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강남 유명 역술인 박도사 (2)
구건호는 사무실 형태의 철학관은 처음 가보았다. 그동안 재미로 사주카페나 학원가 근처의 타로 점을 치는 곳은 방문해 보았었다. 그런 곳은 가격도 비싸지 않아 5,000원 아니면 1만원 정도였다.
“이곳의 상담료는 얼마나 받을까?”
구건호는 럭셔리한 사무실 인테리어와 상담을 받기위해 대기하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돈 많은 아줌마들 같아 다소 쫄았다. 여직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11시에 예약하신 손님이죠? 앞 손님들이 밀려서 12시경에나 상담이 가능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우선 녹차 한잔 드릴까요?”
“아, 아니 괜찮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구건호는 엉거주춤하다가 소파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아줌마 손님들이 일제히 구건호를 쳐다보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줌마들이 젊은 놈이 뭐 때문에 왔을까 하는 것만 같았다.”
‘험, 험.“
구건호는 얕은 기침을 하고 사무실을 벽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벽에 상담료 10만원이라고 써 있었다. 가만히 포켓을 만져 보았다. 상담료가 3만 원 정도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10만원이라니 더럽게 비쌌다.
상담이 끝난 사람이 나왔다. 나이는 5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무척 세련된 사람이었다. 상담이 끝난 50대가 여직원한테 10만원의 복채를 주고 인사를 하고 나갔다. 소파에 앉아있던 대기자중 한사람인 60대 아줌마가 중얼거렸다.
“방금 나간 사람은 아주 세련 돼 보이네. 옷하고 빽도 모두 명품만 걸쳤네.”
여직원이 아줌마의 말을 받았다.
“방금 나간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00장관 부인이에요.”
“오라, 그랬구먼. 어쩐지 복스럽고 세련되어 보이더라니.”
“00장관 부인이 다녀갔다는 말 아무한테 말하지 마세요.”
“내가 어디 가서 무슨 말을 하나. 그런데 젊은 색시, 여기 토요일도 이렇게 사람 많이 와요? 토요일은 오전만 본다는데.”
“네, 토요일에도 15명 정도는 와요. 평일에는 30명 정도 오는데요. 뭘.”
구건호는 가만히 머리 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상담료가 10만원이면 평일에 30명... 힉! 300만원이네!”
구건호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하루에 나의 한 달 급여보다 많다니!”
부천에 살 때 이웃에 사는 재식이 삼촌이 철학관을 열었다가 임대료도 못내 접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기는 차원이 달랐다. 재식이 삼촌은 역술계도 뜨는 사람 몇 명 외에는 대부분 90%는 임대료도 못 내고 한 달 수입이 80만원도 못된다고 하였었다.
“진여 철학관이 유명하긴 유명한 모양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구건호가 마지막 손님인 모양이었다. 구건호 뒤로는 손님이 오지 않았다. 가끔 전화가 걸려 왔는데 예약 전화였다. 지루하게 1시간 정도 기다리자 구건호 차례가 왔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이제 들어가세요.”
안경 낀 여직원이 웃으면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구건호가 상담실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60대 정도의 남자가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겠군. 이리와 앉아요.”
구건호가 커다란 책상 앞 손님용 의자에 앉았다. 역술인이라 도사 복장이 아니더라도 개량 한복쯤은 입었는지 알았는데 넥타이를 맨 신사 차림이었다. 가만히 보니 역술인 보다는 대학 교수처럼 생긴 사람이었다.
“내가 진여 철학관 원장 박판수요. 사람들이 그냥 박도사라고 부르지.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지요?”
구건호가 생년월일을 불러 주었다.
“음력이요? 태어난 시각은?”
“어머님이 아침 먹고 저를 낳으셨답니다. 9시경쯤 된다고 들었습니다.”
“진시(辰時)인 모양이군. 지금 화공약품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겠군!”
구건호가 눈을 크게 떴다. 플라스틱 공장에서 드럼통 닦으며 화공약품을 날마다 사용하고 있으니 놀랄 만 하였다.
“술 좀 그만 먹어!”
대뜸 반말이었다. 날마다 사는 것이 괴로워 퇴근 후 원룸에 돌아가면 술을 마시는 것도 아는 모양이었다. 구건호는 뭔가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져 얼굴이 빨개졌다. 박도사는 종이에 뭔가를 한참 적었다. 흘려 쓰는 한자라 무슨 글자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말없이 무언가를 5분간 끄적였다.
“흠....”
박도사가 자기가 쓴 종이를 바라보고 신음 소리를 냈다.
“뭐, 잘못된 점괘가 나왔습니까?”
박도사는 구건호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종이만 쳐다보았다. 구건호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공돌이가 팔자가 좋아질 이유도 없겠고 앞길만 막막하여 도사가 신음 소리를 내는 거겠지 하였다. 이때 상담실 노크 소리가 들리며 여직원이 목을 내밀었다.
“저, 선생님. 이회장님 오셨는데 기다리시라고 할까요?”
“음? 이회장이? 들어오시라고 해!”
양복을 입은 60대 남성이 들어오다 말고 멈칫 하였다.
“상담 받으러 온 손님이 계신 것 같은데 내가 들어오면 되겠나.”
“아니, 이리와 내 옆으로 앉아 보시게!”
이회장이란 사람이 앉지는 않고 박도사 책상 옆에 섰다.
“이걸 보시게. 방금 이 앞에 앉아있는 젊은이의 사주를 본거네.”
“손님 건데 내가 봐도 되나?”
이회장이란 사람이 구건호에게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하였다.
“이거 보게. 엄청난 신왕재왕(身旺財旺)한 사주네.”
“음... 정말 그렇군.”
이회장이란 사람이 박도사가 건네준 종이를 안경 너머로 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신왕재왕?”
구건호는 이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했다.
“더구나 양일간(陽日干)의 사주네.”
“대운도 곧 들어오고 있군.”
박도사가 의자를 뒤로 젖히며 구건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얼굴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젊은이는 아주 큰 부자가 될 사주네. 만석꾼이가 되어 천금을 희롱할 사주이네.”
“제가요? 전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알아. 지금 운세로는 공장 다니는 것도 과분해.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지?”
박도사가 목을 길게 빼어 구건호의 눈을 맞추며 생글거렸다. 뭔가를 놀리는 행동이었다.
“지방대 다니다가 사이버 대학은 졸업했습니다.”
“그것도 과해. 운 나쁘면 학교도 못 다녀.”
“그럼 앞으로 좋아진다는 말씀입니까?”
“걱정 마! 스카이대학 나온 놈들 밑에다 두고 회장소리 들을 테니까!”
구건호는 박도사가 복채 10만원을 받기위해 허황된 소리를 늘어놓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빳다.이때 박도사 옆에 있던 이회장이란 사람이 구건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가만, 젊은이는 어디서 본 것 같군.”
“예?”
구건호도 이회장이란 사람을 다시 쳐다보았다. 구건호도 분명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오라, 포천 낚시터에서 보았던 젊은이군.”
구건호도 생각났다. 낚시터에서 본 그 60대였다. 제네시스 리무진을 타고 왔던 사람이었다.
“어? 두 사람 구면이야? 포천 낚시터에서 보았다고? 포천 낚시터면 이회장 별장 있는데 아니야? 허허 인연이 따로 없구먼.”
박도사는 껄껄 웃으며 녹차를 한잔 마셨다. 녹차를 마시고 박도사는 또 목을 길게 빼고 말했다.
“젊은이, 여기 옆에 있는 이회장이 누구신지 아는가? 청담동에서 빌딩을 몇채 가지고 있는 구두쇠지. 그래 보왔자. 이회장은 천석꾼이 밖에 못되고 젊은이는 만석꾼이네. 오래간만에 대운 제대로 받는 신왕재왕 사주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네. 젊은이 이름을 내가 오랫동안 기억해 두지. 구건호라고 했나? 세울 건(建)자, 클 호(浩)자 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 지금 생활이 고달프더라도 염려 마시게. 앞으로 5년 정도 지나면 큰 부자가 될 걸세. 젊은 사람이니 복채는 5만원만 받겠네.”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했다. 이회장이란 사람한테도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구건호는 철학관을 나와 강남역으로 왔다. 박도사의 이야기가 실없는 소리라고 해도 일단은 부자가 된다니 기분이 좋았다. 강남역 근처의 큰 빌딩,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이 이제는 웃으며 구건호에게 축복의 박수를 쳐주는 것만 같았다.