 공돌이도 제대로 못할 놈 같군.”
구건호는 대충 인계하고 분쇄반으로 같다. 분쇄반 반장은 키가 크고 마른 50대였다.
“분쇄반으로 새로 온 구건호입니다.”
처음 온 사람이라 손이라도 내밀고 악수라도 할 줄 알았는데 반장은 그렇지 않았다.
“아, 그쪽에 서 있지 말아요. 전선줄 건드리면 어떻게 해요?”
가만히 보니 콘센트 하나에 여러 전기 플러그가 있는 것을 구건호가 건드린 모양이었다.
“이크!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이쪽으로 나와요. 지게차 들어오지 않아요!”
지게차가 엄청나게 많은 폐 프라스틱 통을 실고 왔다.
분쇄반은 외국인도 있었는데 구건호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귀여운 외국인도 있지만 이 친구는 시커멓고 징그럽게 생겼다. 외국인은 작업을 할 때 귀막이와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귀마개 가져 왔어요?”
반장이 구건호에게 물었다.
“저, 귀마개 준비하라는 말씀이 없으셔서.”
“안 가져 왔어요?”
반장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폐품이나 다름없는 망가진 철제 책상위에 있는 귀마개를 구건호에게 던져 주었다.
‘내꺼 쓰시오.“
귀마개를 보니 너무 더러워 쓰기가 난처했다. 구건호가 주저주저 하자 반장이 딱하다는 듯이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저기 있는 폐드럼통이나 저 외국인에게 날라다 주시오.”
“알겠습니다.”
반장이 전기 박스 안에 있는 스위치를 넣자 엄청난 소음이 들렸다. 외국인이 흰 액체의 화공 약품을 작은 통에 붙는데 아주 고약한 냄새가 확 풍겼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냄새가 맡기 어려웠다.
퇴근 후 원룸에 돌아가니 옷에서 계속 화공약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분쇄용 플라스틱 통을 많이 날라서인지 오늘따라 허리와 왼쪽 손목이 몹시 아팠다. 책장 서랍을 뒤져 파스를 꺼냈다.
“이거 오래된 파스라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
구건호는 파스를 왼쪽 손목과 허리에 붙였다. 저녁도 하기가 귀찮아 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쿵쿵한 발 고린내 나는 침대에 들어 누었다. 누워서 스마트 폰을 만지다가 후배 박종석이 면접 보러간 것이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